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74화 (74/200)

제74화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를 기습으로 쓰러트렸습니다.]

[힘이 ‘7’ 증가합니다.]

[민첩이 ‘9’ 증가합니다.]

[체력이 ‘6’ 증가합니다.]

[마력이 ‘7’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검의 사랑을 받는 자, ‘마흐제브’를 흡혈했습니다.]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힘이 ‘6’ 증가합니다.]

[민첩이 ‘8’ 증가합니다.]

[체력이 ‘5’ 증가합니다.]

[마력이 ‘5’ 증가합니다.]

나는 눈앞을 가득 메운 메시지를 옆으로 치우며, 씁쓸한 표정으로 마흐제브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파삭-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말라비틀어진 노인의 시체는, 바닥에 닿기 무섭게 열기에 부스러졌다.

“…에릭 가이오스.”

난 노기에 찬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 무슨 짓이냐.”

고개를 드니 어느새 본래대로 돌아온 마룡왕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 상대를 멋대로 죽여 버린 것에 대한 분노일까.

아니면 저들의 승부를 도중에 방해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별로 달가운 반응은 아니었다.

그는 마족들을 이끄는 왕이며, 그 일곱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사내였다.

헌데 전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려들다니.

군을 이끄는 지도자가 그런 어쭙잖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간, 부대 전체가 물렁해지기 십상이었다.

“적을 죽였을 뿐입니다. 혹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나는 목을 꾹 죄어오는 위압감에도 굴하지 않고, 뻣뻣하게 그를 올려다봤다.

당장이라도 숨이 턱 막힐 것 같았지만, 일전에 단순히 한 마디 내뱉은 것만으로 식은땀을 흘리던 내가 아니었다.

“마룡왕께서도 쉬이 제압하지 못한 강자이지 않았습니까. 전세가 불리하니, 혹 기회를 봐서 빠져나가려고 했을지도 모르지요. 만일 그랬다면 훗날 그의 손에 수많은 마족들이 죽어나갔을 겁니다.”

“…자네 말은, 본인이 놓치기라도 했으리라는 것이더냐.”

“혹시 모를 일이지요. 상처 입은 몸으로 어찌 그리 장담하실 수 있겠습니까.”

“으음….”

난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조용히 신음을 흘리는 마룡왕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래도 더는 무어라 나를 책망하지 않는 걸로 봐선, 그 또한 내 말이 정론임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몸을 돌렸다.

그래, 이거면 충분했다.

적어도 그는 아랫사람의 말을 무작정 흘려듣진 않았다.

설득할 여지만 있다면 언제든 바로잡을 수 있었다.

절대, 그 무엇도 내 복수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잠깐.”

그렇게 곧장 본대로 합류해 퇴각하는 인간들을 하나라도 더 잡으려던 나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잠시 발을 멈췄다.

“비록 그에 걸맞은 최후는 아니었지만, 마흐제브는 훌륭한 전사였다. 가까운 곳에 묘라도 놓아주도록.”

“…명령이십니까?”

“음.”

나는 작게 고개를 주억이고선 가슴팍을 가로지른 상처를 부여잡고 걸음을 옮기는 마룡왕을 보며, 바닥에 떨어진 검을 집어 들었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비록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그의 아래 소속된 부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퇴각, 퇴각하라! 벨라노르로… 아니, 그 뒤로 물러난다!”

시체가 다 부스러져 남은 것이 검밖에 없었기에.

난 그대로 천천히 전장을 지나 그와 함께했던 공터를 향해 산을 올랐다.

사박-

산맥에 자리 잡고 있던 녀석들은 이미 전부 퇴각을 마쳤는지, 올라오는 길엔 쉬고 있는 마족병사들과 몇몇 핏자국밖에 볼 수 없었다.

“어르신.”

공터 한가운데 흙을 모아 허리춤까지 쌓아올린 나는, 그 위에 검을 꽂으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만 푹 쉬십시오. 너무 원통해하시진 말고. 그리고 그쪽에선 더는 속지 말길 바라겠습니다.”

짤막한 인사와 함께 돌아선 난, 공터를 나서기 전에 슬쩍 검을 돌아보며 입맛을 다셨다.

…역시 두고 가긴 좀 아쉽군.

통짜 오르하르콘으로 만든 물건을 이리 썩히는 건 안 될 일이겠지.

“…잠깐 빌리겠습니다.”

나는 결국 걸음을 돌려 다시 검을 뽑아들고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대신 꼽았다.

본래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대신 주려고 했던 물건이니, 어찌 보면 이것 또한 유품이라 볼 수 있겠지.

스릉-

난 마룡왕과의 싸움에도 이 하나 나가지 않고 예리하게 번쩍이는 황금빛 검신을 슥 살폈다.

비록 워낙에 눈에 띄고 이보다 손에 익은 무기가 둘이나 있는 터라 직접 쥐고 휘두를 일은 얼마 없겠지만, 가지고 있다 보면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올 터.

나는 조용히 검을 허리춤에 매달고선, 천천히 공터를 나서 벨라노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카렌, 발라크.”

“오셨습니까, 형님!”

“음? 아, 에릭. 고생했다.”

활짝 열린 성문을 통해 도시 안으로 들어선 나는, 곧바로 카렌과 발라크를 찾았다.

