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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61화 (161/200)

제161화

“이상하군. 하나쯤은 있을 만한데.”

슬슬 상황이 정리된 듯 소란이 잦아든 북쪽을 피해 남문 근처를 돌아다니던 나는, 건물 여럿을 살피며 지하실이 있는 곳을 찾았다.

머잖아 늑대인간들이 나를 돕기 위해 이 녀석을 찾아 돌아다닐 텐데, 아무 곳에서나 일을 벌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안전한 걸로만 따지면 이대로 메리엘과 데이몬이 있는 동굴로 향하는 것이 제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주술의 효과가 적용되는 범위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끼익-

“흐흐, 그래. 이만한 도시에 뒤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양반이 한 명도 안 살았을 리가 없지.”

늑대인간들이 도시를 뒤적이기 전에 바삐 움직인 나는, 다행히 늦지 않게 창고 바닥에 철문이 나 있는 여관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끼기기긱-

나는 곧바로 창고에 있던 마대와 노끈을 몇 개 가지고서 철문 아래로 내려왔다.

생각보다 바닥이 두꺼운 것이,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지 않는 이상 방음은 확실할 거 같았다.

뭐 그래봐야 늑대인간들의 청력이라면 금방 잡아낼 수 있을 테지만, 적당히 입 좀 막아놓는다면 어느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툭-

“아윽! 케흑, 켁! 웁….”

세르노이를 거칠게 바닥에 내던진 나는, 손가락 자국이 벌겋게 일어난 목을 부여잡고 기침을 해대는 녀석의 턱을 붙잡고 입 안에 마대를 쑤셔 넣었다.

“마음껏 기뻐해도 좋다, 세르노이. 아주 운이 좋아. 본래대로라면 성녀와 황실 마도사단장과 같이 내 곁에서 오붓하게 밤을 지새웠을 텐데. 안타깝게도 지금 시간이 얼마 없어서 말이야.”

“흐읍, 읍!”

쿵-

난 그대로 마대를 다시 뱉어내려고 하는 그녀를 잡아다, 여관주인이 뒷골목에 약이라도 팔아먹고 있었는지 요상한 풀떼기들이 잔뜩 빻아져 있는 작업대로 밀어붙였다.

“다만 그만큼 빨리 죗값을 치러야겠지? 그래, 우선 손톱부터 시작하지. 기대해도 좋아. 성녀도 참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으, 으으읍!”

꾸욱-

아까 위에서 챙겨온 노끈을 손에 쥔 나는, 곧 저에게 다가올 일을 예감한 듯 잔뜩 몸부림치는 놈의 몸을 누르고 다리를 묶었다.

스릉-

“흐으으읍! 흐으읍!”

이윽고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든 나는, 팔 한쪽을 끌어당겨 작업대 위에 두고선 녀석의 손가락을 쭉 펼쳤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해 보이는 표정이군. 그래, 뭐 알려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 물론 얘기해도 지금의 넌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푸욱-

“끄으으으읍!”

“너희가 제멋대로 불러내서 의식의 그릇으로 써먹은 이방인들도, 다 자기 삶이라는 게 있었단 말이야.”

섬뜩한 소리와 함께 손톱 사이를 파고든 날 아래로, 시뻘건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딱딱한 손톱으로 보호받던 연약한 피부가 헤집어지는 고통에, 세르노이의 눈이 흰자로 뒤집혔다.

그래도 척박한 북쪽 땅에서 자란 녀석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성녀나 이놈이나 시작부터 엄살이 참 심하군.

“그런데 갑자기 웬 낯선 땅으로 떨어지니 얼마나 불안했겠어. 최소한 허락이라도 구했어야지. 그렇게 제멋대로, 그것도 한 번 떨어지면 다신 돌아가지 못할 곳으로 불러내면 쓰나.”

쯔억-

“으흡, 끄흐으읍!”

슬쩍 손잡이를 들어 올리자, 날 끝이 피부를 파고들며 점점 손톱이 들렸다.

“하물며 그렇게까지 도움이 필요했으면 잘 모시기라도 했어야지. 안 그래?”

툭-

금세 힘을 잃고 떨어져 나간 손톱을 보며 이만 단검을 거둔 나는, 거칠어진 숨을 색색 내뱉으며 축 늘어진 그녀의 입에서 마대를 빼냈다.

“왜, 왜… 어째서 그런 걸 신경 쓰는 거죠? 애초에 당신은 마족이잖아요.”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녀석의 모습에,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마족이지. 그러니까 미리 말했잖아. 이유를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무슨, 무슨 그런 억지가… 게다가 이방인은 어디까지나 제국이… 웁, 우웁!”

난 억울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그녀를 보며, 다시금 입 안에 마대를 쑤셔 넣었다.

“이방인들을 소환한 게 제국이라고 해서, 너희들의 죄가 없어지나?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사람들한테 네 부하들까지 전부 제물로 바쳐서 괴물로 만들어놓고, 정말 그들에게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발뺌할 셈인가?”

빌어먹을 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유분수지, 어찌 이리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푹-

쯔억-

“흐으으읍!”

툭.

곧바로 두 번째 손톱을 들어낸 나는, 다시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마대를 빼내며 입을 열었다.

“말해봐라. 정말로 너희 수인들은 아무 잘못이 없나?”

“아흑, 아으으윽… 그, 그건 당신네 마족들이 멋대로 쳐들어와선 우리를 죽이려 드니까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당신들 때문에 저흰 선조들이 지켜온 땅마저 버려야 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 죄 없는 백성들을 제물로 갈아 넣어야 했다고요! 이방인? 저희 수인은 벌써 백만이 넘게….”

