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쿠구구-
“일단 어르신들부터 챙겨, 빨리!”
“과, 광산이….”
눈앞에 보이는 좁은 통로 너머로, 다급하고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허억, 헉… 살았….”
푹-
나는 가장 먼저 앞서 나오는 드워프의 목에 단검을 박으며, 혹시나 뒤에서 의심을 사지 않도록 재빨리 그를 옆으로 치웠다.
“컥, 컥….”
구석에 내동댕이쳐진 늙은 드워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단검과 나를 번갈아봤다.
무어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방금 그걸로 성대가 잘린 터라 그저 목 막힌 소리만이 조용히 울릴 뿐이었다.
촤악-
이윽고 다시 손잡이를 잡아 옆으로 쭉 그어 뽑아낸 나는, 반쯤 잘려나가 덜렁이는 머리를 보고선 시체를 밀어 눕혔다.
괜히 상체가 세워져 있으면 자리만 더 차지할 테니까.
“저, 형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발라크의 입에서 먹먹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슬쩍 돌아보니 꽤나 복잡한 표정으로 시체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광장에서 자리를 비울 때 둘이 같은 식탁에 앉아있었던가.
아마 무슨 장로였나 하는 녀석이었던 것 같은데.
그새 정이라도 붙인 건가.
멍청한 녀석.
“발라크. 약해지지 마라.”
딱히 그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비록 내가 시킨 일이라고는 해도 드워프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여럿 술자리를 가졌으니만큼,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그들은 호탕하고 주량도 상당한 발라크를 정말 친우처럼 대해줬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하지만 형님, 이건… 이건 단순한 학살이지 않습니까.”
쩌억-
나는 옆에서 발라크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누군가 통로를 빠져나올 때마다 단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 어, 어째서….”
학살이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다.
차라리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다면 모를까.
그동안 이들과 몇날며칠을 가까이 지냈으니만큼, 더더욱 여기서 싹을 잘라내야만 했다.
우리의 얼굴을 알고 특징을 알았다.
심지어 카렌에게 준 그 특이한 스태프도 모두 봐서 알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살려 보냈다간, 우리들에 대한 소문이 이 근방에 쫙 퍼질 터였다.
불쌍하다느니 너무하다느니.
그런 어쭙잖은 동정심으로 내 복수에 먹칠을 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제기럴, 노인네들이 다 귀를 먹었나. 왜 먼저 나가놓고 밖에서 대답이 없는… 어? 형씨! 덩치 형씨도 아가씨도, 다들 여기 있었구먼! 그렇지 않아도 다들 어디 갔나하고 찾고….”
푹-
“…어?”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시끄럽게 입을 멈추지 않는 칼라브를 보며, 그의 가슴에 단검을 꽂았다.
단번에 우리를 알아보고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던 그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푸슛-
난 그 짤막한 몸뚱이를 발로 밀어, 벌써 한쪽 벽면에 그득히 쌓인 시체들 앞에 던졌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구멍에서 뜨뜻한 핏물을 뿜어낸 시체가, 연신 무어라 입을 뻐끔거리다 이내 축 늘어졌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기습으로 쓰러트렸습니다.]
[민첩이 ‘1’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과연.
편하게 족장을 부르던 것도 그렇고, 주로 다른 드워프들을 관리하는 직책에 서있던 걸 보고 대충 예상은 했건만.
아무래도 부족에서 한가락 하는 위치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 늙어빠진 장로들과 달리 능력치까지 보상으로 얹어주는 그를 보며, 씨익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형님!”
“소리 지르지 마라, 발록. 우린 어디까지나 이곳 중간계를 침공하러 온 입장이라는 걸 잊은 거냐. 여긴 네 친구들이 모인 놀이터가 아니다.”
“그, 그건… 하지만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라….”
“발라크.”
나는 카렌의 말에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는 발라크를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원래 전쟁은 더러운 법이다. 단순히 힘으로 찍어 누른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적에게 괜한 동정을 품지마라. 어수룩하면 바보같이 휘둘리고 잡아먹힐 뿐이다.”
“형님….”
…빌어먹을.
난 그럼에도 아직 안타까움을 버리지 못한 그의 눈빛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건 약한 자들의 눈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죽인 생명에 눈물을 흘리고, 밤새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동료의 죽음에 끙끙 앓고, 남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고.
비정한 자에게 이용만 당하다 끝내 버려지는, 그런 멍청이나 할 법한 눈이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는 이보다 훨씬 더한 꼴을 마주하게 될 거다. 절박한 자의 뒤통수를 치고, 가진 것을 빼앗고 불태우는 것쯤은 예삿일이겠지. 그들의 원망어린 시선과 저주가 끊이질 않을 거다.”
우린 그저 돌아가고 싶었다.
오로지 그 하나만을 위해 창칼을 들었다.
