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그 반푼이 놈이 사라지다니!”
“죄, 죄송합니다!”
원대한 계획을 위해 시종으로 위장해 가이오스가의 저택으로 들어온 지도 어느덧 10년.
온건파의 거두 중 하나인 카른의 명을 받아 에릭을 감시하고 있던 남자는, 그동안 잠잠하더니 갑작스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녀석을 떠올리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런 무능한 녀석들, 그런 애송이 하나 감시하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다니! 빌어먹을, 이제 거사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이런 변수가….”
그는 악귀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제 상관을 보고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일을 처리하는 것에 있어 극도로 신중하고 또 조심스러운 그는, 조금이라도 계획이 틀어져버리면 제 측근이라도 엄중히 죄를 물어 칼 같이 쳐내기로 유명한 인사였다.
하물며 꼬맹이 감시나 맡고 있던 자기는 어떻겠는가.
일이 잘못되면 도대체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다.
그나마 이 목 하나만으로 끝날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겠지.
“당장, 무슨 수를 써서든 그놈 찾아내! 어디로 갔는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건지 낱낱이 밝혀 보고하도록!”
“예, 예! 알겠습니다!”
남자는 곧장 창을 통해 바깥으로 나와, 곳곳에 몸을 숨긴 채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부하들을 살폈다.
“저… 조, 조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망할 반푼이 녀석.
도대체 무슨 수로 우리의 눈을 속인 거지?
창부터 복도 그리고 혹시 몰라 울타리 한쪽이 훤히 보이는 자리까지.
아무리 그간 조금 해이해져 있었다고는 해도, 세 명씩 돌아가며 빈틈없이 감시망을 펼치고 있었는데…
“…지금 당장 녀석을 쫓는다.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내라 하셨으니, 지금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
“그럼 죽여도 되는 건가?”
그는 시퍼렇게 날이 선 무기 손질하며 조용히 입을 여는 부하를 보고선, 잠시 고민하다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반항한다면 힘줄 정도는 끊어도 좋다. 그 정도야 피 좀 먹이면 금방 다시 붙을 테니까. 예전이랑 달리 이젠 주는 대로 덥석덥석 마신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남자는 주변을 슥 둘러보며 흔적이 남은 곳을 찾아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아무리 놈이 이번에 정찰대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전장에서의 얘기였다.
그에 반해 이쪽은 누군가를 감시하고 추적하며 그 흔적을 지우는데 특화된 전문가.
“…찾았다.”
뭣 모르는 애송이 하나 쫓는 거쯤이야, 닭 모가지를 비트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이쪽 개구멍을 통해서 나갔다! 서둘러!”
금방 녀석의 족적을 발견한 그는, 곧장 부하들과 함께 저택을 빠져나갔다.
뼈아픈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그리고 살기 위해서.
* * *
“음. 이쯤이 적당하겠군.”
서큐버스를 쫓아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선 나는, 곧 중앙을 가로지르는 강물을 보고선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아무리 저택에서 들키지 않고 빠져나왔다고 한들,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곧 내가 사라졌음을 알아차리고 추적조를 보내올 터였다.
부스럭-
나는 잔뜩 짓이겨놓은 약초가 든 주머니를 꺼내, 강물을 건너 사방에 흩뿌렸다.
설마하니 온건파의 거두씩이나 된다는 놈이 어중이떠중이만 모아서 보낼 리는 없으니, 가능한 놈들을 찢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러는 동안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서큐버스가 좀 멀어지긴 하겠지만, 탁 트인 하늘 위를 날고 있으니만큼 다시 녀석을 찾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마침 날도 거의 꽉 찬 보름달이 떠올라있었으니까.
“흐으, 냄새 한 번 고약하군.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야.”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마지막으로 주머니를 강물에 떠내려 보낸 나는, 슬슬 박쥐화를 통해 흩어져 날아올랐다.
이제 남은 건 갑자기 뚝 끊겨버린 흔적에 당황하며 갈라질 놈들을, 쫓아오는 순서대로 하나씩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되도록 맛있는 놈들이 오면 좋겠군.”
난 곧 오랜만에 누군가를 흡혈할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운이 좋으면 능력치도 썩 괜찮게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지금쯤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고 있을 추적조를 떠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 *
부하들과 함께 흔적을 쫓아 움직이던 남자는,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코를 찌르는 역한 쓴내 때문에 기껏 쫓고 있던 체취가 완전히 지워지고, 갑작스레 족적이 없어져버렸다.
별 무리 없이 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중간에 완벽하게 사라진 흔적에, 하는 수없이 인원을 나눠야만 했다.
“젠장… 이 망할 반푼이 자식이!”
굴욕이었다.
고작해야 검이나 좀 휘둘렀을 도련님 하나 제대로 쫓지 못하다니.
“조장님, 이렇게 세 명씩 찢어져도 괜찮은 겁니까? 나무를 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로 봐선 아무래도 박쥐화까지 익힌 거 같은데. 그 정도면 못해도 둘째 이상이잖습니까.”
심지어 발자국 같은 건 진즉에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거기까지 우리가 편하게 쫓을 수 있게끔 그리 선명하게 찍고 갔다는 건, 그놈이 일부러 우리를 불러들였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도발.
설마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겁쟁이처럼 돌아가진 않겠지 하고 우릴 시험하는 꼴이었다.
