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드디어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물론 모든 해룡족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아틀라스가 파멸했다고 해도 해룡족은 이곳 해저 전체에 퍼져 있었고 아직 잔당이 꽤 많이 남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요한이 감당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가 의뢰받은 일은 인어 종족의 해방이었다.
아틀라스를 점령하고 해룡족의 중추적인 인물들인 왕자들을 모두 죽인 것으로 인어 종족의 끝없이 반복되던 노예 생활은 끝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드디어……!]
오드리는 감격한 눈으로 아틀라스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오직 인어 종족 해방만을 위해서 살아왔던 그녀는 의무의 굴레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잖아.”
[하긴, 그렇죠.]
오드리는 요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아틀라스 주변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미지의 존재가 손댄 이후로 흉포해진 몬스터들, 그리고 여전히 건재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해저인들까지.
인어 종족은 이제부터 그들과 경쟁하며 세력을 키워 가야 했다.
“잘할 수 있겠어?”
요한의 표정은 어느새 정말 평온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는 늘 무표정이나 찡그린 채로 생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모든 퀘스트가 사라지니 그야말로 행복한 상태가 아닐 수 없었다.
까칠하던 요한도 사라진 지 오래.
오드리와 만난 이후 처음으로 다정 모드 상태였다.
[……잘 모르겠어요.]
오드리는 처음 보는 요한의 부드러운 태도는 뭔가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봉인에서 깨어난 이후 쭉 까칠한 그였으니 오드리의 이런 태도와 느낌은 당연하였다.
그녀가 그동안 요한에게 얼마나 시달렸는가?
어색해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했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만큼 요한의 태도는 일반적인 부분에선 종잡기 참 힘들었으니까.
[아쉽네요.]
“엥, 설마 봉인이 너무 일찍 풀렸어?”
[그런 거 아니에요!]
‘당신과의 이별이 아쉽다고요.’
참 이상한 일이었다.
요한은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따뜻하게 군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묘한 태도가 그녀를 자극했던 걸까?
나쁜 남자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까?
티격태격했지만 어느새 오드리는 요한이란 남자에게 푹 빠져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종족이 다르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드리는 일반적인 사이라고 하기엔 밍밍한 요한과 엘레노아라는 인간 사이에서 일반인은 느낄 수 없는 묘한 교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요한, 엘레노아 둘 다 절대 넘을 수 없는 단단한 벽끼리 교환하는 교감은 그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둘의 사이가 끈끈하다기보다는 벽 자체가 워낙 높고 견고한 탓이었지만.
어쨌든 오드리는 요한을 사모하는 마음을 혼자 간직하기로 했다.
‘그래, 차라리 잘됐어. 어차피 인어 종족의 부흥을 되찾기 위해선 연애나 결혼 따위 나에겐 사치지.’
그녀는 속으로 인어 종족을 위해서 희생할 것을 맹세했다.
***
인어 종족은 정말 눈부시고 빠르게 재건을 시작했다.
“요한, 아~.”
“아~”
덥썩.
현재 요한은?
그야말로 극락에 온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룬디 섬에서 머물던 인어 종족의 90%가 아틀라스로 되돌아왔다.
100%가 아닌 이유는 어느 정도 정치적인 이유가 들어가는데, 이미 룬디 섬이라는 훌륭한 장소를 그들이 가꾸어 놓았다.
엘레노아의 요청에 따라서 룬디 섬을 인어 종족과 러셀 가문의 화합 장소로 쓰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인어 종족이 받아들였다.
그들도 이번에 크게 깨달았다.
폐쇄적인 종족의 분위기로는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고.
당장 해룡족의 위험은 없어졌다.
이번 전쟁으로 잔자클 또한 그 숫자가 매우 줄어들어 당분간은 번식에 집중할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해저인은 요한에게 꽤 많이 죽긴 했지만, 여전히 건재했고, 더 큰 문제는 이제 지구인과도 대립할 수 있게 되었다.
요한이 퀘스트를 깨면서 몬스터들은 얌전해졌고 미친 듯이 요동치던 기운은 사라졌다.
또 영국 길드에겐 지X 같은 일이겠지만, 경험치 보너스도 사라졌다.
이젠 정말 하나의 세계가 된 것이다.
‘인간과 경쟁하려면 폐쇄는 답이 아니야.’
그런 점에서 러셀 가문, 아니 엘레노아 러셀은 훌륭한 파트너였다.
‘우리를 힘들게 도와줘 놓고 바로 배신하지는 않겠지.’
언젠가는 싸울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이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란 종족이 얼마나 욕심이란 허울 앞에서 충실한 노예가 될 수 있는지를.
그렇기에 인어 종족을 빨리 재건 해 과거의 번영을 재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적극적인 교역만이 답이다.’
요한과 짧았지만, 임팩트가 큰 교역 덕분에 인어 종족은 굉장한 이익을 보았다.
그 경험이 훌륭한 자양분이 될 터였다.
[요한 님, 매번 고마워요.]
“크흐흐, 고맙긴 무슨. 아무런 방해 없이 이렇게 푹 쉬는 게 얼마 만인지. 이걸로 충분해.”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너도 바쁘지 않아? 빨리 가 봐. 듣기론 너 엄청나게 찾는다며?”
[네, 그러면.]
오드리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현재 인어 종족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인력.
완전히 반파된 아틀라스를 재건하기엔 인어 종족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염치가 없지만, 요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노동력 하면 요한 아니겠는가!
요한의 엄청난 언데드 군단이 지금 아틀라스 재건 사업에 투입이 된 것이다.
“오호호호.”
“요한, 너무 재밌다.”
“그렇지?”
그의 주변엔 그와 친분이 있는 인어 3명이 붙어서 수발을 들고 있었다.
