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류페이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명확하지가 않아서 확인이 필요해 보였다.
“잘했어, 류페이. 이번에도 또 한 건 했구나.”
“크히힛, 내가 언제 활약하지 않은 적이 있었어?”
“없었지?”
“푸하핫!”
류페이는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나 요한과의 대화는 즐거운 일이었다.
“가 보자, 레아.”
“네.”
해룡족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드넓은 도시인 아틀라스에서 피해를 보지 않은 몇 안 되는 장소는 거대한 신전 같은 곳이었다.
주변이 완전히 막혀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오직 돌로 된 거대한 정문뿐이었다.
딱 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 문이었다.
“흠, 류페이.”
“쳇, 역시 이런 일은 내가 해야 하네."
“네가 힘이 제일 세잖아.”
“쳇.”
맞는 말이었기에 혀만 차고 신전 앞으로 걸어갔다.
우드득-!
깍지를 낀 채로 시원하게 뼈를 푼 다음에 류페이는 거대한 석문을 양손으로 힘껏 들었다.
“흐읍! 엉?”
“뭐야, 이거?”
류페이가 1차로 당황했고 요한도 2차로 당황했다.
‘15t의 바위도 드는 류페이야. 그런데 그런 류페이의 힘을 버텼다고?.'
어이가 없었다.
15t의 바위를 들었다는 것은 단순히 문을 밀 때는 더 많은 힘을 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들 때 필요한 힘과 밀 때 필요한 힘은 완전히 다르니까.
그런데도 석문은 류페이의 힘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무겁고 튼튼한 문이라고 해도 류페이 정도의 힘에 꿈쩍도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돼. 그렇다는 건 뭔가 특수한 잠금 장치가 되어 있다는 뜻이겠지.’
“류페이, 그만.”
“아, 왜?”
“아무래도 그 문, 특수한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것 같아.”
“아, 어쩐지.”
류페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곤 살짝 떨어졌다.
요한은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정밀 분석 프로그램을 돌려 보았다.
띠띠-! 띠띠-!
정밀 분석 프로그램은 개량되고 개선돼서 성능이 엄청나게 나왔다.
그저 사진을 찍고 버튼 몇 개 누르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대상의 뼛속까지 정보를 뽑아낼 수 있었다.
# 봉인된 사원
설명: 아틀라스에 유일한 해룡족의 건축물. 해룡족이 중요한 무엇인가를 봉인하기 위해서 지은 건축물로 그야말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건축물. 왕의 인식표를 정문 옆에 있는 틈에 넣으면 열리는 형태다. 오직 해룡족 왕만이 이곳을 오 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흠, 이딴 설명문 말고 이 문을 여는 방법을 제시하란 말이야.’
[일반적인 방법으론 문을 열 수 없음. 신전에 쳐진 마법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파괴해야만 열 수 있음.]
“……에휴, 그러면 그렇지.”
이번에도 에너지 공급기처럼 쉽게 해킹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신전은 그런 해킹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긴, 모든 걸 해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가끔은 이렇게 단순하게 해야지.’
“류페이.”
“응?”
“파괴해야 한데.”
“내 그럴 줄 알았어.”
철컥-!
류페이는 검을 꺼내는 대신에 갑옷을 벗었다.
플레이트아머를 벗자 안에 껴입은 체인메일이 등장했다.
“뭐 하냐, 갑자기 갑옷은 왜 벗어?”
“부수라며.”
“그런데?”
“저렇게 무식한 건 검으로 부수면 검 부러져. 그럴 바에야 그냥 힘으로 부수는 게 훨씬 나아.”
“아하.”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해 줄 건?”
“스킬 하나만 건드려 줘. 데스 블레이드를 데스 피스트로 바꿔 줄 수 있어?”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
이미 코딩이 끝난 스킬은 수정도 쉬운 편이었다.
요한은 스마트폰을 들어서 류페이가 요구한 대로 스킬을 수정해 주었다.
샤아아아-!
