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69화 (169/200)

제169화

“시작해라.”

“예! 다들 공격 준비!”

굳건히 세워진 성벽 앞.

아슬아슬하게 마법이 닿는 거리까지 진격을 마친 마법사들은, 저마다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피잉-!

가지런히 대열을 갖추고 성벽을 날려버리려는 마족들을, 제국 놈들 또한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았다.

“사나운 불길이여,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불살라 잿더미로… 컥!”

“제, 젠장… 마르가스! 어이, 똑바로 들어 올리란 말이야!”

높다란 성벽 위와 중간 중간 나있는 구멍을 통해 날아온 화살이 마법사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거의 제 몸뚱이만한 방패로 앞을 막아선 병사들이 그들을 지키곤 있었지만, 사이사이 난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화살까지 막아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빽빽하게 늘어선 방패병들의 빈틈을 뚫고, 그렇게 마법사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경우는 극소수였다.

애초에 저 굳게 닫힌 성문을 우리가 직접 열어젖힐 생각이 없었던 만큼, 본디 용맹하게 돌격해 성벽에 달라붙었어야 할 보병들까지 전부 방패를 쥐어 주고 앞에 세워놓은 덕이었다.

후웅-

“허억… 바, 바위가!”

“이, 이쪽으로 온다!”

그렇지만 적들의 무기는 화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이야 전력을 비교해볼 것도 없으니 별 위협이 되진 않았지만, 문제는 저 성벽 위에 배치된 투석기들이었다.

누가 애초부터 도시 안쪽에 꽁꽁 틀어 박혀있을 생각이었던 것 아니랄까봐, 집채만 한 바위가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콰앙-!

“아아아악!”

“끄윽… 팔, 내 팔이!”

앞에 나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마법사들이 늦지 않게 방어막을 펼치긴 했지만, 애초에 마법이 아닌 공격을 상대로는 효율이 썩 좋진 않았다.

물론 없는 것보단 확실히 낫긴 했지만, 그래도 병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 바위들은 높게 들어 올린 방패 째로 그들을 깔아뭉개기에 충분했다.

몇몇 운 좋은, 혹은 튼튼한 이들은 적당히 팔이 부러지는 선에서 멈추긴 했지만, 그들 또한 더이상 싸울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부상자는 뒤로 빠져라!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2열과 교대한다! 그리고 앞에 놈이 사망했으면 알아서 자리를 채우도록 해라! 어떻게든 마법사들을 지켜!”

장군들의 명령에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사상자들로 인해 빈 공간은 금세 새로운 방패병들로 채워졌다.

커다란 바위가 날아와 바닥에 꽂힐 때마다 못해도 서너 명씩은 죽어 나갔지만, 아직 써먹을 병사는 많았다.

그에 반해 투석기로 쏘아낼 바위는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터였다.

열심히 바위를 나르고 있을 병사들도, 언젠가 그 사실을 눈치 채게 되겠지.

그때쯤이면 저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큰 효과를 볼 수도 없는 화살들을 계속 쏘아대거나 가만히 서서 손가락을 빠는 것 정도가 전부일 터였다.

“파이어볼!”

“스톤 스트라이크!”

번쩍-

투석기를 통해 쏘아진 바위들이 한 차례 지상을 난장판으로 만든 직후.

사방에서 번쩍이는 빛과 함께 크고 작은 마법들이 떠올랐다.

콰앙-! 쾅-!

사전에 명령한 대로 성벽이 아닌 도시 위를 감싸고 있는 방어막들을 향해 떨어진 마법들은, 굉음을 내며 조금씩 방어막을 깎아나갔다.

“발라크. 투석기는 준비됐나?”

“예. 전염병에 걸린 포로들도 철장에 가두어 올려놓았습니다.”

그렇게 바위와 마법을 서로 교환하길 몇 번.

드디어 방어막 한쪽에 자그마한 균열이 생긴 것을 확인한 나는, 발라크를 불러 준비해둔 수를 꺼냈다.

“좋다. 방어막이 깨지면 바로 그 안에 쏘아 보낼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형님!”

콰아앙-! 콰작-

“방어막이 뚫렸다!”

“서둘러라! 다시 재생하기 전에 저 안으로 들여보내야한다!”

곧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쪽에 구멍이 생기고, 투석기를 맡은 병사들이 다급히 그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콜록! 콜록! 사, 살려….”

“무, 무슨…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이 악마 같은 놈들!”

본디 바위가 올라가야 할 곳에 대신 몸이 실린 병자들이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참 복에 겨운 놈들이군.”

난 그런 이들을 내려다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산 채로 포탄처럼 쏘아지다니.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들 정도면 나름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포로로 잡힌 이상 대부분 머잖아 죽을 목숨이었으니까.

어찌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전염병에 걸려 나날이 쇠약해져가는 몸으론 오래 버틸 수 없었다.

괜한 고통만 계속될 뿐이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빨리 편안해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더불어 죽기 전에 맨몸으로 하늘도 한 번 날아보고 말이다.

썩둑-

“아, 아아아아!”

이내 방향을 맞춘 병사들이 바닥에 고정시킨 줄을 끊어냄에 따라, 철장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높다란 성벽을 넘었다.

“뭐, 뭐야?”

“뭔가 날아온다! 또 마법… 아, 아니. 사람?”

그에 성벽 위에서 화살을 당기고 있던 병사들의 얼굴이 점차 경악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투석기에 사람을 담아 날려 보내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미친 짓이란 말인가?

