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신기하네……."
요한은 눈 앞에 펼쳐진 포탈을 보며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포탈은 평범한 포탈이 아니었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볼 수 있는 신비의 포탈이었다.
일종의 천리경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요한은 하늘과 단둘이 남은 공간에 앉아서 현재 지구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일단 힘으로 모든 포탈을 진정시켰기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힘은 잘 통했고 지구의 모든 도시를 파괴하던 몬스터들도 진정하고 포탈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만, 전에도 말했듯이 포탈은 그대로 둘 생각이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포탈을 거둬 들인다면, 인류는 새로운 적과 만나야 할 것이었다.
바로 자원 부족이라는 가장 끔찍한 재앙을.
현재 전 세계는 힘이 넘치는 상태.
더는 마석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헌터라는 넘치는 힘은 서로를 겨눌 게 분명했다.
자원을 뽑을 수 없으면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할 테니까.
현재 몬스터와 포탈은 어떻게 보면 인류 평화의 수호자나 마찬가지였다.
인류가 서로 싸우지 않도록 억제해 주는 존재였으니까.
‘그러니 절대 포탈을 해체할 수는 없지.’
일반인들은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세계 헌터 대전 같은 것이 터지면 가장 피해를 볼 사람이 일반인이었다.
오로지 살육과 파괴만 존재하는 세계에선 힘이 없는 민간인은 가장 고통받는 존재일 테니까.
헌터는 일반 군인과 달랐다.
그들은 수많은 몬스터와 벌인 수 많은 전투와 살육에 익숙해져 있었다.
특히 멘탈이 부서진 헌터는 민간인, 일반인 가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차라리 몬스터를 두려워하는 게 나았다.
‘그렇다고 수준을 굳이 낮출 필요는 없겠지. 스카이 포탈은 지금까지만 생성된 것만 유지하고 추가는 없고, 다른 포탈도 지금 수준으로 딱 유지를 해 놔야겠다.’
플래닛 프레데터는 적이었고 단순 침략자였지만, 차원을 키우는 방법은 확실히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둔다면 언젠가 지구도 범 차원적인 행성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시간은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요한은 마지막 몬스터 무리까지 포탈로 돌아가는 것을 보곤 천리경 포탈을 닫았다.
‘후우.’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자가 되었지만, 가슴은 답답했다.
이젠 지구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다시 생각났기 때문이다.
‘동생과 함께할 수 없다는 거니까.’
물론 그가 원하면 유나를 이곳에 데리고 올 수도 있었다.
그가 다른 차원에선 있을 수 없지만, 다른 생명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딱히 상관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마음이 없었다.
‘유나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허락할 생각은 없지.’
동생은 동생만의 삶과 생활을 즐기다가 평범한 인간처럼 삶을 마감해야 했다.
결코, 다른 이유에서도 평범한 삶을 망칠 생각이 없었다.
‘유나는 끝까지 평범하게 살아야지.’
오빠의 이 스펙타클한 삶은 보통 사람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요한!]
그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던 하늘이 빠르게 날아왔다.
“왜, 뭐야. 뭐라도 발견했어?”
[어?! 어떻게 알았어?!]
“진짜로? 그냥 물어본 건데.”
[역시…… 요한은 무심하다니까.]
“훗, 그게 내 매력이지.”
[네이, 네이. 자, 이거 내가 저~쪽에서 발견한 거야.]
“응, 그건?”
요한이 하늘에게 건네받은 것은 천공의 방어 요새의 엔진 핵심 부품이었다.
‘아, 이 녀석…….'
아무래도 마크가 죽기 전에 가장 중요한 부품을 멀리 던져 버린 듯 했다.
언젠가 부활을 꿈꾸며.
‘내가 할 수 있지.’
그는 이제 단순한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네크로맨서 겸 차원 마스터였다.
핵심 부품이 있다면, 방어 요새를 부활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우웅-!
요한은 핵심 부품에 마나를 잔뜩 집어넣었다.
그러자 부품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공중에 두둥실 떠올라 위로 쭉 올라갔다.
치지직-!
스팀 펑크 특유의 스팀 소리가 주변에 울리더니 핵심 부품이 주변의 마나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하얀 빛 가루가 부품에 자석에 끌리는 쇳가루처럼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먹만 했던 부품이 크기를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시간…… 좀 걸리겠네.”
[그러게.]
“뭐, 기다려야지. 천공의 방어 요새를 복구시킬 수 있다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년까지는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
지구는 다시 평화를 찾을 수가 있었다.
정말 치명적인 피해를 본 곳도 있었지만, 인류는 늘 그랬듯이 죽은 자들은 넋을 위로해 주고, 산 자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개중에 가장 큰 변화를 맞은 것은 유나와 러셀 가문이었다.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전대 가주는 손자를 잃은 슬픔을 이겨 내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뒤를 이은 존재가 바로 엘레노아였다.
처음에 그녀는 가주가 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러셀 길드를 잘 이끌며 요한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요한이 수상한 포탈로 사라진 이후 그녀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조금씩 부드러워지던 그녀의 태도는 싹 사라졌다.
“성과는?”
“죄, 죄송합니다. 아직……."
“좀 더 서둘러. 내가 이 연구에 투자한 돈이 얼마인지나 알아?”
“죄송합니다. 좀 더 연구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겠습니다.”
휙-!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틀어서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주변엔 여전히 한기가 풀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재 엘레노아는 요한을 찾기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원래는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모든 게 부족했다.
