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아이시스 휘하의 악마족 몇에게 이방인들을 맡겨 본대로 보내고, 에레브를 떠나 북쪽으로 향한 지도 어느덧 닷새.
덜컹이는 마차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근처 나무에 등을 기댔다.
“에릭,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음. 셀파스트에게서 받은 정보대로라면 이쪽이 틀림없다. 다만… 확실히 뭔가 이상하군.”
혹여 연합의 눈에 띌까, 가능한 가파른 산길과 인적이 드문 숲길을 통해 이동했다고는 한들, 지금껏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지나온 것은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이전처럼 마왕군이 빼앗은 도시들을 거쳐 온 것도 아니고, 하물며 국경도 아닌 분명한 제국의 영토를 지나왔는데도 그랬다.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우리야 괜히 시간 낭비 없이 빨리 도착할 수 있으니 이득이잖아.”
“…확실히 상황으로만 봤을 땐 딱히 나쁠 것 없겠지. 그저 너무 조용하니, 무언가 마음에 걸려서 말이야.”
“너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북쪽에서 수인들이 내려오고 있으니까, 나중에 복잡해지지 않도록 미리 제국민들을 다른 쪽으로 이주시킨 거겠지.”
나는 별일 없을 거라는 듯 손을 내젓는 셀레스트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주억이며,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말처럼 단순히 그런 이유로 도시 밖을 왕래하는 이들이 줄어든 거라면 좋겠지만…
“…에릭,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그런 거, 물어보면 그만.”
“음? 물어보다니… 아.”
그렇군.
난 고민을 깨우는 아이시스의 답에 눈을 번쩍 뜨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형님, 어디 가십니까?”
“잠깐 근처 마을 좀 다녀오겠다.”
“지, 지금 말씀이십니까? 조금 더 쉬시는 편이….”
“걱정할 것 없다. 금방 돌아올 테니. 잠깐 무엇 좀 물어보고 오려는 것뿐이다.”
이 근방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줄었는지.
그게 궁금하다면 직접 가서 한 번 알아보면 그만이었다.
셀레스트의 말처럼 그저 곧 몰려들 수인족들을 위해 미리 영지민들을 조금씩 이주시켜놓은 거라면, 도시에 남은 이들이 그를 모르고 있을 리 없었다.
차르륵-
적당히 높은 나무에 올라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곧바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마을을 발견하고선 박쥐로 몸을 흩트렸다.
가능한 도시의 상황을 살펴보는 편이 더 확실하겠지만, 어차피 확 줄어든 사람들의 행방만 어찌 확인하면 그만이었으니, 작은 마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툭-
금방 숲 끝자락에 도착해 모습을 드러낸 나는, 적당히 챙겨온 로브를 두르고선 눈앞의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군.”
이후 입구로 보이는 목책 근처에 도착해 잠시 주변을 서성이며,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길 십여 분.
나는 슬슬 피부에 와닿는 위화감에 천천히 입구로 다가갔다.
아무리 숲에 붙은 작은 마을이라고는 해도 너무 고요했다.
입구를 드나들건 마을 근처를 지나건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건 물론이오, 마력까지 끌어올려 강화시킨 청각에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마치 안쪽이 통째로 텅 비어버린 것처럼…
“…이런.”
목책 앞에 선 나는 눈앞의 풍경에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대로 마을엔 아무도 없었다.
당장 목책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할 경비도, 작은 마을이지만 그래도 나름 상인들의 왕래가 많았는지 쭉 늘어져 있는 가판에도.
텅 빈 자리만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저벅-
난 천천히 마을을 거닐며 주변을 슥 훑었다.
좌판이 있던 자리는 모두 치워져 있었지만, 가판대 위에는 몇몇 남아있는 물건들이 보였다.
가게 안쪽에도 주로 무거운 것들은 그대로 남아있었고, 가벼운 거라도 크게 값이 나가지 않는 물건들의 경우엔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있곤 했다.
사악-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슬쩍 쓸어보니, 그렇게 먼지가 묻어 나오진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는 얘기였다.
거기에 다들 가져갈 수 있을 만한 물건들 중에 가능한 귀중품을 위주로만 챙겨서 나간 걸 보아하니, 짐을 쌀 시간조차 넉넉히 주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유가 조금 있었더라면 크고 무거운 것들은 하는 수 없이 두고 가게 되더라도, 가벼운 것들은 굳이 골라내서 가져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마을에 무언가 이상이 있었다.
아무리 수인들이 대거 내려올 예정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마을을 통째로 비워놓을 것까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동안 관리가 안 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당연히 최소한의 인원은 남겨두어야 했다.
실제로 지금 몇몇 건물들은 슬슬 썩기 시작한 음식들 때문에 악취가 새어 나오고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까지 오면서 느꼈던 걸 생각해보면,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도 아마 비슷할 상황일 게 뻔했다.
