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98화 (98/200)

제98화

타닥- 탁-

“허으윽… 무, 무슨….”

“으… 서, 성녀님!”

나는 훅 솟아오른 먼지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반파된 예배당을 보며, 다급히 성녀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성기사들을 살폈다.

못해도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빽빽하게 지키고 서있던 호위망은, 몇몇이 카렌의 마법에 휩쓸려 여기저기 구멍을 드러내고 있었다.

“흐아아악! 부, 불이….”

푹-

높게 치솟은 불길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녀석의 숨통을 끊은 나는, 곧바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직도 바깥을 지키고 있는 놈들의 수를 세었다.

입구 쪽에 둘, 아직 반파되지 않고 서있는 건물 외벽 쪽에 하나.

“젠장… 성녀님께서 무사하셔야할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 누구보다 여신님의 사랑을 받고 계신 분이잖나. 분명 괜찮으실 거다.”

여신의 사랑이라.

웃기지도 않는군.

물론 나도 고작해야 방금 그걸로 성녀가 죽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지금 내 눈에, 이 예배당 안쪽을 둘러싸고 있는 두터운 방어막이 보였으니까.

사제들이 다루는 결계가 아닌,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방어 마법.

참 많이도 준비했군.

어지간히도 조심성이 많은 여자야.

“그, 그렇겠….”

촤악-

“컥….”

“누, 누구냐!”

카앙-!

“음.”

빠르게 둘을 처리하고 단번에 외벽에 붙은 녀석까지 정리하려던 나는, 눈앞에서 쓰러지는 동료를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내 검기를 맞받아치는 놈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의외로 알짜배기들을 전부 제 옆에 붙여놓지는 않은 모양이군.

“부, 부단장님! 저도 돕겠습니다!”

그런가.

부단장이었나.

설마하니 성녀를 따라나선 녀석들이 어디 변방 소속의 성기사들은 아닐 터.

적어도 교단 본청에 적을 두고 있는 성기사단 중 하나일 게 분명했다.

이 정도면 흡혈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 넌 서둘러 이 사실을 성녀님께 알려라.”

“하지만….”

“어서!”

나는 그 잠깐의 부딪힘에 제가 이길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는지 곧바로 부하를 안쪽으로 보내는 놈을 보며,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곤란하지.

후웅-

“무슨… 조심해라!”

“예, 예? 힉… 아아악!”

빌어먹을, 빗나갔나.

나는 제 상관의 외침에 황급히 뒤를 돌아본 덕에 목숨을 건진 녀석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래도 다행히 단검이 손을 꿰뚫고 그대로 벽에 박힌 덕에, 아직 수습할 기회는 남아있었다.

후웅-

“큿… 아! 이, 이 자식. 놓칠 것 같으냐!”

일부러 검기를 늘려 부단장을 잠시 떼어낸 나는, 곧바로 제 손에 박힌 단검을 뽑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녀석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흐으읍….”

텅그렁-

“빼, 빼냈….”

“아슬아슬하게 늦진 않았군.”

“히, 히익!”

막 단검을 뽑아낸 찰나 그 앞에 도착한 나는, 꼴사나운 신음을 흘리며 황급히 몸을 돌리는 놈을 향해 검기를 휘둘렀다.

카앙-!

“…이런.”

“사, 살았….”

“멍청하게 가만히 있지 말고, 어서 달려라!”

시퍼런 검기가 그대로 목을 가르기 직전.

나는 갑자기 뒤에서 날아와 단검을 튕겨낸 검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허억, 헉….”

“흐흐. 이걸로 끝이다.”

난 금세 저 멀리 도망친 부하를 보며 후련한 미소를 짓는 부단장의 모습에,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손끝을 훅 그었다.

투둑-

아무래도 아직 다루는 게 그리 익숙하지 않아 한창 싸우는 도중에는 자제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상대가 등을 돌리고 무기를 놓고 있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랐다.

“뭐하는 거냐. 실성이라도 한 건가? 갑자기 제 손을….”

“아쉽게 됐군.”

스륵-

나는 내 손짓을 따라 허공에 둥둥 떠오른 핏방울들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기사가 손에서 검을 놓아버리면 어떡하나. 차라리 던지고 나서 바로 달려들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피, 피가….”

난 금세 날카로운 창의 형태로 뭉친 핏물을 보고선, 그대로 아직 길게 이어진 복도를 벗어나지 못한 녀석을 향해 던졌다.

후욱-

“아, 알페이른! 피해….”

푹-

나는 꽤 멀찍이 떨어져있음에도 선명하게 울려 퍼진 섬뜩한 소리에, 썩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 빌어먹을….”

촤악-!

“마족, 놈….”

툭-

난 제 몸으로 나를 붙잡아두기라도 할 생각이었는지 양팔을 벌리고 달려들던 녀석의 목을 베어내며, 맥없이 쓰러지는 몸뚱이를 잡아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은빛 매 성기사단 부단장, ‘파베른 루미에르’를 흡혈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힘이 ‘1’ 증가합니다.]

“흐흐….”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바닥에 던졌다.

이제 슬슬 하나 더 날아올 때가 됐는데.

콰아아앙-!

난 마침 시의 적절하게 예배당을 감싸고 있는 방어막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보며, 천천히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쩌적-

나는 방금 부딪쳤을 때 깨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한기에 점차 갈라지는 방어막을 보며, 조용히 검기를 다듬었다.

