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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02화 (102/200)

제102화

“안쪽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예. 아직까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성문을 들락거릴 때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놈들이 조금 남아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은 이미 몇 번이고 이상 없이 검문을 통과했던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나는 케레스의 앞에 부복해 상황을 보고하는 녀석의 뒤로, 짐칸에 싣고 온 빈 상자를 내리고 무언가를 분주히 옮기고 있는 엘프들을 살폈다.

“후욱, 후우… 무거워 죽겠네.”

쿵-

“거기, 조심히 옮겨! 그러다 잘못해서 터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누구 다 죽일 일 있어?”

“죄, 죄송합니다!”

…터진다고?

난 놈들이 굉장히 조심스럽게 싣고 있는 물건을 자세히 살펴봤지만, 전부 커다란 나무상자 안에 들어있었기에 쉽사리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의 반응으로 미루어봤을 때, 뭔가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해보였다.

자칫 충격을 받으면 폭발할지도 모르는데다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녀석이라.

“설마….”

나는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물건의 모습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폭탄….”

난 불과 몇 달 전에 광산을 무너트리기 위해 써먹었던 폭약들을 떠올리며, 나지막이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어떻게?

엘프와 드워프들의 사이는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앙숙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귀쟁이와 난쟁이.

용사 시절, 서로 마주치기만 해도 언성을 높이며 막사 분위기를 잔뜩 흐려놓는 경우를 몇 번이나 봐왔던가.

그런 둘이 손을 맞잡고 엘프들을 위해 폭탄을 만들어주는 광경은,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았다.

“다 실었습니다!”

“그래. 그럼 우린 이만 가보겠다. 너희도 들키지 않게 조심히 들어가도록. 회담까지 앞으로 열흘이다. 마지막으로 닷새 뒤에 한 번 더 물건을 받아올 테니, 그때도 이 시간에 늦지 않게 올 수 있도록.”

“예, 케레스 님!”

케레스는 무사히 상자를 다 옮겨 실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가 데리고 왔던 엘프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방금 분명히 물건을 받아온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정말로 드워프가…

덜컹-

나는 올 때와 달리 짐을 한가득 싣고 떠나는 마차를 보며, 조용히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으음….”

그러고 보니 짚이는 구석이 하나 있군.

난 광산을 폭파시킨 뒤 일부러 여기저기 풀었던 드워프들의 무기를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비록 제 부족은 아닐지라도 동족이 살던 광산이 무너지기가 무섭게, 누가 봐도 그들이 만들었을 게 분명한 물건들이 제국 곳곳에 풀렸다.

아마도 드워프들 중에 누군가, 그 모든 게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이 벌인 짓일 거라 생각한 거겠지.

만일 그 복수를 위해 마침 이해관계가 맞는 에리스의 수족들과 손을 잡았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앞뒤가 들어맞았다.

“테러라도 벌일 생각인 건가.”

마차 하나를 반쯤 채울 만큼 많은 양의 폭탄을 싣고, 이미 이전에도 몇 번이나 성문을 통과했단 말이지.

그 정도면 건물 몇 개 정도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수 있는 양이었다.

물론 저들의 여왕과 에리스 또한 직접 회담에 참여하는 만큼 그 장소에 폭탄을 터트리려는 건 아닐 테고, 아마 제국에서 나올 인물들이 전날 머물 곳을 폭파시키려는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 연합이 물 건너 가버리는 것은 물론이오, 당장 양국 간에 전쟁이 터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 그걸 노리고 있었던 건가.

“아쉽군.”

확실히 작전은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곳에서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제국은 절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걸 말이다.

벨라노르도 카르네몬도 모두 마왕군에게 점령당한 상황에서 엘프들까지 적으로 돌린다니.

그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차라리 엘프들 전체가 어떻게든 전쟁을 바라고 있다면 모를까.

적어도 여왕은 그럴 마음이 없는 거 같으니, 아마 적당히 성의를 보이며 사과하고 제국이 받아주는 그림으로 끝이 나게 되겠지.

북쪽에서 흑장미 기사단이 멋대로 국경을 넘고 주둔지 하나를 완전히 박살 냈음에도, 수인 연합이 제국의 사과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래도 꽤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모자란 부분은 내가 대신 채우면 그만이었다.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성문 앞에 도착한 마차를 바라봤다.

“정지. 또 뭘 그렇게 많이 싣고 오는 거냐.”

“하하… 상자는 나갈 때부터 있던 겁니다. 대신 숲에서 안에 뭘 가득 채워왔지만요.”

끼익-

난 보란 듯이 상자 하나를 열어 경비병들에게 확인시켜주는 놈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혹시 의심받을 경우를 대비해 철저하게도 준비해놨군.

“참, 너희 엘프들은 그 맛도 없는 풀떼기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군. 다음!”

나는 약초가 가득 들어있던 상자를 다시 닫으며 성문을 통과하는 마차를 보고선, 행복한 고민과 함께 천천히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자, 저 계획을 어떻게 바꿔서 써먹으면 좋을까.

