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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48화 (148/200)

제148화

이른 새벽.

소년의 집에서 밤을 지낸 나는, 적당히 건량으로 배를 채우고선 아이시스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럼 갔다 오겠다.”

“음. 이쪽은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너라.”

방금 잠에서 깨 비몽사몽한 릴리아나를 카렌에게 맡겨두고 빈민촌을 나선 나는, 이른 시간부터 구걸을 위해 성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만하면 그 둘이 움직이기 쉽겠어.

확실히 대부분 동냥하러 집을 나서서 그런지, 발 디딜 틈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던 어제 저녁과는 달리 빈민촌의 거리만큼은 꽤 한산해보였다.

지금부터 연합 놈들의 계획을 파내기 위해 도시 곳곳을 쏘다닐 우리와는 다르게, 그 둘은 빈민촌에 남아 사람들을 모아줘야 했다.

병사들과 사제 그리고 마법사들이 돌아다니는 중앙 거리에서는 함부로 활동할 수 없었지만, 빈민촌에서만큼은 아까 그 소년의 집이나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 같은 곳에서, 마음대로 매혹을 걸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쪽으로 대상을 유인해야 되는 만큼 따로 수고가 들긴 하겠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적진에서 의심받을 위험 없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으니 말이다.

“에릭. 저 둘, 괜찮아?”

“괜찮을 거다. 그러라고 일부러 카렌을 남긴 거니까.”

나는 어딘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아이시스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다.

아무리 빈민촌이라고는 해도 순찰을 도는 인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카렌의 마법이 있으니 너무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정체를 들킬 일은 없을 터였다.

오히려 위험한 걸로 따지면 이쪽이 더 조심해야겠지.

카렌을 두고 온 만큼, 우리는 더 이상 마법으로 정체를 가릴 수 없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후드는 벗지 말도록.”

“응, 알고 있어.”

그래도 아이시스는 작은 뿔을 제외하곤 인간과 별 다를 바 없었기에, 로브의 머리 부분만 잘 뒤집어쓰고 다닌다면 크게 들킬 위험은 없었다.

누군가 뚫어져라 얼굴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우선 이방인들의 행방부터 찾아보도록 하지.”

“응.”

나는 빈민촌을 벗어나기 무섭게 우글거리는 인파 사이를 지나며, 이방인들의 행방을 알 만한 곳을 찾아 거리를 돌아다녔다.

역시 무난하게 주점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낫겠지.

에레브에서 마법사들이 그들을 이끌고 떠났다했으니, 분명 들어올 적에 다른 이들의 눈길을 확 끌었을 터였다.

자그마치 마왕을 물리치기 위한 제물로 써먹어야 될 인원들이니만큼, 적어도 도시에 도착할 때까진 꽤 신경 써서 옮겼을 테니 말이다.

“이건 뭐 일하는 곳이 없군.”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성문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거리를 거의 다 지났음에도 문을 연 곳이 안 보이는 주점들을 보며,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재고 소진.

어딜 가나 그렇게 적힌 나무토막이 입구에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하긴 당장 돈이 있어도 식료를 살 수 없는 시점에서, 누가 남들에게 음식을 팔려고 하겠는가.

저들이 먹을 것도 언제 동이 날지 모르는데 말이다.

“에릭, 저기.”

“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나.

결국 포기하고 몸을 돌리려던 찰나.

난 조용히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는 아이시스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계획은 잘 되어가고 있나?”

“예. 이제 준비는 거의 마무리에 접어들었습니다. 남은 건….”

영주성이 있는 내성 입구.

나는 그 안쪽에 모인 마법사들의 로브에 새겨진 문양을 보며, 슬며시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제국 황실 마도병단.

가제프가 속한 황실 기사단과 더불어, 황실을 수호하는 두 집단 중 하나였다.

본래대로라면 황제의 곁에서 수도를 지키고 있어야할 놈들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걸까.

이유는 딱히 고민해볼 것도 없었다.

분명 저놈들이겠지.

이방인들을 제물로 마왕들을 상대할만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족속들.

어쩌면 에레브에서 그들을 데리고 갔다는 마법사들 또한 바로 그들일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내성으로 한 번 들어가 봐야겠군.”

“하지만 그거, 너무 위험.”

“그렇겠지. 물론 막무가내로 입구를 지날 생각은 아니다. 일단 어떻게든 저놈들 중 한 명이라도 잡아들여야겠어.”

마음 같아선 밤중에 확 내성을 넘어버리고 싶었지만, 괜히 그랬다가 저 음흉한 놈들이 만일을 대비해 무슨 방책이라도 세워뒀다면 큰일이었다.

이 커다란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대책을 세우는 건 무리일지 몰라도, 내성 정도만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터였으니까.

