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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흡혈로 무한성장-13화 (13/200)

제13화

“…느낌이 이상해.”

“그래도 참아라. 적어도 일이 끝날 때까진 그대로 있어야 된다.”

나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황갈색 머리를 보고선 인상을 찌푸리는 아이시스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염색을 한지 어느덧 일주일이 다 됐는데도 아직 어색한 모양인지, 틈만 나면 바뀌어버린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저 앞에 마을이 보입니다, 형님.”

“음.”

드디어 도착인가.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마을을 보며, 슬쩍 뒤로 고개를 돌렸다.

형형색색 개성이 넘쳤던 머리카락들은 죄다 갈색 내지 황갈색으로 변해있었다.

물론 따로 탈색은 하지 않았기에 드문드문 본래 머리색이 살짝 남아있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런 것까지 확인할 수는 없으리라.

“아이시스. 작전대로, 알지? 누군가는 수인으로 변장한 너희들이 마을을 덮쳤다는 걸 알려야 하니까 몇 명 정도는 도망치게 두고, 나머지는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는 거다.”

“잔인하게….”

“그래. 살아서 나간 놈들이 내줄 소문이 작게라도 군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하게 학살하도록 해.”

“…응,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아이시스를 보고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마을 쪽은 그녀와 악마족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그동안 나는 나대로 움직여야겠지.

“발라크, 카렌. 따라와라.”

“예, 형님!”

“따라오라니, 어딜 말이냐. 우리도 같이 도와야 되는 것 아닌가?”

“아니, 따로 할 일이 있다.”

싸움이란 건 한쪽만 나선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계획을 위해선 수인 쪽에서도 들고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우선 국경을 넘어야 했다.

어차피 저 작은 마을을 정리하는 것 정도는 저들끼리도 충분할 거다.

아무리 국경에 붙은 마을이라 그럴싸한 방비가 되어있을지라도, 마흔이 넘는 악마족을 상대로 버티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에릭, 하다못해 어디로 가는 건지라도 알려줄 수는 없는 건가?”

“재촉하지 마라, 가보면 아니까. 그보다 슬슬 저번에 사준 로브나 걸쳐라.”

“으… 그거 말인가? 자꾸 펄럭여서 불편한데.”

어차피 입을 거면서 괜히 투덜대긴.

나는 저 언덕 아래에 보이는 한 무리의 수인들을 가리키며, 배낭에서 주섬주섬 로브를 꺼내 뒤집어썼다.

아무래도 국경은 이미 넘어온 모양이었다.

설마 중간에 보였던 그 허름한 임시 초소 같은 게 검문소였던 건가.

하긴 그런 게 제대로 되어있었더라면, 애초에 서로 마을이 털리거나 하는 일도 없었겠지.

“형님, 다 죽입니까?”

“아니. 길 안내할 놈은 살려둬야지. 죽일 놈은 되도록 깔끔하게 죽여라.”

흡혈해야 되니까.

혹시 아는가?

저 중에 꽤 괜찮은 놈이 섞여있어서 능력치 하나라도 얻을 수 있을지.

“너흰 뭐냐!”

로브로 적당히 몸을 가리고서 언덕을 내려가자, 곧 우리를 발견한 놈들이 경계를 취하며 이쪽을 향해 창끝을 세웠다.

분위기 살벌한데.

낯선 사람을 보자마자 바로 무기를 치켜드는 걸 보아하니, 생각보다 이미 서로 감정의 골이 쌓일 대로 쌓인 모양이었다.

아주 좋아.

나는 씨익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전쟁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어이, 멈춰! 정체를… 칫, 설마 인간 놈들인가. 다들 덮쳐!”

녀석들 중 가장 앞에 서있던 놈이 로브 아래의 내 얼굴을 보더니, 곧장 주변 놈들을 시켜 우리를 둘러쌌다.

저 놈이 대장인가.

굳이 살려놓을 거면 좀 끗발 있는 놈이 낫겠지.

“카렌.”

“…이 몸한테 명령하지 마라.”