일단 이렇게 되면 단순히 이주 목적으로 사람들을 끌고 간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지?
덜그럭-
“음?”
그렇게 막 고민에 빠져든 채 마을을 벗어나려던 찰나.
나는 목책 근처의 한 가게에서 들려온 소리에, 성큼성큼 그리로 몸을 돌렸다.
끼이익-
“흡….”
아직 남아있는 사람이 있었나?
난 꾹 닫혀있던 문을 열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숨소리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와라. 이미 다 들켰으니.”
마을을 떠날 적에 급히 물건들을 챙기느라 어질러진 것으로 보이는 방 구석에 놓인 천막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나는, 도리어 숨을 죽이는 녀석을 보고선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펄럭-
“히, 히익!”
곧바로 천막을 들추자, 안쪽에서 곰팡이 핀 빵을 꾹 쥔 채 웅크려있는 아이가 보였다.
아무래도 마을사람들이 모두 떠날 적에 홀로 숨어, 지금껏 마을에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겁먹을 거 없다. 딱히 널 해칠 생각은 없으니.”
“으으….”
나는 우선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아이를 진정시키며, 슬쩍 녀석의 몸 상태를 훑었다.
조금 마르긴 했지만 피골이 상접했다 할 정도는 아니고, 더럽긴 해도 그리 오랫동안 못 씻은 걸로 보이진 않았다.
적어도 마을이 이렇게 텅 비어버리기 전에, 배를 곯고 다니진 않은 거 같았다.
그렇다는 건 이전에 노예로 부려지거나 학대당한 아이는 아니라는 얘기였다.
헌데 굳이 그렇게 사람을 피해 모습을 숨긴 채, 혹여 들킬까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니.
아무래도 사람들이 떠날 적에, 마을에 무언가 일이 있었던 듯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트라우마에 시달릴만한 일이 말이다.
“저, 그… 가, 감사합니다.”
아이가 진정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며 품에서 건량을 꺼내 조금 나누어준 나는, 머잖아 정신을 차리고 꾸벅 고개를 숙여오는 놈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얼. 나도 바라는 게 있으니 나누어준 거다.”
“바, 바라는….”
“그래. 그렇다고 어려운 부탁을 하려는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녀석의 떨림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조금만 더 시간을 보냈다.
원한다면 그냥 협박해서라도 얘기를 들으면 그만이었지만, 딱히 지금은 그리 급할 필요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쉬다 돌아가나, 먼저 가서 쉬나.
결국 내일 다시 출발할 시각은 달라질 게 없었으니까.
“아까 보니 밖에 어른들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아무도 없더구나.”
“아… 으, 네.”
아이는 내 말에 무언가를 떠올린 듯 흠칫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이 정도면 슬슬 물어봐도 괜찮겠군.
“혹시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
“…네.”
난 잠시 우물거리다 힘겹게 입술을 떼는 녀석을 보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나, 나흘 전에… 마법사님들이 오셔서 갑자기 다들 이주해야 된다고 하셨어요. 수, 수인족들이 곧 들어올 거라면서….”
나흘 전, 그리고 마법사라.
설마 에레브에서 출발한 놈들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에게 이어서 말해보라 턱짓했다.
“처음에는 촌장님도 그렇고 모두 반대하셨지만, 영주님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가 있어서… 다들 하는 수 없이 그러면 누가 이주할 건지 얘기하고 있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옮기라고….”
“그래서 다 짐을 싸고 나갔다는 말이군.”
“아, 아니에요! 나간, 나간 게 아니에요. 촌장님께서 다 이주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으냐고 그럴 순 없다고 하시니까, 갑자기 병사들이 들이닥쳐선….”
강제로 끌고 갔다는 얘기군.
“그렇군. 그래서 넌 어디 적당한 곳에 숨어있다, 다들 사라지고 나서 밖으로 나왔을 테고.”
“네, 네… 맞아요.”
“그래. 알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마. 혹시 그놈들이 마을 사람들을 어디로 이주시킨다고 했는지 기억하니?”
“부, 북쪽….”
북쪽.
난 아이의 대답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웃기지도 않는군.
애초에 처음부터 강제로 끌고 갈 생각이었나.
아무리 촌구석의 작은 마을이라고는 한들, 수인족들이 지금 북쪽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걸 모두가 모를 리 없었다.
하다못해 마을 주민이 아니더라도 좌판을 열고 있던 상인들은 전부 알고 있었을 터.
그런데도 수인족들을 위해 자리를 낸다면서, 북쪽으로 이주시킨다고 했다고?
“저, 저기! 그, 죄송하지만 저도 같이….”
이만 건물을 나와 마을 밖으로 걸음을 옮긴 나는, 그대로 저도 데려가 달라는 듯 뒤따라온 녀석을 보고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툭-
나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단검을 슥 닦으며,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아무래도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을 거 같았다.
이방인, 제물. 그리고 텅 빈 마을과 도시.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