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이, 이 배신자 자식… 아아아악!”
팔이 걸레짝처럼 찌부러진 남자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도시의 거리에서 두 번 꺾여 들어간 골목에 있는 작은 공터에는, 이미 십수 명에 달하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배신자라니. 말이 너무 심하군. 저 녀석은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야. 뒷골목의 의리니 뭐니, 그런 것도 다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지. 안 그런가?”
녀석은 죽어가는 몸으로 어느 한쪽을 노려보며 거칠어진 숨을 훅훅 내쉬었다.
나는 놈이 시선이 향한 곳에 등을 돌리고 쭈그려 앉아 두 귀를 틀어막고 있는 고블린의 모습을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죄,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만….”
이미 제가 있던 곳에서도 저를 제외한 무리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 걸로 모자라,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팔아넘긴 동료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광경을 목격한 녀석은 결국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자, 그럼. 둘 중에 누가 정보길드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했지?”
“저, 접니다!”
“제가,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난 시뻘겋게 물든 공터에 둘이 남은 지원자들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둘 다 같이 가도록 하지.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어느 쪽으로 가면 되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도록. 혹시라도 나를 속이려고 들었다가 네놈들 손가락이 다른 방향으로 가는 순간….”
“소, 속이다뇨! 헤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절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음, 좋아.”
나는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두 오크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거기, 너는 이제 돌아가 보도록.”
“…합니다. 잘못했… 아,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난 이쪽을 향해 연신 허리를 숙이고선 황급히 달아나는 약아빠진 고블린을 보며, 품에서 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 중 한 놈에게 빼앗았던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그럼 우리도 슬슬 출발하지.”
“예, 예! 알겠… 흡!”
“쉿.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니까?”
“읍… 읍.”
나는 드디어 정보길드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줄 녀석들을 따라 천천히 공터를 나서며, 그들 모르게 어느새 저 반대쪽 골목 끝까지 도망친 고블린을 향해 손에 쥔 단검을 내던졌다.
푹-
예민해진 청각에 쇠붙이가 살갗을 뚫고 틀어박히는 소리가 잡혔다.
이어지는 비명이 없는 걸 보아하니, 확실하게 죽은 듯했다.
살기 위해 제 동료를 배신하고 팔아넘긴 녀석을 그냥 보내줄 수는 없었다.
그런 놈이라면 분명 어디 가서 내 얘기를 떠벌리고 다닐 테니까.
아무리 로브로 모습을 가렸다고 한들, 지금 이 두 오크들처럼 가까이 붙어서 길을 안내받았으니 혹시나 도중에 내 얼굴을 봤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너무 그렇게 떨지 마라. 제대로 도착만 한다면 확인하고 바로 풀어줄 테니. 아까 그 고블린 놈처럼 말이야.”
난 내 말에 살짝 얼굴에 화색이 도는 녀석들을 보며, 속으로 큭큭 그들을 비웃었다.
아까 정말로 그놈을 얌전히 보내주는 모습을 본 덕일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은 모양이었다.
이놈들도 그렇고 전에 그놈도 그렇고, 어찌 이리 하나같이 똑같은지.
물론 풀어주기야 할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살려준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 * *
“여긴가?”
두 오크의 안내를 받아 조금 후미진 골목 안에 있는 작은 주점 앞에 도착한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주억이는 놈들을 보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딸랑-
“어서 오십시오.”
이상하군.
별로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술집 같은데.
혹시 여기서 따로 길드원을 접선한다던가, 아니면 어디 지하로 이어지는 공간이라도 있는 걸까.
잠시 안쪽을 슥슥 살펴본 나는, 일단 자세한 건 들어가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음?”
그렇게 두 녀석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저항하는 놈들을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봐라.
반응을 보니까 확실히 여기 뭐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놓아줄 수는 없는 노릇.
여기까지 왔으면 책임지고 끝까지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들어와라.”
“제, 제발 그것만은… 아, 안내해드렸잖습니까!”
“정말 안 됩니다! 저희 여기 들어가면 죽습니다! 빨리, 빨리 이거 놓아주십시오! 이러다 자칫 걸리기라도 하면….”
“바깥이 소란스럽군요. 손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난 계속 문을 붙잡고 선 채로 들어오지 않자 직접 여기까지 나온 바텐더를 보고선, 그저 가만히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나도 들어가고 싶은데 말이야. 이 친구들이 도저히 그럴 수 없다더군.”
“호오… 그렇습니까? 어디 보자. 아, 페렌이 데리고 다니던 아이들이로군요.”
“아, 아아….”
“히익….”
그는 끈질기게 문밖에서 버티고 서있던 두 오크를 발견하고선,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들어오시지요.”
“사, 살려….”
“제발,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어서, 들어오시지요.”
그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연거푸 고개를 저었지만, 말없이 계속 자신들을 바라보는 바텐더의 모습에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으로 힘없이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개 같은 자식… 분명 풀어준다고 했잖아!”
“정확히는 확인하고 풀어준다고 했었지.”
