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61화 (61/200)

제61화

“흐으, 오늘도 다들 고생 많았구만. 자, 그럼 이제 후딱 마무리하고 들어가서 쉬자고!”

족장으로부터 부탁한 물건을 모두 건네받은 나는, 그길로 곧장 채굴장 통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다른 사람들도 일을 마치고 복귀한 모양인지, 입구 근처에서 수레로 옮겨온 원석들을 자루에 옮겨 담고 있었다.

“오, 형씨. 그래, 일은 어떻게 됐수?”

“방금 막 끝내고 왔습니다. 아, 그거 이쪽으로 주시죠. 제가 맡겠습니다.”

“으흠. 굳이 돕지 않아도 되는데. 형씨 것도 아까 따로 가져갔잖수.”

“하하. 어차피 쉬어봐야 혼자 가만히 누워있기밖에 더하겠습니까.”

나는 일찍 정리하고 끝낼 수 있도록 그득히 쌓인 원석들을 종류별로 나누어 담는 칼라브를 보며, 그의 옆으로 가 일손을 거들었다.

오늘 안에 준비를 마치고 밤사이에 광산을 무너트리려면, 가능한 빨리 채굴장으로 향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형씨. 아까 전에 부탁한 그건 어찌 됐수?”

“네? 아, 그 원석 말입니까?”

“흐흐. 다행히 기억하고 있었구만. 그래서 대체 그 정체가 뭐였수? 족장이 그리 애지중지한 걸 보면, 역시 한 번도 보지 못한 희귀광물이겠지? 이를테면 그 소문으로만 듣던 오리하르콘이라던가 말이야!”

난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흘끗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속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저 신난 얼굴을 보아하니, 무슨 내기라도 벌인 모양이었다.

원석에 대한 질문이 꽤나 구체적인 걸 보면, 아무래도 저게 그 내용인 듯했다.

약삭빠르긴.

아마 내기 자체도 그가 걸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드워프들은 몰라도 그는 내가 캔 광석을 본 적이 있으니, 적어도 일반적인 광물이 아니라는 건 미리 알고 있었을 터.

그러니 벌써부터 저렇게 미소를 못 참고 입가를 씰룩이고 있는 거겠지.

“직접 확인해보시겠어요?”

“으응? 족장님한테 직접 말이요?”

“아뇨. 지금 여기서요.”

나로서도 잘된 일이었다.

설마하니 아무것도 걸린 거 없이 판이 열리지는 않았을 테니, 내기가 끝나고 나면 다들 시끌벅적해질 터였다.

주변을 슥 둘러보니 여기저기 짐을 옮기다말고 이쪽에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드워프들이 많이 보였다.

이 정도면 술판이 꽤 크게 벌어질 듯했다.

사전작업을 하는 동안 시선을 돌려놓기엔 딱 좋겠군.

“카렌, 잠깐 이리로 와바라.”

“음? 무슨 일인가, 에릭.”

나는 마침 자루를 가져다놓고 돌아온 카렌을 보며, 그녀를 불러들였다.

원래대로라면 너무 눈에 띌까봐 나중에 일을 벌이기 직전에 주려고 했었는데.

이러면 아예 여기서 시선을 확 잡아두는 편이 낫겠지.

“받아라. 선물이다.”

“…선물? 갑자기 말인가?”

난 등에 메고 있던 물건을 꺼내 카렌에게 내밀었다.

“왜, 별로인가?”

“아, 아니다! 그냥, 갑작스러워서 그랬다. 선물… 후후. 선물인가.”

조심스레 선물을 받아든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천을 벗겼다.

번쩍-

“이건….”

나는 천을 들춰내기가 무섭게 뿜어져 나오는 광채에 흠칫 놀라는 카렌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주둥이를 쩍 하고 벌린 용을 형상화한 지팡이에, 여의주처럼 물려있는 황금색 보석.

마력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들에게 있어, 이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스태프보다 좋은 무기는 감히 없으리라 자신할 수 있었다.

“저, 저 황금색 빛은 설마… 형씨!”

