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끼익-
“뭐냐! 보고는 수정구로 하라고… 어?”
“누, 누구….”
나는 활짝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당황한 표정으로 이쪽을 살피는 녀석들을 보며, 곧바로 단검을 날렸다.
기사는 혹시 반응할지도 모르니, 일단 확실하게 마법사부터.
푹-
“카, 카르민!”
난 이마에 단검이 푹 들어간 채로 맥없이 고꾸라진 녀석을 보며, 곧장 남은 단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네놈, 뭐하는 녀석이냐! 황자님, 피하십시오!”
카앙-!
나는 시퍼런 검기를 넘실거리며 덤벼드는 기사의 공격을 흘리며, 창을 열고 뛰어내리려는 황자를 바라봤다.
4층이고 층고가 높아 족히 10m는 넘는 곳이었지만, 녀석 또한 황가의 일원으로서 배우고 자란 것이 있었기에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시킬 줄은 알 터였다.
이 정도 높이라면 크게 다치지는 않겠지.
그동안 잠시 눈앞의 호위가 시간만 좀 끌어준다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거였다.
그래, 뛰어내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아이시스.”
“응, 알고 있어.”
아이시스는 내 부름에 곧장 그 작은 손을 들어올렸다.
쩌저적-
“뭣….”
동시에 열린 창으로 몸을 집어넣던 황자의 앞이 얼어붙으며, 두꺼운 얼음벽이 창문을 막았다.
“큭, 이까짓 거….”
당황한 녀석이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며, 얼음을 향해 휘둘렀다.
쩌억-
무영창으로 급히 만들어낸 것이라 그런지, 검기조차 실리지 않은 일격에도 한 번 부딪힐 때마다 금이 쩍쩍 벌어졌다.
“크으, 촐싹촐싹 잘도 피하는구나!”
나는 거칠게 휘둘러오는 대검을 피하며, 슬쩍 탁자 위에 놓인 수정구를 바라봤다.
[황자님? 황자님! 괜찮으십니까!]
아까 문틈 사이로 들여다봤을 때는 안 보여서 몰랐는데, 아무래도 저걸 이용해 밖에 있는 호위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 말은 즉, 지금쯤이면 이쪽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안 녀석들이 돌아오고 있으리란 얘기였다.
시간이 그리 넉넉하진 않군.
“흐읍!”
부웅-
마음 같아선 빨리 끝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호위의 실력이 괜찮았다.
보통 무기가 크면 클수록 공격이 빗나갈 때마다 틈이 생기기 마련이건만, 눈앞의 녀석은 넘쳐나는 힘으로 곧장 대검을 끌어들여 적절하게 빈틈을 메우고 있었다.
아주 못이길 상대는 아니었지만, 빠르게 승부를 보려면 나도 꽤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았다.
“에릭. 저거, 잠깐 얼려도 돼?”
어떡할까 잠시 고민에 빠진 찰나.
나는 아이시스의 물음에 슬쩍 창문 쪽을 훑었다.
쩌억!
참 열심이군.
난 그 10초도 안 된 새에 벌써 얼음을 다 깨부순 녀석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죽지만 않게 잘 조절해라.”
“응.”
후우웅-
내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녀의 앞으로 한기가 모여들었다.
“이… 황자님, 피하십시오!”
“아이스 서지.”
뒤이어 아이시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법진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며 새하얀 결정 같은 것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카가각-
“무, 무슨….”
“젠장! 황자님!”
그 순간.
바닥과 의자 그리고 탁자 일부를 순식간에 얼려버리며 황자에게 날아드는 작은 폭풍을 본 호위가, 황급히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는 안 되지.”
푹-
“큭!”
나는 녀석이 황자의 앞을 가로막기 전, 곧바로 단검을 날려 놈의 발등을 꿰뚫었다.
쿵-
난 그대로 한쪽 발이 바닥에 고정돼 고꾸라진 녀석을 보며, 마법사의 이마에 꽂힌 단검을 빼 들었다.
“이런 제길… 황자님, 황자님!”
