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엥 저 녀석. 이곳에 어떻게 왔지?”
류페이는 갑자기 등장한 방어 요새를 보곤 의아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요한과 방어 요새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방어 요새의 특징 중 하나가 다른 포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분석 프로그램으로 돌려 보니 방어 요새가 내뿜는 마나 파장이 다른 포탈의 마나 파장과 너무나도 달라서 포탈에서 방어 요새를 받아 들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그랬던 방어 요새가 지금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스페이스 포탈에 모습을 드러냈다.
“요한, 네가 어떻게 한 거지?”
[흐흐흐, 정답.]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지금까진 파장이 다른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데, 플래닛 프레데터의 기억을 흡수한 덕분에 마나 파장을 변경하는 방법을 터득했지.]
“아하.”
류페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물론 정확하게 100%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생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똑똑한 포지션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대충 그러려니 하는 수준이었다.
딱히 어려운 말은 아니었기도 했고.
방어 요새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요한은 팬텀 스티드를 이끌고 방어 요새로 가 가장 위쪽에 있는 통제실로 들어갔다.
지잉-! 지잉-! 지잉-!
[지금부터 컨트롤 모드를 시작합니다.]
방어 요새는 마크가 직접 컨트롤 할 수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요한이 직접 통제할 수도 있었다.
요한은 앞에 무수히 많은 화면을 켜 놓고 언데드와 방어 요새를 동시에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고와 통찰력은 인간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졌다.
‘모든 게 느껴져. 인간일 때는 이렇게 동시에 처리할 수 없었는데. 아크 리치란 존재, 정말 대단하네.’
감탄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인간 요한의 피지컬은 빈말이라도 칭찬하기 힘든 저질 피지컬이었다.
아무리 특성이 사기적이라고 해도 몸을 써야 하는 클래스였다면, 이렇게까지 높게 올라올 수 없었을 것이었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난 몸을 쓰는 일을 잘했던 적이 단 1번도 없었으니까.’
좀 미스터리한 일이긴 했다.
몸치인 그였지만,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었다.
신체 구조가 이상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균형 감각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달리기가 유달리 느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몸을 쓰는 일이나 스포츠를 하면 정말 못했다.
타고났다고나 할까?
몸치인 것을 말이다.
어쨌든 요한은 방어 요새를 통제하며 전투를 다시 시작했다.
쿵쿵쿵-!
방어 요새는 처음에 당했던 것을 설욕이라도 하듯이 무차별적으로 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우웅-!
이번엔 평범한 마나 대포가 아니었다.
요한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스페이스 마나(요한이 즉흥적으로 지음) 를 이용한 강력한 대포였다.
일반적인 공격엔 면역이 있는 플래닛 프레데터를 상대하려는 방법이었다.
‘플래닛 프레데터를 상대하려면 같은 스페이스 마나가 있어야 했다니. 이건 또 무슨 기적인지.’
아무리 요한이라도 살펴본 진실은 스페이스 마나가 없으면 절대 플래닛 프레데터를 해치울 수가 없었다.
우연히 스페이스 이터를 흡수하지 않았다면…….
‘잠시만, 설마 죽음은 이런 미래를 보고 나한테 언데드화를 준 거야?’
다시 생각해 보니 언데드화를 통해서 아크 리치가 되었지만, 아크 리치의 힘만으론 플래닛 프레데터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어느 정도 싸울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기 때문.
하지만 아크 리치의 힘 덕분에 플래닛 프레데터를 해치울 희망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미래를 보고 선택한 일이라고밖에 여길 수밖에 없었다.
‘허허.’
어안이 벙벙해졌다.
‘단순한 절대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신이잖아?’
죽음의 신.
죽음 그 자체의 존재.
‘그렇다면 나는 신에게 선택받은 남자인 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 친구들. 본격적으로 싸워 보자고.]
“크와아아악!!”
스페이스 마나로 인해서 언데드 군단 전체도 꽤 많은 변화를 겪었다.
