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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75화 (75/200)

제75화

“발라크. 준비는 다 마쳤나?”

“예, 형님. 다행히 저희가 타고 온 마차가 멀쩡하더군요. 짐도 전부 챙겨서 성문 앞에 옮겨다 놨습니다.”

“음. 잘했다.”

간단하게 빈센트의 심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는, 먼저 자리로 돌아와 있던 발라크를 보고선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주억였다.

“에릭, 가는 거야?”

“그래. 방금 그 녀석한테 들은 걸로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을 내렸다. 생각보다 더 서둘러야겠어. 그리 멀지않으니 소식이 닿는 것도 빠를 테지.”

나는 이미 귀가 찢어지면서 새겨진 공포 때문인지 별다른 고문 없이도 술술 입을 연 녀석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튕길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불어버려서 그의 말이 사실이 대조해볼 녀석들을 구해야 될 정도였다.

뭐 현명하다면 현명한 걸 테지.

어차피 괜히 배짱을 부려봐야 더 고통스러워지기만 할뿐이었으니까.

“…응. 혹시 또 도움이 필요하면 이번처럼 연락해. 에릭이 부르면, 바로 달려갈 테니까. 특히 이번처럼 전공이 걸렸다면, 더더욱 환영.”

“음. 알겠다. 그럼 언젠가 또 연락하마.”

난 흐뭇한 얼굴로 새하얀 머리칼을 마구 헝클이다, 곧 도리질치고는 총총 걸음을 옮기는 아이시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전에도 느꼈지만 전공에 대한 욕심이 상당하군.

허나 릴리아나와는 달리 단순히 출세를 원해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았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썩 괜찮은 패를 원한다면 언제든 불러볼 수 있으니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카렌은 아직인가. 생각보다 보고가 길어지는군.”

“지금쯤이면 슬슬 돌아오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형님.”

“에릭!”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나는 저 멀리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그녀를 보며, 천천히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보고는 잘 끝났나?”“음! 아이시스, 그 꼬맹이가 얘기를 잘해놓은 모양이더구나. 비록 한창 전쟁 중이라 당장에 포상을 내릴 수는 없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이렇게 1급 훈장을 내려주셨다!”

훈장?

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피며 훈장을 내미는 카렌을 보고선,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왜, 왜 그런 반응인가. 훈장이다, 훈장! 그것도 1급이잖으냐!”

“으음….”

그녀의 손에 있던 훈장 하나를 집은 나는, 그다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살폈다.

전에 정찰대에서 복귀했을 때 받았던 것과 모양은 똑같지만, 색깔이 조금 달랐다.

물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저번처럼 금화나 무기 같은 거라도 내려줬으면 했는데.

뭐 어쩔 수 없나.

애초에 포탈을 타고 중간계로 넘어왔는데 여기서 써먹을 수도 없는 금화 같은 걸 들고 왔을 리도 없고, 무기도 어쨌든 마계로 돌아가라 무기고를 열 수 있는 거니까.

물론 따로 더 가져온 게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군수품이었으니까.

“이게 있으면 마계 어디를 가더라도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원한다면 귀족위를 받을 수도 있을 거다. 지금은 전쟁 중이니, 이걸 달고 있으면 계급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테지.”

나는 열띤 표정으로 1급 훈장의 혜택을 늘어놓는 카렌을 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앞선 두 개는 몰라도, 그나마 계급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건 그럭저럭 쓸 만해 보이는군.

독립대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딱히 계급이 높아져봐야 딱히 부대를 운용하는데 달라질 게 없으니, 그런 부분에선 차라리 이걸 가지고 있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세, 세상에… 제, 제가 1급 훈장을….”

하지만 이 포상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무래도 나 하나뿐인 모양이었다.

나는 지금껏 너무 놀라 말을 못하고 있었던 건지, 옆에서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발라크를 보고선 나지막이 침음을 흘렸다.

하긴 일전에 3급 훈장을 받았을 때도 그렇게 기뻐했었는데, 지금은 또 어떠하겠는가.

“형님! 끝까지,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쿵-

“알겠다. 알겠으니까 그만 일어나라.”

난 제 손에 쥐어진 훈장을 꾹 쥐며 내 앞에 부복하는 녀석을 보고선, 주변에서 쏠리는 시선에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어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 형님. 혹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한 번 말해봐라.”

나는 일어나서 쭈뼛쭈뼛 내 눈치를 보는 발라크의 모습에,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이 훈장. 부디 형님께서 직접 달아주셨으면 합니다.”

난 이윽고 슬며시 손을 펼치며 제 것을 내미는 그를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그거야 못해줄 것도 없지.”

누가 발록 아니랄까 봐.

강자에게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기에, 이 또한 꼭 자신의 상관인 내가 달아주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발라크의 손에 들린 훈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환한 얼굴로 내 앞에 차렷 자세로 선 녀석의 가슴팍에, 조심스레 훈장을 달아주었다.

“고생했다.”

“예, 형님!”

난 처음 훈장을 받았을 때만큼이나 행복한 표정으로 제 가슴팍을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에,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으음….”

“음? 왜 그러나, 카렌. 너도 달아줬으면 하는 건가?”

“아, 아니다. 본녀는 그냥….”

