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59화 (159/200)

제159화

툭-

“크윽….”

동굴에 도착해 데이몬을 안쪽에 던져놓은 나는, 마대를 풀어 시체들을 꺼냈다.

“잠시 거기 가만히 있어라.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할 테지만 말이야.”

“비, 빌어먹을….”

원래대로라면 일을 다 끝내고 나서 한꺼번에 흡혈할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시체는 오래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콱-

“…칫. 꽝인가.”

가장 가까이 떨어진 놈의 목을 문 나는, 아무런 메시지도 뜨지 않는 것을 보며 입을 뗐다.

수십이나 되는 시체를 모두 들고 올 수는 없었기에 그중에서 그나마 실력이 있어 보이던 놈들 위주로 골라왔다고는 하지만, 별로 도움도 안 되는 녀석들까지 흡혈하고 앉아있을 시간은 없었다.

물론 그게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었지만, 가능한 서둘러서 나쁠 건 없었다.

어차피 다 능력치를 벌자고 하는 짓이었으니까.

[제국 황실마도사단 부단장, ‘벨크릭스 파르메르’를 흡혈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마력이 ‘3’ 증가합니다.]

열둘 중에 고작 넷이라.

네 능력치 중에 마력이 가장 낮은 걸 생각하면 썩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황실마도사단이라는 이름이 아깝군.

“아, 아아… 벨크릭스… 이, 이 씹어죽일 마족 놈. 네놈은 사자에 대한 예의조차 없는 거냐!”

그래도 메인이 아직 남아있으니, 벌써부터 아쉬워할 필요는 없나.

나는 마지막으로 흡혈을 마치고 내려놓은 시체를 보며 악을 쓰는 데이몬을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예의? 웃기지도 않는군. 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다니.”

이방인들은 물론 제국민들과 제 고향을 버리고 내려온 수인들마저 거리낌 없이 제물로 밀어 넣은 쓰레기가.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그런 망발을 내뱉는단 말인가.

“이놈! 에릭 가이오… 읍!”

시체들을 벽에 몰아넣고 이만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피로 젖은 마대를 구겨 시끄럽게 구는 놈의 주둥이에 쑤셔 넣었다.

“느으으읍, 으읍!”

“너무 그렇게 열 낼 거 없다. 곧 너도 네 부하들 곁으로 보내줄 테니까. 아니지, 지옥에선 다들 네놈보다 선배일 테니, 더는 부하도 아니겠군.”

난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녀석의 머리채를 잡고선 동굴 안쪽으로 끌고 갔다.

“으흐읍… 으큽!”

땅바닥에 질질 끌리며 몇 번이고 돌부리에 부딪혀 옷가지가 여기저기 찢어진 놈을 내려놓은 나는, 동굴 가장 안쪽의 벽을 가리키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네 친구를 소개시켜 주마. 길어야 하루 남짓이겠지만, 내가 없는 동안 잘 지냈으면 좋겠군. 어이, 일어나라.”

짜악-!

“아….”

팔을 붙들고 있는 쇠사슬을 팽팽하게 늘어트린 채 정신을 놓고 쓰러진 메리엘의 앞에선 나는, 곧장 뺨을 올려붙여 놈을 깨웠다.

“으… 히, 히이익!”

철그렁-

옅은 신음과 함께 퀭한 눈을 뜬 그녀는, 금방 나를 발견하고는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주, 죽여… 차라리 죽여!”

메리엘은 아이처럼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며 손톱이 있던 자리를 잘근잘근 씹었다.

저런, 많이 아플 텐데.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군.

“걱정하지 마라. 네가 바라지 않아도 곧 죽여줄 테니까.”

“으읍, 흐으으읍!”

잡힌 지 고작 하루도 안 되어 완전히 폐인이 된 성녀의 모습을 본 데이몬은,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가만히 있어라.”

뻐억-

메리엘이 묶인 곳 옆에 놓여 있는 탁자에서 노끈을 찾은 나는, 귀찮게 자꾸만 움직이는 녀석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읍….”

그 충격에 굼벵이마냥 몸을 움츠리며 꿈틀거리는 녀석의 양손을 뒤로 뺀 나는, 빠르게 놈을 묶어 탁자에 고정했다.

“…이거 안 되겠군, 조금만 기다려라.”

나는 혹여 노끈이 풀리는 일이 없도록 한 번씩 더 꽉 잡아당기고선, 방금 배를 얻어맞아 상처가 다시 터진 녀석을 보며 벽에 걸린 횃불을 들어 올렸다.

치이이익-

“흐으으으으읍!”

“됐어. 이만하면 하루 정돈 넘길 수 있겠지. 그럼 사이좋게 지내고 있도록.”

금방 출혈이 멈출 수 있도록 상처부위들을 찾아 잘 지진 나는, 이만 두 사람을 두고 동굴을 나섰다.

이제 남은 건 대족장과 대주술사뿐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마왕의 시체까지.

“못해도 둘, 될 수 있으면 서넛까지 잡아줬으면 좋겠군.”

가장 베스트는 다섯 마왕이 모두 죽는 거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힘들겠지.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악투스 그 양반은 너무 튼튼하니까.

* * *

“어떻게….”

맥없이 쓰러지는 마랑왕의 모습에, 일순간 전장이 침묵에 잠겼다.

마왕의 죽음.

