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이런 무기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제국에선 그럴 만한 실력이 되는 장인을 구할 수 없을 거 같아서, 이곳에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분들이 모여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나는 족장이라 불린 드워프의 말에 슬쩍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허허. 대륙에서 가장 뛰어나다라. 음, 크게 틀린 말은 아니구만. 헌데 대체 무슨 무기를 원하는 거기에 이 들어오기 힘든 곳까지… 으, 으음?”
난 내 손에 들린 단검을 보고선 단숨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를 보며, 속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 이건! 자, 자네. 이런 걸 대체 어디서 구한 건가!”
나는 곧 내게서 단검을 받아들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노인의 모습에, 빙긋 웃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도 스승님께 물려받은 물건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국 어디를 둘러봐도 이보다 나은 무기를 찾기가 힘들더군요.”
“그럼 당연하지! 이렇게 훌륭한 무기는 내 드워프생 250년 평생 처음이구만. 이보다 나은 건 당연히 우리 도시에도… 아니, 과연 대륙에 그런 게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구만!”
그는 뚫어져라 단검을 내려다보며, 점점 거칠어지는 숨을 훅훅 내뱉었다.
그야 당연하겠지.
자그마치 전대 혈마왕이 쓰던 무기다.
족장이니 뭐니 해도 그 또한 한 명의 드워프이니만큼, 장소고 체면이고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타고나기를 천성이 장인인 종족이니만큼, 제가 만든 것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이런 걸작에 대한 관심과 선망 또한 대단한 편이었으니까.
“그… 에릭, 저거 저대로 둬도 정말 괜찮은 건가? 이 몸이 보기엔 당장이라도 단검을 어떻게 해버릴 거 같은데 말이다.”
“괜찮다. 적어도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만에 하나 지금 우리가 이곳에 손님으로서가 아닌, 적으로 그들을 마주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 장비가 어떻게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발록들이 이상하리만치 강함에 집착하고, 적어도 강자에 대해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우를 지키는 만큼.
드워프들도 수준 높은 장비 앞에선 마치 열성적인 신도들처럼 변하곤 했으니까.
전쟁 초기.
오백이 넘는 드워프가 온몸을 갑옷으로 무장한 가고일 열 명을 상대로 전멸당할 뻔했던 것은, 연합의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였다.
그들이 입고 있던 장비의 마감이 너무 아름다워서 쉽사리 건드릴 수가 없었다 했던가.
갑옷을 입은 적을 상대로 무기를 내리고 달라붙어서, 기어코 그를 다 벗긴 뒤에야 제대로 싸우기 시작하다니.
언뜻 들어보면 참 거짓말 같은 일화였지만, 그만큼 드워프란 종족은 적어도 장비를 다루는 데 있어선 항상 진심이었다.
“이 매끈한 곡선… 그리고 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확 베일 것만 같은 예기. 도대체 몇 번을 접고 얼마나 두드려 펴야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거지? 게다가 이 날을 이루고 있는 금속은 대체… 이렇게나 얇은데 척 보기에도 강도가 상당하구만.”
“족장이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금속이라고?”
“세상에, 그런 게 아직 남아있었단 말이야?”
이만하면 슬슬 달아올랐겠군.
나는 어느새 단검을 둘러싸고 저들끼리 감탄을 막 내뱉고 있는 드워프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아! 내 정신 좀 보게. 이거 이렇게 귀한 손님을 계속 바깥에 세워두고 있었구만! 자,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일단 내 공방으로 가세나. 그래, 이만한 무기가 또 필요하단 말이지. 흐흐, 이거 참 간만에 내 도전정신에 불을 붙이는구만.”
“자, 장로… 아니, 장로님! 치사하게 혼자 공방으로 나르기 있습니까!”
“그래, 맞어! 이제 막 영감이 떠오르려던 참이었는데. 가려면 그 단검이라도 여기 놓고 가쇼!”
“시끄러 이놈들아! 내 것도 아닌데 무슨 단검을 멋대로 여기 놓고 가라는 거여. 정 그러면 옆에서 구경이라도 해. 조금 비좁긴 하겠지만, 그래도 다닥다닥 붙어있으면 어떻게 다들 들어올 만할 테니까.”
난 벌써 무얼 만들까 기대에 찬 표정으로 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족장을 보며,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경계를 서고 있던 둘과 애초에 그를 따라왔던 인원들까지 짧은 다리로 헐레벌떡 그의 뒤를 쫓는 모습이, 마치 뒤뚱뒤뚱 길을 건너는 오리 떼 같아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왔다.
“자, 여기나 내 공방일세. 어서 들어오게나. 아! 그쪽에 덩치 큰 수인 형씨는 지나기 좀 힘들 수도 있겠구만.”
“으음….”
머지않아 도시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선 나는, 뒤에 허리를 거의 90도로 숙이고 나서야 간신히 입구를 지난 발라크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라, 발라크.”
“예, 형님. 헌데 이건….”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며 어렵사리 입구를 지난 그는, 공방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주변에 걸린 각양각색의 장비들을 보며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굉장하군요.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훌륭한 무구들뿐입니다. 과연, 이래서 형님께서 가장 먼저 이곳을….”
