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으하하하하!”
콰앙-!
“이런 젠장….”
날아오는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도망친 나는, 쉬지 않고 달려드는 발록을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좋아, 좋아. 아주 날쌔구만! 과연 카르카쉬, 그놈 입에서 재능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해. 그 천대받던 반푼이가 고작 일 년 만에 이렇게나 컸단 말이지… 흐흐.”
나는 연달아 자신의 공격을 피한 나를 보며 소름끼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식당에서 다짜고짜 수련장으로 끌고 내려와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시작한 걸로도 모자라, 진심으로 이걸 즐기고 있다니.
벌써부터 이 미친 마왕의 휘하로 독립부대를 옮긴 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마룡왕, 이 빌어먹을 자식.
그때 무언가 말해주려다 말았던 내용이 바로 이거였나.
“그럼 어디 맷집은 얼마나 튼튼한지 볼까?”
“…예?”
쩌억-!
“컥….”
나는 불길한 말과 함께 순간 눈앞에서 사라진 그를 찾기 위해 황급히 주변을 살피다, 어느새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온 공격에 맞아 튕겨져 나갔다.
콰앙-!
“허윽….”
그대로 수련장 벽까지 날아가 박힌 나는, 늑골이 부서진 것만 같은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오호. 그걸 반응한 건가? 감도 아주 훌륭하구만!”
젠장…
얻어맞기 전에 가까스로 단검을 대어 막았는데도 이 정도인가.
그나마도 통짜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버틸 수 있었던 거지, 아무 대장간에서나 늘어져 있을 법한 무기였더라면 그대로 부서지고 옆구리에 주먹이 틀어박혔을 터였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이렇게 서있기는커녕 내장이 터져서 죽을상으로 바닥을 기고 있었겠지.
“원래대로라면 방금 그걸로 끝내려고 했는데, 이만하면 좀 더 즐겨도 괜찮겠어.”
나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발을 움직이는 마왕을 보고선, 찌르르 울리는 손을 다시 들어 올렸다.
거 빌어먹게도 세구만.
용사 시절 비록 그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동료들과 함께 맞서본 적은 있었기에, 그의 무지막지한 강함은 이미 익히 알고 있던 것이었다.
독이 들어갈 상처를 내기 위한 날붙이는 모두 튕겨내고, 휘몰아치는 마법의 폭풍 속에서도 무사히 빠져나오는 굴강한 육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눈앞의 발록은 제 덩치만큼이나 굼떴고, 아무리 견고한 성채라도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어느 한 곳이 무너지기 마련이었으니까.
후웅-
“오, 그래. 이번엔 공격인가? 제법 날카롭군 그래.”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용사 시절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
지금의 이 연약한 몸뚱이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그에게 닿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필사적으로 덤벼드는 것은, 단순히 마왕에게 점수를 따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좋아, 아주 훌륭해! 적어도 그 기개는 어지간한 사천왕 놈들보다 낫구만! 그래,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럼 어디 이것도 한 번 막아보거라!”
나는 연이어 파고든 내 공격을 모두 가뿐히 피해내고선, 전신의 근육을 부풀리는 그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젠장, 이거 막는다고 살 수는 있으려나…
“흐읍!”
거칠게 훅 숨을 들이키며 내지른 정권이, 마치 주마등처럼 슬로우모션으로 날아들었다.
피해야 한다.
난 빠르게 경종을 울리는 직감에 이를 악물며, 황급히 박쥐화를 사용해 몸을 내빼려고 했다.
쩌적-
“이런 빌어먹을….”
콰아아앙-!
순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이 갈라지며, 거대한 폭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커헉!”
어떻게 주먹만큼은 가까스로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어진 충격파는 박쥐로 흩어진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허윽, 큭… 욱!”
“에, 에릭! 괜찮나?”
“…대단하군. 설마 그것까지 피한 건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시 모여들어 울컥 피를 토해낸 나는, 핑글핑글 돌아가는 시야에 지그시 눈을 감으며 그대로 엎어졌다.
“투, 투마왕님! 이건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어떻게 대련에서….”
“으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죽지는 않게끔 적당히 힘 조절했으니까 말이야.”
난 옆에서 들려오는 날 선 카렌의 목소리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죽을 만큼 아프긴 하지만, 어디 생명이 위독한 정도는 아니었다.
폭풍에 휩쓸려서 온몸에 베인 상처가 가득하긴 했지만, 오히려 내상을 입는 것보단 이쪽이 더 회복이 빨랐다.
뱀파이어의 비정상적인 회복력을 생각해보면, 아마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전부 나아있을 테지.
“아무리 그래도!”
“후우… 카렌, 그만. 난 괜찮다.”
거칠어진 숨을 가라앉히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 나는, 구석으로 가 벽에 등을 기대며 몸을 늘어트렸다.
“하, 하지만 피가… 정말로 괜찮은 게 맞나, 에릭? 지금이라도 어서 치료사를 불러야….”
“괜찮아. 그보다 조금 조용히 쉬게 해줬으면 좋겠군. 머리가 좀 어지러워서 말이야.”
“그… 아, 알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본녀가 금방 치료사를 불러오도록 하겠다!”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상태를 살피다 수련장 밖으로 나서는 카렌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아무리 자연적으로 나을 수 있더라도 가능하면 실력 있는 치료사의 도움을 받는 편이 더 낫겠지.