그러니 우선 저 안쪽 상황을 알만한 녀석을 이용해 정보를 캐낼 필요가 있었다.

딱히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개중 한 명을 납치해서 릴리아나의 힘으로 입을 열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들 중 누군가 사라진다면 어떻게든 찾으려들 것이라는 거였다.

어디 일개 병사도 아니고, 중대한 계획의 실행을 앞두고 있는 황실 마법사가 사라졌는데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우리는 끝이었다.

아무리 커다란 도시라 할지라도, 결국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공간에 불과했다.

놈들이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서 사제들을 데리고 주변을 뒤지기 시작한다면,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걸릴 것이 뻔했다.

“일단은 조금 지켜보도록 하지.”

그러니 애초에 의심을 살 일이 없도록, 완벽하게 계획을 짜놓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 사이 얘기를 마치고 헤어진 마법사들을 보며, 내성 밖으로 나오는 녀석들을 쫓아 걸음을 옮겼다.

저벅-

난 얼마 안 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주변을 훑는 놈들을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길 한복판.

녀석들은 그중 적당히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 자리를 잡고선, 열린 문틈 사이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그냥 순찰이었나.

아무래도 도시에 몰린 사람들을 통제할만한 인원들이 너무 모자라니, 그들 또한 번갈아가며 그 일에 투입된 모양이었다.

잘됐군.

이거 괜히 내성 안쪽만 돌아다니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주기적으로 밖으로 나와 치안을 본다면, 그것도 이렇게 가게 한구석에 앉아 주변을 감시하는 식이라면 나야 편했다.

놈들을 계속 관찰하다보면, 결국 언제 어디서 얼마 동안 나와 있다 다시 교대해 들어가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녀석들을 납치하더라도 그 교대시간에만 문제없이 돌려보내면 끝이었다.

“아이시스, 따라와라.”

하지만 계속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면 재미없겠지.

나는 옆에서 가만히 저들을 감시하던 아이시스를 이끌고, 그들이 들어가 있는 건물 옆에 몸을 붙였다.

“젠장, 시끄러워 죽겠군. 매일 배고프다, 굶어죽을 거 같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 자꾸 밥 달라고 아우성이야. 어차피 얼마 안 가서 뒈질 놈들이.”

“뭐, 하찮은 이방인 놈들이 그럼 그렇지. 그보다 이젠 정말 한계인 거 같던데. 도대체 얼마나 더 제물이 필요하다는 거야? 이러다 우리가 먹을 것까지 동나거나, 밖에 저 평민 놈들이 들고 일어서거나. 둘 중 하나는 곧 터질 거 같은데.”

슬며시 벽에 귀를 기울이고선 마력을 돌리자, 안쪽에서 두 놈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고 있나 봤더니.

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둥, 하찮은 이방인들이라는 둥.

누가 그 빌어먹을 황제의 옆을 지키는 개자식들 아니랄까봐 제멋대로 그 더러운 입을 놀려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아. 단장님께서 이제 금방이라고 하셨으니까. 아마 수인족들이 내려오면 그때 시작하시려는 모양이야.”

“수인 놈들이 말이지? 하긴 아무리 급해도 우리 제국민들만 제물로 쓰는 건 너무 말이 안 되긴 했지. 연합이잖아. 자기들도 뭔가 희생하는 게 있어야지 않겠어?”

“흐흐. 그러고 보면 그 대족장이라는 놈도 참 대단해. 어떻게 수십만이나 되는 부족민들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물로 던지겠다고 했대. 그 제물들한테 얘기나 해줬을까 몰라.”

…제물? 수인족?

가만히 얘기를 듣던 나는, 놈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충격적인 이야기에 놀란 얼굴로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놈들, 정말로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전부를 제물로 바칠 생각인 건가?

그것도 제 땅을 버리고 이곳으로 이주할 약속을 받은 수인들까지 전부?

“…에릭.”

“음. 정말 큰일이군. 생각보다 사안이 심각해졌어.”

나는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아이시스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지금 당장 이 도시에 모인 사람들만 하더라도 족히 10만은 넘을 듯싶었다.

그런데 거기서 지금 내려오고 있는 수인족들, 그중 수십만에 달하는 인원들을 전부 제물로 갈아 넣겠다니.

자칫하면 거의 100만 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제물로 바쳐질 듯싶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마왕들을 잡을 수 있으리란 말이, 마냥 거짓은 아니었군.”

진짜로 마왕들조차 위험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그래서 이방인들은 그릇이라고 했던 거군.

“아이시스, 돌아간다.”

“…벌써?”

“그래. 일단 빨리 위에 보고부터 해야겠어.”

나는 금방 판단을 마치고선 빠르게 빈민촌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다른 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지금 놈들이 부리려는 수작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그를 위해선, 무조건 본대의 도움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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