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90화 (90/200)

제90화

부스럭-

영주성을 둘러싼 울타리를 넘어 안으로 들어온 나는, 우선 바닥에 바짝 엎드려 정원에 몸을 숨겼다.

세르노이가 머물고 있는 방은 가장 2층 맨 끝자락.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울타리 안쪽을 돌고 있는 병사들과 저택을 지키는 기사들을 지나, 그녀의 개인적인 호위까지 모두 뚫어야만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녀석을 암살하고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까지.

용사 시절 수많은 수라장을 헤쳐 온 나로서도, 마냥 쉽진 않은 일이 될 거 같았다.

“그러니까 그 대주술사라는 녀석이 딱 도착하자마자, 수인 놈들이 팍 고개를 숙이더라니까? 아마 조금만 늦었어도 거기서 칼부림이 났을 거야.”

“허어. 그 아가씨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단 말이야?”

“그래. 아까 기사님들한테 여쭤보니까, 제국으로 따지면 그 가제프 님 정도 되는 사람이라나 봐.”

“가, 가제프? 설마 그랜드 마스터 가제프?”

나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나누는 병사들을 지나,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비교적 기감이 예민하지 않은 병사들이라서 그런 걸까.

녀석들 몰래 저택에 붙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근무 중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음. 그럼 이만 들어가 보도록.”

“예, 고생하십시오!”

난 벽에 바짝 달라붙어 슬그머니 저택 입구를 살피며, 마침 교대중인 기사들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정면으로 들어가는 건 힘들겠군.

부스럭-

“음.”

하는 수 없이 입구에서 멀어진 나는, 품에서 영주성의 구조가 그려져 있는 설계도를 꺼내들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총 세 개.

입구를 지나던가, 창문을 통하던가. 아니면…

“…하수도라.”

밑으로 들어가던가.

끼익- 털컹.

설계도에 적힌 대로 하수구를 찾아 입구를 막고 있던 창살을 뜯어낸 나는, 조심스레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으음….”

얼마 들어가지 않아 코를 훅 찔러오는 악취에 눈살을 찌푸린 난, 다시금 종이를 살펴보며 건물과 이어진 통로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젠장, 이 축축하고 끔찍한 냄새는 몇 번을 겪어도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는군.

“여긴가.”

금세 저택과 이어진 사다리가 있는 곳에 도착한 나는, 잠시 위를 막고 있는 철판에 귀를 가져다대며 바깥에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아무래도 없는 모양이군.

하긴 누가 이 늦은 밤까지 식당에 남아있겠는가.

끼이익-

“후우.”

조심스레 철판을 밀어 밖으로 나온 나는, 폐 속에 가득 찬 더러운 숨을 모두 뱉어내며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문 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녀석이 하나, 근처에 가만히 서있는 놈이 둘.

아무래도 복도로 나가는 건 무리겠군.

“어디 보자, 이 위쪽이….”

서재.

나는 설계도에서 식당 바로 위에 위치한 방들 중에, 서재라고 적힌 공간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까 바깥에서 봤을 때 2층에 불이 켜져 있는 곳은 없었으니, 설마하니 누가 서재에서 잠들어있지 않는 한 들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달그락-

이쯤인가.

한쪽 구석에서 손을 뻗어 천장을 더듬거리던 나는, 책장이 없을 거 같은 부분을 찾고선 조용히 단검을 뽑아들었다.

카각-

검기를 끌어올리면 혹여나 기감이 예민한 녀석들에게 들킬 수 있기에 가능한 틈새를 찾아 날을 밀어 넣은 나는, 몇 번이고 팔을 움직인 뒤에야 간신히 틈새를 낼 수 있었다.

툭-

이윽고 주먹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만 천장을 잘라낸 나는, 조용히 박쥐로 흩어져 서재로 올라갔다.

“음.”

나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책장을 지나쳐, 복도와 이어진 문에 귀를 붙였다. 바깥의 병사들과는 달리 아무런 잡담도 들리지 않았지만, 왼쪽에서 바닥에 발끝을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명단에 적혀있는 대로 두 명.

다행히 2층엔 따로 영주성을 지키는 기사들은 없는 것 같았다.

“다음 순서가… 부족장 두 명이군.”

마침 지금 카르네몬에 머물고 있는 족장과 부족장들끼리 번갈아 서고 있는 호위들 중에, 다음이 바로 족장이 비는 순서였다.

본래대로라면 무조건 하나씩 서야했지만, 내가 전날에 족장만 셋을 죽여 놓은 탓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음. 안에 대주술사님께서 계시니, 절대 경계를 늦추지 말도록.”

그렇게 서재 안에서 숨죽여 기다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드디어 교대를 마친 놈들을 보며, 잠시 기다렸다 조용히 문을 열었다.

끼이익-

“뭐야, 문이… 거기 누구….”

푸욱-

발소리를 통해 알아놓은 위치를 향해 반쯤 열린 문틈으로 단검을 던진 나는, 어깨에 깊숙이 틀어박힌 날을 보며 조용히 두 번째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르륵….”