연구 설비, 인력, 그리고 끝없이 소모되는 마석까지.
이 정도 연구를 이끌어 가려면 러셀 가문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리고 마침 할아버지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옛 고향 땅으로 돌아가 조용히 여생을 보내기로 했다.
소문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실종이 됐다고 소문을 냈을 뿐, 그녀는 할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차기 가주였으니까.
사실 막 할아버지가 실종됐다고 알려졌을 때만 해도 가주를 욕심내는 사람은 많았다.
브루마 말고도 수많은 러셀 가문의 인물들이 자기가 후계자라며 자처하고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일거에 소탕되었다.
진짜 리더로 각성한 엘레노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요한과 함께 엄청난 실전을 겪으면서 새롭게 신설된 등급인 SR등급에 오른 것이었다.
이 SR등급은 원래는 요한을 위한 등급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실종되었고 이번 대혼란 시기에 활약한 S급 헌터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부여되었다.
엘레노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총 10명만이 이 SR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 SR등급을 그녀가 받자 순식간에 가주 쟁탈전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러셀 가문의 장로 전원이 엘레노아를 지지해 버린 것이었다.
다른 경쟁자들은 분했지만, SR등급의 헌터와 싸울 자신도, 그리고 장로들과 싸울 자신도 없었기에 순순히 포기해야 했다.
그녀는 가주가 된 이후로 가문을 훌륭하게 이끌었으며 요한을 찾기 위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큰 진전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 꽤 진전을 본 덕분에 가문은 더더욱 세를 넓혔다.
또각또각-!
그녀가 가주실로 향하자 집사가 다가왔다.
“가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왜 자네가 이곳에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가주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설마?”
“예.”
집사의 보고를 받은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감히 러셀 가문의 가주실에서 자신을 기다릴 수 있는 존재는 현재 세계에서 딱 1명뿐이었다.
천하의 포터 가문의 가주도 절대 그녀가 없을 때 가주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딱 1명, 1명만큼은 특별하게 허락해 가주실에서 기다릴 수가 있었다.
덜컹-!
문이 열리고 엘레노아는 안에 있는 사람을 만날 수가 있었다.
“언니.”
“유나야.”
포옥-!
둘은 서로 반갑게 마주하며 가볍게 포옹을 했다.
요한의 실종 이후 룬디 섬에서 요한을 기다리던 유나는 더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가 없게 됐다.
왜냐하면, 주인을 잃은 요한의 막대한 재산과 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나는 오빠의 것을 잃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룬디 섬에서 빠져나와 요한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 후 관리가 쉽지 않았다.
요한이 S급 헌터라 받았던 모든 특혜가 유나에게 상속되면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의 강력한 세력이 특히 K&S를 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유나에겐 모든 게 벅찼다.
그런 그녀를 도와준 것이 엘레노아였다.
러셀 가문은 유나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고 K&S의 실질적 파트너가 되었다.
덕분에 유나는 K&S를 안전하게 지킬 수가 있었다.
“하루 일찍 왔네?”
“네, 오랜만에 언니 얼굴도 볼 겸해서요.”
“회사 일은 할 만해?”
유나는 그야말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요한의 실종으로 특별 스크롤은 만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일반 스크롤은 만들 수가 있었기에 여전히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유나는 스크롤 수익만으로도 충분했던 요한과 달리 새로운 업종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룹을 꿈꾸고 있었다.
판사가 되고 싶었던 소녀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CEO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그녀의 회사 운영 감각은 타고났는지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둘은 요한이 사라진 지 1주년이 되는 내일을 맞이해 룬디 섬에 가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둘은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요한을 실종으로 생각했다.
주변이나 언론에서 ‘사망’이라는 표현을 썼다간 돈으로 맞는 게 무슨 말인지 절실히 느끼도록 해 주었다.
일부 사람들은 폭정이라고 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오랜만에 수다나 떨까요?”
“그럴까?”
“네, 히히.”
유나는 애써 슬픈 표정을 감추며 웃고 있었다.
엘레노아도 촉촉한 눈길로 유나를 바라보았다.
***
다음 날, 유나와 엘레노아는 거대한 화물선을 타고 룬디 섬으로 향했다.
왜 화물선이냐고?
촤아악-!
“와아, 화물선이다!!”
“어서 와!!”
화물선 주변을 빠르게 헤엄치며 다니는 인어 종족.
룬디 섬 주변은 러셀 가문의 땅이었고, 철저하게 외부인은 출입 금지였다.
인어 종족이 헤엄칠 수 있는 범위를 지켜 준 것이었다.
룬디 섬 주변은 러셀 가문의 땅이면서 인어 종족의 땅이기도 했다.
인어 종족과 러셀 가문은 철저히 협력하면서 동반자로서 발전하고 있었다.
둘은 매주 룬디 섬에서 만나 시장을 열어서 교역하고 있었다.
“어머, 엘레노아도 있어!!”
“정말이네. 꺄아, 어서 와!!”
인어 종족은 엘레노아를 보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오랜만에 방문하자 무척이나 반가웠기 때문이다.
룬디 섬에 도착한 러셀 가문의 무역선은 빠르게 물건을 내리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룬디 섬에 거주하는 인어 종족들은 무역선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뭘 가져왔을까?”
“인간 종족은 정말 이상한 물건을 많이 만드는 것 같아.”
“이상하면서도 유용하지.”
“맞아, 까르르륵."
그렇게 인어 종족과 러셀 가문 직원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엘레노아와 유나는 둘이 조용하게 어느 장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