스켈레톤들은 모든 종류가 뼈가 까맣고 반짝이게 변했고, 좀비나 구울은 살이 파인 곳이 우주가 되어 있었다.
‘마치 스페이스 이터처럼.’
플래닛 프레데터가 스페이스 이터를 만들어 낸 것처럼 요한은 스페이스 언데드를 다루는 것이었다.
덕분에 비슷한 격과 힘을 가진 두 존재가 맞붙는 게임이 되었다.
쿠르릉-!
플래닛 프레데터가 진심으로 분노하는 것이 요한은 느껴졌다.
녀석의 힘과 지식을 손에 넣었지만, 여전히 대화는 되지 않았다.
‘하긴, 저 녀석은 굳이 뭔가 언어를 사용해서 대화할 필요는 없었겠지.’
거대한 우주에서 우연히 탄생해 긴 시간을 혼자 보낸 녀석이었다.
그러니 발전된 언어 체계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의지로 명령하고, 의지로 힘만 사용해 차원을 먹어 치우는 것이 녀석이 하는 일의 전부였을 테니까.
‘이젠 그 짓도 끝이다.’
우웅-!
스페이스 마나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요한에겐 언데드, 아크 리치, 스페이스 마나, 이 모든 게 잘 갖춰진 상태였다.
“가라!”
촤악-!
스팀 평크 특유의 산화철 색이었던 방어 요새는 순식간에 밤하늘 색으로 바뀌었다.
푸른빛의 대포까지 쏘면서 플래닛 프레데터를 공격했다.
쿠쿠쿠쿠쿵-!
요한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아무렇지 않던 플래닛 프레데터가 방어 요새의 공격에 괴로워하는 것을 말이다.
[흐흐흐흐.]
사악한 웃음소리가 공허한 입을 뚫고 나왔다.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산 플래닛 프레데터에 죽음이 뭔지 보여 주자고.]
지잉-!
스페이스 마나를 더욱 활성화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고 어떻게든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쾅-! 쾅-! 쾅-!
플래닛 프레데터도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촤아악-!
방어 요새의 비행선을 초토화했던 빛줄기를 뿌리며 반격에 나선 것이었다.
[어딜!]
하지만 이번엔 당해 줄 마음이 없었다.
‘앱솔루트 실드!’
지잉-!
거대한 방어 요새를 충분히 감쌀 수 있는 강력한 방어막이 주변에 형성되었다.
퍼벙-!
빛줄기는 요한이 친 앱솔루트 실드를 뚫지 못했다.
이것도 다 스페이스 마나를 섞어서 녀석의 파장과 일치시킨 덕분이었다.
[맛이 어떠냐, 빌어먹을 미지의 존재야!]
요한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상대와 대등하게 싸우는 느낌은 언제 느껴도 정말 짜릿했다.
아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더 짜릿하게 다가왔다.
[어때, 하늘. 짜릿하지?]
[꺄하하하, 정말 최고야!]
특히 살판이 난 것은 퀸 스피릿인 하늘이었다.
안 그래도 강력했던 하늘이었는데 스페이스 마나의 영향으로 그녀의 격이 한 단계 상승할 수 있었기 때문.
원래부터 강력했던 그녀였지만, 이번 스페이스 마나로 인해서 차원이 다른 언데드가 되었다.
‘그래 봤자, 요한의 상대는 아니겠지만.’
아크 리치에 이어서 스페이스 마나까지 이어지니 그야말로 넘을 수 없는 벽이 된 것이었다.
이젠 만약에 요한이 시스템 능력이 없다고 해도 독립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젠 오히려 요한의 밑에 있는 게 더욱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꺄하하하하!!]
촤아아악-!
하늘은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더욱 화끈하게 검은 얼음을 쏘았다.
저적-! 저적-!
스페이스 이터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 버렸다.
처음 등장했을 때의 강력한 모습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허수아비와 다를 게 없었다.