“젠장… 젠장! 죽을 거야… 우린 죽을 거라고! 읍! 으읍!”
“가게 내에서 소란 피우지 마십시오.”
나는 이를 갈며 욕지거리를 잔뜩 뱉어대는 두 녀석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구석으로 치우는 직원들을 보고선,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헌데 손님. 보아하니 술을 찾으려고 주점에 오신 건 아닌 거 같군요.”
“그랬으면 굳이 이렇게 찾기 힘들고 사람도 없는 곳을 올 필요가 없었겠지.”
난 다시 자리로 돌아가 잔을 닦는 바텐더를 보며, 메뉴판을 치우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금 조용한 곳에서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사람이 없으니 이곳도 충분히 조용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리가. 아래에 돌아다니고 있는 쥐새끼가 이렇게 많은데 말이야.”
으직-
“흐어억! 컥, 컥….”
나는 아까부터 이 나무 바닥 아래를 돌아다니며 이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던 녀석의 목을 콱 붙잡아 들어 올렸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손님.”
“말했지 않나. 조용한 곳에서 얘기를 좀 나누고 싶다고.”
“켁, 케엑….”
난 방금 전에 오크 두 녀석을 대할 때와는 달리 인상을 찌푸리며 나와 내 손에 들린 녀석을 살피는 그의 모습에, 목을 움켜쥔 손에 살살 힘을 주었다.
“들여보내.”
“커흑… 쿨럭! 허으으….”
나는 부서진 바닥 아래에서 들려온 귀를 간질이는 미성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손을 놓았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음.”
난 곧 몸을 돌려 구석에 있는 주방으로 들어가는 바텐더를 따라,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 아래로 내려가시면 되겠습니다.”
“고맙군. 아, 이건 바닥 수리비로 쓰게.”
짤랑-
나는 주머니에서 은화 열 장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 주고선, 주방 안쪽 바닥에 뚫린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이후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임프의 안내를 받아, 생각보다 꽤 널찍한 지하 내부를 돌아다녔다.
이 정도면 번화가 아래로는 다 이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는데.
역시 공작 가문이 다스리는 땅이라 그런지, 음지의 규모도 장난이 아닌 모양이었다.
덕분에 내가 원하는 정보가 없으리란 걱정은 굳었군.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난 아까 계단이 있던 곳에서 꽤 멀찍이 떨어진 방 앞에 걸음을 멈추는 안내인을 보며, 고개를 주억이고선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끼익-
한 수십 명은 거뜬히 누울 수 있는 커다란 공간에,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명화들.
나는 과연 이 거대한 지하도시에서 마음대로 손님을 들일 수 있을 만큼 부유한 방 안을 둘러보며, 나지막이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어서 와.”
잠시 가만히 서서 안쪽을 구경하고 있던 난, 방금 주점에서 들었던 미성과 같은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이리로 와서 앉지 그래?”
몽마.
나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꽤나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7대 종족의 일원을 보고선,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왜 뱀파이어의 땅에 몽마가 음지를 주름잡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나야 원하는 정보만 얻을 수 있다면야 그게 누구는 딱히 상관없었다.
“그래서. 우리 공자님은 무슨 일로 밖을 그렇게 여기저기 들쑤시면서까지 우리를 찾은 걸까?”
그녀를 마주 보고 앉은 나는 순간 훅 풍겨오는 달콤한 내음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그 주점 아래로 제 목소리를 보냈다는 것부터 보통은 아닐 거라 짐작은 했지만, 눈앞의 몽마는 생각보다 훨씬 수준 높은 강자였다.
바로 위에 도시가 있는 만큼 도망이야 치지 못할 건 없었지만, 지금 내 몸뚱이로는 아무리 기술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는 정도였다.
이거야 원, 정보길드 사람이 아니라 어디 군에서 한가락 하는 장군이라도 해도 믿겠군.
“이상하군. 어디 얼굴이 팔릴 정도로 밖을 돌아다닌 적은 없는데 말이야.”
“후후. 지금 시험하는 거야? 어떻게 몰라볼 수가 있겠어. 이번 정찰대의 주역을 말이야. 그것도 마룡왕께서 직접 밀어주는 화제의 인물인데.”
과연, 그래도 정보길드라는 이름값은 한다는 건가.
나는 단박에 나를 알아보고선 조용히 미소 짓는 그녀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긴말할 필요 없겠군. 정보를 사고 싶다.”
“흐응… 어떤 정보?”
“카른 가이오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그건, 좀 곤란한데. 아무리 우리라도 그 양반에 대한 정보를 파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말이야.”
난 숙부의 이름을 꺼내기가 무섭게 제 고운 인상을 찌푸리는 몽마의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저만한 실력자가 저렇게까지 반응하는 걸 보아하니, 확실히 뭔가 써먹을 만한 정보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짤그랑-
“이 정도면 위험 부담을 짊어질 값으로 충분한가?”
나는 품에서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를 꺼내 탁자에 올리며, 다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어머….”
수북이 쌓인 황금의 향연에, 순간 몽마의 눈에 탐욕이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