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스태프에 박힌 보석을 바라보다 내 쪽을 돌아보는 칼라브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다.

역시 투명했던 원석이 아닌 제련이 끝난 뒤의 모습은 다들 알아보는 건가.

“오, 오리하르콘! 세상에, 내 살아생전에 이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광물을 보게 될 줄이야!”

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보석을 훑으며, 힐끔힐끔 카렌을 쳐다봤다.

두 손이 안절부절못하고 허공을 휘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한번 만져보고 싶은 것 같았다.

“어때, 마음에 드나?”

“아….”

나는 아직도 멍하니 스태프를 내려다보고 있는 카렌을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대답이 없는 걸 보아하니 별로인가 보군. 그러고 보니 예전에 스태프 같은 건 나약한 자들이나 쓰는 도구라고 했었지. 으음, 이거 아무래도 내가 괜한 선물을 한 모양이군.”

“그, 그때는!”

“뭐요? 아가씨, 안 받을 거요? 형씨, 그럼 차라리 나한테 주쇼! 흐흐, 내가 스태프 대신 아주 기깔나는 걸로….”

“…그건 안 된다.”

그녀는 내 말에 당황하며 손을 허우적거리더니, 여기저기서 눈독을 들이는 모습에 입술을 꾹 깨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 이건 어디까지나 본녀가 받은 선물이다. 함부로 남한테 줄 수 없다. 그리고 에릭.”

“음?”

“…잘 쓰겠다.”

나는 손에 쥔 스태프를 꼭 끌어안으며 살포시 웃는 카렌을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마음에 든 모양이군.

“흠흠. 그럼 어쩔 수 없구만. 그래도 아가씨, 옆에서 구경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수?”

“그거라면 괜찮다. 원하는 만큼 살펴보도록.”

“그, 그렇다면….”

“물론 그전에 일부터 마무리 짓고 말이지. 그러고 보니 아까 누가 발라크랑 한잔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기왕이면 다들 모이는 것도 괜찮겠구나.”

“오, 그거 좋구만!”

난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더욱 열심히 원석을 나르는 드워프들을 보며, 슬쩍 카렌을 돌아봤다.

그녀 또한 이쪽을 흘끔 살피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끔 수를 생각해낸 듯했다.

유능하군.

덕분에 더 쉽게 준비를 끝낼 수 있겠어.

“발라크.”

“예, 형님.”

“혹시 모르니 카렌이 술을 마시는 일이 없게끔 잘 감시하도록.”

“맡겨만 주십시오.”

이윽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발라크를 찾은 나는, 혹여나 저번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끔 조치를 취하고선 마지막 자루를 들어 올렸다.

“형씨, 빨리 오쇼!”

“예, 지금 갑니다.”

이 정도면 혹시라도 중간에 누군가 채굴장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겠지.

* * *

드르륵-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도시 광장에서 벌여진 술판을 몰래 빠져나온 나는, 곧장 수레에 올라타 레버를 잡아당겼다.

쿠구구구-

창고에서 몰래 챙겨온 폭약은 총 스무 개.

그중 두 개는 이미 레일이 깔린 통로 입구에 설치해둔 상태였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이것들을 설치할 곳은 총 열여덟.

나는 품에서 지도를 꺼내 살피며, 개중에 가장 벽이 얇고 천장이 무너지기 쉬운 지점을 골랐다.

“이쯤인가.”

금세 레일을 타고 채굴장에 도착한 나는, 소매에 숨겨둔 폭약을 꺼내 들었다.

안쪽에 꽤 그럴싸한 도시를 일군만큼 이미 어느 정도 채굴이 진행된 터라, 생각보다 광산이 깊게 파져 있었다.

아무리 성능 좋은 폭약이라고는 해도, 이걸 다 무너트리기 위해선 어림잡아 백 개는 준비해야겠지.

