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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32화 (132/200)

제132화

“크윽, 젠장!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뚫어! 아군의 시체를 밟아서라도 투석기를 부수란 말이다!”

콰아아앙-!

성문을 열고 나온 연합의 병사들은 어떻게든 투석기를 부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렸다.

어느새 성벽 위에 올라 마왕군의 진격을 늦추던 인원들까지 합류해 나왔지만, 그럼에도 수십 미터 떨어진 투석기까지 닿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애초에 두 군의 전력 차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까.

어디까지나 성벽을 끼고 있었기에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거지, 힘 대 힘으로 붙어서 어찌 밀어볼 수준이 아니었다.

“크흐흐. 드디어 밖으로 기어 나왔구나, 이 쥐새끼 같은 놈들!”

촤악-

“아아아악!”

오히려 괜히 성벽 밖으로 무리하게 내보낸 병력들만 쓰러져나갈 뿐이었다.

그만큼 갈수록 전력 차가 벌어지고 상대하기가 더욱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대로라면 어떻게든 투석기를 부수고 돌아오더라도, 성벽을 지킬 인원 자체가 모자라질 판이었다.

하지만 연합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렇다고 전력을 아끼려 들었다간 금세 투석기에 성벽이 날아갈 터였으니까.

“이런 젠장… 교황님께선 아직인가!”

뒤쪽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던 장군이 애타게 알폰스를 찾았지만, 이미 죽은 놈이 전장에 나타날 리 없었다.

동문의 지휘관들이 사색이 된 주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은, 이미 성벽의 삼 분의 일이 무너져 알카에다를 버리고 후퇴해야 한다는 얘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한 뒤였다.

“그, 그런… 교황님께서….”

“누구냐! 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였단 말이냐!”

“후, 후퇴! 후퇴하라!”

가뜩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교황의 죽음은 치명적이었다.

지휘관들은 황급히 병사들을 물리고 북문으로 도주를 시도했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성문은, 금방 마왕군의 손에 떨어졌다.

“무, 무슨… 이 빌어먹을 놈들이 제멋대로!”

덕분에 끝까지 성벽 위에 남아 마왕군의 진격을 저지하던 엘프들과 마법사들만, 적들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지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뒤늦게 동문의 이상을 감지하고 발을 빼려던 남문의 병력들까지, 순식간에 도시 안쪽으로 밀려든 마왕군들로 인해 완전히 포위됐다.

“이, 이 망할 인간 놈들이 감히!”

콰아앙-!

나는 아비규환이 된 도시 안쪽에서 거센 저항을 부리며 퇴로를 만들고 있는 한 무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왕님, 어서 가십시오. 어서!”

“크으으… 젠장, 젠장!”

테네스.

저들을 버리고 먼저 도망친 인간들에 대한 분노로, 그간 가식으로 부리던 가면을 벗어던진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저쪽이다! 다들 포위망을 겹겹이 둘러싸라! 엘프 놈들의 여왕만큼은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이런 망할, 숫자가 너무… 커억!”

“엘베르! 빌어먹을… 어떻게든 여왕님만큼이라도 무사히 보내드려야 한다!”

수호자들과 함께 꽤 분전하는 모습이었지만, 척 보기에도 저 두꺼운 포위망을 다 뚫고 빠져나가는 것은 어림도 없을 거 같았다.

곤란하군.

이대로 가다간 다른 놈이 잡아버리겠어.

나는 슬슬 위태로워 보이는 테네스의 모습에, 곧장 마음을 다잡고 그녀의 곁으로 향했다.

저 싸가지 없는 엘프 여왕은 목은 내 것이었다. 절대로 다른 놈들이 차지하게 둘 수는 없었다.

“허억, 헉… 제기랄! 이 망할 마족 놈들, 베어도 베어도 끝이 보이질 않는군!”

“여왕님. 이대로는 안 될 거 같습니다. 저희 수호자들 모두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어떻게든 길을 내어드릴 테니, 혼자서라도 꼭 살아서 엘븐하임으로 돌아가십시오!”

“뭐, 뭣? 그게 무슨 소리냐, 너희들!”

난 끝없이 밀려드는 마왕군에 이만 결심이 선 듯 눈빛이 달라진 수호자들을 보고선, 내 정체를 파악 못하고 달려드는 잔챙이들을 단칼에 베어 넘기며 걸음을 재촉했다.

“세계수,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시여. 부디 이 여린 가지들이 꺾이지 않도록, 당신의 손길로 보살펴주소서!”

콰앙-!

“크읏… 뭐, 뭐야! 이놈들, 갑자기….”

나는 짤막한 기도와 함께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빠르게 포위망을 뚫어내기 시작하는 수호자들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여기서 이렇게 쉽게 잡혀서야 쓰나.

“비켜, 비켜라! 이 더러운 마족 놈들! 후욱, 훅….”

저들의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에, 그 두터웠던 포위망이 어느덧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저 북문 앞을 막아선 병사들 뿐.

크그그긍-

“어서 닫아라, 어서! 더는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갈 수 없게끔, 확실히 닫아버려!”

“…빌어먹을.”

“모두 달려!”

그들은 반쯤 닫힌 성문을 보고선,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지친 몸을 움직였다.

팔 한 짝이 날아가고 찢어진 옆구리 사이로 창자가 삐져나오기까지.

다들 무리해서 포위망을 뚫고 나오느라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그럼에도 누구 하나 망설이는 이가 없었다.

“막아! 성문이 닫힐 때까지만 어떻게든, 놈들의 발목을 잡아채서라도 막아라!”