“아, 으….”
나는 결국 서서히 얼어붙는 황자를 보며 이를 악무는 호위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라. 아직 죽진 않았으니까.”
“네놈들…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더냐! 제국의, 황제 폐하의 군대가 기필코 너희를 찾아 사지를 찢어발길 것이다!”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 제국도 그리고 그 빌어먹을 황제도, 모두 내 손으로 직접 멱을 따줄 테니.”
서걱-
난 투구와 갑옷의 이음매 사이로 단검을 집어넣어, 그의 목을 쳐냈다.
끝까지 황자의 곁을 지키고 있던 것도 그렇고, 1층에서 죽인 놈들과 달리 투구에 장식이 달린 걸 보면 호위대장이나 부대장쯤 되는 위치겠지.
“그런데 아이시스. 이건 어떻게 녹이면 되는 거지?”
나는 잘린 머리를 집어 들고선, 천천히 얼어붙은 황자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완전히 꽝꽝 얼었군.
그나저나 이거, 아직 살아있는 건 맞나?
“지금 풀어?”
“음. 부탁한다.”
스륵-
놈을 향해 조용히 팔을 뻗은 아이시스가 손을 쓸어내리자, 순식간에 위에서부터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쿨럭!”
난 허리쯤까지 내려왔을 때 기침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린 황자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보이는군. 수고했다, 아이시스.”
“…응.”
나는 잠시 얼음이 모두 녹기를 기다리며, 새하얀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쓸어내렸다.
“크으… 네놈! 내가 누군지 알고… 아악!”
난 숨을 고르기가 무섭게 목소리를 높이는 놈의 머리채를 잡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빈센트 프리디리히. 너무 잘 알지. 군략에도 검술에도 심지어 마법에도 재능이 있는 황태자랑은 다르게, 뒤에서 장기 말을 옮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겁쟁이.”
“뭐… 거, 겁쟁이?”
“이번에도 어떻게든 남의 공적에 수저는 올리고 싶은데, 전장에 나서기는 무섭고. 그러니까 안전하게 도시에만 틀어박혀 있으려고 한 거잖나. 응?”
“닥쳐, 닥쳐라! 이 근본도 모를 천한 것이….”
짜악-!
“크읍!”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잡힌 거다. 겁쟁이처럼 안에 틀어박히려고 하니까 말이야.”
“아으윽… 감히, 감히!”
나는 한 번 밀어붙인 것 가지고 벌써 퉁퉁 부어오른 녀석의 뺨을 보며, 다시금 손을 들어올렸다.
쩌억-
투두둑-
“아, 아아악!”
난 이번엔 반대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며 바닥에 허연 이를 쏟아낸 녀석을 보고선, 다시 머리채를 붙잡았다.
이 정도면 괜한 반항은 하지 않겠지.
“슬슬 마무리하러 가지. 받아라.”
나는 들고 있던 기사의 머리를 아이시스에게 넘기고선, 시체의 발목에서 단검을 뽑았다.
“에릭, 저건?”
“필요 없다. 머리는 이거 하나로 충분해.”
황자를 인질로 잡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아직 건물 밖은 전투가 한창이었으니까.
이놈이 잡혔다는 걸 알면 잠깐 주춤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꼬리를 내리지는 않을 터였다.
겉으로는 말을 듣는 척하더라도, 뒤로는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녀석을 구하려고 하겠지.
그러니까 아예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처음부터 정신적으로 몰일 필요가 있었다.
호위대장의 목은 그를 위한 거였다.
“베, 베르겐…!”
난 뒤늦게 제 부하의 머리를 보고선 눈을 질끈 감는 황자를 잡아끌며, 천천히 건물을 나섰다.
쿵- 쿵-
“윽, 큿….”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바닥에 부딪혀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더는 전처럼 시끄럽게 굴지 않았다.
방금 그 두 번의 손짓에, 괜히 반항했다간 인질이고 뭐고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황자님, 괜찮으십니까! 황자님!”