난 단검에 발린 독으로 인해 뻣뻣하게 굳어 쓰러지는 녀석을 지나쳐, 곧장 남은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치, 침입… 흡!”

후웅-

곧바로 적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외치려던 놈은, 순식간에 제 목 앞에 다다른 날을 보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역시 기습이 아니고서야 한 번에 당해줄 정도로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다 이건가.

단번에 죽이지 못한 건 조금 위험했으나, 아직까진 괜찮았다.

녀석도 급하게 몸을 빼느라고 소리를 지르진 못했으니까.

스릉-

“이….”

쩌억-!

나는 뒤이어 날아드는 내 공격을 막기 위해 등에 이고 있던 도끼를 꺼내는 놈을 보며, 그대로 자루 째 녀석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툭-

그대로 쓰러지는 몸을 붙잡아 조심스레 내려놓은 나는, 다행히 들키지 않았는지 조용한 저택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남은 건…

달칵-

먼저 처리한 놈의 머리에 꽂힌 단검을 회수한 난, 녀석들이 지키고 있던 문 앞에 서서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끼이익-

“기다리고 있었어요.”

빌어먹을.

나는 문을 열기가 무섭게 눈앞에 번쩍이고 있는 괴상한 형태의 뼈 지팡이를 보며, 눈살을 팍 찌푸렸다.

일어나 있었나.

아니, 아직 눈가가 부스스한 걸 보아하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고 있던 건 맞는 거 같았다.

하지만 방금 그 소란 통에 깼다고 하기에는, 이렇게까지 미리 준비를 마쳐놨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아마도 내가 서재에서 나오기 직전쯤에 일어난 거겠지.

“이것도 꿈에서 알려주던가?”

“어떻게 그걸….”

난 놀란 눈으로 입술을 꾹 깨무는 세르노이를 보며, 조용히 단검을 들어올렸다.

당황할 만도 하지.

성녀의 신탁과는 달리 대주술사의 계시는, 본래 부족장 이상의 인원들에게만 그 존재가 밝혀진 것이었으니까.

이 대륙에 모습을 비춘지 고작해야 넉 달이 안 된 마왕군이 알고 있을만한 사실이 아니었다.

어쩌면 저들 중에 적과 내통하는 자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성격 참 나쁘군. 그러면 진즉에 같이 좀 싸워주지 그랬나. 혹시 나를 잡기 위해 밖에 있는 놈들을 미끼로 쓴 건가?”

“…밤새 족장들을 죽인 것도. 그를 이용해 제국의 기사단과 싸움을 붙이게 유도한 것도 모두 당신이겠죠. 앞으로 있어서 얼마나 더 큰 위협을 불러올지 모르는 괴물. 여기서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두 사람도 제 희생을 아쉬워하진 않을 겁니다.”

역겨운 짐승 같으니.

나는 제멋대로 남을 미끼를 던지고선 그를 희생이라 치부하는 그녀를 보며, 으득 이를 갈았다.

“당신을 죽인다면, 그들의 넋도 조금은 기릴 수 있겠죠.”

“토악질이 나오는군.”

그래, 이런 녀석들이었다.

망할 연합의 수뇌부들은, 애초에 저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남의 목숨 따위야 얼마든지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는 놈들이었다.

“그래서 그 꿈에선 어땠지.”

난 조심스레 품속으로 손을 넣어, 아직 내용물이 찰랑이고 있는 병을 꺼내들었다.

“내가 죽는 모습까지, 훤히 비쳐주던가?”

“…나그네여, 저주 받은 불길이 그대의 앞길을 막아설지어다.”

화륵-

나는 세르노이의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불꽃을 보며, 황급히 놈이 서있는 바닥을 향해 들고 있던 병을 깨트렸다.

쨍그랑-!

“큿….”

카챵-!

동시에 빠르게 번지는 불길에 곧장 창문을 깬 나는, 그대로 박쥐로 흩어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제가 그리 쉽게 놓칠 것 같… 읏!”

슬며시 옆에 난 창을 통해 방 안쪽을 들여다본 난, 한 번의 손짓에 불을 모두 꺼트리고 이쪽을 향해 손을 뻗다 푹 쓰러지는 그녀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위쪽에 대체 무슨 소란이… 헙!”

“치,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비록 소란을 듣고 곧바로 올라온 기사들 때문에 확실하게 숨통을 끊을 수는 없었지만, 녀석이 중독되어 쓰러지는 걸 봤으니 적어도 당분간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터였다.

게다가 영주성에서 일이 벌어졌으니만큼, 이에 대한 질책도 피해갈 수는 없을 터.

물론 대주술사의 목을 완전히 딸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예정과 달리 녀석이 깨어있었으니 이 정도만 해도 성공이라 볼 수 있겠지.

덕분에 적어도 곧 있을 전투에선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파르륵-

나는 재빠르게 저택을 벗어나 광장 구석의 골목에 들어서, 피가 잔뜩 튀긴 로브를 벗어던졌다.

“내일이 기대되는군.”

그 망할 사자 녀석이 대판 뒤집어엎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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