“크으으… 이런 제길, 이거 놔! 놓으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수호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성문 앞을 가로막은 포위망은 뚫리지 않았다.

“흐, 흐흐흐. 크하하하! 끝이다. 이미 늦었어. 이제 포기하고 얌전히….”

스억-

“여왕님. 꽉 잡으십시오.”

“어, 어어?”

그렇게 거의 다 닫혀버린 성문을 보며 엘프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어가던 찰나.

텁-

성문 앞을 가로막은 마족들을 베고서 테네스의 손을 붙잡은 나는,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이끌고 도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쿠웅-

“가, 가젤 경….”

“멍하니 있을 시간 없습니다. 놈들이 성문을 열고 쫓아오기 전에, 빨리 자리를 벗어나죠.”

나는 당황한 얼굴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여왕의 손목을 이끌고, 빠르게 서쪽에 있는 산맥을 향해 움직였다.

“이, 이제 놓으셔도 괜찮아요! 혼자서도 달릴 수 있으니까.”

1분 남짓 멍하니 내게 붙잡혀 이끌려오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선 제 발로 뛰기 시작했다.

“하악, 학… 저, 저기. 이쯤에서 잠시 쉬면 안 될까요?”

그 뒤로 무사히 알카에다에서 멀어져 산맥에 들어선 나는, 아까 수호자들과 함께 포위망을 뚫느라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는 테네스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고, 고마… 응?”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데.

나는 갑자기 달라진 내 말투에 눈을 깜빡이며 이쪽을 쳐다보는 녀석을 뒤로하고, 조용히 주변을 훑었다.

내가 굳이 성문을 나와 북쪽이 아닌 서쪽 산맥으로 향한 이유.

그건 단순히 숨을 곳이 많아 추격을 피하기 쉽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서 북문으로 알카에다를 빠져나간 제국의 병사들.

그들의 흔적이 이곳 산맥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마왕군이 바보가 아닌 이상, 놈들을 그냥 멀쩡히 보내줬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몇몇은 인간들을 쫓아 이 산맥 안쪽까지 따라왔겠지.

그리고 아마 지금쯤이면 잡을 만한 녀석들은 다 잡고 돌아오고 있을 터였다.

부스럭-

“응?”

바로 이렇게.

“흐흐, 이게 누구야. 엘프 여왕님 아니야? 그 옆은… 칫, 제길. 네놈은 그때 자칼 님과….”

나는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는 마족 무리를 보며,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저놈이 추적조였나.

“이, 이런… 가젤 경, 어떻게….”

아이베른.

난 열 명 남짓한 악마족을 이끌고 우리를 둘러싼 녀석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잘됐군.

귀찮게 일을 두 번 할 필요가 없으니.

“여왕님. 싸울 수 있겠습니까?”

“조금 지치긴 했지만, 아직 싸울 순 있어요. 하지만 괜찮을까요? 차라리 도망치는 게….”

나는 슬쩍슬쩍 틈을 살피는 테네스를 보며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도망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뭐야, 싸울 생각인가? 흐흐, 두 명이서 우리를 전부 상대하겠다고? 안타깝게 됐군. 뒤에서 활만 당기는 여왕님과 기사 하나를 상대로 당해줄 만큼, 우린 어중이떠중이가 아니거든.”

확실히.

핏줄이 핏줄이니만큼 평소 앉아서 국정이나 돌보는 여왕 치고는 꽤 강하다고는 해도, 테네스의 실력은 아무리 높게 쳐봐야 수호자들 중에서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적들은 고작 열 명 남짓이서 수천이 넘는 병사들을 상대로 추적조를 짜 움직일 정도의 정예들이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당장 덤벼들진 못하고 이쪽 눈치를 보고 있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어제 내가 이 모습으로 쟈칼과 싸우던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있겠지.

저들끼리 날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말이다.

“여왕 쪽은 가능한 생포한다. 기사 놈은… 손속을 두지 마라.”

나는 이내 판단이 선 듯 부하들을 시켜 우리를 덮치는 녀석을 보고선, 조용히 검을 집어넣었다.

“가, 가젤 경? 무기는 왜….”

스릉-

그리고 곧장 허리춤에 숨겨놨던 단검을 뽑아들어, 시퍼런 검기를 피워 올렸다.

우선 이놈들을 죽이고, 테네스를 처리한다.

알카에다에서 검귀의 제자가 엘프 여왕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을 마족들이 봤으니, 거기에 이들과 테네스의 죽음까지 더해진다면, 북문으로 간신히 빠져나온 가젤이 엘프 여왕과 함께 추적조를 맞닥뜨리고 그들과 싸우다 엘프 여왕이 전사한 것처럼 보일 터였다.

물론 내가 정체를 숨기고 가젤의 행세를 했다는 사실을 아는 두 마왕과 그 휘하의 사천왕들은 진즉에 알카에다에서 잡을 수 있었던 테네스를 굳이 밖으로 빼낸 걸로도 모자라 아이베른과 악마족들을 죽인 나를 질타할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공으로 덮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그렇게까지 하면서 가젤을 영웅으로 남겨둔 것이, 그들의 목숨 값보다 더 비싼 일이었다는 걸 몸소 증명해보이면 되지 않겠는가.

“집중하세요. 옵니다.”

“아, 알았어요.”

우선은 저 재수 없는 아이베른과 그 부하들부터.

나는 조만간 저를 죽일 사람의 말을 따라 등을 맡기는 테네스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멍청한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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