그렇게 금방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선 나는,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발소리만 봐도 족히 수십 명은 되는 거 같았다.
그 수정구를 통해 안쪽 상황이 새어나간 게 도움이 됐군.
기사와 마법사가 저만큼이나 빠졌으니, 시간만 조금 끌어도 알아서 마무리가 날 것 같았다.
“크으, 여기다! 빨리 와서 이 빌어먹을 놈을… 아악!”
“황자님? 위층이다, 서둘러!”
도와줄 녀석들이 몰려오니까 다시 멍청해진 건가.
나는 또 목소리를 높이는 빈센트의 머리를 확 잡아채며, 계단 중간에 꺾어지는 부분 앞에서 아이시스를 돌아봤다.
“아이시스.”
“응.”
툭-
“자, 잠깐! 저기 뭔가… 머, 머리?”
“저건… 대, 대장님!”
“어, 어째서.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난 데구르르 계단을 굴러 떨어진 머리통을 보고선 흠칫 놀라는 그들을 보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무기를 놓고 엎드려라. 그렇지 않으면 이놈의 목을 부러트리겠다.”
“황자님! 네놈, 지금 뭐하는 짓이냐! 그분이 어떤 분이신 줄 알고 감히….”
“엎드리란 소리 못 들었나?”
찌이익-
“아… 아아아악!”
나는 내 손에 잡힌 녀석을 보기가 무섭게 무기를 겨누는 놈들을 보며, 황자의 귀를 잡아 뜯었다.
“화, 황자님!”
“빈센트. 저놈들이 계속 저렇게 뻣뻣이 서있으면 네가 더 괴로워질 뿐이다.”
“다들 엎드려! 엎드리라고 이 자식들아!”
툭-
난 뜯어진 귀를 호위들 가운데 던지며, 조용히 고개를 까딱였다.
“제, 젠장… 다들 무기 내려!”
“부대장님, 하지만….”
“우리 호위대의 임무가 뭔지 잊었나? 황자님의 안위가 우선이다. 어서 내려!”
툭- 텅그렁-
“…이제 됐나?”
“몇 번을 말해줘야 알아듣지? 난 분명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라고 했다.”
“큭….”
난 반대쪽 귀에 손을 올리기가 무섭게 넙죽 엎드리는 녀석들을 보며,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팔을 내렸다.
“흐윽, 아으윽… 귀, 내 귀가….”
이제 이대로 시간만 끌고 있으면 끝인가.
사실 무기가 있고 없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게 없어도 저들 중에 절반은 마법사니, 원한다면 충분히 나를 공격할 수 있을 테니까.
다만 황자가 휘말릴지 모르니 지금은 함부로 그러지 못할 터였다.
우선 어떻게든 이놈을 나한테서 떼어놓으려고 하겠지.
“음?”
그렇게 어디선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 녀석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중.
나는 저 입구 바깥에서 익숙한 빨간 머리와 덩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놈들이 갑자기 이곳으로 모여드는 걸 보고 따라온 건가.
마침 잘됐군.
이러면 굳이 오래 시간을 끌 필요도 없겠어.
난 무언가 말을 전하려는 듯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안타깝지만,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바라는 게 뭐냐.”
나는 곧 요상한 몸짓을 멈추고 조용히 스태프를 들어 올리는 카렌을 보고선, 곧바로 다시 눈앞의 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들의 목숨이다.”
“…이 자식, 장난치지 마라!”
“글쎄. 장난은 그쪽이 치고 있겠지. 엎드려서 몰래 그러면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난 그 잠깐 사이에 한 명이 구석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며 날붙이를 꺼내드는 걸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무, 무슨 소리냐. 우린 아무것도….”
“뭐 됐다. 슬슬 완성된 거 같으니. 그리고 장난이 아닌 진심이었다.”
“완성?”
화르륵-
나는 저 멀리 떠오른 거대한 불덩어리를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기사를 향해 가만히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곧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불덩이를…
“…음?”
이거, 나도 피해야 되는 거였나?
난 금세 건물 코앞까지 다가온 불덩어리를 보며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