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39화 (39/200)

제39화

“져, 졌습니다….”

나는 제 목을 겨눈 날에 패배를 시인하는 중년의 기사를 보며, 이만 검을 거두고서 자리로 돌아갔다.

“후우….”

가문으로 돌아온 지도 어느덧 두 달.

여느 때처럼 수련장에서 기사들과 대련을 마친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승리를 이루어내셨습니다.]

[힘이 ‘1’ 증가합니다.]

[민첩이 ‘1’ 증가합니다.]

[체력이 ‘1’ 증가합니다.]

난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과연 공작가의 기사라는 직위는 허투루 딴 게 아니었는지, 다들 실력이 출중한 편이라 가끔씩 이렇게 능력치를 올려주고는 했다.

덕분에 전장에서 구르고 누군가를 흡혈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그간 꽤나 쏠쏠하게 강해질 수 있었다.

[에릭 가이오스]

[뱀파이어]

[레벨 : 26]

[힘 : 102] [민첩 : 89][체력 : 99][마력 : 61]

어느새 힘은 세 자리를 넘겼고, 체력 또한 100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정도면 사천왕만큼은 아니더라도, 전력을 다한다면 그들의 친위대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상 그들도 말이 친위대지, 강함으로 따지자면 천인장을 넘어 일국의 장군과도 겨루어볼 수 있을 정도의 괴물들이 모인 곳이었다.

이 모든 게 처음 그 비루했던 몸뚱이에 들어온 지 일 년도 안 돼서 이루어낸 성과라니.

내가 해낸 거지만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이었다.

“에릭 도련님, 고생하셨습니다!”

“벌써 수석기사님들과도 겨루실 수 있을 정도시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음, 그래. 다들 수고했다.”

나는 밝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오는 기사들을 보고선, 조용히 인사를 받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두 달간 꾸준히 단련하고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준 덕일까.

드디어 최근 몇몇을 제외하고는, 저택의 시종들을 포함해 가문의 어르신들까지 모두 나를 가문의 공자로서 인정해주고 있었다.

물론 주전파 내부에서 무슨 얘기라도 있었는지, 공작이 직접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줬던 게 가장 크긴 했지만 말이다.

“허허, 도련님. 이젠 아주 인기 만점이시군요.”

“알바크.”

나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슬쩍 나를 따라 밖으로 나오는 기사단장을 보고선, 잠시 저택으로 돌아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자리를 옮겼다.

평소 근무시간에는 공작의 부름이 있지 않고서야 수련장을 나서지 않는 그가 굳이 이렇게 따로 말을 붙여오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무언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일인가.”

난 꽤 구석까지 들어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선,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도련님. 이 늙은이가 한평생 검만 보고 살아와 말재주가 없으니, 구태여 돌리지 않고 직접 말하겠습니다.”

나는 꽤 심각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운을 떼는 그를 보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 거지.

“혹시 공작위를 이으실 생각입니까?”

“…뭐?”

난 너무 갑작스럽고 터무니없는 알바크의 말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공작위를 잇는다고?

자칫 누가 들으면 진위여부는 둘째치더라도, 그 얘기가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껏 지난 두 달 동안 모아온 신뢰의 태반이 깨져나갈 정도로 민감한 주제였다.

아무리 내가 지금 가문 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쌓았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가문의 적자로서 인정을 받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만일 여기서 내가 후계 싸움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한다면…

꿀꺽-

단순히 가문 사람을 모시는 것과, 후계 싸움에 연줄을 대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자신이 붙잡고 있던 사람이 떨어진다면 가지고 있던 모든 걸 잃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물며 그런 걸 이미 첫째와 둘째의 대립이 팽팽한 상황에서, 아무런 지지기반도 없던 셋째가 갑자기 중간에 끼어든다?

차라리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냥 미쳤거니 하고 넘기겠지만, 문제는 지금 마룡왕이 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쫙 퍼져있는 상태라는 거였다.

첫째와 둘째, 그리고 그들을 밀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선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뿐만 아니라 가문사람이 아닌 타인, 그것도 다른 종족의 힘을 끌어들여 어떻게 해보려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정말 끝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남는 시간 동안 가문으로 돌아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단순히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마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투기장이라도 돌아다니는 편이 더 나았을 거다.

어디까지나 훗날 가문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 지금 이렇게 조금이라도 더 입지를 다져놓으려고 하는 거였다.

가능하면 내 복수에 방해가 될 온건파의 세력도 조금 덜어내고 말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한 건가.”

나는 이 청천벽력 같은 대체 왜 나온 것인지.

혹시 누군가 눈앞의 노기사를 시켜 나를 함정에 빠트리려고 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몇 번을 둘러봐도 누가 숨어있는 거 같진 않은데.

“요새 젊은 기사와 견습들이 이상할 정도로 도련님을 잘 따르는 거 같아서 말이지요. 물론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수가 이제 가문 내에서도 쉬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가 됐으니, 아무래도 노파심에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더군요.”

“…그게 전부인가?”

