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열심히 자기 최면을 거는 요한에게 안내인이 말했다.
“플레이어,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부터.”
“무한 반복되는 공간에서 벗어났습니다.”
“오, 확실히 좋은 소식이네. 난 또 다른 영화나 TV 드라마처럼 한동안 오래 갇혀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한참 고생하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는 아닌지 걱정하며 정말 큰일 나기 직전에 가까스로 탈출하는 장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스토리는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있었다.
“나쁜 소식은?”
“생각보다 상대가 훨씬 더 강한 것 같아요. 저쪽.”
슈우우욱-!
“……미친.”
요한은 안내인이 가리킨 방향을 보곤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곳엔 단순히 몬스터가 있는 게 아니었다.
마치 재앙이 닥친 것처럼 요한의 눈앞에선 하늘 전체가 보랏빛의 기운으로 몽실거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런 하늘 중앙에 송곳니가 가득한 입만 둥둥 떠 있었다.
"하, 시X. X 됐네.,
아무리 봐도 평범한 몬스터가 절대 아니었다.
‘99.99% 미지의 존재가 분명해. 그런데……. 저렇게 생겼다고?’
무지막지한 괴물이라고는 생각했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었는데, 온갖 종류의 존재가 다 생각났다.
인간 모습일 수도 있고, E.T 모습일 수도 있고, 머리가 디따 큰 외계인일 수도 있고.
하지만 막상 미지의 존재를 마주 하고 보니 자신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약했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건 괴물 수준은 한참은 뛰어 넘은 그야말로 재앙이잖아!!’
스페이스 이터만 해도 정말 끔찍한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소리가 나지 않다니, 이 얼마나 악취미 같은 몬스터인가.
스페이스 이터는 플래닛 프레데터와 비교하면 그냥 조금 특이한 몬스터에 불과했다.
"하하, 하긴. 이 정도 급은 돼야 차원을 먹어 치우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부를 수 있는 거겠지.’
자연스레 이해가 될 정도로 압도적인 박력이었다.
여전히 감각은 마비되어 있었지만, 본능적인 감각이 위험하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끝장을 봐야겠지.’
자신이 죽든 플래닛 프레데터가 죽든, 어쨌든 결판은 내야 했다.
‘내 쪽이 안 죽길 바라는 수밖에.’
마음은 그런데 문제는 막상 플래닛 프레데터와 마주하고 보니 희망이 옅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든 게 있었다.
‘죽음이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는지도 알겠네.’
지켜보고 있던 놈이 이런 무지막지한 놈과 싸우겠다고 난리 치면 자신 같아도 나서서 머리끄덩이라도 잡아당길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억울한 마음도 있었 .
‘아니, 내가 어?!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나타난 걸 어쩌라고?!’
상황이 이상해지니 별 희한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구르릉-!
그나마 다행(?) 인 것은 플래닛 프레데터는 무음의 몬스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녀석은 정말 재앙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면서 요한을 위협하고 있었다.
“후아!”
짝짝-!
요한은 자신의 뺨을 강하게 2번 때렸다.
짧은 시간에 너무 큰 충격을 여러 번 먹은 탓에 멘탈이 아웃 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흩어지는 정신을 다잡고 똑바로 플래닛 프레데터를 쳐다보았다.
지금은 그저 싸워서 이길 생각을 해야 했다.
“후우, 그걸 꺼내야겠군.”
[뭔데?]
“내 비장의 무기!!”
[꺄하핫. 요한 방금 중2병 걸린 환자 같았어. 개 웃겨.]
“어허, 개 웃기다니. 그런 말투 어디서 배웠어?”
[요한한테.]
"큼큼."
특히 혼잣말할 때 그의 말투는 격해졌기에 온갖 비속어는 기본이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쿠르릉-!
플래닛 프레데터의 움직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자, 모두 집중하자. 하늘, 네가 선두에서 싸워 줘.”
[히헛, 얼마든지. 요한은 내 아이스 이터들 좀 잘 챙겨 줘.]
“알았어.”
아이스 이터는 어디까지나 하늘의 부하였다.
다른 언데드의 부하였다면, 허락이 없어도 요한이 직접 다룰 수 있었겠지만, 하늘은 퀸 스피릿이었다.
언데드의 신이다 보니 아무리 지배하고 있는 네크로맨서라도 지배권을 허락 없이 빼 올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하늘은 요한에게 여전히 호의적이라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요한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을 텐데도 굳이 독립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요한은 하늘에게 더욱 애정이 샘솟았다.
어지간하면 언데드에 애정을 주지 않는 요한이었지만, 하늘만큼은 예외였다.
하지만 이건 요한이 모르는 엄청난 사실이 1가지 숨겨져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요한에게 충성하는 언데드가 아니라, 절대적인 규칙으로 인해서 독립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네크로맨서였다면, 하늘이 독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오랜 시간 요한의 코딩을 받아 온 언데드.
프로그램의 억제력으로 인해서 아무리 힘이 강력한 언데드라도 요한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언데드가 네크로맨서보다 강해지면 독립할 수 있는 것은 요한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요한은 엘리트 언데드를 얻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코딩식을 확인하고 개량하는 것이었으니까.
워낙 할 일이 많은 관계로 매일 하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1번씩 점검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꼭 손을 보았다.
그러니 그 어떤 언데드도 요한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솨아아-!
하늘이 뒤로 얼음을 뿌리며 공중으로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굳이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느냐고?
