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요한의 귀환은 전 세계에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다.
그동안은 포탈 폭주로 인해서 실종된 줄 알았던 세계 최강의 헌터가 단순히 실종된 것이 아니라, 포탈 폭주 사태를 막은 영웅이라는 사실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물론 이 소문이 퍼졌을 당시엔 믿는 사람보다도 믿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믿기도 힘들뿐더러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헛소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은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젠 그가 소문이나 정보 및 사실에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성장하고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차원 마스터였으며 마음만 먹으면 핑거스냅 한 번에 다시 인류를 지옥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벌레들이 사는 세상과 비슷하게 바라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요한은 비록 이곳에 오래 있을 수는 없게 되었지만, 유나와 엘레노아 그리고 친구인 미연까지 있는 지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가 차원 마스터가 되긴 했지만, 아직 모든 감정이 풍화될 정도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것도 매우 적은 편이라 언제 지구에 정이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흔히 우리가 아는 영웅이라면 지구와 인류에 애정을 갖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며 자신까지 희생하는 것이 대부분.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영웅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왜?’
요한은 무한하게 이런 물음을 자신에게 던졌다.
‘나는 영웅인가?’
그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허무주의자, 시니컬리스트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그랬냐고?
아니, 그건 핑계와 변명에 불과 했다.
부모님이 계셨을 때는 그나마 좀 덜한 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서 본능은 억제되고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있으려고 했으니까.
부모님의 사망으로 그저 요한의 허무주의적, 시니컬리즘을 억제하고 있던 사슬이 깨진 것뿐이었다.
지금은 그나마 유나와 엘레노아 앞에서만 멀쩡한 상태였고.
그런 그가 지구를 위해서 희생한다?
인류를 위해서?
배트맨과 조커가 화해하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한 일일 것이다.
늘 말하지만, 요한의 성격은 좋은 편이 절대 아니었다.
솨아아아-!
거친 파도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요한은 룬디 섬 위에 떠있는 천공의 방어 요새 꼭대기 난간에 몸을 기댄 채로 어두운 밤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상에서 3km 이상 멸어진 곳에서 말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의 모습은 언제 봐도 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고 빛만 보이는 세상.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세상.
‘내가 원하는 세상은 과연 뭘까?’
차원 마스터가 된 이후로 요한은 세상에 관한 생각이 무척이나 많아졌다.
더 생각하고 사고하고 고민했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이란 무엇인가?〉
〈나는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등등.......
마치 사춘기 소년으로 되돌아간 기분도 들었다.
‘하아, 진짜 별걸 다 생각하는구나.’
솔직히 요한 자신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헷갈렸다.
진짜 무슨 철없는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차원 마스터가 되면 다 이러는 건가. 이러다가 미쳐서 차원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는 거야?’
요한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제2의 나 같은 존재에게 죽겠지.’
누군가는 자신만은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한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허무주의자에 시니컬리스트였다.
모든 상황에서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인 게 먼저 보였으니까.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더욱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답답함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저벅-.
“레아?”
“바로 아시네요?”
“알다시피 차원 마스터니까.”
요한이 방어 요새 꼭대기에서 똥 폼이나 잡으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자 엘레노아가 옆으로 다가왔다.
“커피 드실래요?”
그녀의 손엔 2개의 머그잔이 들려 있었다.
“고마워.”
“천만에요.”
후르릅-!
잠시 둘 사이엔 커피를 마시는 소리만 들렸다.
“걱정이 많으신 거 같아요.”
“뭐, 누구나 자신이 신이 된다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으음, 글쎄요.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신이 된 것에 희열을 느끼며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야망에 가득 차 있지 않을까요?”
"......그런가?”
확실히 요한은 본인이 생각해도 좀 과하게 허무주의자 같긴 했다.
그가 헌터 생활에 집착했던 것도 이런 마이너스적인 기분이 싸울 때는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
언데드 부하들과 정서적인 교류를 하며 어느 정도는 이런 성격이 치유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귀신같이 이런 마이너스 감정이 뿜어져 나오니 살짝 당황스러웠다.
“요한 씨.”
“응?”
엘레노아는 요한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서로의 입술이 다시 한번 부드럽게 교차했다.
'.......'
요한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정말 부드러웠다.
머릿속에선 마치 축제의 한 장면 처럼 폭죽이 터진 것 같았다.
‘이게 살아 있다는 감정. 내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감정…….'
이제야 집에 온 것 같았다.
그리고 확연하게 달라졌다.
우우웅-!
요한의 몸속에 잠자고 있던 스페이스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솨아아아-!
폭주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폭주를 하는 것처럼 주변을 감쌌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뭐지?’
“방금 뭐였어요?”
“그, 글쎄……."
[반갑습니다, 플레이어. 아니, 이젠 마스터라고 불러야 할까요?]
“안내인!”
플래닛 프레데터와 싸운 이후 자취를 감추었던 안내인이 다시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Ms. 러셀.]
“안녕, 안내인 씨.”
“어디가 있었어?”
안내인의 등장에 텅 빈 것 같았던 마음 일부가 차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강력한 파장으로 인해서 저를 지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잃었고 죽지 않으려면 그 파동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휴지기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었구나?”
