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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65화 (165/200)

제165화

“축하드립니다, 혈마왕님!”

도시로 돌아와 즉위식을 마치고 적당한 방에 자리를 잡은 나는, 마치 제 일인 양 환한 미소로 내 앞에 부복한 발라크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발라크. 둘이 있을 땐 그냥 전처럼 부르도록 해라. 영 익숙하지가 않군.”

“아, 예! 알겠습니다, 형님.”

체르페슈의 자리를 이음으로서 혈마왕의 군대에 대한 모든 전권을 넘겨받은 나는, 이번 전투를 마치고 남은 인원들의 현황이 적힌 종이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째 마왕이 된 것까진 좋은데, 설마 할 일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빠지는 거였는데.

생각해보니 이제 멋대로 혼자 적진에 몰래 숨어들 수도 없지 않은가.

“으음….”

수북이 쌓인 서류를 하나씩 읽어 내려가던 나는, 이내 짧은 고민을 마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어디 가십니까?”

“그래.”

스륵-

난 이윽고 영주성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다니며, 어딘가에서 쉬고 있을 사천왕들을 찾았다.

아니, 아직 한 자리 비었으니 삼천왕이라고 불러야하나.

“아, 거기 있었군.”

“…마왕님?”

잠시 뒤.

금방 복도를 지나던 녀석을 발견한 나는, 한손에 서류 뭉치를 들고선 어딘가로 향하는 그를 멈춰 세웠다.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군.”

“저를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병사를 보내시지, 왜 직접….”

“어차피 잠시 근처에 둘러볼 곳이 있어서 말이야. 나가는 김에 들르기로 한 셈이지.”

나는 굳이 사람을 시키지 않고 직접 행차한 나를 보며 당황한 놈을 보며, 슬쩍 그가 들고 있는 서류를 살폈다.

뭔지는 몰라도 글자가 빽빽한 게, 꽤 바빠 보이는군.

뭐 딱히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헌데 무슨 일로….”

“아, 그래. 이번에 올라온 서류들 말인데.”

“예.”

“자네가 대신 좀 하게.”

“…예?”

“그럼 그렇게 알겠네.”

그렇게 금방 일을 떠넘긴 나는,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그를 두고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조금 막무가내스럽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마왕의 명인데 말이다.

싫어도 까라면 까야지.

물론 그렇다고 매번 이렇게 빠져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저 오늘은 내일 도시를 떠나기 전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 바삐 나와야했기 때문이었다.

“음, 좋아. 훌륭하군.”

환상적인 대처로 금세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영주성을 나서 곧바로 메리엘과 데이몬을 숨겨둔 동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중간 중간 병사들을 마주칠 때마다 각진 경례를 받긴 했지만, 어딜 가느냐고 물음을 받진 않았다.

심지어 성문을 나서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이게 마왕의 권력인가.

아주 편리하군.

저벅- 저벅-

“잘 지냈나?”

“…….”

그래도 혹시 몰라 빠르게 산을 올라 동굴에 도착한 난, 체념한 듯 아무런 반응 없이 널브러진 두 쓰레기들을 보고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콰악-

“윽….”

“기껏 힘들게 잡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나오면 재미없지. 쉴 만큼 쉬었으면 다시 팔팔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양손으로 하나씩 머리채를 붙잡아 들어 올린 나는, 씨익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뭐, 좋아. 급할 거 없지.”

이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흔적을 지우고 놈들을 여기서 마무리하고 가야 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상황이 바뀌었어. 축하한다. 너흰 오늘 죽지 않을 거다. 오래, 더 오래 살게 될 거다. 제국이 망하고, 중간계가 우리 마족의 손에 떨어지고 나서도 계속. 평생 말이야.”

세르노이는 그때 늑대인간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만 했지만, 이 녀석들은 달랐다.

어차피 두 놈을 포로로 붙잡았었다는 건, 나와 함께 움직였던 인원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저 이대로 명줄을 붙여놓고 갔다간 정보를 캐내겠다는 명분으로 내 손을 떠날까, 하는 수 없이 처리하고 가려했던 것뿐이었다.

“새 혈마왕, 에릭 가이오스의 이름으로 약속하마. 네 둘은 수명이 다하기 전까지, 절대 눈을 감을 수 없을 거다.”

그렇지만 내가 새로이 마왕의 좌에 오른 지금은, 두 놈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기지 않아도 될 터였다.

실제로 그럴 만한 권력이 있었으니까.

물론 마족들 중에 날 고깝게 보는 이가 있다면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녀석들은 이미 다 뒈져버린 뒤였다.

내 빠른 출세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던 게르둠도, 사사건건 시비를 붙여오던 늑대인간 녀석들도.

그나마 벨제붑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남아있는 마왕들 중 이미 악투스와 카르카쉬가 내 편이니 충분했다.

게다가 릴리스도 그다지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진 않았고, 나와 함께 즉위식을 마친 가고일 녀석쯤이야 아직은 미숙한 애송이일 뿐이었다.

