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요한의 환영술과 세계 헌터 연합 간부들은 12시간이 넘는 줄다리기 협상에 들어갔다.
이번 일은 그들 임의로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사조직인데, 국제 조직으로 인정해 달라니.
이건 상식적으론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절대’란 말이 통하지 않는 혼란의 시기였다.
이런 혼란의 시기가 오면 어느 나라가 독점해서 돈을 빌려주거나 해서 큰 이익을 볼 텐데, 이번 재앙은 범세계적인 재앙이었다.
이탈리아가 국내 피해가 별로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탈리아가 타격을 받지 않은 건 절대 아니었다.
이탈리아는 자국에서 활동하는 헌터 못지않게 외국에서 활약하는 용병의 숫자도 많았다.
즉, 위험한 지역엔 이탈리아 용병 헌터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포탈이 폭주했다?
근처에 있던 헌터가 큰 타격을 입었단 말이었다.
덕분에 이탈리아는 정말 유능한 헌터 인력을 많이 잃는 타격을 받았다.
자국 피해는 다른 나라보다 적었지만, 헌터 피해는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컸다.
피해 복구는 어떻게 한다고 해도 잃어버린 헌터 전력을 어떤 식으로 복구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세계 헌터 연합과 지분을 나누는 건 어떻습니까? 물론 킴이 51%를 가지지만, 나머지 49%의 지분은 세계 각국이 나누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다른 국가 정상들도 이해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그들은 최대한 요한의 독주를 막고자 했다.
예감하고 있었다.
만약에 이번 프로젝트가 요한의 의도대로 되어 버린다면, 세계 헌터 연합은 그야말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것이란 것을.
요한의 압도적인 자금력.
러셀 가문과 결혼 동맹을 맺어서 가지게 된 풍부한 인력 인프라.
거기에다가 하이라이트로 끝을 알 수 없는 요한의 무력.
특히 재래식 무기로는 파괴할 수 없는 특급 병기인 천공의 방어 요새는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을 수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딱히 권력에 대한 욕심이나 조직적인 활동 예후는 없었기에 경계만 하고 있을 뿐, 특별한 제재는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매우, 매우 나빴다.
비밀 협정에 따르면 요한이 세력을 갖추거나 뭔가 국제적인 활동을 하려고 든다면, 함께 힘을 합쳐서 견제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각국은 요한에게 어떻게든 자금을 빌려야 하는 신세였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견제한다?
도대체 어떻게?
빌리고 입을 닦으라고?
요한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는 행위였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공격받을 명분을 제시할 뿐이었다.
아무 죄 없는 정부나 국가를 공격하면 침략이고 파괴 행위였지만, 돈을 갚지 않았기에 돈을 받으러 가는 거라면?
주변 국가에선 막아설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일부 국가는 오히려 그런 행위를 지지할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요한이 만들려는 조직 자체를 견제할 대책이 필요했다.
“싫은데요. 후후.”
"......."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는 철통 방어였다.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징적인 문제죠. 제가 출범한 새로운 국제기구는 오직 저만의 것이 될 겁니다.”
“지, 지금 국제 조직이 오직 킴 만을 위한 것이란 걸 우리더러 인정하란 것이요?”
“그럼요. 저만의 것이죠. 누구의 것도 아닌.”
“그럴 수는 없소이다. 국제 조직이란 것은 세계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오. 그런 것을 일개 개인을 위해서 조직하는 건 국제법 위반이오!”
“뭐, 싫으시면 어쩔 수 없죠. 저야 여러분들이 힘들든 편하든, 상관이 없으니까요. 이대로 협상은 끝이네요.”
요한이 막 홀로그램을 끄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자, 잠시만!”
그때 아시아 지부장이 다급하게 손을 들어서 요한의 행동을 막았다.
“뭔가요?”
“우리 극동 아시아 지부는 지지하겠소.”
“이보시오. C!!”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던 북아메리카 지부장이 고함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C 지부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
“A 지부장, 당신의 조국인 미국은 어떨지 몰라도 우리 중국은 반드시 이 자금이 필요하오. 우리는 국토가 넓고 포탈이 많은 탓에 정말 끔찍한 피해를 보았지. 당신네가 이 조건에 마석을 빌려줄 것이 아니라면, 그 오만한 태도를 버려야 할 거외다.”
“크윽!”
A 지부장은 이를 악물었다.
사실 미국도 그렇게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포탈 시대가 된 이후 세계 공용 화폐가 금이나 달러가 아니라 마석이 되었다.
세계 경제는 오직 마석 생산량을 기준으로 했다.
여전히 미국이 강국이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지만, 옛날만큼 달러를 미친 듯이 찍어 내 경제 위기를 극복할 정도로 압도적인 국력은 또 아니었다.
덕분에 C 지부장이 요구한 대로 마석을 빌려줄 수가 없었다.
미국은 땅덩이는 넓은데 중국만큼 인구가 많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복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털썩-.
A 지부장은 자리에 힘없이 주저 앉았다.
“자,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킴이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하니 비밀 투표로 이번 안건을 통과시킬지, 말지를 결정합시다.”
“그게 좋겠군요.”
“북아프리카 지부는 동의합니다.”
“중앙아시아 지부도 동의합니다.”
대부분 지부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투표는 진행됐고, 결과는 볼 필요도 없이 기권 1표를 제외한 전원 찬성표였다.
“그러면 이번 안건은 통과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탕탕탕-!
운명의 망치질 3번이 비밀 회의실을 덮었다.
***
비밀 협정이 체결된 순간부터 요한의 비밀 창고에서 오랜 세월 묵혀 두었던 엄청난 마석이 쏟아져 나왔다.
