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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83화 (183/200)

제183화

쿠륵- 쿠르륵-

도시 전체를 덮은 빛이 천천히 수그러들며, 바닥에서 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뭐지?”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그밖에는 딱히 달라진 게 없는 상황에, 나는 물론이고 악신마저 당황한 듯 멍하니 멈춰 그 기괴한 몸뚱이를 이리저리 틀었다.

“흐응… 이걸로 한시름 놨네. 에릭, 거기서 가만히 있지 말고 좀 더 물러서는 게 좋을 걸? 혹시라도 휘말리기 싫으면 말이야.”

휘말리다니?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조금 뒤로 걸음을 옮겼다.

쿠구구구구-

“으헉!”

그때였다.

내성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기 무섭게, 지면이 거세게 진동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한 몸을 가누느라 진땀을 흘렸다.

콰르르륵-

잔잔한 강처럼 흐르던 물소리가 금세 폭포처럼 몸집을 불렸다.

보이지 않아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내성 안쪽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뒤늦게 이상을 감지한 악신이 촉수를 미끄러트리며 황급히 내성을 벗어나려했다.

성벽이 사방을 둘러막고 있긴 했지만, 놈에게 있어 그런 것쯤이야 조금 커다란 돌부리에 불과했다.

“이런 젠장, 막아야….”

“잠깐. 내성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 돼. 기껏 늦기 전에 빼 왔는데, 다시 가서 휘말리고 싶은 건 아니겠지?”

“빌어먹을, 그럼 어떻게 하란 거냐!”

악신이 내성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선,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만 했다. 놈이 바보처럼 우리 쪽으로 도망쳐 나온다면 모를까, 성벽이 큰 의미가 없는 녀석이 굳이 이리로 움직일 리가 없었다.

분명 반대쪽으로 도망치려 하겠지.

콰앙-! 콰아앙-!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예상대로 놈은 성벽을 부수고 내성을 벗어나는 방법을 택했다.

거대한 촉수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견고한 성벽이 마치 흙으로 쌓아 올린 듯 맥없이 허물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녀석 또한 많이 지친 지라, 악투스를 쳐내 성벽을 부숴버렸을 때처럼 단번에 무너트리진 못했다는 것이었다.

“걱정할 거 없어. 오히려 괜히 위협을 무릅쓰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것보단, 멀리서 혈마법이라도 준비해놓는 편이 나을 거야.”

하지만 그런 광경에도 릴리스는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제자리에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당장이라도 자리를 옮기려던 나는, 그 모습에 걸음을 옮기는 대신 팔을 들어 올렸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여유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진, 금방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콰아아앙-!

투웅-

성벽은 채 10초를 버티지 못하고, 저 커다란 덩치가 지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허물어졌다.

하지만 곧장 그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던 놈은, 투명한 벽 같은 것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했다.

[email protected]#$#@#? @$%!

쿠웅-! 쿵-!

당황한 놈은 무어라 알 수 없는 말을 뱉어 대며, 보이지 않는 벽을 향해 그 육중한 덩치를 부딪쳤다.

“저건….”

“벨제붑의 마법이야. 후후. 옛날 생각나네. 전대 악마왕의 군세를 잡고 왕위를 찬탈할 때도, 똑같은 전술을 썼었지.”

릴리스는 꽤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악신이 부딪힐 때마다 일렁거리며 어렴풋이 제 존재를 보이는 돔 형태의 방어막을 바라봤다.

그리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군.

확실히 대단한 마법이었다.

그 악투스마저 단번에 날려 버린 저 무지막지한 공격을 벌써 몇 번이나 막아냈는데도, 작은 흠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헌데 좀 이상하군.

이런 마법을 쓸 수 있는데도, 왜 지난 전쟁 때는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거지?

“쿨럭!”

“벨제붑, 버틸 수 있겠어?”

“…빨리 도와라. 앞으로 길어야 20초를 버티기 힘들 거 같으니.”

의문은 금방 풀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토혈음에 슬쩍 고개를 돌린 나는, 안색이 새파래져선 시커멓게 죽은 핏물을 뱉어내고 있는 벨제붑을 볼 수 있었다.

콰앙-!

“크웁….”

저 멀리서 방어막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창백한 안색이 점점 더 죽어갔다.

마력뿐만이 아닌, 제 생명력까지 담보로 공격을 막아서는 마법인가.

그에 더해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무방비 상태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걸로 보였다.

아무래도 성벽을 끼고 버티는 놈들을 상대론 딱히 쓸모가 없으니, 그동안 쓸 일이 없던 모양이었다.

도망치는 놈들을 쫓을 때도 마법을 준비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냥 쫓아가서 잡는 편이 더 이득이었겠지.

“서둘러라!”

앞으로 20초 정도라 했던가.

그 뒤로 또 시간이 흐른 걸 생각하면 길어야 10초 남짓이었다.

물론 그 정도면 저 빌어먹을 놈의 발을 묶을 준비를 끝마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스륵-

나는 들어 올린 팔을 몸쪽으로 끌어당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이상 발버둥 치지 마라.”

콰악-

내성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던 핏물이 사슬처럼 엮여 악신의 몸을 붙잡았다.