“오, 진짜 되네?”
“그럼 가짜인 줄 알았냐.”
“킥킥, 역시 네크로맨서가 유능하면 언데드가 편하다니까.”
“그거 원래 반대 아님?”
“뭔 상관?”
“하긴.”
둘의 만담 스킬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었다.
어쨌든 데스 피스트로 스킬을 수정한 류페이는 호흡을 가다듬고 정문 앞에 섰다.
고오오오-!
그녀의 주변에 강력한 데스 오라가 방출되었다.
방출된 오라는 그녀의 오른쪽 주먹에 뭉쳤고 요한도 스마트폰을 사용해 그런 류페이의 힘을 보조해 주었다.
“크하아아아압!!”
류페이는 온 힘을 다해서 주먹을 휘둘렀고 강력한 주먹이 신전의 정문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흙먼지가 주변을 가득 메워 시야를 가렸다.
‘됐나?’
엄청난 충격 탓에 흙먼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무엘, 물 좀 뿌려 봐.”
[예.]
솨아아아-!
사무엘의 힘으로 여우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먼지를 깔끔하게 씻어 냈다.
“오?!”
흙먼지가 씻겨 나간 자리엔 본 골렘도 지나갈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크으, 대단하네.”
“내가 좀 한 솜씨 하지!”
"큭큭."
요한은 으쓱대는 류페이의 어깨 위에 손을 살짝 얹어서 공을 격려 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지나쳐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딸깍-!
이미 스켈레톤 짐꾼의 짐에서 고성능 랜턴을 챙겨 온 상태였다.
눈에 직격으로 쏘면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을 자랑하는 랜턴이 작동하자 어두웠던 신전 내부가 마치 대낮처럼 환해졌다.
저벅저벅-.
밀폐된 공간 특유의 울리는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역시 제일 위쪽인가?’
뭔가 있으면 꼭 제일 아래층 혹은 제일 위층에 있는 규칙 같은 게 있었다.
딱히 급할 건 없었기에 주변을 구경하며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특별한 함정 같은 것은 없었다.
‘하긴 애초에 그들은 이곳이 이렇게 침략자로 인해서 열리리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저 철저한 문은 어리석은 해룡족이 호기심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리라.
저 무식한 문을 부수려면 절대 조용히 들어오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신전 맨 위층은 빛이 나는 광석으로 인해서 어둡지 않아 랜턴을 꼈다.
“저건?”
신전 맨 위층엔 제단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도 뭐가 좀 많이 놓여 있었다.
[아아……!!]
오드리가 그걸 보더니 잔뜩 흥분 했다.
“왜, 뭔데?”
[여, 여왕님이야! 여왕님이 아직도 살아 계셨어!!]
오드리는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미지의 존재와 해룡족이 죽였을 거로 확신했던 여왕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죽지 않고 봉인된 상태로 이 철저한 보안을 자랑하는 신전에 갇혀 있었다.
“음……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저 구슬을 포함한 모든 구슬의 생명 반응이 너무 미미한데?”
[그, 그럴 수가!! 그, 그냥 마나가 적은 것 아니었나요?]
요한의 한마디에 환희로 가득 찼던 오드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절규로 바뀌었다.
그녀의 물음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마나를 서서히 착취당해 왔어. 솔직히 그동안 버틴 것도 대단한 일이야.”
[그, 그럴 수가…….]
“아무래도 해룡족이 억지로 여왕의 생명을 조금씩 연장해 온 것 같아. 물론 저 구슬 안에 있다면 영원히 살 수는 있을 거야. 하지만 그건 삶이 아니라 연명이겠지.”
[그, 그런……. 요, 요한 님, 어떻게 안 되는 건가요?]
“미안, 나도 방법이 없어. 나는 죽음을 다루는 거지 죽을 사람을 살리는 건 불가능해.”
물론 그가 회복 능력을 관장하는 신관이나 힐러는 아니었기에 100%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석 프로그램이 아주 또렷하게 말하고 있었다.
