소설리스트

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90화 (190/200)

제190화

“히익! 도, 도망….”

콰저작-

아델바르의 기계병들은 강력했다.

고블린과 오크 같은 잡병들의 창칼은 당연히 박히지 않았고, 굳건히 올려 세운 방패도 그들 앞에선 얇은 나무 판때기나 다름없었다.

지금껏 엘프와 드워프 놈들을 무자비하게 도륙 내던 7대 종족의 일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발록과 가고일의 단단한 육체는 무른 과일 마냥 터져나갔고, 늑대인간의 용맹함과 날카로운 발톱은 강철로 된 차가운 몸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악마족과 용족의 마법은 기계병의 육신에 새겨진 방어막에 가로막혀 제 위력을 내지 못했다.

하물며 이성을 매혹하는 서큐버스와 피를 다루는 뱀파이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바보 같은 놈들! 물러서는 적들에게 정비할 시간을 줄 셈이냐!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 싸워라!”

물론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능력이 출중한 장군들이나 그들의 노련한 지휘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실력 있는 분대들은, 느리지만 조금씩 확실하게 기계를 부숴나가고 있었다.

“됐다. 병사들을 다른 곳으로 물리도록. 성벽이 이쪽만 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

“혀, 혈마왕님!”

하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기계병들과 치고박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단순히 도시를 점령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대로 두어도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 언제 온건파의 군대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아델바르를 상대로 쓸데없이 많은 병사를 희생시키는 것보단, 내가 직접 나서는 편이 더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그편이 나중에 놈을 붙잡았을 때, 그 처우를 내 것으로 돌리기 편했다.

아델바르는 내 거다.

내 목표였다.

절대 다른 누구에게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가라.”

“예, 예! 다들 물러서라! 성벽을 돌아 다른 곳을 타격한다!”

병사들이 할 일은 충차를 이끌어 성벽을 무너트리고, 엘븐하임의 방어선을 점점 도시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나는 내 명령에 따라 뒤로 물러서는 병사들을 보고선, 그들을 쫓기 위해 달려오는 기계병들의 앞을 막아섰다.

“흐히히히! 쥐새끼처럼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는. 마족인지 뭔지, 역시 내 자신작들 앞에선…. 으잉? 넌 또 뭐냐!”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전장 한가운데.

물러서는 마족들을 보며 역겨운 웃음을 터트리던 아델바르는, 이내 홀로 남은 나를 보고선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아! 그렇군. 너도 그 커다란 도마뱀 녀석처럼 마왕인가 뭔가 하는 녀석인가 보구나. 으히히! 좋아, 좋아. 잔챙이들만 상대해서는 의미 있는 데이터가 쌓이지 않는 법이지.”

자신만만하군.

아델바르의 기계병들이 대충 어느 정도 되는 강함을 가졌는지는 이미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지금 내 주변을 둘러싼 기계병 모두를 다 합해 봐야, 카르카쉬는커녕 다른 마왕들 휘하의 사천왕들조차 넘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저리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건, 아직 직접 부딪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제가 직접 본 사실을 제외하곤 절대로 믿지 않는 부류였으니까.

제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하기도 했고.

“어디 한 번 버텨 보거라!”

우웅-

아델바르의 손짓에 한창 물러나는 마족들을 쫓던 기계병들 모두 나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가소롭기 짝이 없군.”

현 시점에서 아델바르의 기계병들이 가진 능력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우습게도 제작자인 그가 아닌 바로 나였다.

이제야 처음 제가 만들어 낸 놈들을 전장에 선보인 녀석과는 달리, 나는 용사 시절에 한창 최전선에서 목숨을 내놓고 구르며, 그의 기계병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산증인이었다.

하물며 당시 수없이 많은 전투 데이터를 수집해 개량에 개량을 거듭했던 물건이 아닌, 프로토타입에 불과한 녀석들쯤이야.

지금의 나라면 제자리에서 손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전부 박살 내 버릴 수 있었다.

쿵- 쿵-

거대한 덩치의 기계덩어리들이 지축을 울리며 단번에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커헝!

늑대의 형상을 한 기계병이 끼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목덜미를 노리고 뛰어들었다.

“감히 이런 고철 덩어리들 따위로 날 상대하려 들다니.”

탁-

나는 무심한 눈으로 천천히 손가락을 튕겼다.

비록 피륙으로 이루어진 생명이 아닌 차가운 금속으로 이루어진 기계들이었지만, 쓸 수 있는 재료야 바닥에 흥건히 널려있었다.

끼릭- 끼릭-

“뭐, 뭐냐!”

무언가 턱 걸리는 소리와 함께 기계병들의 움직임이 뚝 멈춰 섰다.

당황한 에델바르가 품에서 길쭉한 봉 같은 것을 꺼내 이것저것 꾹꾹 눌러 댔다.

“꿇어라.”

끄그그극-

곧 불길한 소음과 함께 기계병들의 관절이 이리저리 뒤틀렸다.

“이, 이익… 이것들이 갑자기 왜 제멋대로! 빌어먹을, 제대로 명령 좀 들어 먹으란 말이다!”

쿠웅- 쿵-

녀석은 오만상을 지어 가며 어떻게든 다시 기계병을 움직이려 애썼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통제권을 잃고 마구 날뛰던 놈들은 머잖아 맥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째서….”