당황한 괴성을 지르며 녀석이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투둑- 툭-

급히 준비하느라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한 마법은, 상처투성이에 지칠 대로 지친 녀석조차 확실하게 묶어두지 못했다.

하지만 당장은 그걸로 충분했다.

녀석의 발을 묶어둘 마법은 내 것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쿠구구구-

쩌적- 쩍-

지하에서 일어난 격류를 버티지 못한 지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쩍쩍 갈라져 나갔다.

이윽고 무저갱 같은 암흑 속에서 시뻘건 불길이 파도치듯 위로 솟구쳤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사슬을 거의 다 끊어낸 놈이 그 모습을 보곤 흠칫 몸을 떨었다.

위험을 직감한 듯, 몸부림이 더욱 격렬해졌다.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들 위로 선명한 균열이 일었다.

“참, 끈질기네.”

촤악-

기어코 모든 사슬을 끊어내기 직전.

거대한 넝쿨이 지면을 뚫고 나오며, 촉수를 타고 악신의 몸을 휘감았다.

단박에 옴짝달싹 못 하게 된 녀석이 당황한 듯 머리를 이리저리 틀었다.

쿠르르륵-

그 사이, 시뻘건 불길을 날름거리며 갈라지는 땅이 어느덧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윽고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이 악신의 몸을 천천히 집어삼켰다.

투둑-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갈라진 땅 아래로 금세 절반 가까이 집어삼켜진 놈은, 가까스로 넝쿨을 찢어내고선 지면 위로 촉수를 뻗어 몸을 지탱했다.

아직도 저만한 힘이 남아있다니.

나는 기어코 갈라진 틈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놈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후욱… 소용없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벨제붑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직 말할 기력이 남아있는 걸 보아하니 죽을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베른의 일 이후로 그와는 영 껄끄러운 사이가 된 터라, 내심 악신과 함께 정리됐으면 했는데.

콰르르륵-

치이이이익-

[email protected]#$#%@!

어쨌든 그의 말마따나 탈출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반쯤 빠져나갔던 몸뚱이는, 용솟음치듯 아래에서 터져 나온 불길에 휩싸여 금방 녹아내렸다.

제아무리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려고 한들, 굶주린 사자처럼 게걸스럽게 몸뚱이를 집어삼켜 오는 용암 앞에선 부질없는 짓이었다.

쿠구구구-

풍덩-

이윽고 다시 달라붙기 시작하는 틈새에, 그 압력을 버티지 못한 악신의 몸이 무저갱 저편으로 떨어졌다.

벗어날 기력이라도 남아있었다면 모를까.

지칠 대로 지친 몸에 육신의 절반 이상이 뼈째 녹아내린 상태로 버티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쿠웅-

“허억, 헉….”

끝내 벌어진 대지가 꾹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긴장이 턱 풀리며, 너나 할 것 없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해치웠나….”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힘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아무리 녀석이 신이라도, 그 용암이 흐르는 깊은 지하 속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악투스. 악투스는 괜찮나?”

“…글쎄, 모르겠네. 그 양반이야 워낙 튼튼하니까, 살아 있을 지도 모르지.”

짧은 휴식을 마치고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킨 나는, 악신의 촉수에 치여 내성을 부수고 날아간 악투스를 찾았다.

다른 마왕들과는 달리 내게 이상하리만치 호의를 가지고 있던 녀석이니만큼, 아직 숨이 붙어 있다면 가능한 살리고 싶었다.

혹 죽었다면 죽은 대로 저 둘에게 들키지 않고 조금이나마 흡혈하기 위해서라도,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쿠구구구-

“뭐, 뭐야?”

그렇게 어느 정도 악투스가 날아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 찰나.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 다시 울리기 시작한 땅에, 당황한 눈빛으로 벨제붑이 있는 곳을 돌아봤다.

“마, 말도 안 돼! 설마….”

혹 아직 마법이 끝나지 않은 걸까 생각도 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콰직-

“벨제붑, 피해!”

어찌 불안한 느낌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 걸까.

벨제붑이 서 있는 바닥이 갈라지는 것을 본 릴리스가 황급히 그를 불렀지만,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있었다.

“이런 젠….”

콰앙-!

금방 갈라진 바닥을 뚫고 나온 무언가가, 도망치려던 벨제붑의 발목을 낚아챘다.

“크아아악!”

치이익-

허공에 들어 올려진 녀석은 다급히 제 발목이라도 자르기 위해 손을 움직였으나, 붉게 달아오른 뼛조각은 그보다 빠르게 그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작-

섬뜩한 소리와 함께 벨제붑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럼에도 성이 차지 않는지, 다시 그의 몸을 들어 올리려던 악신의 뼈에서 너덜너덜해진 발목이 떨어져 나갔다.

저 아래 무저갱 속 불구덩이에서 달구어진 뼈에 근육까지 모두 녹아내린 탓이었다.

“아, 아아….”

가까이서 그 모습을 지켜본 릴리스의 몸이 가련히도 떨렸다.

스릉-

…이길 수 있을까?

집어넣었던 단검을 다시 꺼내든 나는, 절망적인 상황에 입술을 꾹 물었다.

차라리 도망이라도…

투두둑-

“…어?”

걱정도 잠시.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뼈는, 이내 힘을 다한 듯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사, 살았다….”

안도감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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