하지만 굳이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광맥 중간을 잘라내기만 해도 더 이상 광산 전체를 못 쓰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한 번 충격으로 무너져 내린 광산은 그만큼 더 지반이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아마 이 일이 끝나고 나면, 앞으로는 조금만 깊이 들어와도 쉽사리 광맥을 건드리지 못할 터였다.

자칫하면 또 천장이 무너져버릴 테니까.

“음. 좋아, 완벽하군.”

나는 빠르게 설치를 마치고선 다시 수레에 올라탔다.

이제 남은 건 돌아가서 적당한 때에 폭약을 터트리기만 하면 끝이었다.

물론 퇴로는 따로 준비해두어야겠지만 말이다.

쿠구구구-

“끅! 프흐. 어으, 살 거 같구만… 응? 뭐여, 이게 웬 수레 소리래.”

그렇게 수레를 타고 레일 끝에 도착하기 직전.

난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는지 이 앞까지 나와 있던 드워프를 보고선, 나지막이 혀를 차며 허벅지로 손을 가져갔다.

혼자 나온 건가.

다행히 근처엔 아무도 없는 거 같군.

“귀찮게.”

“이 목소리는 형….”

푹-

“컥… 컥…!”

나는 소리를 듣고서 제 발로 통로 안쪽을 살피러 들어온 그의 가슴을 찌르며,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았다.

툭-

“쯧. 따로 보상은 없는 건가.”

뭐 딱히 상관없나.

어차피 곧 많이 죽이게 될 테니 말이야.

이윽고 시체의 옷을 빌려 단검에 묻은 피를 슥슥 닦아낸 나는, 적당히 주변을 정리하고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으하하! 그래, 당연히 내가 쏴야지! 오늘 내기로 번 게 얼만데… 끄윽!”

광장에 도착하니 슬슬 여기도 거의 다 정리가 끝난 것 같았다.

북적북적하던 사람들은 어느새 자리에 절반도 남지 않아선, 다들 술기운에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뭐 더 기다릴 것도 없겠군.

지금 바로 시작해도 되겠어.

“카렌, 일어나라.”

“음… 음? 아, 에릭. 왔나.”

나는 곧바로 구석에서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꾸벅꾸벅 졸고 있던 카렌을 깨웠다.

그러고는 아직도 술판을 벌이고 있는 무리들 가운데서 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발라크를 찾아, 턱짓으로 그를 불러내었다.

“부탁한 건 어떻게 됐나.”

“전리품으로 가지고 장비들 말인가?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것들로 준비해서 미리 가져다 놨다.”

“음. 잘했다.”

난 카렌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식탁에서 아직 입도 안댄 잔을 하나 들고선 먼저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에릭, 그건 왜 챙기는 건가. 갑자기 긴장이라도 돼서 취하고 싶어진 건가.”

“아니, 따로 약속한 게 있어서 말이다.”

“약속?”

금방 둘이 몰래 도시를 빠져나와 처음 우리가 이곳으로 들어온 통로 앞에 선 나는, 잠시 안쪽에 몸을 숨겨 발라크가 오기를 기다렸다.

“형님!”

“왔군.”

그렇게 자리에서 기다리기를 몇 분.

나는 저 멀리 달려오는 발록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곳도 안녕이군.

“카렌. 위치는 알고 있겠지?”

“음. 물론이다. 걱정하지 마라, 혹시라도 빗나갈 일은 없으니.”

난 그의 합류와 동시에 아까 선물한 스태프를 들어 올리는 카렌을 보며, 일단 가장 덩치가 큰 발라크부터 통로로 밀어 넣었다.

“준비됐나.”

“물론.”

화륵-

나는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허공에 피어오르는 시뻘건 불길을 보며, 천천히 통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타올라라. 모두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지리라.”

곧 카렌의 손짓에 따라 하늘로 붕 떠오른 불덩이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이윽고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며, 광산 전체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 가라.”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지만, 가만히 내버려두면 분명 언젠가 큰 방해물이 되어 돌아올 게 뻔했다.

게다가 그들 또한 결국 언젠간 연합의 일원이 될 터.

난 이만 등을 돌려 통로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서, 조용히 단검을 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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