생판 남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푹-
버려졌다.
“컥….”
나는 단검에 묻은 피를 허공에 털며, 시체를 옆으로 치웠다.
어느새 주변은 여기저기 쌓인 시체들로 가득 차있었다.
“발라크. 그때도 또 이렇게 망설일 건가?”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덩치 큰 발록과 눈을 마주쳤다.
“원치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떠나도 좋다.”
괴물을 잡기 위해선 그보다 더한 괴물이 되어야만 했다.
적어도 내 복수엔 약해빠진 사람은 필요 없었다.
“…형님.”
짧은 시간.
녀석의 눈동자에 많은 고민이 스쳤다.
그리고 금세 마음을 다잡은 듯, 성큼성큼 통로 앞에 섰다.
“후욱, 후우… 족장님, 거의 다 왔습니다! 이제 곧… 아, 덩치 형씨! 여기 있었….”
으직-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부디 이 못난 아우를 벌해주십시오.”
나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는 발라크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일단 마저 볼일을 끝내도록 하지.”
난 통로 앞을 막아선 그를 옆으로 비켜 세우며, 마지막 남은 드워프를 내려다봤다.
“어, 어째서….”
늙은 드워프는 구멍 밖으로 보이는 동족의 시체에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 아아… 왜, 대체 왜 이런 일이!”
나는 들고 있던 단검을 집어넣고, 천천히 그의 앞에 섰다.
“네놈… 금수도 제 은혜를 아는 법인데,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모두가 외지인인 너희들을 살갑게 대해주고, 내 너를 위해 그 무기까지 만들어줬거늘!”
그래, 금수도 은혜를 아는 법이지.
그렇지만 이들이라고 뭐 달랐을까.
눈앞의 드워프 또한 언젠간 연합의 일원이 되어, 이방인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땅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갔을 터.
“족장님.”
물론 그를 고맙게 여기고는 있었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용사 시절, 호의를 안 받아본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말뿐인 감사는 필요 없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 정도야 나도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으니까.
우웅-
난 이만 황금빛 단검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시퍼런 검기를 뽑아냈다.
그냥 다른 녀석들처럼 원래 쓰던 단검으로 마무리해도 상관없었지만, 이건 내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그래도 가능하면 자기가 만든 역작의 성능 정도는 확인하고 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마침 나도 한 번 써보고 싶었기도 하고.
비록 그 대상이 본인이라는 게 좀 씁쓸한 일이지만 말이다.
“네 이놈!”
서걱-
나는 호통을 치는 자세 그대로 잘려나간 머리 아래로, 깔끔하게 잘린 단면을 만족스러운 미소로 내려다보았다.
쓸 만하군.
과연 이 정도면 내 단검과 견주어볼 만했다.
“그럼, 잘 쓰겠습니다.”
난 잠시 뒤쪽에 내려놓았던 맥주잔을 들어, 목이 떨어진 시체의 손에 쥐어주었다.
원하는 대로 값은 치렀습니다.
“카렌. 마무리해라.”
“음, 알았다.”
나는 이만 피난통에 드워프들이 들고 온 물건들을 쓸어 담고선, 발라크와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콰앙-!
쿠르르르-
이윽고 광산을 완전히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뒤에서 폭음과 함께 입구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흐음. 오랜만에 밖으로 나오니까 상쾌하고 좋구나. 그런데 에릭, 뭘 그렇게 많이 챙긴 건가?”
“아, 이거 말인가.”
난 뒤늦게 밖으로 나와 커다란 보자기에 위에 놓인 짐들을 보고선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렌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미래를 위한 초석이라고 해두지.”
당장 광산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급하게 챙겨서 나올 만큼, 이 안에는 그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것들이 들어있었다.
검, 갑옷, 방패.
누가 장인 아니랄까봐, 주로 그들 인생의 역작으로 보이는 장비들이 많았다.
다른 종족은 몰라도 드워프들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겠지.
이것들이 동족이 만든 장비라는 사실을.
“흐흐.”
그런 물건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려 돌아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마침 제 동족들이 모여 살던 광산이 무너진 직후에, 어느 인간이 그를 가져와 팔았다면?
나는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일들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초석… 에릭, 또 뭔가 음흉한 계획이 있는 모양이구나.”
“음.”
아주 훌륭한 계획이지.
난 그녀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며 보자기를 쌌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가져갈 수 있겠어.
“형님,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글쎄.”
우선 도시로 가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대대적인 침공이 시작된 지 삼주 정도 됐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대륙 동부는 대부분 마왕군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터.
그렇다면 슬슬 그가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됐겠군.
검에 미친 노인네가 말이지.
“이만 출발하지. 이번에도 다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도록.”
나는 드워프들의 유품을 등에 메고선, 천천히 절벽에 난 좁은 길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그 괴물이 움직이기 전에 무언가 수를 써두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