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59화 (59/200)

제59화

“마지막으로 이쯤이었던가.”

광산 안쪽으로 들어와 쉬엄쉬엄 곡괭이질을 하며, 그동안 들어온 길을 되짚어 지도를 그린 지도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나는 작은 종이에 꽤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지도를 보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슬쩍 기지개를 폈다.

“에릭, 이것 좀 봐라. 이 몸이 엄청 큰 원석을 캐냈다.”

“그래, 고생했다.”

“음!”

난 생각보다 이 일에 재미가 들렸는지, 거의 제 머리 만한 원석을 들어 올리며 마음에 들어하는 카렌을 바라보았다.

저런 보석이야 그녀가 원한다면 가공된 걸로도 건물 하나를 가뿐히 채울 수 있을 텐데.

하긴 단순히 구해서 가지고 있는 거랑 자기가 직접 캔 건 느낌부터가 다르겠지.

어쨌든 괜히 힘들다고 불만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야, 대단하구만. 벌써 이렇게나 캤단 말이야?”

“역시 덩치가 있으니까 다르긴 다르구만. 한 번 내리칠 때마다 푹푹 파이는 게, 혼자 열 사람 못지않구만.”

“형씨, 혹시 밖에서 원래 곡괭이질 좀 하다 온 거 아니요? 아무리 봐도 이게 처음 들어 본 솜씨는 아닌데.”

나는 광산 안쪽에 들어와서도 드워프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발라크를 보며, 완성한 지도를 품에 넣었다.

가끔 이 근처를 지나다니던 이들도 이젠 다 그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는 터라, 덕분에 한결 수월하게 몰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슬슬 정리하고 가야겠군.”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후후. 그럼 본녀도 그만해야겠구나.”

난 대부분 곡괭이질을 멈추고 이쪽으로 모여든 것을 보며, 방금 전까지 캐고 있던 것만 빨리 마무리하고서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캉-!

“음?”

그렇게 거의 다 캐낸 철광석 떼어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안쪽을 내리친 순간.

나는 맑은 쇳소리와 함께 손잡이를 타고 찌르르 울리는 느낌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곡괭이 끝에 걸린 광석을 살폈다.

“이게 뭐지?”

“왜 그러나, 에릭. 뭐라도 발견한 건가?”

난 앞선 철광석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단단함과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는 새하얀 광물을 보며, 슬금슬금 주변을 파내 그것을 캐내었다.

“이건….”

“음. 상당히 아름답구나. 헌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녀석이군. 혹시 중간계에서만 나는 특이한 보석인 건가?”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원석을 살피는 카렌을 보며, 나지막이 침음을 흘렸다.

이상하군.

중간계에서 내가 처음 보는 보석이 있을 리가 없는데.

용사 시절 여기저기 요인 암살을 다니며, 그들이 숨기고 있던 보석들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보석들을 눈에 담아봤던가.

가끔 그중 일부를 빼돌려 몇 번 왕도에 팔아도 봤기에, 보석의 질은 몰라도 생김새와 종류만큼은 전부 꿰뚫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으음….”

혹시 가공 전과 후의 상태가 많이 차이가 나는 종류인 걸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새하얗게 빛나는 광물들 중에, 곡괭이질에도 흠집하나 나지 않을 만큼 단단한 녀석에 대해선 들어본 바가 없었다.

그나마 손에 꼽자면 다이아몬드 정도가 그렇겠지만, 설마하니 내가 그를 못 알아보겠는가.

“형님. 이제 그만 출발하겠답니다.”

“아. 금방 가겠다.”

손에 쥔 원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이놈의 정체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나는, 뒤에서 조심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까짓 거 모르겠으면 드워프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아, 형씨. 왔수? 자, 다들 올라타쇼. 오늘 캔 거는 걱정 말고 옆에다 두면 알아서 다음 사람이 보내줄 거요.”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난 먼저 수레에 올라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칼라브를 보며, 적당히 바닥에 짐을 두고서 옆자리에 몸을 실었다.

“다 탔수? 뭐 대충 그런 거 같구만. 그럼 바로 출발하겠수. 흐흐, 돌아갈 때도 혹시 모르니까 모가지 꺾이기 싫으면 잘 숙이고 있으쇼.”

“하하.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칼라브 씨. 혹시 이 원석에 붙은 게 무슨 광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원석? 어디 한 번 줘보쇼.”

나는 슬쩍 수레를 한 번 훑고선 곧바로 레버를 당기려는 그를 보며, 주섬주섬 품에서 원석을 꺼내들었다.

“으응? 이게 뭐요?”

“칼라브 씨도 모르시는 겁니까?”

“글쎄… 허연 걸 보니까 수정 같기도 하고. 아니, 그랬으면 모양이 이렇게 나올 리가 없는데….”

“금강석은 아니겠죠?”

“금강석? 에이, 그럴 리가 있나. 그거는 결부터가 이거랑은 완전 다르지. 금강석이었으면은 여기 이쪽에 층이 갈라져 있어야 할 거요.”

…드워프도 이게 뭔지 모르는 건가.

“일단 한 번 돌아가서 족장한테 갖다줘 보쇼. 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만. 적어도 우리들 중엔 가장 나이도 많고, 다뤄본 재료도 많으니까 말이요.”

“예, 그래야겠군요.”

드르륵-

덜컹- 덜컹-

나는 곧 레버를 당김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 수레를 보며, 조용히 광석을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뭐, 가보면 알겠지.

만일 족장도 모른다고 하면, 나중에 알 만한 사람을 따로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 * *

깡-! 깡-!

