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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44화 (144/200)

제144화

“알바트.”

꽁꽁 묶인 알바트의 앞에 선 나는, 푹 숙인 놈의 고개를 들어 올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처음 불러들인 이방인 무리를 제물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이방인… 제물….”

아직 매혹에서 풀려나지 못한 건지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던 놈은, 이내 천천히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 다만 황제폐하와 추기경들께선 그걸로 분명히 마왕들을 잡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계셨다. 애초에 이방인들을 소환한 것도, 전부 제물로 키우기 위함일 뿐. 이곳에서의 훈련은 그 최소한의 그릇을 마련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셨다.”

“…뭐?”

애초에 제물로 쓰기 위해서 소환한 거라고?

이들이 여신의 저주를 통해 빠르게 강해지는 이점을 이용해서, 천천히 반격해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본디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에 눈살을 팍 찌푸렸다.

이전보다 훨씬 안 좋게 흘러가는 상황에 점차 미래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방인들의 활용마저 바뀌었을 줄은 몰랐다.

제물이라니.

아무래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솔직히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끽해야 수습기사 정도의 실력이나 됐을 법한 이들을 가지고 마왕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 빌어먹을 황제와 추기경들이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그놈들이 이방인들은 물론 여차하면 제 아랫놈들마저 고민 없이 갈아 넣는 천하의 개쓰레기들이라고는 해도, 머리가 모자란 건 아니었다.

지금 사방에서 쉴 새 없이 연합을 조여 오고 있는 마왕군의 기세를 보고서도 그렇게 자신을 내비쳤다는 건, 확실히 뭔가 있긴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가만히 두었다간, 훗날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되어 돌아올지 몰랐다.

“카렌.”

“음. 무슨 일인가, 에릭.”

“미안하지만 다들 불러 모아주겠나? 아무래도 본대로 복귀하는 건 잠시 미뤄야 될 거 같군.”

“복귀를 미루다니, 그게 무슨… 으, 알겠다. 일단 모두 불러오도록 하마.”

아이시스와 셀레스트 그리고 릴리아나에겐 미안하지만, 다들 조금 더 수고해줘야 될 것 같았다.

본대가 당장 이방인들의 위험성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인 만큼, 연합이 그들을 제물로 무슨 짓을 벌이려 한다고 보고한들 제대로 된 병력지원을 바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가뜩이나 지금 한창 말 그대로 도시들을 밀어버리며 승기를 굳혀가고 있는데, 굳이 곳곳에서 병력을 차출해가면서까지 과연 효용이나 있을까 싶은 계책을 막으려들 이유가 없었다.

그냥 이대로 천천히 밀어붙이기만 해도 머잖아 끝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에릭, 무슨 일?”

“듣자 하니 전장으로 복귀를 조금 늦춰달라고 하던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나는 금방 카렌을 따라 자리에 모인 아이시스와 셀레스트, 그리고 저 멀리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릴리아나를 보고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아무래도 마법사 놈들이 제물로 끌고 갔다는 이방인들을 좀 찾아야 될 거 같다. 이 녀석 말로는 그게 마왕님들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패가 될지도 모른다더군.”

“…뭐? 하. 그럴 리가. 그냥 허세라도 부리는 거겠지. 그 약해빠진 놈들을 제물로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벌일 수 있다고.”

난 예상대로 코웃음을 치며 손을 내젓는 셀레스트의 모습에, 나지막이 침음을 흘렸다.

그래, 이게 정상이었다.

보통 무언가 제물을 이용하는 것들은 그 질과 양에 비례하는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헌데 고작해야 수습기사 수준의 이방인들을 제물로 마왕을 잡겠다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방인들이 단순히 현재의 강함만으로 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였다.

제 수명을 대가로 남들보다 수십수백 배는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이들이었다.

잠재력으로만 따지자면 짧은 수명 때문에 마왕급에 달하진 못하더라도, 대부분 사천왕들과는 나란히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만일 그들이 제물로서 사용됐을 때, 그 가치가 그 절반만큼이라도 인정된다면 마왕들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도 마냥 거짓은 아니었다.

“흐응… 글쎄. 단순한 허세는 아닐지도. 저래도 일단 내 매혹에 걸린 상태니까. 적어도 저 아이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거든.”

“확실히.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황실 기사단의 부단장이라는 녀석이 그렇게 알고 있을 정도면, 마냥 무시하기는 좀 그렇겠구나.”

나는 다행스럽게도 진지하게 문제가 될 수도 있으리라 고민하는 릴리아나와 카렌을 보고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두 내 휘하의 병사들이었다면 이런 걱정도 없었을 테지만, 카렌과 발라크를 제외하면 다들 어디까지나 타 부대에서 지원을 나와 준 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부 내 의견에 반대한다면, 아무리 나라고 한들 그들을 멋대로 이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몇몇이 동조해준다면 또 얘기가 달랐다.

