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방어 요새의 통제실에서 벗어난 요한은 팬텀 스티드에 올라타지 않고 몸을 띄워서 플래닛 프레데터와 마주 보았다.
그 어떤 방해물도 없는 1:1의 대치.
[크아아아아!!]
플래닛 프레데터의 지독한 분노가 요한의 머리에 그대로 느껴졌다.
차원적 존재답게 강력한 스페이스 마나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흡!”
언데드 군단이 잠시 주춤거릴 정도였다.
[가소롭긴.]
하지만 요한은 느긋할 뿐이었다.
지팡이를 들어서 플래닛 프레데터를 가리켰다.
[데스 스톰.]
쿠르릉-!
저쪽이 재앙이라면 이쪽도 재앙으로 상대해 주는 게 인지상정.
요한이 만들어 낸 거대한 먹구름이 플래닛 프레데터를 잡아먹으려는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쾅쾅-!
거대한 2개의 스페이스 마나가 충돌을 일으켰다.
[흐흐흐.]
스페이스 마나의 절대량은 요한이 높았지만, 쉽게 밀어낼 수는 없었다.
양은 차이가 났지만, 상대는 살아온 세월을 계산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득한 절대적인 존재였으니까.
힘은 부족해도 스페이스 마나를 다루는 실력과 노하우는 요한을 압도했기 때문.
물론 기본적인 지식과 힘은 요한도 똑같이 사용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지식을 받아들이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런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요한이 막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플래닛 프레데터에겐 스페이스 마나뿐이었지만, 요한에겐 스페이스 마나 말고도 죽음의 마나가 함께했으니까.
‘사라져라, 우주 쓰레기.’
[모든 언데드는 총공격하라!!]
“쿠오오오오!!”
“쿠와아아악!!”
우레와도 같은 명령에 주춤했던 언데드들이 파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쿵-!
특히 거대한 언데드들이 빠르게 플래닛 프레데터를 향해서 달려갔다.
녀석들에게 공포는 없었다.
그저 요한이 내린 명령대로 온몸을 희생해 플래닛 프레데터에게 조금이라도 타격을 주었다.
치익-!
‘효과가 있군.’
스페이스 마나를 사용하는 플래닛 프레데터는 스페이스 마나 없이는 죽일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마나라도 공격을 받으면 흔들리기 마련.
‘그 틈을 이용해 내가 처리할 수 있겠지.’
간단한 이치였다.
정정당당하지 않다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는 네크로맨서.
언데드를 이용하는 게 정정당당한 행동이었다.
쿠르릉-!
[크아아아악!!]
플래닛 프레데터가 괴로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절대적인 존재였다고 하지만, 그 상대인 요한도 마찬가지의 존재로 진화한 상태.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녀석이라도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지잉-!
요한도 더욱 마나 사용에 박차를 가했다.
엄청난 스페이스 마나 파동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때 요한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일으킨 파동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것을 말이다.
구우우웅-!
[크아아아아!!]
플래닛 프레데터는 끊임없이 괴로워했으며 요한은 그 비명을 자양분 삼아서 더욱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쿠구궁-!
요한이 사용하는 스페이스 마나가 점점 플래닛 프레데터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콰득콰득-!
섬뜩한 소리가 울렸지만, 요한은 무시했다.
그저 이기고 있다는 것에만 집중 했기 때문.
척-!
지팡이를 든 손 말고 왼손까지 들어서 더욱더 스페이스 마나를 빠르게 활성화했다.
[크아아아악!!]
플래닛 프레데터는 마치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남아 있던 모든 스페이스 마나를 동시에 터트렸다.
다른 방향에서 보면 자폭과도 같은 일이었다.
콰아아앙-!
요한도 그 폭발에 제대로 휘말렸다.
아니, 이곳에 있는 모든 존재가 폭발에 휘말렸다.
너무나도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기에 어떤 대처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발악은 예상했지만, 이런 식으로 주변 모든 것을 잠식하는 폭발일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끄응, 젠장.”
***
밀려오는 두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린 요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우주 한가운데 그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저 반짝이는 별만 가득한 우주 한가운데.
‘응?’
요한은 어느새 아크 리치가 아니라, 평범한 김요한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움직일 수는 있나?’
발을 움직여 보았다.
후욱-!
“으앗!”
겨우 한 발자국 내디뎠을 뿐인데도 몸이 휙 하고 빙그르르 돌았다.
“으아앗!”
한 번 무중력의 영향을 받은 몸은 계속해서 회전했다.
“우읍!”
몸을 쓰는 데 영 익숙지 않은 요한이라 어떻게 멈춰야 할지도 몰랐다.
뚝-!
“우웩!”
그때 요한의 몸이 딱 멈췄고 안 그래도 어지러웠던 요한이었기에 그대로 오바이트를 쏟아 냈다.
"쯧쯧쯧."
그때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요한의 귀에 누군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크윽, 젠장!’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몸은 반응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들었다.
아니, 지팡이를 들려고 했지만, 그는 맨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손에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아무 스킬이나 사용하려고 했다.
아크 리치 상태는 아니었기에 온갖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지만, 죽음의 마법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가 있었기 때문…….
“응?”
이라고 생각했지만, 요한의 맨손에서도 아무것도 나가지 않았다.
“어이쿠, 몸도 못 쓰는 놈이 머리도 못 쓰네. 이런 놈이 차기 차원 마스터라고?”
“뭐?”
요한은 어지럼증이 가시고 제대로 앞을 볼 수가 있었다.
그곳엔 웬 밝은 금발의, 양 갈래로 머리를 곱게 땋고 양 볼엔 주근깨가 가득한 어린 백인 소녀가 허공에 앉아 다리를 꼰 채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보이며 요한을 보고 있었다.