단순히 노인의 걱정일 뿐이었나.

난 생각보다 별 거 아닌 이유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물론 이유가 그것 뿐만은 아닙니다.”

“음?”

그렇게 이만 저택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조심스레 뒷말을 꺼내는 그를 보고선,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실은 최근에 가문의 몇몇 어르신들 입에서, 도련님께서 공작위를 노리고 계신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 가뜩이나 곧 있을 전쟁에 대비해야 되는 때에 그렇지 않아도 가문이 어수선한데, 혹여 정말로 도련님께서도 그런 생각을 품고 계신다면….”

…하마터면 당할 뻔했군.

나는 슬며시 눈을 좁히는 알바크의 의미심장한 말에 나지막이 침음을 흘리며,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어쩐지 지금껏 조용하다 싶더라니, 뒤에서 이런 수작을 부릴 준비를 하고 있었나.

이건 보나마나 내 숙부, 정확히는 가문 내에 있는 온건파들이 꾸민 짓인 게 틀림없었다.

아마 그 가문의 어르신이라는 놈들이 바로 그 온건파들이겠지.

만일 내가 자의든 타의로든 후계 싸움에 끼어들게 된다면 대부분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나를 멀리하고 경쟁자로 여기겠지만, 그중에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고 밧줄을 넘길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올라가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아직 가진 게 없는 자들.

자신이 미는 쪽이 후계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크게 얻을 게 없는 이들.

대표적으로 눈앞의 노인이 노파심에 얘기를 꺼냈던, 가문의 젊은 기사들이 있었다.

마룡왕이 밀어주는 젊은 영웅.

거기에 반년 만에 그만큼 재능을 꽃피운 걸로도 모자라, 지금도 수련장에서 하나씩 베테랑 기사들을 꺾어나가며 기어코 수석기사들과도 검을 맞댄 희대의 천재.

아직은 많이 부족하긴 해도 당장에 현 공작의 자리가 위태로운 것도 아니고, 시간이야 앞으로 충분하니 한 번 걸어볼만 하다고 느낄 테지.

문제는 그렇게 갈라진다고 해도 내 쪽으로 넘어오는 건, 전부 첫째인 알렌의 아래에 있던 이들뿐일 것이라는 거였다.

어디까지나 나는 주전파의 얼굴 마담이니만큼, 온건파에선 넘어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도련님. 부디 이 노구의 걱정을 덜어주시겠습니까?”

난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그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군.”

“아… 그거 참, 다행이군요.”

나는 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한결 인상을 펴는 알바크를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예. 이 늙은이의 고집에 어울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난 곧장 그의 옆을 지나쳐, 공작의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숙부를 몰아낼 수 있을지, 그의 약점을 찾는데 정신이 팔려서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찮게라도 그런 같잖은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멍청하게 가만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알프레드.”

“아, 에릭 도련님. 오늘도 수련을 마치고 오시는 길이십니까? 헌데… 땀이 좀 식으셨군요.”

“그냥 간만에 바람 좀 쐬다 들어왔네. 그보다 아버지께선 지금 안에 계시나?”

“예, 계시긴 합니다만….”

나는 집무실 앞에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집사장을 보며, 슬쩍 그 뒤쪽에 굳게 닫혀있는 문을 향해 눈을 돌렸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똑똑-

난 여전히 눈치 좋게 내 시선을 캐치하고선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그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공작님, 에릭 도련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어 오거라.”

끼익-

나는 잠시 뒤 안에서 떨어진 허락에 천천히 문을 열고 그 옆에 선 알프레드를 지나, 오늘도 한가득 쌓인 서류를 바삐 처리하고 있는 아비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이냐.”

난 잠시 펜을 내려놓고서 나를 바라보는 그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새 가문 내에서 저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들었습니다.”

“…소문?”

나는 다행히 아직 공작의 귀에 들어가진 않았는지,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깜빡이는 그의 모습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문의 몇몇 어르신들 사이에서, 제가 후계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더군요.”

“뭐라?”

카발은 갑자기 자신을 찾아와서 후계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내 모습이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터트리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래, 난데없이 그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냐. 너도 후계 싸움에 끼어들고 싶다, 뭐 그런 게냐?”

난 제 미간을 꾹꾹 누르며 살짝 불쾌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조용히 입을 여는 그를 보고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반대입니다. 전 후계 싸움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또 어떨지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부디 아버지께서 이를 가문사람들에게 확실히 못박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으음….”

카발은 내 대답에 잠시 곰곰이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확실히, 그리 해야 할 필요가 있겠구나. 알았으니 이만 물러가 보거라.”

“예.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난 퍽 만족스러운 대답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집무실을 나섰다.

온건파 놈들, 너희들이 무슨 수를 쓰던 결코 마음대로는 안 될 거다.

그러고 보니 이제 그것도 슬슬 때가 됐던가.

나는 빠르면 모레쯤 잠깐 멀리 나갔다 오게 되리라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가 미리 채비를 마쳤다.

카른, 드디어 그놈의 목을 조를 증거를 구하러 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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