아마 처음엔 단순히 자기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한 쇼일 거라 생각하겠지.

실제로 그쪽으로도 꽤 효과를 볼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건 부차적인 요소고,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었지만 말이다.

쿠웅-

활짝 열어둔 귀를 통해, 성벽 너머로 무언가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사람들의 새된 비명까지.

첫 배달은 훌륭하게 도착한 것 같았다.

“이, 이 쓰레기 같은 마족 놈들이!”

콰앙-! 쾅-!

이쪽에서 보낸 선물에 감동이라도 받은 걸까.

나는 전보다 더 빠르게 돌아오는 보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주억였다.

“이대로 계속한다. 첫날부터 무리할 것 없이, 오늘은 철창 스무 개 정도만 던지고 가도록 하지.”

“예, 마왕님!”

난 우렁찬 대답과 함께 다시 투석기에 밧줄을 묶어 바닥에 고정시키고 다음 철창을 올리는 병사들을 보며, 그들을 지휘하는 백인대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디, 다른 두 쪽은 잘 되고 있으려나 모르겠군.

* * *

“흐어어억! 또, 또 떨어진다!”

쿠웅-! 쿵-

성벽 안.

안켈하임에 모인 사람들은 빈 거리 위로 떨어지는 철창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도시를 포위하고 있던 마족 놈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대략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쯤부터일까.

수많은 마법 세례를 통해 기어코 방어막에 구멍을 낸 놈들은, 바깥에서 포로로 붙잡은 인간과 수인들을 철창에 담아 날려 보냈다.

“우욱, 우웨에엑!”

“머, 머리가! 머리가!”

수십 미터가 넘는 성벽을 넘어 성내에 떨어진 철창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우그러지고, 충격을 버티지 못해 부러지고.

하물며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팔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살갗을 뚫고 나온 것은 예사요, 떨어져나간 사지와 으깬 수박처럼 터진 머리가 데구르르 굴러다녔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버틸 수 없는 자들은 시체로부터 등을 돌려라! 그리고 손이 남는 병사들은 어서 기절한 이들을 데리고 황성으로 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도록!”

흘러나온 내장과 곳곳에 튄 피와 살점을 목도한 사람들은 정신을 잃고 날뛰었다.

자리가 없어 성벽에 올라가지 못한 병사들은 혼란에 빠진 이들을 달래느냐 진땀을 빼야만 했다.

“빌어먹을 마족 놈들, 어찌 이런 끔찍한 짓을!”

그새 방어막에 뚫린 구멍이 아문 것을 확인한 병사들은, 빠르게 시체를 모아 자루에 담았다.

다행히 철창은 한 번 떨어지고 나면 다시 구멍을 뚫기 전까진 또 오지 않았다.

분명 가지고 온 투석기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리라.

“나머지는 계속해서 감시를 늦추지 마라! 구멍이 뚫리면 빨리 위치를 보고할 수 있도록!”

눈앞에서 산산조각 난 시체를 마주하고 그를 치우게 될 때마다 병사들의 사기가 훅훅 깎여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전력의 손실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왜 애써 뚫은 구멍에 굳이 철창에 사람을 담아 이리 쏘아 보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뭔지는 몰라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대신 마법이 떨어졌더라면, 한 번에 못해도 십 수 명씩은 목숨을 잃어야 했을 테니까.

“다들 치웠나? 그러면 빨리 자루를 모아둔 곳에 옮기… 음?”

바삐 움직이던 병사들의 움직임이 점점 잦아드는 것을 확인한 장군은, 한 번 철창이 떨어질 때마다 수십 개씩 쌓이는 자루를 한쪽에 치워두기 위해 걸음을 옮기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선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얼굴이….”

그동안 완전히 뭉그러지던 시체들과 달리 비교적 멀쩡한 시체와 눈이 마주친 그는, 여기저기 검붉은 반점들이 일어나있는 얼굴을 보고선 흠칫 몸을 떨었다.

“서, 설마….”

“장군님, 왜 그러십니까!”

“…다, 다들 서둘러 자루를 옮겨라! 그리고 기다리지 말고 태워, 지금 바로 태워버려!”

“예, 예?”

장군은 갑작스럽게 격해진 반응에 놀란 병사들을 데리고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젠장! 이 쓰레기 같은 놈들, 그래서 이런 짓을….”

우연히 그 멀쩡했던 시체의 상태만 그랬던 거라면 좋으련만.

슬쩍 자신이 든 자루에 삐져나온 팔을 내려다본 그는, 그곳에도 드문드문 나있는 반점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째서 이걸 이제야 눈치 챈 걸까.

애초에 저 간악한 마족 놈들의 노림수는 단순히 이쪽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었다.

전염병.

그 종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창에 담겨 떨어진 시체들은 모두 무언가 병을 앓고 있던 이들이었다.

“거기 너! 가서 사제를 불러라.”

“사, 사제님들 말씀이십니까? 누구로….”

“아무나 좋으니 어서 빨리!”

곧 시체를 담은 자루가 모인 곳에 도착한 장군은 병사 하나를 보내 사제를 부르고선, 공터 가운데 불을 피웠다.

화륵-

“빌어먹을… 제발 방법이 있어야 할 텐데.”

병사들과 함께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자루들을 던져 넣은 그는, 저 멀리 사제 몇을 데리고 헐레벌떡 돌아오는 병사를 보고선 미리 빼내둔 머리 조각 하나를 꺼냈다.

도시의 사제들 중 누군가, 부디 이 전염병의 정체를 알고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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