잘하면 이대로 또 한 번 모두 데려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방인들을 제물로 마왕들을 상대할 수 있을만한 계책이 있다는 건 나도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이야기니만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능한 많은 전력을 데리고 갈 수 있으면 좋았다.

“음,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그렇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마왕님들조차 위험할 수 있는 곳에 가겠다는 얘기 아니야? 그러면 이걸로는 한참 전력이 모자랄 거 같은데.”

“그건 걱정하지 마라. 딱히 바로 싸우러가는 건 아니니까. 일단 근처에 머물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그를 이용해 본대에 증원을 요청할 생각이다.”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 무리를 슥 훑는 셀레스트를 향해, 안심하라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정말 우려한 대로 마왕들마저 위험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 되는 일이라면 당연히 상부에 보고해 마왕들을 불러야겠지.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빌어먹을 연합을 쳐부수고 그 수뇌부들에게 복수하는 것이지, 마왕군을 위해 이 한 몸 던져 희생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헌데 형님.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어떻게 찾으실 생각이십니까? 저놈이 알고 있답니까?”

“아니. 그건 이 녀석도 모르는 거 같더군. 하지만 문제없다. 그거야 알만한 놈한테 물으면 그만이니까.”

난 알바트를 가리키며 이방인들의 행적을 묻는 발라크를 보고선,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좋은 첩자, 정보원들을 두고 대체 어디에 쓰겠는가.

바로 이럴 때 써먹어야지.

물론 전에 연락했을 땐 셀파스트도 이방인들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눈치였지만, 굳이 그들의 행적을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처음 소환한 이방인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갔다는 마법사들.

놈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알면 그만이었다.

“그럼 대충 얘기는 끝난 거 같군. 아이시스, 릴리아나, 셀레스트. 한 번만 더 도와줄 수 있겠나?”

“응. 에릭이 원한다면.”

“후후. 난 찬성. 이거 생각보다 공적이 짭짤하겠는데.”

“으음… 뭐, 그래. 솔직히 이번 걸로 빚을 다 갚았다고 하기엔 너무 쉬웠으니까. 하지만 이걸로 이제 빚은 없는 거다?”

나는 다행히 모두 고개를 주억이는 걸 보고선, 조용히 웃음을 터트렸다.

됐어, 이 정도면 혹시 들키더라도 허무하게 적들한테 둘러싸여 죽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그래도 나름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전력들만 모았으니, 일점돌파쯤은 가능하리라.

“좋아. 그러면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이만 다들 들어가서 쉬도록.”

이윽고 다들 해산시켜 자리로 돌려보낸 나는, 품에서 수정구를 꺼내 들어 셀파스트에게 연락을 걸었다.

“음… 잠시 자리를 비웠나.”

그렇게 한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보통 이쯤이면 받을 텐데 아직도 컴컴한 수정구를 보며, 잠시 근처 잔해 위에 올려놓고선 슬쩍 알바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으, 으으….”

“정신이 드나.”

나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쥐죽은 듯 조용하다 조용히 신음을 흘리며 뒤척이는 녀석을 보고선,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제야 매혹이 풀렸나 보군.

“네, 네놈….”

“쉿. 조용히 해라.”

이미 놈에게서 들을 정보는 매혹된 상태에서 다 들었으니, 굳이 남겨둘 필요는 없겠지.

마법사 녀석들이 어디로 갔는지 길이라도 알고 있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으니까.

콰악-

“아, 아으….”

쓸모가 다한 포로에게 남은 건 처분뿐이었다.

송곳니를 드러내 조용히 놈의 목에 박아 넣은 나는, 꿀럭꿀럭 목을 타고 넘어가는 핏물을 음미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프흐….”

[제국 황실 부기사단장, ‘알바트 베리엘’을 흡혈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힘이 ‘2’ 증가합니다.]

[민첩이 ‘1’ 증가합니다.]

[체력이 ‘2’ 증가합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쓰러트렸습니다.]

[힘이 ‘1’ 증가합니다.]

[민첩이 ‘1’ 증가합니다.]

[체력이 ‘2’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보상이 꽤 짭짤하군.

[에릭 가이오스]

[뱀파이어]

[레벨 : 76]

[힘 : 205][민첩 : 208]

[체력 : 203][마력 : 170]

나는 어느새 마력을 제외하고 모두 200을 넘어선 능력치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로 이만 상태창을 닫았다.

정말 멀지 않았군.

앞으로 끽해야 도합 100 정도.

그 정도면 충분히 용사 시절의 나를 따라잡을 수 있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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