에델바르는 황망한 눈빛으로 작동을 멈춘 자신작들을 내려다봤다.

“대체…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차라리 멀쩡히 싸우다 부서졌으면 이리 화가 나지도 않았을 터였다.

당장 마족들을 몰아내고 성벽을 사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에게 있어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개량을 위한 유의미한 데이터들이었다.

그까짓 거, 다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거늘.

“크으으으… 됐다! 말하지 않겠다면 직접 그 무거운 주둥이를 벌리면 그만이지.”

물론 제아무리 마법이 판치는 대륙이라고는 하나, 이 세계의 공학 수준으로 저런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기계병들을 만들어 내는 녀석이, 그 간단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 없었다.

에델바르는 그저 자신이 있는 거였다.

한순간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린 제 자신작들을 보고서도, 결코 내게 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말이다.

“벌써 이걸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만 어쩔 수 없지. 건방진 네 자신을 탓해라! 흐, 흐힛. 흐하하하핫!”

뿌득-

그는 광소를 터트리며 손에 쥔 봉을 꺾었다.

드디어 전력을 꺼내 드는 건가.

쿠구구구-

“절망해라. 위대한 드워프 공학의 결정체 앞에 무릎 꿇어라, 이 아둔한 종족들아!”

나는 딛고 선 땅이 격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며, 슬쩍 뒤로 걸음을 물렸다.

동시에 바닥이 쩍 갈라지며, 거대한 손 같은 것이 균열을 뚫고 튀어나왔다.

쿠웅-

“훌륭하군.”

골렘.

뛰어난 공학 수준을 가진 드워프 장인들의 손에서 태어난 무생물 병기.

그 재료와 공학자의 수준에 따라, 어쩌면 마왕들과도 충분히 적수를 겨룰 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족히 20m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황금색 골렘의 등장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흐흐. 통짜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골렘이다. 너희 마족들을 찍어 누르기 위해, 칼릭소 그 늙은이가 특별히 왕가의 재산을 모두 풀어 줬지.”

오리하르콘.

슬쩍 등에 멘 검과 허리춤에 찬 단검 하나로 시선을 돌린 나는, 본래 알고 있던 것과 사뭇 다른 생김새를 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믿을 수가 없군.

설마 저게 다 오리하르콘인 건 아니겠지?

“박살 내 주마! 가라, 골렘이여!”

쿵- 쿵-

나는 지축을 울리며 다가오는 거대한 황금의 거인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델바르의 비밀병기.

에리스나 가제프, 세르노이와는 달리 제 스스로는 일개 병사들만도 못한 전투력을 가진 그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랜드 마스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게 다 마룡왕 카르카쉬조차 부수는데 수십 분이나 걸렸을 만큼 애를 먹은 미스릴 골렘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통짜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골렘이라니.

어쩌면 미스릴 골렘에 겉만 입힌 걸지도 몰랐지만, 그것만 하더라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모습을 보여 줄 터였다.

그저 단단하기만 할 뿐인 미스릴과는 달리, 오리하르콘은 뛰어난 마력흡수율까지 갖추고 있었으니까.

아마 마법으로 부수려면 한세월은 두드려야 되겠지.

“죽어라!”

곧 내 앞에 도착한 골렘이 그 거대한 주먹이 휘둘러 왔다.

무지막지한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당히 빠른 공격이었다.

콰앙-!

“으히히히히! 꼴좋구나! 제아무리 마왕이라도 결국 피륙으로 이루어진 생물인 이상, 이 오리하르콘 골렘 앞에선….”

“흐흐.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쿠구구구-

그대로 나와 함께 바닥을 내리찍은 줄 알았던 주먹이,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려졌다.

“흐억! 어, 어떻게… 분명 정통으로 맞았을 텐데!”

고작 2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생물이, 수백 톤은 족히 나갈 듯 거대한 덩치를 가진 골렘의 일격을 정면에서 막아낸 것도 모자라, 이젠 힘겨루기에서조차 그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강해져 버려서 말이야. 혹시라도 복수가 너무 쉽게 끝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주 기대 이상이야.”

하나둘씩 죽어 나간 마왕들의 시체를 흡혈하고 악신의 잔재를 흡수한 걸로도 모자라, 세계수의 그 막대한 생명력까지 전부 빨아먹어 버린 탓일까.

지금의 나는 실상 마계 최강이라 일컬어지던 그 카르카쉬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른 상태였다.

“다행히 조금은 즐길 수 있겠어.”

물론 강해지는 게 나쁜 건 아니었지만, 동시에 그토록 열망해 오던 복수가 당장이라도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손쉬운 목표가 됐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었다.

아무리 바닥에 떨어진 열매가 더 달콤하다지만, 사람은 아직 가지에 맺혀 있는 것을 더 원하기 마련이었다.

“흐읍!”

끄그그그긍-

쿠웅-!

나는 단순히 완력만으로 골렘을 밀어 눕히며, 자칫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을 만큼 커다랗게 뜬 눈으로 이쪽을 살피는 아델바르를 향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자, 설마하니 이게 끝은 아니겠지? 어디 한 번 더욱더 나를 몰아붙여 보거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괴짜 드워프의 얼굴에, 시커멓게 그림자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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