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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60화 (60/200)

제60화

“덩치 형씨! 오늘도 끝나고 한잔 어떤가?”

“오늘 말인가. 음. 형님께 한 번 여쭤보고 오겠다.”

“또 물어보러 가는 거요? 아주 잡혀 사는구만, 잡혀 살아. 누가 보면 마누라인줄 알겠어.”

“어서 갔다 오게. 그리고 이번엔 우리 집에서 모이자고!”

캉-!

드워프들을 찾아 광산 안으로 들어온 지도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익숙지 않던 곡괭이질도 슬슬 손에 익어갈 무렵.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광산의 지도를 그리던 나는, 이제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저, 형님.”

“다녀와라. 가능하면 판을 크게 벌이는 것도 좋겠어.”

“그 말씀은….”

나는 의미심장한 표장으로 되묻는 발라크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다.

마침 족장이 오늘 저녁에 대장간으로 찾아오라 했으니, 무기도 거의 완성이 된 것일 터.

그렇다면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카렌.”

“음. 오늘 밤에 시작하는 건가?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라. 이 몸이 잘 둘러대 줄 테니.”

난 카렌에게도 미리 언질을 주고선, 한가득 짐을 담은 수레를 돌아봤다.

이 정도면 먼저 돌아간다고 해도 별달리 의심을 사지는 않겠지.

그럴싸한 핑계도 있으니 더더욱.

“칼라브 씨. 혹시 레일 좀 써도 되겠습니까?”

금방 수레를 밀어 레일이 깔린 길목으로 들어선 나는, 곧장 그 앞에서 다른 드워프들을 감독하고 있는 칼라브를 찾았다.

“응? 아직 시간이 되려면 꽤 남았는데. 무슨 일 있수, 형씨?”

“저녁에 족장님과 보기로 해서 말입니다. 괜히 나중에 같이 돌아가서 중간에 빠지는 것보단, 먼저 가서 제 몫이라도 정리해놓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야 다들 이해해줄 텐데. 뭐, 알았수. 자, 올려놓으쇼.”

“예, 감사합니다.”

콰르르르-

레일 위에 놓인 수레로 원석을 옮긴 나는, 금방 그 위로 올라타 레버를 잡는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꽉 잡으쇼. 머리 숙이는 거 잊지 말고. 흐흐.”

쿠구구-

칼라브의 경고에 따라 낮은 천장을 피해 머리를 숙인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광산 내부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아무리 카렌의 마법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고작 셋이서 이리 넓은 공간을 다 무너트리는 건 무리였다.

가능한 다시는 이곳에 연합 놈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완전히 가라앉혀야 하는 내 입장에선,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방법을 사용했을 때의 얘기지만 말이다.

“그런데 형씨. 전에 물어봤던 그 원석은 어떻게 됐수? 보니까 족장이 뭔가 아는 눈치던데, 도통 얘기를 해주지 않더구만.”

“그거 말입니까? 으음, 글쎄요. 저한테도 얘기해주지 않으셔서 잘 모르겠군요.”

“그, 그렇수? 형씨라면 그 노인네 공방에도 자주 들락날락하니까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럼 기왕에 이야기 나온 거, 오늘 한 번 물어봐 줄 수 있겠수?”

“예, 그러지요.”

덜컹거리는 수레 안.

나는 조심스레 말을 붙여오는 그를 보고선, 도착하기 전까지 적당히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오리하르콘에 대해선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 건가.

하긴 양도 얼마 안 되는데 그런 걸 들켰다간, 너도나도 다뤄보겠답시고 달려들었겠지.

나로서도 잘된 일이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괜히 남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발라크가 열심히 이집 저집 술 대작을 하러 돌아다니며 보기 좋게 관심을 끌어주고 있는데, 괜히 그런 걸로 다시 이목을 끌 필요는 없었다.

“형씨, 아까 그거 족장한테 꼭 물어봐주쇼!”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먼저 도시에 도착한 나는, 곧장 채굴장으로 돌아가는 칼라브에게 손을 흔들어주고선 싣고 온 짐을 자루에 담았다.

“그러니까 저번에 말이야….”

“안토스!”

“응? 오, 형씨!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요?”

그대로 커다란 창고 앞에 도착한 나는,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드워프를 보고선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았다.

“저녁에 족장님과 약속이 있어서 말입니다. 먼저 정리하고 나왔지요. 혹시 안에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그야 괜찮고말고. 그런데 그거, 설마 형씨 혼자 다 캔 거요?”

“예. 생각보다 곡괭이질이 잘 맞는 모양이더라고요.”

“크으, 대단하구만. 나도 혼자 자루를 다 채우고 돌아올 때까지 족히 반년은 걸렸던 거 같은데 말이야.”

끼익-

“자, 들어가쇼. 안에 너무 오래있지는 말고.”

“물론이죠. 금방 나오겠습니다.”

나는 문을 열어준 안토스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선, 곧바로 안쪽으로 들어가 자루에 담긴 내용물을 쏟았다.

그의 말마따나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다간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으니, 가능한 빨리 볼일을 마쳐야만 했다.

“음, 이걸로 분류는 끝이군.”

미리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대부분 철광석으로 자루를 채워온 나는, 금방 분류를 마치고선 곧장 지난번에 봐두었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분명 이쯤에 있었던 거 같은데.

덜컥-

“…찾았군.”

높게 쌓인 상자를 내려 하나씩 안쪽을 뒤져보던 나는, 곧 원하는 물건을 발견하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잘 들어보면 안쪽에 무언가 가루 같은 걸로 가득 차 있는 둥근 나무통 여럿.

드워프들이 이따금씩 광맥을 넓힐 때 하나씩 챙겨가던 폭약이었다.

