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66화 (66/200)

제66화

“후욱, 후우….”

[한계에 다다른 육체가 한층 성장합니다.]

[체력이 ‘1’ 증가합니다.]

“훌륭하구먼, 아주 훌륭해!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아직 열아홉이라니. 정말 탐나는구먼. 그 아이도 그 나이에 그만큼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마흐제브를 따라 공터에 들어선 지도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그에게 제자가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이후, 계속해서 대련을 이어나가길 몇 시간.

나는 해가 다 저물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손에서 검을 떼어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아깝구먼. 정말로 이 늙은이의 밑에서 제대로 배워볼 생각은 없나?”

“낮에 말씀드렸듯이, 이미 다른 스승님을 뫼시고 있는 지라….”

“그러니까 그 스승이 대체 누군가? 내 혹 아는 사람이라면 얘기라도 한 번 해봄세.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스승을 꼭 한 명만 두란 법 있나?”

“하하… 죄송합니다.”

난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푹 내쉬는 노인을 보고선,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숙였다.

내가 미쳤다고 그의 제자로 들어가겠는가.

물론 그 편이 호감과 신뢰를 쌓기에는 더 좋겠지만, 괜히 그랬다가 검귀가 새로운 제자를 받아들였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낮에 단순히 같이 다닌 것만으로도 경비대장의 관심을 샀을 정돈데, 하물며 제자라니.

저 아래 보이는 도시뿐만 아니라, 제국 전역에 소문이 퍼지는 것도 삽시간이리라.

그러면 더 이상 이 얼굴로 도시에 몰래 숨어드는 것도 끝이겠지.

“이만 내려가지.”

“예, 어르신.”

나는 슬슬 뉘엿뉘엿 저무는 해를 보며 공터를 나서는 마흐제브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삭신이 다 쑤시는군.

익숙하지도 않은 무기를 들고 반나절 동안 그의 검을 꾸역꾸역 받아냈더니,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끔찍하리만큼 지독하게 몰아붙인 대련이었지만, 딱히 불만은 없었다.

[에릭 가이오스]

[뱀파이어]

[레벨 : 48]

[힘 : 136][민첩 : 138]

[체력 : 133][마력 : 101]

덕분에 하루 만에 능력치를 다해서 8이나 올릴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푹 쉬어야할 듯했다.

어차피 벨라노르의 요직들 사이에서 검귀가 데리고 다니는 청년에 대한 소문이 돌려면 하루쯤은 기다려야할 테니, 따로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겠지.

“헌데 이상하구먼. 자네를 그렇게까지 키웠을 정도면 그 스승이란 자도 한가락 하는 양반일 텐데. 왜 굳이 그를 놔두고 이 늙은이한테까지 검을 배우려는 겐가? 그것도 고작 사흘로 뭘 할 수 있다고 말이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검을 배우는 것보단, 저보다 훨씬 강한 사람과 한 번 무기를 맞대보고 싶었습니다. 미리 여러 고수들과 부딪혀봐야, 나중에 강적을 눈앞에 두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고 스승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으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네만….”

난 적당히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노인의 의문을 묻었다.

그는 영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완강한 내 목소리에 이만 마음을 접었다.

아니, 어쩌면 잠시만 물러나기로 한 걸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때 그랜드 마스터였던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재목을 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슬쩍 미간을 좁히고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는 걸 보니, 뒤에서 무슨 꿍꿍이를 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괜히 걱정되진 않았다.

평생 검만 붙들고 산 양반이 아무리 제 머리를 굴려본다 한들, 과연 얼마나 대단한 계책이 나오겠는가.

그냥 내가 싫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마흐제브 님!”

“오, 경비대장. 그러니까… 사이몬이었남?”

“예, 그렇습니다! 기억해주셔서 영광입니다!”

“허허, 영광은 무슨. 그보다 아직도 자네가 서고 있는 겐가? 시간도 꽤 지났는데, 이만 밑에 애들한테 맡겨놓고 들어가서 쉬지 그러나.”

“아닙니다. 요즘 같이 어수선한 때에 어찌 마음 편히 혼자 쉴 수 있겠습니까.”

나는 성문 앞에서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헐레벌떡 뛰어와 허리를 숙이는 경비대장을 보며, 마흐제브를 따라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보다 볼일은 잘 마치셨습니까?”

“볼일 말인가? 에잉… 쯧쯧. 잘 안 풀렸네. 은퇴하고 노년에 또 한 번 빛을 보려나 했더니만. 참 답답하더구먼. 그래서 그런데 말일세….”

난 경비에게 푸념을 늘어놓더니 은근 슬쩍 귀를 빌리는 노인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자기 혼자서는 날 설득할 수 없을 거 같으니, 다른 사람들의 입을 좀 빌리려는 모양이었다.

헌데 하필 그 첫 상대가 이 도시의 동문 경비대장이라니.

어차피 곧 몰려올 마왕군을 위해 성문을 활짝 열어주려면, 그전에 꼭 호감을 사놓아야할 인물이었다.

아주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 들어오는군.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다네. 혹시 좀 도와줄 수 있겠나?”

“기꺼이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쉿. 목소리가 너무 크네. 열심히 해주는 건 좋네만, 너무 이 늙은이가 시켰다는 티는 내지 말게.”

“아. 예, 알겠습니다.”

나는 그새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건지 기합을 다지는 경비대장을 보며, 몰래 입맛을 다셨다.

자, 어떻게 구워삶아줄까.

“크흠. 그러니까 저….”

“가젤입니다.”