부우웅-!
“이번에 뭐가 들어온다고 했지?”
“아, 킴이 빌려준 하급 마석 12,000개가 들어오기로 했어.”
“이, 일만 이천 개?”
“그래.”
“허허, 어떻게 일개 개인이 그런 마석을 가지고 있는 거야?”
“글쎄다. 나야 모르지. 그런데 우리가 받은 12,000개는 시작이더라고. 전 세계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자금을 지원받고 있데.”
“허허……."
세계는 압도적인 요한의 재력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 양도 K&S의 자금은 손톱만큼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국가는 K&S의 자금이 흘러나올 것을 예상했다.
만약에 그러면 도덕적인 문제를 이슈화시켜서 K&S를 공격하려던 계획.
하지만 K&S의 자금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고 이 많은 마석을 쏟아 내자 기겁을 넘어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도무지 요한의 힘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한의 마석이 전 세계에 흘러 들어가는 동시에 요한은 본격적으로 개인적인 국제기구 설립에 들어 갔다.
공식적인 명칭은 CM.
사람들은 CM의 의미를 궁금해 했지만,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건 그만이 아는 차원 마스터의 이니셜이 었으니까.
요한이 CM이라는 국제기구를 설립하자 또 한 차례 큰 폭풍이 몰아쳤다.
하지만 이 폭풍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모든 국가에선 재건에 바쁜 나머지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
덕분에 요한은 별다른 잡음 없이 깔끔하게 국제기구인 CM의 설립을 완료할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계 각국의 뛰어난 인재도 모집하기 시작했다.
CM의 설립은 모든 국가가 아니꼽게 보고 있었는데, 딱 1개 국가 만이 반기고 있었다.
바로 베트남이었다.
인어 종족과의 교류는 러셀 가문이 현재 독점 중이었다.
하지만 다크 엘프와의 교류는 아직 딱히 독점하고 있는 곳이 없었다.
요한은 CM을 통해서 다크 엘프 와의 교류를 독점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예 CM의 본부를 다낭으로 잡았다.
지금도 베트남 다낭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베트남 정부는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CM이고 뭐고, 세계가 손가락질 하건 말건, 베트남은 전혀 상관없었다.
언제부터 국제 질서에 베트남이 참여했던가.
그저 그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최고가 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CM 본부가 다낭에 설립되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기회였다.
물론 다낭은 이제 거의 요한의 개인 영지화가 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다낭이 발전한다고 해도 베트남 정부가 가져가는 이익은 전무한 수준.
하지만 인프라 시설이나 주변 땅 값 상승, 베트남의 국격 상승 등등.
여러 가지 간접 이익을 받을 수가 있었다.
안 그래도 베트남은 포탈 폭주 이전부터 경제가 불안 불안하다가 폭주 이후 정말 처참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 상태였다.
국제 헌터 연합과 달리 베트남은 다낭의 땅 나머지를 요한에게 팔면서 많은 마석 자금을 마련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CM이 다낭에 자리하면서 마석의 순환도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어떻게든 CM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여기가 구원자가 새롭게 설립한 곳이야?”
다크 엘프 로드인 루펜이 CM이 설립됐다는 소식에 구경 차 놀러 왔다.
요한의 성격이 변한 이후로 둘은 급격하게 친해졌다.
원래는 요한이 인간관계도 귀찮아했기에 딱히 둘이 감정적인 교류를 나눈 적은 없었다.
하지만 차원 마스터가 된 이후론 둘이 자주 만나서 거의 형제에 가까운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덥석-!
이번에도 요한이 먼저 루펜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어때, 루펜. 화려하지?”
“음, 인간의 기준에선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난 다크 엘프라고? 돌로 만든 집이 화려한 건지 잘 모르겠어.”
“돌이라니. 특수 콘크리트라고!!”
“뭐, 그것도 돌이라면 돌이잖아?”
“아, 그런가? 킥킥.”
이렇게 농담도 가볍게 나눌 정도 가 되었다.
“자자, 다른 다크 엘프들도 어서 와. 자장면이나 시켜 먹을까?”
마치 동네 형이 이사 와 집들이 하는 분위기였다.
“우와 진짜 다크 엘프야.”
“잘생기고 예쁘다. 엘프의 전설은 사실이었어!”
“오자마자 다크 엘프를 만나다니!”
“킁, 어떻게 결혼할 수 있을까?”
CM에 지원하러 온 헌터와 일반인들은 다크 엘프들이 우르르 들어 가는 모습을 멀리서라도 볼 수가 있었다.
CM의 활동 사항엔 다크 엘프와의 교류도 있었기에 흑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리라.
남녀 관계없이 다크 엘프는 이성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종족이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다크 엘프로선 인간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매력적인 종족이 아니었다.
외모는 둘째라고 해도 수명 차이가 컸기 때문.
다크 엘프의 수명은 약 500년 정도.
일반인은 90년, 헌터는 120년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겠는가.
어떻게든 다크 엘프와 이어지기 위해서 다낭은 남녀 가리지 않고 늘 사람들로 북적북적하였다.
하지만 다크 엘프는 폐쇄적인 종족이기에 함부로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굳이 나오지 않아도 현재 스카이 포탈은 여전히 미개척 지대가 많았다.
상인으로 활동하는 다크 엘프 소수만이 나와서 활동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오더라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교류 및 교역을 하고 있었다.
“저기 구원자.”
“응?”
“결혼은 언제 해?”
“곧 할 거야.”
“흐음, 우리 엘프 여성들이 눈물 좀 빼겠네.”
“뭐어?”
"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