수십 년 전, 카르카쉬를 위시로 한 주전파와 온건파의 전쟁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라, 라이칸 님!”

“셀레스트! 안 된다!”

카렌은 따로 본대에서 떨어져 에릭과 함께 움직여온 터라 전장에 남아있던 셀레스트를 보며, 입술을 꾹 물었다.

본래 악투스의 군세들을 도와 수인들을 상대하고 있던 그녀는, 라이칸의 죽음에 이성을 잃고 검은 것들이 있는 곳으로 쏘아져 나갔다.

콱-

“이, 이거 놔라!”

“진정해라.”

“진정? 라이칸 님께서 저렇게 되셨는데, 도대체 뭘 진정하라는 거냐! 이 망할 발록, 당장 놓지 않으면 네놈부터… 흡!”

카렌은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녀를 붙잡아 세운 발라크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놈, 바보냐? 지금 네가 가봐야 놈들에게 개죽음당할 뿐이다.”

“그래. 게다가 네가 여기서 허무하게 죽어버리면, 형님께서 네 오라비를 뵐 면목이 없으시지 않겠나. 괜한 객기 부리지 마라.”

“젠장… 젠장!”

그녀는 곧 분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는 셀레스트를 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 원통함 어린 비명이 울렸다.

특히나 늑대인간들은 충성심이 강하고 무리 단위를 이루어 생활하는 것이 보통이니만큼, 더더욱 그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그나마 대부분이 도시의 뒤를 치기 위해 자리를 비웠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폭주하는 늑대인간들을 누르지 못하고 더 큰 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그나저나 정말 큰일이군.”

단순히 마랑왕의 죽음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그 세 놈이 멀쩡히 살아있었으니까.

마왕 넷이서도 피해가 일어나는 것을 완전히 누르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각자 하나씩 맡아야 할 판이었다.

“으하하하! 정말로 저 빌어먹을 마왕 놈을 죽여 버렸구나! 훌륭하다, 세르노이. 늦지 않았구나!”

“…믿을 수 없군. 정말로 그 라이칸이 죽다니. 저번의 그 희한한 마법의 힘인가.”

“크흐흐. 주술이라는 거다. 이 멍청한 마족 놈들, 여기서 전부 다 찢어발겨주마!”

더구나 상황이 달라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운석이 떨어진 직후 온몸에 이 기분 나쁜 뻘건 마력 덩어리를 뒤집어쓴 이후로, 누군가 힘을 주어 사지를 꾹 붙들고 있는 것처럼 몸이 둔해졌다.

뿐만 아니라 마력도 중간에 길이 꽉 막힌 듯 흐름이 원활하지가 않았다.

이래서야 마법을 쓰더라도 제 위력을 뽑을 수나 있을지 미지수였다.

콰아앙-!

“흐흐, 이제야 좀 해볼 만하겠구나!”

카렌은 수세에 몰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전과는 달리, 이제는 간간이 반격을 노리며 투마왕과 어느 정도 호각을 이루는 대족장을 보며 입술을 꾹 물었다.

상황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요상한 마력을 뒤집어쓴 것은 적도 마찬가지였지만, 저쪽은 도리어 전보다 신체 능력이 크게 올라간 듯 보였다.

절망적이게도, 그 검은 것들마저 말이다.

“에릭….”

그녀는 다시금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슬며시 도시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이제 남은 방법은 이 이상 피해가 늘기 전에 저 붉은 것들이 힘을 다하길 빌던가,

콰앙-!

안쪽에 있는 대주술사를 죽이고, 도시를 점령하는 것뿐이었다.

* * *

“조금 늦었나.”

데이몬을 성녀의 옆에 놔두고 피란체로 돌아온 나는, 성문 근처에서부터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불그스름한 마력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주술.

발동시키는데 조금은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건만, 퍼져있는 농도를 보아하니 꽤 오래 지난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내가 도시를 빠져나오자마자 시작됐을지도 모르겠군.

“다들 서둘러! 빨리 놈들을 죽이고 도시를 점령해야 한다!”

벌써 도착했나.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늑대인간들을 보고선 서둘러 조금 더 걸음을 재촉했다.

나중에 혼자 어디 있었냐는 둥 책잡히는 일이 없기 위해선, 녀석들이 주술사들과 부딪히기 전에 먼저 나설 필요가 있었다.

“대, 대주술사님! 적들이 남문을 통해 안쪽에….”

“모두들 당황하지 마세요. 그래봐야 결국 주술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으니, 침착하게 상대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예요.”

찾았다.

금방 북문 근처에 자리 잡은 주거지에서 대주술사를 발견한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곧장 그리로 쏘아져 나갔다.

당황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뭐, 그럴 수도 있었겠지.

비록 대부분 주술사만 남아있는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주술은 그만큼 강력했으니까.

안타깝게도 이번엔 내가 있었지만 말이다.

“뭣… 큭!”

촤악-

금세 놈들이 있는 곳 아래에 도착해 혈마법으로 세르노이의 목을 노린 나는, 창날이 제 살갗을 꿰뚫기 직전 가까스로 고개를 숙인 그녀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 당신은….”

“오랜만이군, 세르노이.”

난 창날이 스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목을 부여잡고 이쪽을 내려다보는 녀석과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단검을 빼 들었다.

“그 목, 받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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