“어림잡아 스무 개 정도면 충분하겠지.”

난 소매와 품 안에 가득 물건을 챙기며, 일전에 광산 안쪽에 울려 퍼졌던 굉음을 떠올렸다.

그땐 정말로 무슨 문제가 생겨서 광산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지.

실제로 그 진동 때문에 길목 하나가 반쯤 막혀버리고 했고.

당시에 폭약 하나의 위력이 그 정도였으니, 이걸 한 번에 다 터트린다면 분명 전부 폭삭 무너트릴 수 있을 터였다.

끼익-

“오, 벌써 다 끝냈수? 생각보다 빠르구만.”

“하하. 원석들도 계속 보다보니까 이젠 뭐가 뭔지 금방 구분이 되더라고요. 그럼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했수.”

다행히 빠르게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는, 소매 아래 숨긴 폭약을 쓰다듬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혹시 몰라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넉넉히 챙기느라 조금 티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저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긴 용사 시절에는 요인 암살을 위해 온몸에 독과 암기를 두른 상태로도 무사히 저택의 검문을 통과하곤 했는데.

아무리 그때와 달리 무언가 숨기기 위해 품이 넉넉한 옷이 아니라고 한들, 고작해야 드워프 둘의 눈썰미에 걸릴 리가 있겠는가.

똑똑-

나는 금방 족장의 공방에 도착해,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

평소에는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뻘뻘 흐르는 작업 환경에 항상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정말 물건이 다 완성된 모양이었다.

“누구여?”

“족장님, 접니다.”

“아, 손님! 생각보다 일찍 왔구먼. 아직 돌아올 시간은 아닐 텐데.”

끼익-

난 내 목소리를 확인하고선 짧은 다리로 헐레벌떡 뛰어야 문을 여는 그를 보며,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흐흐,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게나. 내 곧 깜짝 놀랄만한 걸 가져올 테니 말이야.”

“아, 예.”

족장은 문 옆에 있는 자리에 잠시 나를 앉히고선, 곧바로 공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아하니,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게 나온 모양이었다.

“자, 이걸세.”

“그건….”

나는 곧 천에 둘둘 말린 무언가를 들고 나오는 그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렇게까지 꽁꽁 숨겨놨는지.

원래도 한 아름 기대를 품고 있었지만, 이젠 정말로 내 가슴이 다 졸일 지경이었다.

“보고 놀라지 말게. 이게 내 250년 드워프생 최고 걸작일세!”

사락-

“허어….”

난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단검을 보며, 그 아름다운 검신에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본디 새하얬던 원석과는 달리 옅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날은, 옛 기억 속에 남은 황제의 검에 박혀있던 장식과 똑같았다.

오리하르콘.

여신이 내린 보석.

“한 번 시험해보겠나?”

조심스레 무기를 건네받은 나는,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웅-

“어떤가. 이만하면 손님의 단검과 견줄 만한가?”

나는 마치 스펀지처럼 막힘없이 마력을 받아들이는 단검을 보며, 꽤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훌륭하군요.”

난 크게 힘들일 것도 없이 자연스레 날을 둘러싸는 시퍼런 검기를 보며, 씨익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력은 물론, 예리함도 무게도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이 없군요.”

“으흠. 그렇지? 실은 나도 꽤나 놀랐다네. 손님이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이 두께에 강도 또한 어지간한 무기로 내려쳐도 전혀 꿈쩍 않을 정도라니. 그야말로 신이 내린 금속일세!”

“그렇습니까?”

나는 잔뜩 흥분해선 말을 늘어놓는 족장을 보며, 근처 벽에 걸려 있던 갑옷을 가져와 바닥에 올려놓았다.

“흐읍!”

쩌억-

가장 단단한 부분 위로 있는 힘껏 단검을 내리쳤는데도, 깨지기는커녕 날에 흠집하나 잡히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그 힘에 갑옷이 움푹 파일 정도였다.

서걱-

“허.”

거기에 이번엔 검기를 두른 채로 휘두르자, 마치 허공을 벤 듯 가볍게 두꺼운 흉갑을 자르고 지나갔다.

“흐흐, 굉장하지?”

나는 족장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주억이며, 검집을 받아 날을 집어넣고 허벅지에 달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물건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이만한 무기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

빨리 실전에서 한 번 써보고 싶은걸.

난 달아오르는 몸을 애써 가라앉히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잠깐 기다리게. 아직 하나 남았지 않나.”

“…예?”

나는 이만 공방을 나서려는 나를 보고선 잠시 멈춰 세우는 그를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아직 줄게 남았다니, 그게 무슨…

“아.”

그러고 보니 단검을 만들 분량을 제하고도 원석이 조금 남는다고 했었지.

난 금세 무언가를 가지러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는 족장을 보며, 기대되는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 여기 있네. 아쉽게도 이건 내가 어떻게 시험해볼 수가 없어서 말이야. 잘됐는지 어떤지 말을 못해주겠구먼. 그래도 절대 실망하진 않을 게야. 원래 이 오리하르콘이란 게 이쪽에 더 잘 맞는 광석이니까 말일세.”

“감사합니다. 사례는….”

“됐네, 됐어. 재료도 자네가 캐왔는데 사례는 무슨. 오히려 죽기 전에 이런 귀한 재료를 다뤄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네. 내가 전에 그게 소원이라지 않았나. 뭐, 그래도 손님 마음이 편치 않으면 나중에 맥주나 한잔 공짜로 마시게 해주게나.”

나는 곧 그가 가지고 나온 길쭉한 물건을 받아 들고선, 환한 미소와 함께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예, 물론이죠.”

맥주 한 잔이라.

그 정도 부탁이야 못 들어줄 것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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