가능하면 에리스, 그년을 엿 먹일 수 있는 방향으로 트는 것이 좋겠지.

* * *

“참 오래도 걸리는군.”

엘프들의 쫓아 그들의 꿍꿍이를 밝혀낸 나는, 도시로 돌아와 그들이 자리를 비우기만을 기다렸다.

끼익-

그리고 지금,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허름한 여관 입구를 지켜본 지 세 시간.

나는 모두가 밖으로 나온 틈을 타, 로브를 눌러쓰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2층에 방 있습니까?”

“2층? 거기는 한 열흘 전부터 엘프 놈들이 다 빌려서 남는 게 없수. 1층하고 3층엔 두 개씩 남는데. 혼자 온 거요? 그럼 1층으로 드릴게. 3층은 네 명이서 쓰는 방밖에 없거든.”

“3층으로 주십시오. 넓은 게 좋으니까.”

“뭐 마음대로 하쇼. 나야 돈만 받으면 그만이니.”

곧바로 방값을 지불하고 주인장으로부터 열쇠를 건네받은 나는, 이만 심드렁하니 이쪽에 관심을 끄는 그를 보고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래, 고작 열 명밖에 안 되는 인원이서 한 층을 전부 빌렸단 말이지.

달칵-

가장 먼저 왼쪽 끝에 있는 문 앞으로 향한 나는, 품에서 가느다란 철사를 꺼내 들어 가볍게 잠금장치를 풀었다.

끼이익-

“꽝인가.”

난 여기저기 널린 옷가지들을 제외하면 딱히 특별할 게 없는 방을 보고선, 조용히 문을 닫았다.

쿵-

“으음….”

그렇게 2층에 있는 방들을 모두 열어보기를 열한 번째.

나는 가장 오른쪽에 마지막 남은 방을 눈앞에 두고서, 무언가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그 많은 상자들을 다 어디다 옮긴 거지?

분명 마차에서 내려 이 건물을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걸 확인했건만.

달칵- 달칵-

툭.

“…망할, 참 꼼꼼하게도 숨겨놨군.”

난 결국 마지막 방에서도 보이지 않는 상자를 보며,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방 안에 어디 숨겨진 공간이라도 있다는 얘긴데…

“아.”

한참을 궁리하며 주변을 슥 둘러보던 나는, 어째 건물 높이와 층수에 비해 생각보다 천장이 낮은 것을 보고선 실소를 터트렸다.

그래, 그런 건가.

끼이익-

“…찾았군. 설마하니 바닥 아래 공간이 있는 곳이었을 줄이야. 영악한 놈들 같으니.”

다시금 지나왔던 방들을 돌며 꾹꾹 바닥을 밟고 다니던 나는, 중간중간 유독 삐걱거리며 움푹 들어가는 부분들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마냥 오래된 여관이라 저렴해서 이곳에 머무는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사전조사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끄그그극-

나는 곧바로 근처 카펫에 가려져 있던 입구를 찾아, 아래쪽에 숨겨져 있던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음, 참 많이도 쌓아놨군.”

난 아무래도 2층 전체가 이어져 있는 듯 꽤 널찍한 공간을 돌아다니며,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상자와 그 옆에 놓인 수많은 폭탄들을 살폈다.

“역시, 드워프들과 손을 잡았나.”

이것만으로도 증거는 충분했다.

엘프들이 사는 숲에는 폭약이 전혀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정교한 폭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드워프들뿐이었다.

끼익-

이후 침입했던 흔적을 모두 지우고 밖으로 나온 나는, 곧 저들의 계획이 모두 들통 난지도 모른 채 한가득 먹거리를 안고 돌아오는 엘프들을 바라봤다.

딸랑-

“어서 오세요. 뭐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세요?”

“종이. 그리고 먹 좀 구할 수 있겠습니까. 아, 그리고 선물을 담기 괜찮은 상자가 있으면 그것도 하나 부탁드립니다.”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바로 아무 잡화점을 찾은 나는, 에리스를 불러들일 편지를 쓰기 위해 종이와 먹을 구했다.

“다해서 동화 열 개 되겠습니다.”

짤랑-

이내 값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온 나는, 카렌과 발라크가 기다리고 있는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몇몇 엘프들이 회담에 참여할 인간들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를 지시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엘프들의 그랜드 마스터라면?

심지어 그 도구가 될 폭탄을 구하기 위해 앙숙과도 같은 드워프들과 손을 잡았다면?

“흐흐.”

그간 쌓아온 신뢰가 전부 박살 나는 것은 물론, 모두에게 받아왔던 존경이 단숨에 적의로 바뀌게 될 터.

그래도 엘프들의 최대 전력이라 볼 수 있는 그랜드 마스터인 만큼 숲에서 추방되진 않겠지만,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책임을 완전히 빗겨나가지는 못할 터였다.

“천천히, 나락으로 끌어내려 주마. 에리스.”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금방 방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쓸 편지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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