맑은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방 안으로 들어선 나는, 안쪽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하고 있는 드워프를 발견하고선 조용히 그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치익-!

“후우… 오, 손님. 마침 타이밍 좋게 잘 맞춰왔구먼.”

그는 방금 전까지 열심히 두드리던 쇳덩이를 차갑게 식히며 한숨을 돌리고선, 천천히 내 쪽을 돌아보았다.

채굴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를 찾아 숙소로 돌아갔건만 공방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부인의 말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벌써부터 내가 부탁한 걸 만들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은 오늘 시험작으로 하나 만들어보긴 했는데, 어떠려나 모르겠구먼. 한 번 지금 시험해보겠나?”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래. 다 완성된 건 아니고, 지금은 모양만 좀 봐주게나. 무게도 이만하면 됐는지 확인해보고 말일세.”

우선은 견본 같은 느낌인가.

후욱-

족장의 부탁대로 허공에 단검을 몇 번 정도 휙휙 휘둘러본 나는, 꽤 손에 착착 감기는 감촉에 씨익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괜찮군요.”

과연 장인은 장인이라는 건가.

누가 드워프, 그것도 족장 자리를 꿰차고 있을 정도로 연륜을 쌓은 인물 아니랄까봐.

그는 따로 알려준 적이 없음에도, 내가 딱 원하는 형태의 단검을 만들고 있었다.

“허허. 그거 다행이구먼. 좋아, 그럼 강도도 한 번 시험해보겠나?”

“예, 그러지요.”

스릉-

족장의 말에 곧장 허벅지에서 아다만티움 단검을 뽑아 든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위로 족장이 만든 단검을 내리쳤다.

카챵-!

“으음….”

나는 안타깝게도 산산조각이 나선 바닥에 흩어진 날을 보며, 남은 손잡이를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

“역시 철만 가지고는 턱도 없겠구먼. 다음엔 뭘 좀 섞든 해야겠어. 자, 이제 그만 가보게나.”

족장은 손잡이밖에 남지 않은 단검을 내려다보며 바깥을 향해 손을 휘젓고선, 덤덤히 근처에 있던 빗자루를 가져와 부서진 날 조각을 슥슥 치웠다.

“으음, 뭘 섞어야 그만큼 강도를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구먼. 아니, 어째 맞춘다 치더라도 무게가… 응? 거기서 안 가고 뭐하고 있나.”

난 바닥에 떨어진 파편을 금세 다 치우고선 무언가 고민하는 그를 보며, 천천히 품에서 원석을 꺼내들었다.

“족장님. 혹시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응? 글쎄, 수정은 아닌 거 같고. 그렇다고 금강석도… 어, 어엉?”

내게서 잠시 건네받은 원석을 가만히 살피던 그는, 갑자기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소, 손님. 이거 어디서 났나?”

“오늘 같이 채굴장으로 갔다가 발견했습니다. 뭔가 익숙하면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물이라. 혹시 그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원석을 내려놓는 그를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도대체 저게 뭐기에 저러는 거지.

일단 반응을 보아하니 뭔가 특별한 광물인 건 확실한 거 같은데.

“…알다마다. 다만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구먼.”

“그렇습니까?”

250년이나 살아온 드워프도 처음 보는 물건이라.

“그래서 그게 대체 뭡니까?”

“오리하르콘.”

“…예?”

난 족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에 당황해선 얼빠진 소리를 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 오리하르콘? 이게 말입니까?”

“확실하네. 새하얗고 투명한 몸뚱이에,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광채까지….”

오리하르콘.

이게 정말로 그 귀한 광석이란 말인가.

그것도 아직 하나도 제련을 거치지 않은 상태라고는 해도, 이렇게나 커다란 원석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나는 절로 올라가는 입 꼬리를 꿈틀거리며, 원석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휙-

“손님. 혹시 어제 한 약속 아직 기억하나?”

“…약속 말씀이십니까?”

난 내가 뻗은 손을 슬그머니 피하는 그를 보며,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약속이라.

그러고 보니 만일 오리하르콘을 얻게 되면 그에게 꼭 제련을 맡기겠다고 했던가.

“예, 물론이죠.”

“그,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고개를 주억이는 나를 보며 곧바로 함박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를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해보면 난 손해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득이었다.

방금 부서진 단검만 보더라도, 그는 대단한 장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으니까.

“흐, 흐흐. 내, 내가 오리하르콘을… 아! 그래, 뭐가 필요한가? 말만 하게나. 장검? 둔기? 아니면 갑옷? 아니지. 아예 이걸로 단검을 만들어도 되겠구먼!”

난 벌써부터 오리하르콘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 생각에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를 않는 그를 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음, 이걸로 뭘 만들면 좋을까.

오리하르콘은 마력을 잘 받아먹는 광물이니까…

“단검으로 부탁드립니다.”

“흐흐, 그래. 단검이란 말이지? 아. 그런데 그러면 오리하르콘이 조금 남을 거 같은데 말이야. 혹시 뭐 다른 건 또 없나? 대검 같은 건 힘들겠지만 어디 장식으로 박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 같은데 말일세.”

하나 더?

나는 족장의 말에 잠시 턱을 괴며 다시금 고민에 빠져들었다.

장식으로 박을 수 있는 정도라면 남아봐야 크기가 그렇게 크진 않다는 얘긴데, 뭐가 좋을까.

“아, 그럼 이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거 말인가? 음, 그래. 이 정도면 가능하겠구먼. 좋았어, 맡겨만 주게나.”

이윽고 금세 고민을 마친 나는, 공방 벽에 걸려있던 물건들 중에 하나를 가리키고선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좋아 이걸로 깔끔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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