인어 여왕은 이제 끝이라고.
이곳에 있는 인어 근위대도 더는 희망이 없다고.
“아무래도 너희는 새로운 리더를 선출해야 할 것 같네.”
[아흐흐흑!]
굳건하게 버티던 오드리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바닥에 앉아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엄청난 오랜 시간을 오직 인어 종족 부흥을 위해서 온갖 치욕과 고통을 이겨 내 왔다.
다른 인어 종족의 희생을 보면서 얼마나 슬폈던가.
오직 인어 종족의 부흥만을 위해서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견뎌 왔다.
[저, 저는 이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오직 목적만을 위해서 살아온 그녀에겐 목적의 상실은 삶의 모든 의지를 빼앗아 갔다.
그녀는 혼란에 빠졌고 이대로 두면 끔찍한 결정까지 하리라.
‘에휴.’
요한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래서 그는 일반적인 소환수보다는 언데드가 훨씬 편했다.
언데드는 예민한 생명체가 아니었기에 이런 식으로 멘탈 관리를 해 줄 필요가 없었다.
그게 얼마나 편한 것인지 관리직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아주 잘 알 것이었다.
‘이래서 난 평범한 부하가 싫어.’
싫다고 해서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다행스럽게도 요한이 오드리에게 해 줄 말이 있었다.
그는 자세를 낮추고 오드리와 눈 높이를 맞추었다.
“울지 마.”
[.......]
“왕이 없으면 어때. 이제부터 네가 인어 종족을 이끌면 되잖아.”
[그, 그런!!]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생각만 해도 불경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왕이 살아 있었다면, 놀랄 일이지. 하지만 이제 여왕은 없어. 그렇다고 장로들이 잘 이끌어 갈 것 같지도 않아.”
실제로 룬디 섬의 장로들은 현상 유지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지만, 뭔가를 적극적으로 개척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그저 다른 인어보다 조금 더 오래 산 것에 대한 지혜 덕분에 어떻게든 상황을 좀 더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것뿐이었으니까.
지금이야 요한이 그들을 지켜 주고 있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곧 요한이 손을 뗀다면 획기적인 리더쉽이 필요해질 것이었다.
요한은 오드리라면 충분히 잘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 지랄 같은 성격인 나를 잘 따라다녔단 말이지.’
못 할 게 없을 것이었다.
“계속 이렇게 울고만 있을 거야. 아니면 인어 종족을 위해서 힘을 낼 거야?”
[……네, 힘을 낼게요.]
오드리의 슬픔은 짧았다.
사실 여왕에 대한 그리움은 별로 없었다.
실제로 그녀가 봉인 당했을 당시엔 천한 신분이었기에 왕족을 만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목표가 사라진 것에 대한 허무함으로 인해서 정신이 붕괴될 뻔한 것.
하지만 요한이 그녀에게 새로운 목표와 목적을 부여해 주었다.
반역 같아서 조금 꺼림칙하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여왕은 이미 죽어 가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다른 대타가 필요했고, 현재로선 다른 인어의 영혼을 흡수 해 힘과 지식을 얻게 된 그녀가 답이었다.
“좋아, 이래야 오드리답지.”
[요한 님도 참…….]
“아 참, 저것들은 어떻게 하지. 놔두면 살기는 할 텐데, 그렇다고 이곳에 계속 둘 수는 없잖아.”
[요한 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오, 진짜?!”
[네, 어차피 우리 인어 종족은 장례 풍습은 없어요. 죽으면 끝, 죽은 자에게는 미련이 없으니까요.]
냉정해질 때는 이보다 더 냉정할 수가 없었다.
슬퍼할 때는 언제고 제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인어 종족 특유의 과감한 일 처리가 진행되었다.
“흐흐, 고마워. 잘 쓸게.”
요한은 얼른 다가가 여왕이 봉인 된 구슬을 집어 들었다.
그때였다.
[꺄아아악!!]
“아오씨, 깜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