[네, 하지만 전 늘 플레이어와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턴 더욱 많은 일을 함께해야 할 것 같군요.]
“너도 느낄 수 있어?”
[당연합니다. 저는 곧 당신입니다. 플레이어.]
“하하, 쩝. 어차피 지구에서 오래 있을 수도 없는데. 너랑 우주 구경이나 해야 하나?”
[흠……. 그 말은 굉장히 이상하군요. 오래 있을 수 없다니요?]
“음? 신이란 존재가 그랬는데. 내가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지구라는 행성이 위험하다고.”
[아, 그건 말하는 주체의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
[플레이어의 힘으로 인해서 장기간 특정 차원에 존재하면 확실히 그 차원의 균형이 뒤틀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최소한 300년은 쌓여야 벌어지는 일입니다.]
“엥?”
요한의 턱이 아래로 툭, 하고 떨어졌다.
“3, 3, 300년?”
[예, 물론 그 300년은 단순하게 300년이 아니라, 차원 마스터의 공간으로 가시면 그 시간만큼 시간을 벌 수 있을 거고요.]
“헐.”
별로 없다는 말에 몇 개월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안내인은 무려 300년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30년이었어도 기뻐했을 텐데, 무려 300년!
요한의 눈이 뒤집히기엔 충분한 수치였다.
“역시 안내인, 네가 최고야!!”
요한은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그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저야 늘 마스터를 위할 뿐입니다.]
“하하하!!”
“요한 씨?”
“하하하!!”
기분이 최고조로 오른 요한은 옆에 있던 엘레노아의 허리를 잡아챘다.
"꺅."
얼음 여왕답지 않은 귀여운 비명.
“하하하, 레아.”
“네?”
“사랑해.”
요한의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표정에선 수심이 사라졌다.
"......."
갑작스러운 요한의 고백에 엘레노아의 얼굴이 홍시처럼 빨개졌다.
“그, 그런……."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부드럽고도 황홀한 고백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많은 남자가 그녀에게 접근했고 고백도 수십, 수백 번은 들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 어떤 고백도 그녀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지는 못했다.
누가 이렇게 터프하고 부드러우며 감미로운 고백을 그녀에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그녀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선 그녀보단 강한 힘을 가진 존재만이 할 수가 있었다.
엘레노아란 여자는 자신보다 강력하지 않은 모든 인간에게 흥미가 없었으니까.
지잉-!
요한이 엄지와 검지를 든 채로 마나를 운용하자 그의 손가락 끝에서 은으로 이루어진 우주가 담긴 링에 우주가 담겨 있는 것 같은 보석이 박힌 반지가 생겨났다.
“아깐 미안했어. 기분이 무척이나 이상했거든.”
“아니에요.”
“나랑 결혼해 줄래?”
“얼마든지요.”
요한은 엘레노아의 손가락을 들고 반지를 끼워 주었다.
마치 맞춤 반지를 한 것처럼 손가락에 쏙, 하고 들어갔다.
조금의 불편함도 없는 안정적인 착용감이었다.
“예쁘네요.”
“그래, 마치 너처럼.”
요한의 느끼한 속삭임에 또다시 엘레노아의 볼이 붉어졌다.
“……요한 씨, 알고 보니 정말 느끼한 남자였네요.”
“큭큭큭, 그런가?”
밝음을 되찾은 남자의 웃음은 그 언제보다 티 없이 순수했다.
***
요한과 엘레노아의 세기의 결혼식이 열린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자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결혼은 신성한 행사였다.
남녀가 신 앞에서 함께할 것을 맹세하는 행사.
특히 이번 결혼은 세계 최강급 2명이 하는 행사였기에 더더욱 관심을 끌었다.
아직 복구가 끝나지 않았기에 전 세계의 분위기는 우중충했다.
TV에선 단순 뉴스만 반복해서 방영했고 게임도 오픈하지 못한 곳이 더 많았다.
H-1 리그도 선수가 너무 많이 죽어서 잠정 중지 상태.
국민이 즐길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기의 결혼 소식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털썩-!
“오, 여기가 이제 네 사무실이야?”
“네, 어때요?”
“음……. 소박하네.”
“사실 요한 씨가 실종되고 나서 사무실을 꾸밀 생각은 없었거든요. 오직 요한 씨를 찾겠다는 생각밖에.”
“흐흐흐, 미안해. 걱정 많이 했지?”
전혀 미안한 태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엘레노아는 그런 것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괜찮아요. 요한 씨가 살아 계시니까요.”
“흐흐흐.”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들어와.”
철컥-!
“가주님, 영국 왕실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왕실?”
“예!”
“뭐지?”
갑작스러운 왕실의 손님이란 말에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러셀 가문과 왕실은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다.
왕실은 최대한 가문들의 도움을 원했고, 가문은 국가나 왕실과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헌터를 주력으로 하는 가문치고 왕실과 사이가 좋은 곳은 별로 없었으니까.
“들어오시라고 해.”
“예!”
비서가 나가고 잠시 후 왕실에서 보낸 사람이 들어왔다.
“하암.”
예의 없는 행동이었지만, 요한은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했다.
“Mr. 킹도 여기 계셨군요.”
“뭐, 예비부부니까. 그런데 왕실에서 여긴 무슨 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