[믿을 수 없는 업적!]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상대로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넘기셨습니다.]
[힘이 ‘3’ 증가합니다.]
[민첩이 ‘3’ 증가합니다.]
[체력이 ‘3’ 증가합니다.]
[마력이 ‘3’ 증가합니다.]
난 그 고생 끝에 결국 이루어낸 성과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로 메시지를 닫았다.
이게 바로 그 갑작스럽고 부당한 처사에도 아랑곳않고, 끝까지 전력을 드러내며 투마왕에게 악착같이 덤벼들었던 이유였다.
단 한 번의 대련에 자그마치 도합 12나 오른 능력치를 보자니, 그 희열에 고통이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악투스 님을 상대로 저렇게나….”
“정찰대에서 활약을 했다고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쓸 만한 녀석이로군. 썩 마음에 들었어.”
나는 투마왕을 찾아 어느새 몰려든 발록들을 보며, 단번에 내에 호의를 보내는 그들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한참 대련 중일 땐 온 신경을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이렇게 구경꾼이 쌓여있었을 줄이야.
잘된 일이었다.
어차피 독립부대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결국 같은 투마왕의 아래에 있을 이들이니만큼, 그들에게 호의를 사서 나쁠 건 없었었으니까.
“아주 대단하더군.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잘 버텨줄 줄은 몰랐다.”
“…과찬입니다.”
“으하하하! 과찬이라니, 겸손하기까지 하구만. 재능도 확실하고, 인물도 좋고. 아쉽구만, 아쉬워. 나한테 딸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콱 묶어버렸을 텐데 말이야.”
그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 우악스러운 손으로 내 등을 팡팡 내리쳤다.
“큽….”
빌어먹을, 환자에 대한 대우는 영 아니군.
“스읍… 아무리 봐도 남 주기는 너무 아까운 인재란 말이지.”
마왕은 침음을 흘리며 탐욕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천천히 나를 훑었다.
“자네 혹시 독립부대로 들어오지 말고, 아예 내 옆에 서볼 생각은 없나?”
“…예?”
“아, 악투스 님! 그건….”
나는 이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파격적인 제안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멍하니 깜빡였다.
자기 옆에 서볼 생각이 없냐니.
그 말은 즉, 자신의 사천왕.
그중에서도 꼭대기에 올라보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그런 얘기를 다른 곳도 아니고 제 부하들이 저를 따라 모인 장소에서 서슴없이 내뱉다니.
그마저도 내가 지금 한참이나 그에 못 미친다는 걸 생각해보면, 대놓고 나를 키워주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이거 혹시라도 다른 발록들한테 시작도 전에 미운털이 박혀버린 건 아닐까 모르겠군.
“하하하! 벨룸, 들었나? 저 꼬맹이가 네 자리를 꿰차려는 모양이야.”
“저놈이 그 정도란 말이야?”
“악투스 님의 눈이 틀릴 리가 없으니, 적어도 그만큼은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거겠지. 중간에 죽어 자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그렇게 되면 벨룸보단 달란, 네가 더 문제 아닌가? 저 녀석이 내 위로 올라오면 다들 한 자리씩 밀리는 셈이니까, 가장 약한 네가 사천왕 자리를 내려놔야겠지.”
“뭐, 뭐? 지금 누가 제일 약하다고? 이 자식이… 지금 여기서 한 번 붙어볼래?”
슬쩍 언뜻 익숙한 얼굴들이 섞여 있는 무리를 살펴보니, 생각 외로 반응이 그리 나쁘진 않은 거 같아 다행이었다.
하긴 이 전쟁광 놈들이 고작 그런 거에 질투할 녀석들은 아니긴 하지.
“제안은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독립부대를 바란 이유가 따로 있으니 말입니다.”
나는 마왕을 향해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자칫 굉장히 무례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빙빙 돌려서 말하느라 괜한 여지를 남기는 것보단 이렇게 확실히 끊는 쪽이 더 나았다.
어차피 이런다고 그가 이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으흠, 그런가. 조금 아쉽구만.”
“허억, 헉… 에릭! 치료사를 데려왔다. 어서 이리로 와 보거라!”
내 거절에 쩝 입맛을 다신 마왕은, 급하게 달려오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는 카렌을 보고선 천천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나는 가볼 테니, 오늘은 이만 푹 쉬도록.”
“…오늘은?”
그리고 그녀가 대동하고 온 치료사를 흘끗 살피고선, 씨익 미소를 지으며 청천벽력 같은 소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래야 내일도 이렇게 대련할 수 있지 않겠나! 으하하하!”
“예, 예?”
나는 말이 내일이지 실상 출정식 전날까지 매일매일 대련할 생각이 가득 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능력치는 그만큼 훌쩍 올릴 수 있을 테지만… 이걸 좋아해야 되나 모르겠군.
“씁….”
“에릭, 가만히 좀 있어라. 지금 연고를 바르는 중이지 않느냐.”
난 금방 치료사가 건네준 연고를 받아들고선 직접 상처에 발라주고 있는 카렌을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거 과연 사지 멀쩡히 전쟁에 참여할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