“…일단 놈을 찾는 게 우선이다. 그러고 나면 아까 얘기했던 대로 한 명은 다른 방향으로 간 녀석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 놈들을 불러오고, 나머지는 녀석들이 합류하는 동안 들키지 않게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서 목표를 추적한다.”
확실히 그 반푼이의 수준이 설마 박쥐화까지 가능한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아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드는 독과 암기에는 무력한 법이었으니까.
“조, 조장! 저쪽에!”
“음?”
그렇게 흔적이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이동하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는 저 하늘 위를 가리키는 부하의 손짓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서큐버스?”
그는 이 늦은 새벽에 홀로 날아다니고 있는 여몽마를 보고선, 잠시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런 빌어먹을!”
이내 상황을 파악한 남자는 입술을 꾹 깨물며, 서큐버스를 쫓아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목표를 찾았다. 케레스, 네가 빠지도록!”
“…예? 아, 알겠습니다!”
그는 곧장 다른 조원들을 찾아 몸을 돌리는 부하를 보며, 품에서 암기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조장, 도대체 그놈이 어디 있다는 거야?”
“…그분께서 워낙 조심스러운 편이시라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으셔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거사를 치르기 위해 은밀히 통하는 심부름꾼이 있다고 들었다. 그놈이 어디서 얘기를 들었는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그걸 노리고 있는 모양이야.”
“뭐? 그럼 재수 없으면 다 들킬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남자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는 또 다른 부하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말마따나, 상황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거사가 물거품이 되는 수준이 아니라, 죄다 목이 잘려나갈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계획이 바뀌었다. 제압이 아니라 죽여서라도 놈을 막는다.”
“흐흐, 우리 도련님 불쌍해서 어떡한대. 그러니까 쓸데없이 깊게 파고들지 말았어야지. 어쨌든 저 서큐버스 근처에 있을 놈을 찾으면 바로 죽여도 된다는 거지?”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이며 샅샅이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시체를 잘 처리한다고 해도, 공작가의 자제가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당분간 가문의 경계가 삼엄해질 터였다.
어쩌면 그 때문에 거사에 방해가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걸 감수하더라도, 지금 녀석이 하려는 것만큼은 꼭 막아야했다.
혹시나 계획이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푹-
“컥….”
“잡생각이 많군. 누굴 쫓을 땐 그거 하나에만 집중했어야지.”
그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떨리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 어떻게….”
분명 이 근처는 다 확인했을 텐데.
남자는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단검을 보고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뒤를 잡은 뱀파이어를 돌아봤다.
콱-
“그, 으으….”
그는 곧 자신의 목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살갗을 찢고 박히는 느낌과 함께, 힘없이 몸뚱이를 축 늘어뜨렸다.
* * *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기습으로 쓰러트렸습니다.]
[민첩이 ‘1’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나는 한순간에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씨익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 조장! 너, 너 이 빌어먹을 반푼이 자식이!”
“후우….”
[숙련된 암살자, ‘아흐만 베델’을 흡혈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민첩이 ‘3’증가합니다.]
달콤해.
난 순식간에 미라처럼 말라버린 시체를 내던지며, 입가에 묻은 피를 슥 닦았다.
오랜만의 흡혈이라 그런지 만족감이 장난 아니었다.
이러다 중독되겠어.
“죽어!”
나는 제 상관의 죽음에 분노하며 달려드는 고블린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렇게 성정이 불같은 녀석이 어떻게 추적조에 낀 건지.
쐐액-
녀석이 던진 표창을 가볍게 피해낸 나는, 곧장 다리에 마력을 불어넣고선 땅을 박찼다.
“젠장… 이거나 먹어라!”
“음?”
후웅-
난 눈 깜짝할 새에 제 코앞에 다다른 나를 향해 자연스럽게 몸을 빼며 품에서 무언가를 던지는 놈을 보고선, 나지막이 감탄을 내뱉었다.
알 수 없는 보라색 액체가 가득 든 유리병이라.
독인가?
핏-
쨍그랑-!
나는 이어서 날아든 무언가에 산산조각 나는 유리병을 보고선, 박쥐로 변해 녀석의 뒤를 잡았다.
치이익-
“이런 제기랄!”
“미안하군. 애써 준비한 걸 텐데 말이야.”
“흐억! 어, 어느 틈에….”
콱-
처음에 그 어리숙해보이던 반응치고는 꽤 날카로운 공격이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난 녀석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 넣고는, 불붙은 갈증을 조금이나마 씻어 내렸다.
“커, 커어….”
[훌륭한 고블린, ‘고브락’을 흡혈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민첩이 ‘1’증가합니다.]
툭-
나는 말라붙은 두 시체의 품에서 갈색 구슬 같은 걸 찾아 꺼내고선, 적당히 땅을 파서 놈들을 묻어주었다.
아까 보니까 중간 중간 이걸 바닥에 떨어트리던가.
아무래도 저들끼리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쓰는 물건인 모양이었다.
“음, 아주 좋아.”
난 주머니에 한가득 담긴 구슬을 하나씩 바닥에 떨구며, 다시금 서큐버스를 따라 움직였다.
이러면 남은 녀석들도 금방 알아서 찾아와주겠지.
저들이 덫에 걸린 지도 모른 채, 마치 불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