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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75화 (175/200)

제175화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마족 놈들이 성문을 넘다니!”

“그, 그것이… 그람 경들이 동문 경비대장과 손을 잡고 몰래 성문을 열어줬다고….”

새벽부터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재빨리 병사를 시켜 상황을 알아본 대주교, 프란츠는 믿을 수 없는 답에 손을 들어 올렸다.

쩌억-!

“윽!”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다른 기사들은 대체 뭘 했단 말이냐! 가제프, 가제프 경은 지금 어디 있나!”

“끄윽… 가, 가제프 경께선 도시에 들어온 마왕군들을 막으러….”

의식의 완성까지 앞으로 하루도 채 안 남은 때에 적들이 들이닥치다니.

하물며 그게 공성으로 성문을 함락시킨 것도 아닌, 안쪽에서 제 발로 문을 열어준 것이란 사실에 도저히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빌어먹을!”

프란츠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며, 조용히 입술을 씹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이틀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라 했건만, 하룻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란 말인가?

아무리 안에서 성문을 열어젖힌다 해도, 마왕군이 도착하기까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전에 상황을 파악하고 빠르게 병사들을 보내 배신자들을 진압했다면, 마족들이 들어오기 전에 성문을 닫을 수 있었을 터였다.

“무능한 기사 놈들 같으니….”

막상 일이 벌어졌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하다못해 배신자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오기 전에 어느 정도 눈치라도 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시 순찰을 돌던 기사단 여럿이 통째로 매수당하는 동안, 황궁의 기사 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만한 인원이 배신자들의 손에 넘어가는데 아무런 징조도 없었을 리 없었다.

그걸 조금만 눈치챘어도 이렇게까지 무력하게 당할 일은 없었을 텐데.

“대, 대주교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프란츠는 다급한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사제들을 보며, 짧게 고민을 마쳤다.

이미 벌어진 일을 가지고 계속 머리를 싸매봐야, 아무것도 나아질 게 없었다.

그들에게 남은 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방법이 없군. 자네들은 아직 제국의, 여신님의 편이겠지?”

“예? 그, 그야 당연히….”

촤악-

바로 옆에 있던 주교를 붙잡고 한 가지 질문을 마친 그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는 상대를 향해 예식용 단검을 뽑아 휘둘렀다.

“아, 아아아악!”

“대, 대주교님! 이게 무슨….”

반응할 새도 없이 가슴팍을 깊게 베인 주교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얀 예복이 금세 시뻘겋게 물들며, 바닥에 피가 흥건히 고였다.

“날 너무 원망하지 말게. 전부 의식을 위함일세.”

다행히 의식에 필요한 제물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연못에 고인 피가 거의 끝까지 차오른 것을 봐선, 앞으로 일흔 명 정도면 충분할 듯싶었다.

마족 놈들에게 맞서 결계를 펼치며 활약해줘야 할 사제들이 줄어드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연못을 모두 채우고도 기도문을 욀 시간을 생각하면 당장 주변에 있는 것들로 닥치고 채워 넣어도 시간이 빠듯했다.

“대주교! 이게 대체 뭐하는 거요! 이럴 거면 차라리 황궁 밖에 있는 놈들을….”

“그럴 여유가 없네. 또 괜히 나갔다가 마족 놈들 눈에 띄어서 녀석들까지 끌고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마시게. 자네들의 숭고한 희생은 내 결코 잊지 않을 테니.”

“네, 네놈….”

푸욱-

반대쪽에 있던 주교까지 찔러 피가 잘 흐르게끔 상처를 비집어 넓힌 프란츠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병사들을 보며 조용히 혀를 찼다.

“거기서 뭐 하나? 당장 이들을 찔러 연못 안으로 피를 채워 넣게.”

“예, 예?”

대주교는 그 길로 병사들을 지나쳐, 마지막에 제물로 바칠 수녀들이 지내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아아아악!”

“살려, 살려줘!”

복도를 거닐며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쉰 그는, 어느덧 방 앞에 도착해 문고리를 잡고 섰다.

끼이익-

“누구… 대주교님? 어찌 이 시간에….”

“다들 신께 미사를 올릴 준비는 됐나?”

“지, 지금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분명 내일… 아! 대, 대주교님. 피가… 읏!”

프란츠는 제 가슴팍에 튄 피를 보고선 당황한 수녀의 손목을 붙잡고, 강제로 밖으로 이끌었다.

이윽고 남은 방까지 전부 들러 모두를 데리고 지하실로 돌아온 그는, 그새 일을 마치고선 잔뜩 긴장한 얼굴로 양옆에 기립한 병사들을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들 수고했네. 이만 나가있게나.”

“예, 대주교님!”

끼이익-

쿵-

이내 프란츠의 명령에 따라 밖으로 나간 병사들은, 지하실의 문을 닫고선 곧장 위로 올라가 황궁을 지켜 섰다.

“꺄아아악! 대, 대주교님. 시, 시체가….”

“…쯧. 아직 조금 덜 채워졌군. 예비용으로 챙긴 녀석들까지 전부 데려오길 잘했어.”

“네, 네?”

문이 닫히고, 지하실에 잔뜩 널브러져있는 시체들과 머리가 아찔해질 만큼 진한 혈향을 마주한 수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프란츠는 그런 그녀들은 아랑곳 않고 곧장 연못 안을 확인하더니, 찰랑거리는 핏물을 보고선 별 수 없다는 듯 피 묻은 단검을 다시 뽑았다.

