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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24화 (24/200)

제24화

“…원하는 게 뭔가요.”

“크게 어렵지 않아. 그저 네가 알고 있는 엘프들의 위치만 조금 가르쳐주면 돼. 숲밖에 나와 있는 놈들 중에서 말이야.”

나는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인 에리안을 향해 별것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 저한테… 동족을 배신, 하라는 건가요?”

그녀는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꾹꾹 눌린 목소리를 겨우겨우 내었다.

하지만 딱 그것뿐.

바로 앞에 서있는 나를 향해 팔을 휘두르지도, 차마 욕지거리도 내뱉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여기서 죽어버릴지도 모를 노릇이었으니까.

그러면 그 때문에 자신의 언니는 차마 돌이키지 못할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리라.

“배신이라니, 그게 아니지. 넌 그저 협박에 못 이겨 저도 모르게 위치를 불었을 뿐이다. 직접 가서 미간에 화살을 박은 것도, 스스로 원해서 팔아넘긴 것도 아니야.”

“큭… 그, 그게….”

그게 배신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결국 자신의 입으로 이 위험한 녀석에게 동족의 위치를 넘기는 건, 제 손으로 동료들을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못하겠다는 건가?”

나는 이제 와서 망설이는 에리안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다, 카렌에게 눈짓을 주었다.

찰캉-

“컥… 허, 흐으… 케헥….”

힘껏 잡아당긴 사슬에 목줄이 당겨진 그녀는, 괴로워하며 제 목을 조이고 있는 사슬을 어떻게든 풀어보려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만, 됐어.”

“…번거롭군. 그냥 죽여 버리면 안 되는 건가, 에릭?”

카렌은 곧 숨이 넘어갈 듯 입가로 침을 질질 흘리며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에리안을 마땅찮은 눈빛으로 흘겼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젓는 나를 보고선, 결국 혀를 차며 꽉 잡아당기고 있던 사슬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히이이… 허윽… 흐… 하, 할게요. 할게….”

얼굴이 눈물이고 콧물이고 침이고 제 분비물로 범벅이 된 에리안은, 그제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왔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야. 솔직히 제 발로 나왔던 쫓겨났던, 숲 밖에 있는 엘프 몇 명 따위가 네 목숨하고 네 언니에 비해서 그리 중요한 건 아니잖아?”

“그, 그렇죠. 맞아요. 어머니의 품을 나온 뛰쳐나온 녀석들 따위, 얼마가 됐든 언니에 비해선….”

나는 무어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이는 녀석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좀 말할 준비가 된 거 같군.

“자, 그럼 슬슬 얘기를 좀 들어보도록 하지. 빨리 끝내고 너도 살길을 찾아보자고.”

“아, 알겠어요. 그러니까….”

“…음?”

에리안은 눈을 질끈 감고선 조심스레 입을 열려다, 무언가 좋은 방법이라도 떠올랐는지 슬며시 뜬 눈가에 이채를 띠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그 이후로 그녀의 몸에서 떨림이 잦아든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것 봐라…

“여기서 조금 남쪽으로 가면 에테르 숲이라는 커다란 수림이 하나 있는데, 그 중앙에 마을에서 쫓겨난 엘프 다섯이 모여 살고 있어요.”

“…에테르 숲?”

나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숲의 이름에 와락 인상을 구겼다.

이 빌어먹을 년이…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군.

“네, 네… 아마 제 발로 나온 게 아니라 쫓겨난 애들이니만큼, 숲 생활이 그리웠던 거겠… 아아아아악!”

뿌득-

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내뱉는 발칙한 하이엘프를 보며, 손을 뻗어 그녀의 중지를 꺾어 부러트렸다.

“아흐으윽… 어, 어째서….”

“형님,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건가?”

나는 난데없이 이해할 수 없는 나의 행동을 보고서 고개를 갸웃하는 발라크와 카렌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함정이다. 어디서 거짓말을 해.”