카렌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곧장 손끝에서 시뻘건 화염을 피워 올렸다.

“뭐, 뭣… 마법사? 그것도 무영창이라니!”

“대, 대장! 어떡해? 도망칠까?”

“젠장… 빌어먹을 인간 녀석들! 저런 위험한 놈들을 국경 밖으로 보내다니, 설마 진짜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인가? 다들 흩어져서 도망쳐라! 어떻게든 살아서 이 사실을 마을에 알려야한다!”

“음?”

나는 금세 머리통만 한 크기로 자란 불덩이를 보자마자 뿔뿔이 흩어지려고 하는 놈들을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무영창 마법이 그렇게 대단한 거였나?

딱히 뭐 어마어마한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끽해야 남들 다 쓰는 화염구를 만들어냈을 뿐인데.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 눈이 높았던 건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용사 시절 근처에 알던 마법사들은 모두 같은 용사 아니면 연합에서도 이름 좀 날리는 놈들이었던가.

그러고 보니 이방인이 마법사로서 전장에 나갈 수 있던 최소 조건도, 무영창으로 마법을 다룰 줄 알 것이었지.

하긴 마왕군과의 최전선에 나가 싸운다는 게 보통 실력 가지고 될 일은 아니었으리라.

콰아앙-!

“흐아아악! 흐으으… 사, 살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불덩이에 맞은 녀석이 활활 타오르며 고통에 울부짖었다.

“아하하하! 더, 더 타올라라!”

“음….”

나는 제 마법이 만들어낸 광경을 보며 무슨 희열이라도 느끼는지, 평소 얌전한 모습과 달리 번뜩이는 눈으로 광소를 터트리는 카렌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오늘 뭘 잘못 먹기라도 한 걸까.

슬쩍 옆을 돌아보니 발라크 또한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고선, 못 봐주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서있었다.

“카, 카르멘!”

“멍청아!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누굴 구할 여유 따윈 없어! 한 놈이라도 살아서 이 사실을 꼭 마을에 알려야 된다! 인간들이 국경에 마법사까지 데리고 왔다고!”

“아으… 허으윽… 히이….”

“카르멘… 크윽… 젠장!”

중간에 자기 동료의 비명을 듣고서 되돌아오려던 녀석이, 눈물을 삼키며 다시 몸을 돌렸다.

이미 시꺼멓게 타버린 팔을 애처롭게 내밀며 누군가 살려주길 바라던 놈은, 그렇게 싸늘한 바닥에 숯덩이가 되어 버려졌다.

“…카렌, 깔끔하게 죽이라고 했을 텐데.”

“뭐가 문제지? 근처에 피 하나 안 튀기고 얼마나 깔끔한가. 게다가 저렇게 처절하게 죽어가는 편이 네가 말하는 계획에 더 도움이 되는 것 아니었나?”

“너….”

…미치겠군.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건지,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론 그녀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확실히 저렇게 산채로 불에 타 죽어가는 동료를 본다면, 복수심도 활활 타오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특히 아까 잠시 등을 돌렸던 그 녀석은 말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아무리 이 용족이 독선적이고 단순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내가 무슨 뜻으로 깔끔하게 죽이라고 한 건지 몰랐을 리가 없었다.

그저, 그동안 내가 자신을 부하처럼 다룬 것에 삐져서 복수한 것이었으리라.

그간 알게 모르게 고고한 용족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을 테지.

그 증거로, 지금 녀석의 입가가 위로 살짝 휘어져 있었다.

“…나중에 보자.”

“읏… 그, 그렇게 협박한다고 누가 겁먹을 성싶더냐!”

나는 빼액 소리를 지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지,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피는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 까짓 거 못 마신만큼 이쪽에서 채우면 되겠지.

마침 슬슬 흡혈의 공포를 잊어간다 싶었는데 잘됐다.

“형님, 어떻게 합니까? 다 잡아올까요?”

“아니, 계획 변경이다. 자기들이 알아서 저렇게 위험인물로 소문을 내주겠다는데 굳이 잡을 필요는 없지. 머리만 잡는다.”