콱-

“컥, 컥….”

“닥쳐. 그들이랑 너희가 같나? 네 집, 네 땅. 너흰 너희 걸 지키다 죽은 거잖아. 난, 우리는 남의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길 강요당했어. 그리고 끝내 버려졌지. 네놈들 연합이 시키는 대로, 수많은 동료들의 시체를 밟아가며 마왕의 멱까지 따줬는데 말이야! 우린 그저, 돌아가길 바랐을 뿐인데….”

툭-

“케헥… 흐으, 후욱… 그게, 그게 무슨….”

나는 내게서 북받쳐 나온 울분에 당황한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녀석을 두고선, 슬쩍 작업대 위에 빻아진 풀을 살폈다.

뒷골목에 팔아넘길 약 같은 거라면, 당연히 각성효과가 있는 약초가 하나쯤은 들어갈 터였다.

그래야 소위 약쟁이들이 말하는 죽여주는 기분이라는 걸 낼 수 있었으니까.

“역시 있군.”

작업대 위에 놓인 통들을 하나씩 살펴보던 나는, 쓴 냄새가 훅 올라오는 황갈색 진액이 눌어붙어있는 통에 찧어진 약초를 살폈다.

이방인 시절, 아직 용사라 불리기도 전 미숙했던 그때.

적진 한가운데 잠입해 암살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했을 적에, 주변의 기척을 빠르게 알아챌 수 있도록 항시 즙을 내어 먹고 다녔던 기억이 있는 그 풀이었다.

슥-

손가락으로 딱딱하게 굳은 진액을 퍼 올린 나는, 아직도 당황한 채 정신을 못 차린 세르노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진액을 먹었을 경우, 대략 한 시간 정도 온몸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대충 밤귀가 어두운 사람도 10m밖의 수풀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깰 정도로 말이다.

탁-

“읏! 또, 또… 웁!”

멀쩡한 손으로 만신창이가 된 제 손가락 주변을 감싸며 눈물을 흘리던 녀석의 팔을 다시 잡아챈 나는, 상처에 진액을 펴 바르기 전에 재차 그녀의 입을 막았다.

“기절하지 마라.”

스윽-

이윽고 피가 흥건한 손가락에 진액을 바른 나는, 따끔한지 흠칫 몸을 떠는 녀석을 보며 단검을 집어넣고 노끈을 들었다.

어떻게 입은 막았어도 몸부림치는 소란에 늑대인간이 몰려드는 일을 막기 위해선, 약효가 돌기 전에 양팔도 묶어놓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꾸욱-

덜컥!

그렇게 막 손목을 묶은 찰나.

나는 슬슬 약효가 돌기 시작했는지 눈을 까뒤집고 온몸을 부르르 떠는 세르노이를 보며,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으, 으으으으으읍! 끄윽, 끅!”

쿠웅, 쿵-

반응 한 번 훌륭하군.

나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대며 사방에 머리를 부딪혀대는 그녀를 보고선, 슬쩍 바깥에 귀를 기울였다.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소리?”

“그래. 뭔가 세게 부딪히는 듯한….”

북문에서 벌써 여기까지 왔나.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창고에도 아무도 없잖아.”

“으음, 그런가….”

“거기! 없으면 바로 나와! 빨리 그 주술사 놈을 찾아야 한다!”

난 다행히 눈치채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병사들을 보며, 그새 잠잠해진 세르노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르르-

기절하지 말라니까.

역시 무리였나.

나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채 움찔거리고 있는 녀석을 보며, 조용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아쉽군.

여기까진가.

슥-

쓰러진 녀석을 잡아 들어 올린 나는, 하얗게 뻗은 목을 향해 조용히 송곳니를 드러냈다.

마음 같아선 조금 더 즐기고 싶었지만, 이미 기절해버린 이상 주술의 효과도 다 풀려버렸을 터였다.

실제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몸을 얽매던 느낌이 싹 사라졌고 말이다.

또 병사들이 한 번 훑고 지나가긴 했지만, 언제 또 다른 놈들이 찾으러 들어올지 몰랐다.

아쉽긴 해도 지금 해치우는 게 낫겠지.

콰악-

축 늘어진 녀석의 목에 이를 박아 넣은 나는, 꿀럭꿀럭 넘어오는 핏물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달았다.

너무나도 달았다.

[수인 연합의 그랜드 마스터, 대주술사 '세르노이'를 흡혈했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마력이 '15'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나는 예상보다 훨씬 많이 증가한 능력치를 보며, 씨익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 메리엘과 데이몬이 아직 남아있었으니, 앞으로 못해도 20은 더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레벨까지 오르는 걸 생각하면, 그 둘만 해도 이번 기회에 용사 시절의 능력치까지 복구할 수도 있을 터였다.

이방인들이 마왕까지 어떻게 잡아줬다면, 어찌 그 시체를 구해 보다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툭-

금방 삐쩍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은 나는, 다시금 소란스러워진 위쪽을 보며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다른 애들이 뒤지고 갔… 어?”

“대주술사는 죽었다. 이만 가지.”

“아… 예, 예!”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훔치며 병사의 옆을 지나친 나는, 그대로 북문으로 향했다.

아직 살아있으면 좋겠는데.

“기다려라, 우르누이.”

너도 곧 대주술사의 곁으로 보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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