이제 예배당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니, 분명 몇몇은 그전에 이쪽으로 빠져나오려 할 터였다.

물론 옆에 반파된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층이 주저앉은 거지 외벽이 전부 무너져 내린 건 아니었으니까.

까드드득- 카챵!

난 머잖아 산산조각 나며 빛이 되어 흩어지는 반투명한 방어막을 보고선, 슬그머니 입구 옆에 귀를 붙였다.

쿠구구-

“거, 건물이 무너진다! 다들 어서 밖으로 대피해!”

“성녀님, 성녀님은 어디 계신가!”

“아까 부대장님께서 이끌고 나가셨습니다!”

쯧, 성녀는 없는 건가.

나는 얼음덩이에 짓눌려 빠르게 무너지는 예배당 안에서 점차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조용히 속으로 시간을 세었다.

하나, 둘, 셋.

“지금.”

푹-

“컥….”

“뭐, 뭐야! 갑자기 왜 멈추는….”

촤악-!

일단 두 명.

“저, 적이다! 입구에 적이….”

“겁먹지 말고 나가! 어차피 건물에 깔리면 모두 죽은 목숨이야!”

까드드득-

난 단순히 무너져 내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외벽을 따라 얼어붙기 시작한 예배당을 보며, 마음을 굳게 먹고 달려 나오는 성기사들을 향해 품에서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쨍강-!

“큭, 이게 뭔….”

나는 가장 앞서오던 녀석의 투구에 부딪혀 박살난 유리병을 보며, 보기 좋게 내용물을 뒤집어쓴 놈들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때, 선물은 마음에 드나.”

“이… 뭔지 모를 잔재주를!”

“빨리 해치우고 밖으로 나간다! 어서 성녀님과 합류해야 해!”

난 태연하게 모습을 드러낸 나를 향해 거칠게 덤벼오는 성기사들을 보며, 여유롭게 검기를 내뿜었다.

“죽어라, 이 사악한 마족… 어, 어?”

촤악-

이걸로 세 명.

나는 선두에서 녹색 액체를 가장 많이 뒤집어쓴 녀석이 검을 휘두르다말고 잠시 주춤거리는 틈을 타, 단숨에 놈의 가슴을 갈랐다.

녹색 밭 거미의 체액.

지난번에 세르노이를 처리하는데 요긴하게 써먹고 남은 것들을 모두 챙겨온 나는, 맥없이 쓰러지는 동료의 등에 숨어 어느새 바짝 다가온 녀석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픽-

“큭! 아, 아….”

핏방울을 뭉쳐 만든 날카로운 바늘에 손목을 꿰뚫린 놈은, 순간 손에서 검을 놓음과 동시에 창백한 안색으로 이쪽을 훑었다.

쩌억-!

그대로 녀석의 머리 위에 단검을 꽂아준 난, 이내 슬슬 효과가 돌기 시작한 듯 눈에 띄게 움직임이 더뎌진 나머지들을 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제, 젠장… 몸이….”

촤악-!

학살의 시간이다.

* * *

[성녀 호위대 상급기사, ‘디오세스 페레르’를 흡혈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힘이 ‘1’ 증가합니다.]

[성녀 호위대 상급기사, ‘셀레시오 페레르’를 흡혈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체력이 ‘1’ 증가합니다.]

“프흐….”

마비로 인해 무뎌진 기사들을 모두 처리하고 금방 흡혈을 마친 난, 품에서 한 움큼 누런 풀을 꺼내 입에 넣었다.

“스읍… 으, 끔찍하군.”

으적으적 풀을 씹을 때마다 흘러나오는 진액에 눈살을 찌푸린 나는, 꾸역꾸역 그를 삼킨 뒤에도 가시지 않고 입 안에 남은 쓴맛에 침을 내뱉었다.

[에릭 가이오스]

[뱀파이어]

[레벨 : 65]

[힘 : 184][민첩 : 190]

[체력 : 182][마력 : 150]

그래도 덕분에 한껏 오른 능력치를 보며 당장이라도 게워내고 싶은 속을 달랜 나는, 이만 예배당을 뒤로하고 성녀를 찾아 주변을 슥 둘렀다.

어디로 도망쳤나, 메리엘.

“이쪽입니다, 성녀님!”

“하악, 학… 벨, 조금만 천천히….”

찾았다.

나는 벌써 카르네몬을 포기했는지 서문으로 도망치는 성녀를 보며, 조용히 녀석의 뒤를 쫓았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간, 교단의 명성에 누를 끼치게 될 겁니다.”

“알고, 후욱… 알고 있어요. 어쩌다 성문이 이리 쉽게… 대주술사, 그녀만 있었어도….”

난 미사포 뒤에서 손톱을 씹으며 황급히 제 호위를 따르는 그녀가, 어서 성문을 나서기만을 기다렸다.

“마차, 어서 마차를….”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다른 녀석들이 가져올 테니… 웬 놈이냐!”

도시 바깥으로 나와 숲 근처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둘을 살피며 기회를 엿보던 나는, 갑자기 이리로 고개를 휙 꺾으며 소리치는 호위를 보고선 조용히 침음을 흘렸다.

감이 좋군.

기척은 완전히 죽였을 텐데.

역시 성녀의 호위대.

그중에서도 머잖아 그 대장 자리를 차지하게 될 녀석다웠다.

이거 더 이상은 숨어봐야 의미 없겠군.

난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아직도 이쪽을 경계하고 있는 놈을 향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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