“너, 너 뭐야?”
“무식하고 단순한데 건방지기까지 하다니. 정말 최악이야!”
빠직-!
“뭐라고?”
성격이 좋지 않은 것으로 따지자면 요한도 한 성격 하는 편이었다.
이런 천대와 무시는 그를 자극할 뿐이었다.
“뭐 이런 건방진 꼬마가 다 있어?!”
“꼬마? 너 바보냐. 이런 공간에 진짜로 이 작은 몸의 소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
소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요한.
“하! 내가 미쳤지. 차기 차원 마스터가 정해졌다기에 대화나 할까 데려왔더니 뭐 이런 덜떨어진 놈이 있는 건지. 음침하고 불결했지만, 그래도 사리 분별은 할 줄 알았던 플래닛 프레데터가 훨씬 낫겠어!!”
“뭐야?!”
상대방의 정체와 의도 같은 건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플래닛 프레데터와 비교하는 행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몸을 쓰는 데 영 젬병인 요한이 달려들어 보았지만.
딱-!
“크흑!”
콰당-!
소녀의 딱밤 1대에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다.
또 이마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한 고통에 손으로 싹싹 비볐다.
“으으.......”
“하아, 내가 이런 한심한 녀석을 차원 마스터로 임명해야 한다니.”
소녀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까부터 차원 마스터, 차원 마스터. 시끄러워 죽겠네. 그게 도대체 뭔데?”
강하게 몇 대 더 맞았음에도 요한은 여전히 기세가 죽지 않았다.
일종의 오기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네크로맨서의 힘까지 봉인된 상태였고 상대는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시당했다는 것에 대한 반발심은 그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고 있었다.
또 플래닛 프레데터를 쓰러트렸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도 그를 붙잡는 좋은 요소였다.
“하아, 정말 건방져. 마음 같아선 죽이고 싶지만, 차원 마스터의 대를 끊을 수는 없지. 잘 들어, 한 번 만 설명할 테니까. 기억하지? 너는 플래닛 프레데터를 쓰러트렸어.”
“맞아.”
“끄응, 건방진 말투 정말 거슬리네. 어쨌든 플래닛 프레데터는 차원 마스터야. 너는 전대 차원 마스터를 쓰러트린 차기 차원 마스터가 될 자격을 얻었어.”
꿀꺽-.
소녀의 말에 마른침이 저절로 넘어갔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딱 듣기만 해도 뭔가 좀 대단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차원 마스터는 스페이스 포스를 지배하고 차원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이지만……. 굳이 강제로 뭘 할 필요는 없어. 차원 마스터는 그 존재만으로도 차원의 균형은 맞출 수 있으니까. 플래닛 그 녀석은 좀 심하게 막 나가긴 했지.”
“……질문이 있는데.”
“뭐야, 짧게 해. 빨리 끝내고 갈 거야.”
“포탈 같은 존재가 플래닛 프레데터 때문에 발생한 거 맞지?”
“맞아, 차원 마스터는 차원 관리자니까. 그 정도의 힘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으니까. 또 있어?”
“흠흠, 혹시 누구신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요한의 말투가 급격하게 공손해졌다.
지금까진 정신도 없고 상대의 외모가 어린 소녀라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만만하게 본 상대한테 얻어터졌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짧은 대화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이 녀석. 신일 확률 99.99%.'
신이 아니고서야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아, 드디어 그 건방진 말투를 바꿨구나. 맞아, 네가 생각한 그대로 난 신이야. 다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절대자는 아니야. 난 그저 탄생시켰을 뿐, 관리는 관리자인 차원 마스터가 하는 거니까, 너희 인간이란 존재가 생각하는 신은 나 같은 신이 아니라 차원 마스터의 존재지.”
“아하, 자, 자, 잠시만요. 그, 그러면 제가 신이 된 건가요?”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지.”
요한의 말투에 경의와 존경이 쌓이자 소녀의 태도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 그러면 제가 딱히 해야 할 게 있나요?”
“에휴, 멍청하긴. 내가 조금 전에 그랬지. 딱히 강제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없다고. 그냥 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차원의 균형을 이루는 존재라고. 아, 다만 그건 있다.”
“무, 무엇인가요?”
“특정 차원에 오래 있지 마.”
“그, 그럼?”
“차원 마스터 전용 차원에만 있고, 가끔 다른 차원에 방문 정도만 해. 아, 물론 이것도 강제 사항은 아니야. 네가 그 차원을 무너뜨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있어도 돼.”
“그, 그런……."
요한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무슨 말인지 대충 눈치가 생겼기 때문이다.
“뭐, 대충 말은 다 전한 거 같으니까. 난 그만 가 본다?”
“자, 자, 잠시만요. 아, 아직 궁금한 게 산더미 같은데!”
“기각, 궁금한 게 있으면 네가 알아서 해. 차원을 무너뜨려도 되고, 플래닛 프레데터처럼 침략해도 되고. 그리고 네가 누군가 싸워서 지고 죽게 되면 차원 마스터의 자격은 그 존재에게 돌아갈 테니까. 이만.”
뿅-!
소녀는 등장했을 때처럼 사라질 때도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 그런……!!”
요한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
[요한, 요한!!]
기절한 요한의 머리를 강타하는 하늘의 목소리.
“으, 으……. 머리야. 시끄러워, 하늘.”
[후우, 드디어 깨어났구나. 다행이다.]
하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정말 걱정 많이 했다.
혹시라도 그녀를 억제해 줄 수 있는 요한이 죽으면 곤란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