“예비용이라니, 무슨… 컥!”

촤악-

다행히, 의식은 멈추지 않았다.

* * *

“다 죽여 버려! 겁쟁이마냥 성벽 뒤에 틀어박혀있던 놈들을 다 쓸어버려라!”

“밀어내! 어떻게든 다시 놈들을 성문 밖으로 밀어내란 말이다!”

도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활짝 열린 성문 안으로 들어선 마족들은, 그간 성벽 위에서 날아든 바윗덩어리의 복수라도 하는 양 매섭게 적들을 몰아붙였다.

“북문은 아직인가?”

“음. 생각보다 고전 중인 거 같구나. 다들 결계 때문에 죽을 쓰는 모양이다.”

북문을 열라 군대의 반을 찢어보낸지 시간이 꽤 됐음에도 아무 소식이 없음에 눈살을 찌푸린 나는, 카렌의 답에 조용히 그리로 고개를 돌렸다.

“아아아악! 모, 몸이….”

“크읏… 빌어먹을, 힘이….”

동문 근처는 세작들이 경비대를 잘 구슬려 근처의 사제들을 붙잡아놓았기에 결계가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다른 쪽은 아니었다.

고블린이나 임프들 같이 수준미달이나 다름없는 놈들은 아예 신성력을 버티지 못하고 온몸이 불살라지고 있었고, 잘 훈련된 정예들도 약해진 신체에 속절없이 밀리고 있는 판이었다.

그나마 발라크와 사천왕 둘이 꽤나 분전해주고 있었지만, 이대로는 북문까지 닿는 데만 한세월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금방 다녀오마.”

“이쪽은 걱정하지 말고 갔다 오거라.”

밖에서 병사들의 손실을 아끼려고 그리 사렸는데, 이대로 가다간 그동안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곧장 다른 사천왕들과 카렌에게 중앙을 맡기고 북문으로 향한 나는, 사제들이 있는 곳을 찾아 빠르게 전장을 훑었다.

“저긴가.”

우글거리는 제국군과 살기 위해 도망치는 제국민들 사이.

건물 한쪽에 붙어 마법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기도문을 낭송하고 있는 사제들이 보였다.

놈들만 잡으면 적어도 지금처럼 맥없이 밀리진 않을 터.

“솟아나라.”

전장에 넘쳐흐르는 핏물을 끌어 모아 바닥 아래로 흘려보낸 나는, 이내 사제들이 서있는 곳 위로 방대한 마력을 쏘아 보냈다.

콰득- 콰드득-

“뭐, 뭐야? 무슨 소리야!”

“바, 바닥이….”

콰앙-!

땅 밑에서 얽히고설켜 거대한 늑대의 형상으로 자리 잡은 피는,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바닥을 부수고 나타났다.

“흐어어억!”

“무, 무슨….”

콰작-

이윽고 바닥의 잔해들과 함께 사제들을 통째로 집어삼킨 녀석은, 그대로 회전하며 안에 든 것을 한줌 핏물로 갈아버리고선 다시금 바닥에 스며들었다.

“크윽! 이 녀석들, 갑자기 힘이….”

“좋아, 뭔지는 몰라도 이제야 좀 몸이 가벼워졌군. 다들 이대로 밀어붙여라!”

근처를 지키던 사제들이 사라지자, 부대는 다시 활력을 얻고 제국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사제들만 하나씩 치워주면 금방 북문에 도착할 수 있겠군.

그럼 다음은…

“음? 흐읍!”

후웅-

적당한 높이의 지붕에 올라 또 사제들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갑작스레 심장을 노리고 날아드는 날붙이에 놀라 황급히 몸을 틀었다.

“…누구냐.”

저벅- 저벅-

곧바로 창이 날아든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린 나는, 아래쪽에서 당당히 걸어드는 기사를 발견하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가제프.”

“네가 에릭 가이오스로군. 뱀파이어.”

가제프.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

나는 허리춤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칼날을 꺼내들며 이쪽을 올려다보는 놈을 보고선, 천천히 단검을 뽑았다.

“이거 참 운이 좋군 그래. 혹시라도 다른 마왕들한테 먼저 잡히면 어쩌나 했는데 말이야.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예상했던 것보다 북문을 여는데 애를 먹은 덕일까.

난 제 발로 눈앞에 나타난 사냥감을 보고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이었다면 이렇게 정면으로 맞붙는 건 상상도 못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만하군. 어디 머리가 잘리고 나서도 그리 나올 수 있나 궁금하구나.”

“그런가? 이거 참 놀랍군. 나도 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우웅-

노도와도 같은 마력이 전신을 타고 단검을 뒤덮었다.

길게 그리고 두껍게 뻗어나간 검기가 압축했다 늘었다는 반복하다, 어느 순간 단검의 날이 비치지 않을 만큼 짙어져 시뻘겋게 물들었다.

“아,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이쪽은 머리를 자를 생각은 없으니까.”

콰앙-!

먼저 준비를 마친 나는, 단검을 치켜 들고선 있는 힘껏 지붕을 박찼다.

시뻘건 날이 눈 깜짝할 새에 녀석의 목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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