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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38화 (138/200)

제138화

“왔군.”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산맥 위에서 마지막 남은 인원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기를 수 시간.

나는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 서큐버스를 보고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머, 다들 먼저 와있었네? 그래도 나름 빨리 온다고 움직인 거 같은데….”

“됐다. 그렇다고 늦진 않았으니.”

어젯밤 도착한 아이시스와 악마족, 그리고 오늘 새벽에 도착한 셀레스트의 무리. 마지막으로 지금 슬며시 이쪽을 훑는 릴리아나까지.

난 드디어 모인 모두를 둘러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다들 도착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작전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에레브.

성물을 통해 이방인들을 소환하고, 그들을 전장에 내보낼 수 있게끔 교육시키기 위한 도시.

과거 나 또한 이곳에서 몇 달간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냈었으니 만큼, 도시의 구조에 대해 어느 정도는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내일 아침, 다음 이방인들을 소환할 계획이라더군. 아마 새벽부터 기사들이 대주교와 마법사들을 호위하고 나설 거다.”

이방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선 교단의 성물 외에도 여러 가지 준비해야할 것이 있었다.

첫째로 그들을 소환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넓은 공간.

둘째로 그를 실행하기 위한 마력.

셋째로 의식을 치를 제단까지.

“내가 교황과 엘프 여왕에게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방인들을 소환하는 의식을 치르는 도중엔 마법사들도 사제들도 도중에는 그만둘 수 없다더군. 한마디로 놈들을 지키는 기사들을 제외하곤 전부 짐 덩어리로 전락해버린다는 얘기지.”

비록 저들 중에 가제프나 다른 그랜드 마스터들 같은 주요전력은 없다고 해도, 연합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이방인들을 지키기 위해 놓은 병력들이 그저 그런 어중이떠중이일 리 없었다.

제국 황실 기사단.

그랜드 마스터인 가제프를 단장으로 둔, 제국 최강의 기사단.

비록 그 단장은 지금 북쪽에서 늑대인간들을 상대로 혈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그 외의 나머지들은 전부 이곳에서 성물과 제단 그리고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전장으로 불려가고 어중이떠중이인 기사들이 자리를 대신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리 제국의 최고 전력인 가제프가 빠졌다고는 해도, 단순히 전력만으로 따지자면 황실 기사단이 이쪽보단 한수 위였다.

하나하나 따진다면 부단장조차 지금의 내 적수가 되진 못했지만, 셀레스트가 이끌고 온 무리나 아이시스를 부하들 같은 경우에는 셋이 모여도 평단원 하나를 상대하기 버거울 터였다.

단순하게 전력 대 전력으로 맞붙는다면 아마 근소한 차이로 이쪽이 패배를 맛보게 되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면에서 붙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굳이 저들 좋으라고 그런 짓거리를 벌일 이유가 없었다.

“녀석들이 오기 전, 우린 먼저 가서 제단 근처에 잠복한다. 그리고 의식이 시작됐을 때, 단번에 놈들을 덮치고 성물을 부순다. 혹시 이해 못한 사람 있나?”

그저 눈앞에 보이는 적을 모두 쓸어버리면 그만은 이쪽과, 의식을 진행 중인 사제들과 마법사들은 물론 그 뒤의 제단까지 지켜야 하는 기사단.

어느 쪽에게 유리한 싸움이 될지는 안 봐도 뻔했다.

“뭐, 간단하네. 얘들아, 들었지? 흡혈귀 놈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내가 이놈한테 빚이 있어서 말이야. 이번 한 번만 원하는 대로 날뛰어주자고.”

“예, 대장!”

셀레스트 쪽은 문제없는 거 같고.

카렌과 발라크, 릴리아나도 통과.

남은 건 아이시스가 데리고 온 악마족들 뿐인가.

“…작전은 이해했습니다만, 혹시 질문 하나만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말해봐라.”

나는 아이시스의 뒤쪽에서 번쩍 손을 드는 악마족을 보고선, 조용히 어깨를 으쓱였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인데.

프랭이라고 했던가?

정찰대 시절에도 아이시스를 따라다니던 녀석인 것 같았다.

“그 이방인들이라는 게 연합 놈들한테 중요한 카드라는 건 알겠습니다만, 과연 이게 적진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내걸 만큼 공적이 돌아오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랭, 너.”

“아니, 괜찮다. 아이시스. 충분히 걱정할만하지. 아무리 상명하복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아무 곳에나 다 목숨을 걸고 싶진 않을 테니까.”

난 그의 물음에 눈살을 좁히며 뒤를 돌아보는 아이시스를 말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프랭. 네 말대로 이건 거는 리스크에 비해 돌아오는 공적은 보잘 것 없는 일이다. 연합 놈들이 이방인들 소환하고 있다는 건 지금 마왕님들께서도 모르고 계시는 일이니 말이야. 아마 성물을 부수고 놈들의 계획을 무너트리더라도, 너희가 얻게 되는 공적은 그저 저 황실 기사단 녀석들을 처리했다는 사실에 그칠 거다.”