“오! 그쪽 형씨도 무기 보는 눈이 좀 있나보구만. 우리 장로가 만들 물건들이 썩 괜찮긴 하지.”
“뭐 그래 봐야 투구는 내가 만드는 것만 못하지만 말이야.”
“망치는 또 어떻고? 이봐, 형씨. 혹시 나중에 내 공방에 한 번 들러볼 생각 없나? 요전에 꽤 마음에 드는 작품이 하나 나왔었는데 말이야….”
“여, 여기 있는 것보다 더 말씀이십니까? 으음, 하지만….”
나는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드워프들의 관심을 산 발라크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그들의 작품에 꽤나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하긴 강함에 집착하는 종족이 질 좋은 장비에 관심이 없을 리가 있나.
뭐 어차피 일을 위해선 드워프들의 신뢰를 사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나 또한 그가 그들의 호의를 받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서 전혀 나쁠 게 없었다.
“흐음… 이거 다시 봐도 당췌 무슨 금속으로 만든 건지 알 수가 없구만. 어째 비슷한 거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말이야. 손님. 혹시 내가 실례가 안 된다면 이 단검을 한 번만 두드려봐도 되겠나? 그래야 대충이라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음. 그렇게 하시지요.”
난 슬쩍 단검을 모루 위에 올려놓으며 옆의 망치를 향해 힐끔 눈길을 주는 장로의 모습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 그게 정말인가? 으하하! 이거 손님이 통이 커도 보통 큰 게 아니구만!”
남의 무기에, 특히 이런 걸작에 함부로 망치를 갖다대는 것이 얼마나 실례되는 행동인 건지 알기에.
그는 내 허락에 떠나가라 웃음을 지으며, 진심 어린 감사와 함께 슬며시 망치를 들었다.
옆에 놓여 있던 작은 망치가 아닌, 바닥에 세워져 있던 머리가 꽤 커다란 녀석을 말이다.
“그… 에릭. 저 난쟁… 아니, 드워프가 굉장한 장인인 건 알겠다만. 정말 저렇게까지 하게 두어도 괜찮은 건가? 저건 좀 많이 묵직해 보이는데….”
“…걱정할 거 없다. 아무리 그래도 통짜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건데 깨지기야 하겠나.”
나는 이번엔 꽤나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나를 말리는 카렌을 보며,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저런다고 당연히 깨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드워프 특유의 짧고 두꺼운 팔뚝으로 저 커다란 망치를 내리치는 그림을 생각하니 살짝 식은땀이 흘렀다.
“흐읍!”
카앙-!
얇은 단검 위로 망치가 떨어지며, 날카로운 금속음이 튀어나왔다.
그 내리치는 폼에 생각보다 힘이 들어가 있어서, 저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올 뻔했다.
“…이거 믿을 수가 없구만. 대충 멀쩡할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단검엔 아무런 흠집도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쩌적-
“뭐, 뭐여?”
“지, 지금 설마 망치에 금이 간 거요?”
그가 쥐고 있던 망치 끝이 살짝 갈라져 있었다.
“으음….”
장로는 잠시 말없이 갈라진 망치와 멀쩡한 단검을 몇 번 번갈아 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만. 아무래도 자네 부탁은 들어주기 힘들겠어.”
“그 말씀은….”
“무리일세. 도대체 무슨 금속으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똑같은 재료가 있지 않고서야 단순히 기술만으로 이만한 물건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일세. 자, 일단 돌려받으시게나.”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단검을 돌려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끝낼 수는 없지. 내 그만큼은 안 되더라도, 자네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을 꼭 만들어봄세! 대신 시간을 좀 줄 수 있겠나?”
나는 그래도 곧 다시 의지를 불태우는 장인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좋아, 거의 다 넘어왔군.
“예, 물론이죠. 원하신다면 시간뿐만 아니라 재료도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보아하니 이 자체가 광산인 것 같던데….”
난 자연스럽게 미끼를 던지고선, 천천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자, 물어라.
“오, 그게 정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창고에 쌓아놓은 것들 중에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재료가 없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손님한테 그런 일을 시키기는 좀….”
“무슨 소리십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제가 쓸 물건을 부탁드리는 건데. 재료 값도 그렇고 그걸 만드는 비용도 쳐 드려야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모자라면 말씀해주십시오. 삯도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
나는 품에서 이전에 쓰다 남은 제국 금화를 짤랑이며, 사람 좋은 미소로 그를 바라봤다.
“그, 그런가? 으하하! 하긴 그것도 그렇구만. 좋네. 그럼 자세한 건 내일 따로 얘기해주겠네. 아무래도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까 말이야.”
“장로! 그러지 말고 아예 창고를 열어서 술이라도 좀 돌리는 게 어떻겠수? 이렇게 귀한 손님이 왔는데, 그냥 방만 잡아주면 섭섭하지 않겠수.”
“오오, 그래. 그게 좋겠구만! 자, 그럼 바로 밖으로 모이세나!”
술이라.
이거 일이 참 술술 잘 풀리는군.
난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를 내며 공방 밖으로 나서는 드워프들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