“아, 아아….”

나는 이제야 절망 어린 시선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둘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전까진 저들도 내가 이동할 때가 되면 결코 본인들을 살려두고 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겠지.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까진 나도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해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이들을 살려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녀석들도 바보는 아니었으니, 은연중에 풍겨져 나오던 그 낌새를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저 그들에겐 안타깝게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잘 풀렸을 뿐이었다.

또 마왕이 가지는 권력이 내 예상을 훨씬 웃돌기도 했고 말이다.

“주, 죽여줘. 아니, 제발 죽여주십시오! 잘못,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난 금방 상황파악을 마치고선 재빠르게 무릎을 꿇고 비는 데이몬을 보며, 조용히 이를 드러냈다.

“아니, 이미 늦었어.”

콱-

[제국 황실마도사단장, ‘데이몬 메지아’를 흡혈했습니다.]

[대상의 모든 피를 마시지 않아, 흡혈의 효과가 감소합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마력이 ‘5’ 증가합니다.]

훤히 드러난 녀석의 목에 망설임 없이 이를 박아 넣은 나는, 그렇지 않아도 수척했던 녀석의 얼굴이 창백하게 마를 때까지 흡혈을 마치고선 이내 입가를 닦았다.

“으, 으….”

툭-

“…신이시여.”

이후 흡혈을 위해 잠시 붙들고 있던 어깨를 놓자마자 맥없이 뒤로 고꾸라지는 데이몬을 두고서 메리엘을 돌아본 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작은 목소리로 열심히 무언가를 찾는 그녀를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다고 네 그 잘난 여신이 정말 널 구원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나는 보란 듯이 녀석의 눈앞에서 조소를 지어보이며, 다시금 입을 꾹 닫아버린 그녀를 향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어떻게든 내 맘에 들어보려 알랑방귀라도 한껏 뀌어보는 편이 좋을 거야. 혹시 아나? 그 무능한 여신이라는 작자보다 내가 먼저 널 지옥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을지.”

콱-

[교단의 성녀, ‘메리엘’을 흡혈했습니다.]

[대상의 모든 피를 마시지 않아, 흡혈의 효과가 감소합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마력이 ‘4’ 증가합니다.]

이걸로 마력도 250까지 얼마 남지 않았군.

금방 메리엘까지 흡혈을 마친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두 녀석의 구속을 풀고선 빠르게 동굴을 나섰다.

어느 쪽이든 더 이상 누군가에게 책망 받을 위치는 아니라곤 하지만, 몰래 숨겨놓은 포로를 데려오는 모습을 남에게 들키는 것보단, 이미 들여온 녀석을 보여주는 편이 더 둘러대기 쉬운 법이었으니까.

* * *

“에릭. 슬슬 시간이다.”

동굴에 숨겨뒀던 메리엘과 데이몬을 데려와, 몰래 포로들을 붙잡은 철창에 넣고선 마왕으로서 남은 업무를 끝마친 다음날.

나는 새벽부터 출정 준비를 마치고 대열을 이룬 병사들을 창밖으로 내려다보며, 이만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포로들은, 다 옮겼나?”

“음. 걱정하지 마라. 네가 말한 셋은 확실하게 따로 챙겼으니. 물론 원하는 대로 기술자에게 딱 죽지만 않을 수준으로만 고문과 치료를 반복하라고 명을 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훌륭하군.”

단상에 오르기 전.

카렌을 통해 메리엘과 데이몬 그리고 우르누이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며 계단을 올랐다.

“다들 간밤에 잘 쉬었나.”

이내 수만 명의 병사들 앞에 서서 조용히 입을 연 나는, 어제 한참 전투를 끝마치고서 뒷정리를 계속했던 것치고는 상태가 좋아 보이는 녀석들을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악투스의 군대도 릴리스의 군대도, 다른 녀석들은 조금 더 휴식을 취한다는데 우리만 먼저 출발한다고 해서 불만이 가진 이들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불만이 없기야 왜 없을까.

나는 그렇게 얘기를 꺼내는 순간에도 몇몇 눈살을 찌푸리는 녀석들을 보고선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특히 어제 내가 동굴에 다녀오는 동안 울며 겨자 먹기로 내 업무까지 대신해야했던 사천왕의 얼굴을 봤을 땐, 하마터면 육성으로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대신 기대해도 좋다. 그들보다 빨리 출발하는 만큼, 남은 전공은 모두 우리의 것이 될 테니. 그럼 더 이상 긴말 않고 바로 출발하지.”

“예! 다들 출정이다!”

괜히 여기서 연설이나 하며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이미 충분히 준비를 마친 병사들을 둘러보며 곧장 도시 밖으로 걸음을 옮긴 나는, 미리 준비된 마차에 올라 남쪽으로 향했다.

어젯밤 셀파스트로부터 전해 받은 정보에 따르면, 이방인들을 이용한 작전의 실패로 인해 최후의 방어선이 되어버린 제국의 심장.

수도 안켈하임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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