물론 그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공적이었지만, 앞으로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어버릴 수도 있는 계략을 막아선 것에 비해선 터무니없이 모자란 양일 터였다.

“그, 그러면….”

“하지만.”

나는 솔직한 내 대답에 실망을 내비치는 병사들을 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임에는 변함이 없다. 여길 부수고 놈들이 더는 이방인들을 소환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만 있다면, 마지막 버팀목을 잃어버린 연합은 머잖아 완전히 무너져버릴 테니.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비록 이로 인해 얻을 공적은 너희들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모자란 만큼 이 내가 어떻게든 따로 챙겨줄 테니 말이다.”

대답을 마친 나는 재차 주변을 훑으며 병사들의 반응을 살폈다.

아직 다들 완전히 납득하지는 못한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몇몇 눈빛에 담겨있던 불만들은 대부분 씻겨나간 듯 보였다.

모자란 공적은 따로 챙겨주겠다는 약속.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마룡왕에게 신임을 사고 있으니만큼, 충분히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한 거겠지.

“그럼 다음 질문 있나?”

없겠지.

딱히 고민할 거리도 없는 작전이었으니.

“좋다. 그러면 다들 내일 새벽이 밝을 때까지 잠시 쉬고 있도록. 찌뿌둥하면 주변을 좀 둘러봐도 상관없다. 단, 아래에 있는 놈들에게 들키지만 않게 조심하도록. 릴리아나.”

“응?”

“넌 따라오도록. 따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

이만 작전 설명을 마친 나는, 릴리아나를 데리고서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방금 그 작전만으로도 황실 기사단을 상대할 자신은 있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압도적인 승리를 점칠 수 없었다.

아마 이쪽이 이기더라도 여기 있는 병사들 중 절반 이상은 그들과 같이 땅에 묻히게 되겠지.

“흐응… 부탁이라니. 이렇게 나만 따로 불러내서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는 걸까?”

“별로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 그저 네 능력을 좀 쓸 수 있으면 해서 말이야.”

“…내 능력?”

적당히 자리를 옮긴 나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매혹 말이다. 지금 저기 성벽 밖을 돌고 있는 녀석들이 보이나?”

“저 열심히 달리고 있는 귀여운 아이들 말이지? 응, 보여.”

“그놈들이 바로 이방인들이다. 연합 놈들이 우리 마왕군을 상대로 준비한 비장의 수지.”

“어머… 저게? 정말로?”

릴리아나는 기사들을 따라 열심히 성벽 주변을 돌고 있는 이방인들을 내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저렇게 약해 보이는 아이들로 어떻게… 으응, 이상하네. 연합 놈들도 아주 바보는 아닐 텐데. 저런 애들을 가지고 무슨 수로 우리를 막겠다는 걸까.”

“글쎄. 네 말대로 놈들도 바보는 아닐 테니, 무언가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거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방인들과 기사들을 번갈아 살피는 그녀를 보고선, 천천히 말을 이었다.

“보다시피 놈들은 아직 보잘 거 없는 임프나 오크들과 비교해도 모자랄 정도로 약하다. 그 말은 즉, 네가 매혹을 걸기만 한다면 심층까지 완전히 장악해버릴 수 있다는 얘기지.”

“뭐,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어? 저기 있는 기사들은 조금 힘들겠지만, 옆에 있는 저 귀여운 아이들 정도야 눈길만 스쳐도 충분하지.”

난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주억이는 그녀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서큐버스들의 매혹이 가지는 가장 무서운 점은, 완전히 심층까지 지배된 대상에 한해선 누가 와도 그 사실을 판별해낼 수 없다는 거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거나 매혹을 건 장본인과 거리가 너무 벌어지게 된다면 천천히 풀리긴 하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에야 성녀나 교황이 오더라도 눈치 챌 수 없었다.

“어쨌든 나한테 매혹을 부탁한다는 건, 놈들을 가지고 또 무슨 음흉한 계획을 세워놨다는 거겠지.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나는 천천히 허리를 숙이며 귀를 기울여오는 릴리아나를 보고선,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졌다.

“내가 어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저 도시 중앙에 커다란 우물이 나있다더군. 듣자하니 다들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는 모양이다.”

“흐응… 그래서?”

사락-

“여신의 숨결이라는 풀이다. 사제들이 죄인에게서 자백을 받아낼 때 쓰는 물건이라도 하더군. 평범한 사람이 이걸 가루내어 먹는다면 그저 정신이 몽롱해지고 판단력이 많이 흐려질 뿐이지만, 마력을 가진 녀석이 먹는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10분.

길어야 10분이면 충분했다.

“반나절 뒤부터 시작해 한 시간 정도. 몸에 있는 마력을 못 쓰게 된다더군. 물론 가진 마력에 따라서 약효가 줄어들긴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나.”

마력조차 못 쓰는 기사 놈들을, 모두 잡아 죽이는 데는 말이다.

파사삭-

나는 손에 쥔 풀을 으깨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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