나는 내심 부러운 표정으로 발라크를 바라보던 카렌를 보고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중간 중간 어딘가를 힐끔거리는 걸 보아하니, 아마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직접 달아주기를 바랬던 모양이었다.

“이리 줘봐라.”

“돼, 됐다니까… 으.”

난 슬쩍 뒤로 빼는 카렌의 손을 잡아 훈장을 집은 뒤, 발라크처럼 똑같이 가슴팍에 조심히 달아주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 더 열심히 전공을 쌓다보면, 언젠간 내가 아니라 네 아버지가 또 직접 달아주실 날이 올 거다.”

“…응.”

“그럼 이만 출발하지.”

“안내하겠습니다, 형님!”

나는 고개를 푹 숙인 그녀를 뒤로하고, 발라크를 따라 마차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 같이 가라!”

이윽고 멍하니 있다 뒤늦게 달려오는 카렌을 데리고, 곧장 성문을 나서 북쪽으로 말을 몰았다.

* * *

“으음….”

벨라노르에서 마차를 타고 북쪽을 향해 달린지도 어느덧 열흘.

삼엄해진 경계 때문에 중간 중간 도시를 지나칠 때마다 마차 안을 구석구석 뒤져보려고 하는 터라, 성벽 안으로 들어가 본지도 벌써 닷새가 넘었다.

“배고프군.”

“에릭, 오늘은 숲에 들어서 멧돼지라도 잡는 게 어떤가. 이러다 배가 등에 달라붙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분명 마지막 도시에서 건량을 넉넉하게 채워왔건만.

아무리 그래도 닷새를 버티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껴먹었더라면 적어도 오늘까진 버틸 수 있었겠지만, 이때쯤이면 도착했으리라 생각해 마음 놓고 먹어치운 게 문제였다.

“조금만 더 힘내라.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아까 아침에도 거의 다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번엔 정말이다. 저기, 저 앞에 보이지 않나.”

“…어디? 대체 어디 말이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 않으냐!”

“음.”

카렌한텐 아직 안 보이는 건가.

딱히 착한 사람한테만 보인다는 그 옷처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내 눈에는 도시의 성벽이 조그맣게나마 보이고 있었으니까.

아마 능력치의 차이 때문이겠지.

그녀는 마력을 제외하고는 크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으니까.

[에릭 가이오스]

[뱀파이어]

[레벨 : 56]

[힘 : 163][민첩 : 168]

[체력 : 160][마력 : 129]

나는 이번 전쟁으로 얻은 보상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언제 봐도 만족스럽군.

드워프들의 광산을 나온 뒤로, 고작해야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자그마치 도합 100이 넘어가는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

어디 한 자릿수에서 그만큼 올린 것도 아니고, 모두 이미 세 자리에 들어서 있던 상태에서 말이다.

“흐흐.”

가만히 상태창을 살피며 마차를 몰던 나는, 짐칸에서 들린 웃음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발라크. 그게 아직도 그렇게 좋으냐.”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형님! 1급 훈장이지 않습니까. 보통은 3급 훈장이라도 하나 달아보는 것이 소원인데, 1급이라니. 이대로만 가면 사천왕에 오르는 것도 꿈이 아니겠습니다.”

사천왕이라.

나는 홀로 배고픈 것도 잊고 여태까지 제 훈장을 만지작거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발라크를 보고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악마족과 용족 그리고 가고일의 군대가 제국 중부로 향하는 동안, 나머지는 지금 우리가 있는 북부로 향했다 했던가.

그렇다면 늑대인간들도 당연히 그곳에 있겠군.

“으음….”

나는 개중에 전생에서도 여러 번 부딪힌 악연이 있는 녀석을 떠올리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전쟁 초기.

아직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적, 불리한 형세에 제국과 수인연합을 배신하고 나선 인간과 수인족들을 받아들여 첩자로 써먹던 양반이 있었다.

발록과 마찬가지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호전성을 가진 늑대인간들 중에, 보기 드물게 싸움을 기피하며 수작질에 능한 괴짜.

용사 시절, 끝내 그의 가슴에 직접 단검을 박아 주긴 했지만 그를 위해 거의 1년을 가까이 북부 전선을 헤집고 다녀야만 했다.

몇 번은 오히려 녀석이 파놓은 덫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하기까지 했었지.

“셀파스트.”

난 지금도 늑대인간의 사천왕으로 있을 그의 이름을 떠올리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적으로는 참 끔찍한 녀석이었지만, 아군이라면 더없이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 놈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를 통하면 대륙 곳곳에 심어놓은 첩자를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하필이면 종족이 종족인지라 조금 애를 먹을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이번 기회에 북부에서 녀석을 좀 찾아볼 필요가 있을 거 같았다.

“에릭. 셀파스트, 그놈은 왜 찾는 거냐?”

“음? 아는 사인가?”

이거 일이 더 편해지겠군.

카렌이 그를 알고 있다면 나 혼자 찾아가는 것보단, 우선 그녀를 통해서 다리를 놓는다 생각하면…

“딱히 아는 사이는 아니다. 그저 저번에 정찰대에서 복귀하고 전쟁을 준비하면서 여러모로 정보를 수집하던 중에, 꽤 특이한 녀석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던 것뿐이다.”

“그런가.”

“그래. 듣자 하니 셀레스트, 그 재수 없는 녀석의 친오빠라더군.”

“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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