동네북 그 자체였다.
스페이스 이터는 빠르게 정리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플래닛 프레데터 딱 하나였다.
쿠르릉-!
스페이스 이터가 전멸했음에도 플래닛 프레데터는 전혀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분노하고 있었다.
그 분노는 오로지 요한만을 향하고 있었다.
후우우웅-!
녀석은 자연재해 그 자체
몸 전체에서 각종 자연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쿠르릉- 광!
보랏빛 번개가 방어 요새를 후려 쳤다.
[방어막 손상률 3%. 현재 방어막 91%.]
[별거 없군.]
요한은 간단하게 눈썹을 들썩이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젠 정말 두렵지 않은 상대가 되었다.
[전 언데드는 녀석을 조져라.]
“크오오오오!!”
콰앙-!
[응?]
지금까지 요한의 명령에도 별 움직임이 없었던 본 드래곤인 잔자클 남작이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역시 녀석의 새하얗던 뼈는 사라지고 새까만 본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촉수를 뿌리며 요한이 만들어 둔 계단을 타고 빠르게 올라왔다.
‘흠…….'
본 드래곤을 시작으로 하늘, 류페이까지 온갖 언데드가 벌 때처럼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콰랑-! 콰릉-! 촤악-!
플래닛 프레데터는 언데드를 몰살시키기 위해서 온갖 공격을 퍼부었다.
엄청난 위력이었고 수많은 언데드가 그대로 사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 자체로 너는 패배한 거야, 플래닛 프레데터.’
네크로맨서와 싸울 때 절대로 언데드에 집중해선 안 되는 법이었다.
엄청난 화력으로 언데드를 죽이고 있었지만, 절대적인 네크로맨서의 힘 앞에서는 그야말로 멍청한 짓이었다.
‘이게 녀석이 다했다는 증거지.’
네크로맨서와 싸울 때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네크로맨서를 공격해야 했다.
하지만 플래닛 프레데터의 공격은 요한에게 전혀 닿지를 못했다.
펑펑-!
여전히 녀석은 남은 파워를 이용해 요한이 있는 방어 요새를 공격했다.
하지만 방어 요새를 구성하는 강력한 방어막은 플래닛 프레데터의 집중 공격에도 튼튼하게 버텨 주고 있었다.
[방어막 손상률 5%. 현재 방어막 51%.]
어떻게 보면 무려 절반이나 깎였다고 생각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요한으로선 겨우 절반이었다.
‘절반 동안 나는 충분히 공격을 퍼부었고 소모한 마나도 없지.’
녀석이 언데드 군단과 방어막을 깨기 위해서 수없이 공격하고 스페이스 마나를 소모했지만, 요한은 구경하면서 지휘를 한 게 다였다.
새롭게 얻은 스페이스 마나를 온전히 보전하고 있었다.
물론 일반 마나는 현재도 계속 소모하고 있었다.
저 많은 군단을 마나 소모 없이 다루는 건 신이라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척-!
손을 한쪽으로 뻗은 후.
‘영혼 흡수.’
스킬 한 번만 사용하면.
[으아아악!!]
그의 아공간에서 고통받던 영혼 하나가 나타나 그의 훌륭한 마나 보충제가 되어 주었다.
단백질 보충제 못지않게 좋은 제품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은 제품이지.’
이젠 슬슬 End game에 다가서고 있었다.
삐빅-!
요한의 옆으로 화면 하나가 생성 되었다.
그의 지식과 프로그램 특성으로 빚어진 스페이스 마나 탐지기.
아직 완성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1가지는 확실히 알 수가 있었는데, 그가 흡수한 것이 플래닛 프레데터의 지식과 힘이었기에 플래닛 프레데터의 상태는 잘 알 수가 있었다.
[현재 플래닛 프레데터의 스페이스 마나 보유량. 33%.]
‘딱 1/3로 적당하군.’
스윽-!
옆에 세워 두었던 지팡이를 들었다.
‘끝을 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