나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어들며, 벌써 저 멀리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는 놈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발이 빠른 놈이군.

난 곧장 녀석이 사라진 방향으로, 다리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바닥을 걷어찼다.

콰앙-!

“허억, 헉….”

마력의 보조를 받아 쏜살같이 튕겨져 나간 나는, 금세 헐떡이며 점차 지쳐가고 있는 녀석의 뒤를 잡을 수 있었다.

본래 지금 내 능력치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용사 시절 쌓아온 기예가 그걸 가능케 했다.

비록 얼마 안 되는 마력일지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잠시 동안은 그 두 배 세 배에 달하는 능력을 보일 수 있었으니까.

쿵-!

“흐억! 어, 어떻게… 분명 아까 그 자리에….”

나는 한순간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나를 보고선 당황한 놈을 향해, 시퍼렇게 날이 선 검을 휘둘렀다.

쩌억-

“으, 흐아아아악!”

“…쯧.”

팔을 자를 생각으로 내리쳤건만, 녀석이 입고 있던 체인 메일이 생각보다 단단했던 탓인지 중간에 검이 걸리고 말았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기형적으로 꺾여버린 팔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듯했지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을 끝내고나면 괜찮은 무기라도 하나 구해야 할 것 같았다.

“흐으으… 아흐으윽….”

“사내자식이 팔 하나 부러진 걸로 엄살 피우지 마라.”

“아윽!”

나는 결국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은 녀석을 보며, 그대로 부러진 팔을 잡아서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근처에 마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그, 그런 걸 말할 리가….”

쯔즈즉-

퓻-

“아… 아아아아악!”

“그러지 않으면 남은 팔다리도 전부 이렇게 만들어주지.”

부러진 팔을 그대로 잡아당겨 찢어버린 나는, 눈물콧물을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진 놈의 눈앞에 떨어져나간 팔을 흔들었다.

“이제 좀 안내할 마음이 생겼나?”

“히익, 히이이….”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를 일으켜주었다.

고통 때문인지 내가 팔을 놓자마자 휘청거리며 다시 넘어질 뻔하긴 했지만, 하나 남은 팔을 콱 붙잡아주니까 금방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따라가지.”

“예, 형님.”

“이 몸한테는 깔끔하게 하라고 하더니.”

“그건 죽일 때고, 지금은 아니지 않나.”

“…궤변이다.”

나는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고선 눈을 흘기는 카렌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틈만 나면 고개를 돌리고 툴툴대는 꼴이 꼭, 심술이 난 아이 같았다.

“이봐, 이쪽이 맞는 건가? 혹시 다른 마음을 먹은 거라면….”

“마, 맞습니다. 바로 저 언덕만 넘으면 마을이 하나 나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과연 그의 말마따나 언덕을 오르자마자 아래쪽에 마을이 하나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작은 도시가 있었다.

음… 셋이서는 조금 힘들 거 같은데.

툭-

“여, 여기! 이쪽에 인간….”

서걱-

나는 갑자기 내 손에 잡혀있던 팔을 휙 빼내고선 도시를 향해 달려가는 녀석을 보며, 곧장 검을 휘둘러 목을 베어냈다.

[레벨이 증가합니다.]

콰악-

[국경 마을의 자경단장, ‘베르쉬’를 흡혈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의 피를 흡혈했습니다.]

[힘이 ‘1’ 증가합니다.]

머리를 잃고 쓰러지는 시체를 잡아 목에 이를 박아 넣은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보며 씨익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에릭 가이오스]

[뱀파이어]

[레벨 : 13]

[힘 : 45] [민첩 : 38][체력 : 47][마력 : 31]

그간 동굴에서 이곳까지 이동하며 잡은 산짐승들로 올린 레벨까지 더하니, 이제 어느덧 총합이 150을 훌쩍 넘겼다.

그 누가 이걸 고작 두 달도 안 돼서 올린 능력치로 보겠는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만 상태창을 끄고서 눈앞의 도시를 바라봤다.

자, 이제 이걸 어떻게 삶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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