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이, 이……!! 나쁜 몬스터들 같으니라고!!]
솨아아아-!
분노한 하늘이 빠르게 움직이며 사방으로 블랙 아이스를 뿌려 댔다.
저적-! 저적-!
요한을 습격했던 소수의 스페이스 이터는 금방 얼어 버리며 아이스 이터로 재탄생했다.
‘끄응, 이번엔 진짜 위험했네.’
다른 길을 찾기 위해서 처음 가 본 방향으로 향한 참이었다.
협곡 같은 곳이었는데, 처음에 이곳을 발견했을 때는 스페이스 이터에게 기습당하기 딱 좋은 곳이라 피해서 돌아간 곳이었다.
길을 찾기 위해서 다양한 패턴을 입력할 필요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습격 위험이 다분한 협곡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 협곡도 신기하게 생긴 곳이었다.
협곡의 벽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고 그곳엔 마찬가지로 우주가 보였다.
다 똑같은 우주가 아니라, 다양한 행성이 존재하는 우주였다.
[요한, 괜찮아?]
“물론 괜찮지. 조금 놀란 것 말곤 아무렇지도 않아.”
확실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좀 많이 놀란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아씨, 분명히 대비했는데 진짜 아차 싶을 때 습격을 하네?’
아무리 감각이 차단됐다고 해도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질 않았다.
헌터가 된 이후로 쭉 함께했던 예민한 감각이었다.
형제와도 같은 그런 감각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렸으니 쉽게 적응이 될 리가 없었다.
멀쩡하던 눈이 하루아침에 멀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쉽게 적응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끄응.’
깜짝 놀란 탓에 목이 다 뻐근했다.
‘내가 이렇게 놀라 본 게 얼마만 일?’
그의 기억으로만 따지면 지금까지 살면서 딱히 놀라 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어렸을 때 여동생의 장난으로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영상에 몇 번 놀란 것을 제외하면 놀랄 일이 거의 없었다.
운전이라도 했으면 운전을 엉망으로 하는 몇 명으로 인해서 놀랐겠지만, 그는 BMW족이었다.
버스(B)와 지하철(M) 도보(W)를 착실히 이용했고 운이 좋게도 그 과정에서 사고를 겪은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스페이스 이터의 기습은 요한을 정신 차리게 하는 큰 요인이었다.
‘이대로 언제까지 운이 좋게 막을 수는 없을 거야. 이번엔 엘라드가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지킨 덕분에 운이 좋았어.’
치이익-!
팔이 으스러질 정도의 상처를 입은 엘라드였다.
다행히(?) 그녀는 언데드였기에 고통은 없었다.
거기에다가 그녀의 자체 회복력은 활을 얻은 이후로 거의 사기적으로 변한 상태.
활이 자체적으로 죽음의 마나를 이용해 엘라드의 몸을 보호하고 회복시켜 주었다.
언데드 군단 중에서 회복력은 엘라드가 1위일 정도였다.
우드득-!
‘으우.’
다만, 회복하는 과정이 언데드답게 매우 기괴했고 요란했다.
삐빅-!
“분석이 끝났습니다.”
“오, 결과는?”
“이 공간 자체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마나 필드가 처져 있고 공간 왜곡까지 되어 있어요. 아마도 이곳에서 우리를 말려 죽일 생각이었겠죠."
“그것도 아니라면, 충분히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할 생각이겠지.”
“그럴 수도 있겠죠.”
안내인은 여전히 냉철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그녀의 태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요한은 그런 안내인의 모습에 문득 궁금해졌다.
“음, 그런데 안내인 씨?”
“네, 플레이어.”
“궁금한 게 생겼는데. 육체를 잃기 전에 정체가 뭐였어?”
“질문의 뜻은 알겠는데 왜 물어보시는 거죠?”
“뭐, 그냥 문득 궁금해져서 말이야. 그래도 우린 꽤 오래 함께하고 있잖아?”
“그렇죠. 그것도 인간, 아니 한국인 특유의 정 문화인가요?”
“뭐야, 그런 것도 알아?”
“공부 좀 했습니다. 저는 늘 배우는 존재니까요.”
“배우는 존재라……. 너에 대한 것을 처음 알게 됐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음성과 환영으로 존재할 때와는 또 다른 냉철한 안내인이었다.
외형이 안드로이드라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딱딱하고 무감각했다.
과거 눈치 보기 장인이었던 일반인이었을 때와는 달리 헌터인 요한은 이제 이런 부분엔 무감각해졌다.
아니, 마이 웨이적 성격이 더 강해졌다고 할 수가 있었다.
“뭐, 딱히 중요하진 않지. 그냥 심심풀이 말 상대?”
“각성몽에서 늘 하던 일이군요.”
“바로 그거야. 킥킥.”
요한에게 대화 상대가 쌀쌀맞든 냉정하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냐, 못 하냐가 중요할 뿐이었다.
“뭐, 지금까진 농담이었고. 어때, 해결할 수 있겠어?”
“절반은요.”
“절반?”
“네, 계산식과 방법은 알겠는데. 저의 힘으론 부족해요.”
“힘? 마나?”
“네.”
“내 마나를 쓰면 가능하려나?”
“플레이어의 마나를 사용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써.”
“알겠습니다.”
척-!
안내인이 요한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뭐야?”
“제 손을 잡으세요. 우린 링크할 것이고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어요.”
“흠……."
뭔가 좀 이상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기에 요한은 안내인의 손을 잡았다.
우웅-!
‘흡!’