“으흑… 거, 거짓말이라뇨….”

“…그래, 에릭. 어떻게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 건가. 혹시 그 에테르 숲이라는 곳에 대해 따로 아는 거라도 있나?”

알다마다.

나는 카렌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테르 숲.

엘프들의 왕국 엘븐하임이 자리를 잡고 있는 서쪽 숲을 제외하고, 대륙에서 두 번째로 가장 거대한 수림.

아직 마왕군의 본대가 쳐들어오지 않은 지금이라면, 분명 그곳엔 아직 은거 중인 기인이 한 명 있을 터였다.

검귀, 마흐제브.

검성이라 불리는 현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인 가제프의 스승.

그는 마족의 습격으로 중간계가 전란에 빠지자, 수천 명의 가고일들로 이루어진 탐욕의 마왕 마몬의 정찰대를 단신으로 도륙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계속해서 전장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마족들을 베고 다니다가 기어코 마주친 마룡왕 카르카쉬와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은 그는, 이후 연합이 결성되고 나서 황제의 명에 따라 용사들의 검술교관이 된 인물이었다.

일곱 명의 마왕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마룡왕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건지고 돌아왔다는 것만 하더라도 최소 그랜드 마스터급.

지금의 나로서는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괴물이, 지금은 아직 그 숲에 틀어박혀 있을 때였다.

“마흐제브.”

작게 중얼거리듯 내뱉은 내 말에, 에리안의 몸이 움찔거렸다.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그곳에 있다. 너희랑 만나기 전에 한 번 그를 만난 적이 있었지. 그 노인네가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같이 있던 녀석들이 우후죽순으로 썰려나갔다. 못해도 사천왕급 이상의 실력이었어.”

“…그게 정말이십니까, 형님?”

“으음, 사천왕급 이상의 괴물이라. 그럼 이 하찮은 것이 그놈을 이용해서 우리를 죽이려고 들었단 말이로군.”

“그래. 발칙하게도 말이야.”

엘프인 그녀가 어떻게 제국 황가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아는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만일 내가 용사 시절 교관들이 모인 술집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술 취한 그의 넋두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보기 좋게 당할 뻔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전 그런 사람이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짜악-!

“아악! 으흐흑….”

빌어먹을 년.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표정연기 하나 만큼은 제 언니를 쏙 빼닮았군.

난 이후 시뻘겋게 부어오른 그녀의 뺨을 두세 번 더 후려치고 나서야, 간신히 화를 좀 억누를 수 있었다.

“후욱, 후우….”

어쩌면 에테르 숲에 그 쫓겨났다던 엘프들이 정말로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마 그들에게서 마흐제브에 대한 얘기를 들은 거겠지.

그 노인네, 쓸데없는 살생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뭐니 그런 말버릇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아마 엘프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오지 않은 이상, 딱히 그들을 숲에서 내쫒거나 하지 않았으리라.

물론 그것도 마족한테는 포함이 안 되는 얘기였지만 말이다.

“마지막 기회다. 이번엔 허튼 수작부리지 마라.”

나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어들어, 바닥에 쓰러진 그녀의 목 앞에 들이밀었다.

“히익… 아, 알았어요….”

망할 년.

난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그녀의 모습에서 에리스, 그 빌어먹을 자식을 비춰보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기다려라, 에리스.

곧 네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보내줄 테니까.

포장까지 아주 예쁘게 마쳐서 말이야.

* * *

“흐읍! 으흐읍….”

“슬슬 올 때가 된 거 같지. 안 그래?”

나는 한쪽 팔이 꺾여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접혀버린 금발머리 엘프의 입에 재갈을 물린 채, 방 문을 통해 슬쩍 고개를 내밀어 굳게 닫힌 현관을 바라보았다.

똑똑-

“아르핀! 집에 있어?”