“예, 가젤 씨. 괜찮으시다면 잠시 들어가서 얘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난 척 보기에도 어색한 미소와 함께 나를 부르는 그를 보며, 조용히 마흐제브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괜찮네. 보아하니 자네한테 뭔가 부탁하고 싶은 거라고 있는 모양인데. 이 늙은이는 먼저 들어갈 테니, 둘이 천천히 이야기 좀 나눠보게나. 그럼 내일 6시쯤에 다시 여기서 보는 걸로 함세.”

그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며, 성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둘 다 연기가 너무 모자라군.

나는 너무 어색해서 웃음을 참느라 고역을 치러야만 했다.

“이쪽입니다.”

난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진 노인을 보며, 경비대장의 안내를 따라 성문 안쪽에 붙은 건물로 들어갔다.

끼익-

“충성! 오셨습니까, 대장님!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가젤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잠깐 용병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아! 그 오늘 마차에 장비를 가득 싣고 오셨던 분이시군요.”

“하하.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방금 전에도 그렇고, 오늘 하루 종일 앞에 줄이 길게 늘어져 있던데. 혹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외우고 계시는 건….”

“그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그때 짐칸에서 본 무기가 워낙 관리가 잘 되어있으셔서 그런지, 방금 얘기를 들으니까 딱 떠오르더군요.”

나는 아무래도 내가 들어올 적에 검문을 봐준 듯한 경비를 보며, 반가움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성문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친분을 쌓아놔서 나쁠 건 없었다.

“귀한 손님이시다. 잠시 안쪽에서 이분하고 할 얘기가 있으니, 다들 함부로 들어오지 말도록. 그리고 한센, 가서 차 좀 내오게.”

“예, 예!”

난 이윽고 경비대장을 따라, 길게 늘어선 복도를 걸었다.

“저건….”

그렇게 양쪽으로 나있는 문을 여섯 개쯤 지났을까.

나는 복도 중간에 옆으로 확 넓어진 공간에서, 위쪽에 사슬과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레버를 볼 수 있었다.

“아. 처음보십니까? 저게 성문을 여닫을 수 있는 장치입니다. 지금처럼 아래로 내려져 있으면 연결된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문이 올라가고, 반대로 위로 올리면 느슨해지면서 닫히는 원리이지요.”

난 마흐제브의 부탁 때문인지 슬쩍 내 시선을 살피고선 친절하게 설명을 내뱉는 그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쪽에 장치가 있단 말이지.

“오, 그렇습니까? 그거 참 신기하군요. 그 커다란 성문을 이 손잡이 하나 당기는 걸로 올리고 내릴 수 있다니.”

“물론 이것도 혼자서 어찌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확실히 예전에 직접 사슬을 당겨서 들어 올리고 고정시켜야 했을 때에 비하면 훨씬 편해졌습니다.”

경비대장은 내려가 있는 레버를 몇 번 툭툭 건드리고선,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을 열고 들어갔다.

“편하신 자리에 앉으십시오.”

나는 꽤 큼지막한 집무실 내부에 놓인 기다란 탁자를 보며, 끝 쪽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주 손님을 들이는 모양인지, 가운데 놓인 다과가 눈에 띄었다.

“아, 드시고 싶으시면 드셔도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난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 그를 보며, 조용히 손을 뻗어 쿠키를 집었다.

“음.”

“입맛엔 괜찮으십니까? 조금 있으면 차도 내올 테니, 천천히 드시지요.”

눅눅하지 않고 바삭한 걸 보아하니, 가져온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나쁘지 않군.

아무래도 가끔씩 검문을 받다 불만이 생긴 귀족들을 달래기 위해 준비해놓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아, 그게 말입니다.”

나는 순식간에 쿠키 하나를 전부 먹어치우고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분명 낮에 좌판을 깔고 장비를 팔고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예, 그랬지요.”

“게다가 아까 듣자하니 마차에 가득 싣고 오셨다는 것 같은데, 혹시 괜찮다면 그 물건 좀 볼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오호, 그렇게 나오는 건가.

난 조금 전에 자신이 부탁한 티를 내지 말아달라는 마흐제브의 부탁대로 썩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그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당연히 안 될 건 없지요. 헌데 그런 거라면 그냥 찾아오셔도 됐을 텐데….”

“아무래도 요새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이 바쁘다보니 자리를 비울 시간이 나질 않더군요. 더구나 그분께서 귀인이 파시는 장비가 아주 훌륭하다고 하시기에, 꼭 사고 싶어서 이렇게 뵈고자 했습니다.”

“하하. 훌륭하다니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겸손하시군요. 황제폐하께 실력을 인정받아 직접 검을 하사받으시고, 전대 그랜드 마스터시자 현 그랜드 마스터이신 가제프 님의 스승이셨던 마흐제브 님께서 귀인의 물건을 인정하셨는데 말입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눈을 빛내며 마흐제브의 위대함을 쏟아내는 그를 보고선,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참 노골적이군.

그 늙은이, 차마 자기 입으로 제 자랑을 늘어놓은 순 없으니 이렇게 수를 쓴 건가.

아무래도 내가 제 정체를 알면 분명 제자로 들어오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뭐, 일단 여기선 대충 넘어가주는 척하는 것도 괜찮겠군.

“그, 그 어르신께서 그리 대단한 분이셨습니까?”

“아, 모르셨습니까? 그밖에도….”

난 슬쩍 미끼를 물어주자 더욱 열심히 열변을 토해내는 경비대장을 보며,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다 이내 밖으로 나왔다.

“그럼 다음에 장비를 들고 한 번 찾아오겠습니다.”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나는 허리를 푹 숙이며 인사하는 그를 뒤로하고, 어둑어둑해진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이만하면 경비대쪽은 몇 번 얼굴만 더 비추면 걱정 없겠군.

“…꽤 맛있었지.”

가는 길에 쿠키나 하나 사갈까.

난 숙소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카렌과 발라크를 떠올리며, 품속에서 은화를 하나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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