엄청난 마나가 요한의 몸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뭔가 몸이 땅으로 훅 꺼지는 느낌과 함께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쿠르르릉-!
요한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공간이 무너지고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었다.
요한을 가두었던 공간이 무너지고 진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요한은 숨을 크게 내뱉었다.
순간 가슴이 꽉 조이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기 때문.
‘여긴?’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손을 잡고 있던 안내인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언데드 군단도 아무것도 없었다.
휘이잉-!
“으헉!”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 때문에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정신 차리고 보니 그는 서울타워 맨 꼭대기에 서 있었다.
스카이라운지가 아니라 그 지붕 위.
“내,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 거야?”
고소 공포증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 있으면 그것도 맨몸으로.
누구나 두려워할 것이었다.
왜? 떨어지면 곧바로 죽음이니까.
[그래, 죽음…….]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고 요한은 다시 한번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검은 망토를 깊게 눌러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
“너는?”
[우리는 죽음이다.]
섬뜩한 목소리가 요한의 머리를 자극했다.
검은 존재는 목이 아니라 텔레파시로 대화를 했으니까,
“우리?”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곳엔 그와 요한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우리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지. 죽음이니까.]
“갑자기 왜 나타난 거야. 지금까지 사소한 메시지조차 없었잖아?”
사건에 개연성이 전혀 없었다.
[원래 우리는 영원히 네 앞에 나타날 일이 없는 존재지. 네가 어이 없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말이야.]
“어이없는 일?”
[플래닛 프레데터.]
"!!"
[그 녀석과 싸우려 들더군. 아직 너는 나약한데.]
후웅-!
검은 존재는 요한의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뒤에서 나타났다.
‘어우야.’
전혀 낌새도 느끼지 못한 이동은 늘 소름이 끼쳤다.
[우린 수많은 자식을 두고 있지.]
[그중의 하나가 너다, 젊은 네크로맨서여.]
갑자기 목소리가 여럿 들리기 시작했다.
‘젠장, 별 걸로 다 괴롭히네.’
[너는 내가 낳은 자식 중에 가장 뛰어나지.]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나에게 먼저 오려고 하는구나.]
[아직 너는 할 일이 많다.]
“나보고 어쩌라고, 스페이스 포탈을 막지 않으면 내가 사는 세계가 파괴될 텐데!”
[그래서 우리가 너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너에게 힘을 주려고.]
“힘?”
갑자기 힘이라니?
[우리도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최소한 너는 살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지.]
[강력한 힘엔 강력한 죽음도 함께하는 법.]
[그걸 명심해라.]
"뭔......?"
띠링-!
[새로운 스킬 언데드화를 습득하였습니다.]
[언데드화 Lv.∞]
설명: 네크로맨서의 고민은 나약한 육체에 있다. 아무리 강력한 언데드를 소환하고 아무리 극악한 저주 마법을 사용해도 강력한 적들은 나약한 네크로맨서의 육체를 노리려고 한다. 그 어떤 강력한 힘도 육체가 붕괴한다면 사라지기 때문. 그래서 네크로맨서들은 육체를 강화할 방법을 오랜 시간 연구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았다. 자신의 몸을 언데드화시키는 것으로.
〈스킬 현황〉
▶ 체인지 리치: 해당 육체는 리치와 적합하기에 몸을 리치로 만듦.
‘이, 이건?'
[A.I와 프로그램이라는 특수한 특성을 가진 너만이 가질 수 있는 스킬 점프지.]
[이렇게 힘을 곧바로 줄 수 있는 것도 너기에 가능한 일.]
[그러니 너는 우리의 일을 끝내기 전엔 우리 곁으로 오면 안 돼.]
“내가 해야 할 일이라니?”
[나머진 천천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솨아아아-!
죽음은 왔을 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거…….'
무척이나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요한은 정신을 살짝 잃어야 했다.
***
“플레이어, 플레이어!”
“허억!”
‘아씨 또?!’
짧은 시간에 연속으로 숨이 넘어 가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플레이어, 괜찮으십니까. 방금 생체 신호가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내 생체 신호가?”
“네,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못 보던 스킬이 생성되었군요.”
“넌 정말 뭐든지 알 수 있구나?”
“적어도 플레이어에게 벌어진 일이라면요.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죽음을 만나고 왔어.”
요한은 굳이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이곳에 존재하는 건 오직 그의 부하뿐이었다.
안내인은 포탈 밖에선 존재할 수 없는 존재고, 나머진 요한의 힘으로 존재하는 언데드들.
엘리니아가 있긴 했지만, 그녀는 요한의 그림자였다.
언데드보다 더 그림자 같은 존재였기에 딱히 걱정되지 않았다.
“죽음이요?”
“나를 네크로맨서로 만들어 준 존재.”
[뭐야, 요한. 진짜로 그들을 만나고 온 거야?]
“하늘 너는 죽음에 대해서 알아?”
[당연하지. 나를 탄생시킨 게 그들인데. 와, 대단하다. 요한, 정말 대단해. 어떻게 나도 못 해 본 일을 할 수 있어?]
“뭐야, 언데드의 신이 못 하는 일도 있어?”
[아무리 언데드의 신이라도 죽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거든.]
“킥킥. 유머 감각 많이 늘었는데?”
[정말?!]
천하의 언데드의 신이 요한의 유머 칭찬에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래, 많이 늘었어.”
[꺄하핫.]
“후우.”
요한은 무릎을 짚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짧은 시간에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많이 벌어졌다.
정신이라도 다잡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자신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어, 나 자신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