곧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아마 이 여인의 애인이자, 같이 엘븐하임의 숲에서 쫓겨난 아르딘이라는 젊은 엘프겠지.

“으으으읍! 읍….”

“쉿. 조용히.”

나는 바깥의 애인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를 내려는 여자의 입을 틀어막고, 녀석이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상하네… 오늘 어디 간다고 한 적이 없었는데. 어? 뭐야, 열려 있잖아? 아르핀!”

나는 천천히 돌아가는 손잡이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끼이익-

“아르핀, 안에 있어?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그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현관을 지나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아르….”

“까꿍?”

“흐아악! 뭐, 뭐야! 누구… 아, 아르핀! 컥!”

나는 보기 좋게 걸려든 녀석의 목을 내려쳐 기절시키고선, 그대로 놈을 데리고 몰래 마을 밖으로 나섰다.

좋아, 이걸로 딱 열 마리인가.

“발라크, 그 동안 별일 없었겠지?”

“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납치한 두 엘프를 데리고 금방 카렌과 발라크가 기다리고 있는 산속으로 들어온 나는, 카렌이 지키고 있는 여덟 명의 엘프와 한 명의 하이엘프 옆에 두 녀석을 내려놓았다.

“허억! 여, 여긴 어디… 아, 아르핀! 괜찮아?”

“으으읍! 흐읍….”

“도대체 무슨 일이… 여, 여긴 대체… 오, 오루스? 오베인? 아… 에, 에리안 님?”

차가운 흙바닥의 감촉에 정신이 들었는지, 아까 기절시켜 데려온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런, 정신이 들었나보군. 이제부터 있을 일은 차라리 기절해있는 편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너, 너 뭐야. 인간? 도대체 우리들을 납치해서 뭘 하려는 거야! 에리안 님! 도와주십시오! 에리안…. 서, 설마….”

그는 에리안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다, 다른 동족들이 전부 붙잡혀 묶여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그녀 혼자만이 멀쩡히 서있는 것을 보고선 무언가를 눈치 챈 듯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닐 거야. 그쵸? 아니죠? 에, 에리안 님….”

하지만 에리안은 그저 고개를 들리며 그의 눈빛을 피할 뿐이었다.

남자는 그 반응에 충격을 먹었는지 목소리를 떨며, 곧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 그럴 리가… 에리안! 어떻게, 어떻게 인간에게 동족을… 이 빌어먹을 년! 배신자! 네가 그러고도 정말 위대한 세계수 어머니의 자식이냐! 이 쓰레기 같은… 컥! 커억….”

“거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만 나불대는군. 그렇지 않나, 에리안?”

나는 그의 목을 짓밟으며,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에리안을 향해 물었다.

대답이 없나.

뭐, 이제 됐어.

“그럼, 수고했다 에리안. 이만 가보도록. 물론 저승에 말이야.”

“…네? 아… 야, 약속이 다르잖아! 분명 동족의 위치를 바치면 살려주겠다고….”

“음? 내가 그런 약속을 했던가?”

“이, 이 빌어먹을….”

서걱-

[레벨이 올랐습니다!]

나는 표정을 악귀처럼 일그러트린 에리안의 목을 잘라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난 분명 살길을 찾아보라고 했지. 살려준다고 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뭐, 못 찾은 본인 잘못이지 어쩌겠어.”

콱-

나는 머리를 잃고 휘청거리는 몸을 붙잡고서, 어깨에 이를 콱 박아 넣었다.

[수호자 지망생 하이엘프, ‘에리안’을 흡혈했습니다.]

[이미 흡혈한 적이 있는 대상이라, 흡혈의 효과가 감소합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민첩이 ‘1’ 증가합니다.]

[마력이 ‘2’ 증가합니다.]

“프흐… 크흐흐….”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슥 닦아내며, 바닥에 놓인 엘프들을 바라봤다.

“히이익… 오, 오지 마!”

“으으읍! 흐으으읍!”

간만에 포식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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