저적-! 저적-!
하늘이 움직인 방향을 따라서 얼음 길이 만들어졌다.
그녀가 뿌린 얼음이 플래닛 프레데터로 향하는 통로가 되어 준 것이었다.
척-!
요한이 손을 들어 올리자 하늘이 만들어 준 길을 따라서 언데드 군단이 마치 성을 함락하려는 군대처럼 얼음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대화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대화가 되는 상대인지도 모르겠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끔 고등 종족이 나오면 인간과 다른 형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인간도 헌터로 1단계 진화를 했지만, 텔레파시가 아니면 고등 대화는 여전히 불가능했다.
카가각-!
언데드 군단은 얼음을 밟으며 플래닛 프레데터를 향해서 무섭게 쇄도했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푸화아악-!
“!!”
플래닛 프레데터는 예비 동작도 없이 송곳니만 존재하는 입에서 보라색 안개 같은 연기를 뿜어냈다.
“피해!!”
요한은 다급하게 외쳤다.
보랏빛 구름은 그대로 언데드 군단을 덮쳤고, 보랏빛 구름에 닿은 언데드 군단은 단 1기도 남지 않고 모조리 보랏빛으로 스러졌다.
마치 모래성에 막을 수 없는 파도가 닥친 듯한 모습이었다.
"......."
요한은 할 말을 잃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엘리트 언데드는 거의 다 살아남았다.
그리고 요한의 곁에 있던 아이스 이터들도 재빨리 피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대부분의 일반 언데드는 모조리 사라졌다.
문제는 일반 언데드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일반 언데드 중에서 그냥 대충 만든 하급 언데드와 다르게 상급 언데드는 대부분 요한의 피와 땀이 가득 묻어 있는 귀한 이들이었다.
수많은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백전노장 같은 귀한 언데드도 있었다.
아무리 하급 언데드라도 요한은 꽤 신경을 많이 써서 코딩도 해 주었다.
그런 언데드 군단이 단 1방의 공격에 모조리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이런 제에엔자아아아앙!!”
분노가 단전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른 요한의 포효가 터졌다.
‘절대 용서 못 해, 안 해!!’
지금껏 어떻게 모은 언데드 군단인데!
어떤 개고생을 통해서 수집한 언데드인데!
장렬하게 싸우다 깨진 것도 아닌, 겨우 공격 한방에 모든 것이 사라진단 말인가!
타이밍도 딱 맞았다.
‘체인지 리치!’
두근-!
“흡!!”
새롭게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요한의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크아아아악!!”
막대한 고통과 함께 요한의 몸에서 피와 살점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불붙은 종이처럼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크아아아악!!”
고통은 짧았다.
약 1분 정도 지속한 고통은 곧 끝이 났다.
[후욱!]
심호흡 1번이었지만, 엄청난 양의 죽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요, 요한?]
하늘은 요한의 변화한 모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털썩-!
“절대자를 뵙습니다.”
가장 충실한 종이자 언데드인 엘라드가 무릎을 꿇는 것을 시작으로.
“어둠의 군주님을 뵙습니다.”
자긍심이 높고 언데드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늘에게마저 도전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자신을 낮출 줄 모르는 류페이마저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시했다.
[이게 나의 모습?]
요한은 뼈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쓰다듬어 보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역시 나도 언데드가 된 건가?]
딱히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띵-!
[리치가 되셨습니다. 특성과 결합한 보정으로 모든 스탯 및 스킬이 아크 리치로 보정됩니다. 아크 리치는 생전에 대마도사가 리치가 되었을 때 되는 존재입니다. 지금부터 대마도사의 힘을 발휘하며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게 됩니다.]
[흠,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나는 마법을 잘 모르는…….]
지잉-!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한의 앞에 엄청난 정보창이 떠올랐다.
요한을 중심으로 사방에 생긴 정보창엔 온갖 마법이 적혀 있었다.
[와우.]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덕분에 요한을 미치게 했던 분노는 많이 가라앉을 수가 있었다.
촤라락-!
요한이 손짓을 하자 정보창이 빠르게 움직이며 다른 마법을 보여 주었다.
‘이거지.’
[시간 역행.]
요한은 곧바로 원하던 마법을 찾아서 사용했다.
방대한 마나가 방출되며 요한을 주변으로 파란 기운이 휘몰아쳤다.
엄청난 마나 계수가 나오면서 주변에 존재했던 모든 것의 시간이 되감기가 되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5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사기적인 마법인 시간 역행이었다.
[흐읍]
하지만 금기에 가까운 시간 마법이다 보니 소모되는 마나는 그야말로 엄청나다는 표현으론 부족했다.
‘영혼 흡수!’
[꺄아아악!!]
요한은 얼른 주머니에 비상용으로 챙겨 뒀던 영혼을 꺼내어 마나를 보충했다.
이름 모를 살인자의 영혼이 요한의 몸으로 흡수가 되어 훌륭한 단백…… 아니, 마나가 되어 주었다.
영혼은 오히려 즐거워했다.
더는 요한의 몸 안에서 고통받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이건 완전한 해방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가 고통에서 벗어나 갈 곳은 지옥이라는 새로운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을.
이 세계의 지옥이라는 오로지 악인들을 위한 곳에 말이다.
어쨌든 요한은 연속으로 약 20기의 영혼을 흡수하고 나서야 겨우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그만큼 시간 역행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와아, 시간 마법!]
하늘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
다른 언데드들은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