인력이 미친 듯이 부족한 인어 종족에게 이 유능한 인어 3명은 매우 큰 손실이었지만, 요한은 혼자서 단순 노동자 1만이 넘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엘리트 인재 3명을 희생한 것에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안내인 씨. 잘하고 있어.”
“……제가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요.”
“으하핫, 조금만 고생해 줘. 어차피 여기서 오래 있을 생각 없다고?”
“하아, 알겠습니다.”
그냥 방치하는 게 아니었다. 안내인이 조종하며 요한도 코딩식으로 어느 정도는 관리를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안내인의 직접 관리하에 아틀라스 재건 작업에 투입되어 있었다.
물론 겨우 이런 것으로 귀한 언데드 노동력 제공을 퉁 치는 건 아니었다.
막대한 재화와 보물을 제시받고 해 주는 것이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건축가 5명을 파견받는 거지만.’
어디로?
이미 그의 집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천공의 방어 요새로.
한국에 있는 저택은 잊어버린 지 오래.
이젠 거의 별장 취급하고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더 자유로워진 기분을 만끽할 수가 있었다.
인어 종족은 건축의 대가들.
특히 그런 이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건축가로 보내 준다니 방어 요새를 어떻게 꾸밀지 벌써 기대가 되었다.
물론 이미 요한에겐 기술자가 요새에 상주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기술자지 건축가가 아니었다.
좀 더 화려하고 실용적인 부분은 인어 종족 건축가가 훨씬 더 잘하리라.
‘흐흐흐, 점점 나의 파라다이스가 완성되어 가고 있지.’
이미 수많은 셀럽이 SNS에 요한의 방어 요새에 초대받고 싶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어, 그래. 그러면 인기 많은 셀럽이나 연예인들 초대해서 파티나 한 번 열까?’
파티 피플!
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란 말인가.
요한은 어렵게 살 때는 파티나 열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이들이 이해가 안 되면서도 엄청나게 씹어 댔다.
상대적 박탈감이랄까?
나는 이렇게 고된 삶을 살아가는 데 저들은 뭐가 좋다고 저렇게 사치를 부리며 살까 하는 열등감도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젠 그가 최고의 셀럽이었다.
전 세계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며 단 하루만이라도 그와 함께하고 싶어 하고 있었다.
‘이제 여유가 생겼으니 못 할 건 없지.’
조용한 휴식도 나쁘진 않지만, 어차피 그가 원하면 얼마든지 쉴 수가 있었다.
‘전 세계 그 어떤 의뢰도 안 받아들여.’
요한의 영국 내 스카이 포탈 공략 소식은 이미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있었다.
공략이 끝나자마자 엘레노아가 밖으로 나가서 사실을 알리고 그녀를 중심으로 스카이 포탈과의 교류를 준비하면서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 세계가 난리가 났다.
그야말로 요한 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들은 요한의 강력함에 경이로움을 보냈고 정부와 협회는 러브콜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들도 스카이 포탈을 자신들의 힘으로 처리하고 싶었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자존심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
스카이 포탈의 악명은 최고였지만, 어떻게든 자국의 힘으로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베트남에 이어서 영국마저 요한이 홀로 공략하는 데 성공하고, 그사이에 몇 번이고 도전해 봤지만, 공략은커녕 1단계 나아가는 것도 헌터의 꽤 큰 희생이 필요 했다.
세계 정부는 스카이 포탈 공략이 이대론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다가 베트남에 이어서 영국까지 요한 혼자서 공략하는 데 성공하자 엉덩이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요, 요한 헌터를 잡아야 해!”
“겨우 1명이잖아. 이렇게 스카이 포탈 공략이 더뎌질 바에야 1명한테 부탁하는 게 낫겠어!”
그들은 이제야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요한이 혼자 스카이 포탈을 클리어했다고 해서 절대 스카이 포탈이 만만한 곳이 아님을 세계 정부는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흠흠~.”
세계 정부의 요원들이 요한을 만나고자 했지만, 그는 세인트 포탈에서도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아틀라스의 별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아틀라스는 파괴되었지만, 외부 방어벽은 여전했다.
어차피 안에서만 벌였던 전투라 굳이 외벽을 지키는 방어벽을 건드릴 필요도 없었고, 이것 또한 에너지 공급기와 연동되어 있었기에 요한이 컨트롤하기도 쉬웠다.
뭐, 요원들이 이곳 세인트 포탈에 어찌어찌 들어온다고 해도 절대 이곳으로 올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까르르륵, 요한 좀 더 얘기해 줘. 그다음에 어떻게 됐어?”
“이다음에?”
“응, 응!”
그야말로 주지육림의 향연이었다.
***
요한은 아틀라스의 재건을 70% 끝냈을 때쯤 마침내 세인트 포탈에서 벗어났다.
무려 7개월의 대장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요한이 한 일은 미녀 인어들과 즐겁게 지낸 게 전부였다.
육체적인 관계는 없었다.
이미 그는 엘레노아를 마음에 품고 있었기에 다른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 건 죄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그 외에 즐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즐겼다.
‘파티의 예행연습 제대로 했어.’
그리고 곧바로 직원들을 호출해 이번에 파티를 열 것이니 초대할 셀럽을 추려 보라고 지시했다.
요한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당황한 직원들이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손님 추리기 작업에 들어갔다.
“요한 헌터님, 이번에 캐나다에서 손님이……."
“안 만난다고 해.”
“하, 하지만……."
찌릿-!
이미 보름이 넘게 기다린 사람이라 안쓰러워 어떻게든 만나게 하려다가 요한이 째려보자 꼬리를 내렸다.
‘이제 좀 제대로 쉬려고 하는데, 뭐? 스카이 포탈 좀 클리어해 달라고? 미치지 않고서야!!’
요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소중한 휴식 시간을 지킬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