“아이시스는 어디 있지?”

“그 꼬맹이라면 아마 광장에 있을 거다. 포로들을 전부 그곳에 묶어놨으니, 혹시라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하려는 걸 테지.”

광장이라.

나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이며, 두 사람을 데리고 그쪽으로 향했다.

“제길, 바깥은….”

“…아까 퇴각명령이 울리는 거 못 들었어? 우린 끝이야. 이 빌어먹을 놈들한테 모두 죽을 거라고!”

“거기, 조용히 해라!”

난 생각보다 많이 북적이는 광장을 보며, 꽉 들어찬 인파들 사이에서 아이시스를 찾았다.

“아이시스.”

“…에릭?”

다행히 포로들을 전부 무릎 꿇리고 있던 터라,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녀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진 않았다.

그 새하얀 머리는 애초에 눈에 잘 띄기도 했고, 그저 서있는 사람들 중에서 유독 키가 작은 아이를 찾으면 됐으니까.

“포로가 많군. 이 절반이나 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응. 그 황자라는 놈, 보여주니까 다들 항복했어.”

그런가.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광장 한가운데 홀로 분수에 매달려 있는 빈센트를 바라보는 아이시스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심문은 안한 건가? 다들 상태가 꽤 멀쩡해 보이는군.”

“본대에 전문가가 있으니까. 게다가, 보고도 아직.”

“음.”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말없이 포로들을 한 번 슥 훑었다.

혹시 내가 보지 못한 녀석들 중에 거물이라 할 만한 놈이 숨어있진 않을까.

하지만 역시 다 처음 보는 얼굴들뿐이었다.

하긴 빈센트야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기억하고 있을 만큼 강한 녀석이라면 애초에 성문 밖으로 나가 싸우고 있었겠지.

“히, 히익….”

나는 도중에 나와 눈이 마주치고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떠는 빈센트를 보며, 조용히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아이시스. 혹시 보고하고 심문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만 저 녀석 좀 빌릴 수 있겠나?”

“대신 죽이면 안 돼.”

“걱정하지 마라. 몇 마디 얘기만 하고 올 테니. 아, 가능하면 어디 방도 하나 내줬으면 좋겠군.”

“응, 알았어.”

난 이윽고 부하들을 시켜 빈센트를 끌어내리는 아이시스를 바라보다, 조용히 카렌과 발라크를 돌아봤다.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아니, 그보다는 카렌. 네가 마룡왕님께 보고라도 드리고 오도록.”

“본녀가 말이냐?”

“음. 기왕이면 아버지 얼굴이라도 한 번 뵙는다 생각하고 다녀오도록. 혹시 모르지 않나. 간만에 보는 딸내미의 모습에 무어라도 더 쳐주실지.”

“…에릭. 이 몸이 누누이 말하지만, 아버지께선 절대 그런 걸로 공적에 사감을 넣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리고 본녀보다는 아무래도 상급자인 네가 보고를 드리는 편이 낫지 않겠나?”

나는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는 카렌을 보고선,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내가 보고를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밖에 있는 동안 이곳 벨라노르 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선, 나보다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아니, 괜찮다. 부탁하마.”

“…알겠다. 다만 무언가 더 받아오리란 기대는 하지 말도록."

난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기는 카렌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저 멀리 빈센트를 데리고 이쪽으로 오는 병사들을 보고선 발라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발라크. 금방 끝내고 올 테니, 둘이 돌아오면 곧장 출발할 수 있게 준비를 마쳐놓도록.”

“또 이동하시는 겁니까?”

“음. 동부에서 제국 중앙으로 향하는 관문인 이곳이 뚫렸으니, 곧 패전 소식이 닿는 곳마다 경계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도로 삼엄해질 거다. 가능하면 그전에 먼저 들어가 있는 편이 좋겠지.”

“에릭, 데려왔어.”

나는 금방 포승줄을 쥐고 돌아온 아이시스를 보고선,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그럼 준비하고 있도록.”

“예, 형님.”

난 광장을 벗어나 걸음을 옮기기가 무섭게 분주히 어딘가로 향하는 발라크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일단 숙소에 있던 짐부터 챙기러가는 거겠지.

그게 멀쩡히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에릭, 여기.”

“히이익… 사, 살려….”

“음. 고맙다.”

아이시스를 따라 금방 근처에 있던 건물 안으로 들어선 나는, 그녀에게서 포승줄을 넘겨받고선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빈센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시스? 이만 돌아가도 괜찮다.”

나는 문이 닫혀야 할 자리에 얌전히 서서 이쪽을 살피는 그녀를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말은 괜찮다고 했어도 혹시나 내가 중요한 포로를 상처 입힐까 감시라도 하려는 걸까.

눈빛을 보아하니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으응… 에릭. 나, 구경해도 돼?”

“구경? 뭐, 마음대로 하도록.”

구경이라.

딱히 대단한 걸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간단히 몇 가지를 물어보려는 거뿐인데.

난 가만히 어깨를 으쓱이며, 이만 빈센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빈센트 프리디리히.”

“아으….”

“묻는 말에 곱게 대답해주면 좋겠군. 그럼 그 귀 한 짝은 남겨놓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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