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쾅-! 쾅-! 쾅-!
“으아아악!!”
“저, 적습이다!!”
해룡족의 본진은 아틀라스라는 도시로, 인어 종족이 300년간 건설을 해 완성한 거대 도시였다.
순수하게 건설 기간은 30년으로, 30년 이후엔 이곳에 상주하면서 계속 증축 및 개축을 해 나간 게 총 300년이었다.
조용하던 이 거대한 도시 아틀라스에 죽음의 망령이 깃든 건 조용한 새벽녘이었다.
왜애애애앵-!
사이렌 같은 고동 소리가 도시 전체에 퍼져 나갔다.
“제기랄, 어떻게?!”
가장 당황한 것은 역시나 외벽을 지키는 전사들이었다.
“뭐야, 어디가 뚫린 거야?!”
“아닙니다.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점검해 봤는데 어디도 뚫렸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곳 아틀라스는 강력한 에너지 보호막으로 방어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보고에 따르면 엄청난 숫자의 군대이니 그들이 들어올 만큼 뚫렸다면 저희가 모를 수가 없습니다.”
“젠장, 일단 알겠다. 경위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성벽을 지키는 최소한의 인력만 제외하고 전원 시내로 들어간다. 일단은 3급 이상의 무기만 사용하고 필요하면 무제한으로 해도 좋다. 알겠나?”
“예!!”
“다들 전사의 무덤에서 보자.”
“전사의 무덤의 영광이 함께하기를!”
그들은 훈련받은 대로 팀 단위로 나뉘어 시내를 들어갔다.
콰강-!
“크윽, 젠장!”
“도대체 네크로맨서가 어떻게?”
“공격해 온 방향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에너지 공급기쪽입니다.”
“뭐야?!”
해룡족 장로들은 급히 회의를 소집하고 한곳에 모여 있었다.
원래는 이렇게 빨리 모일 수 없는 이들이었지만, 왕족과 정예병이 싹 다 잔자클 로드가 될 수도 있는 재능을 타고난 메가 잔자클 남작 사냥을 떠났기에 비상사태를 대비해 한곳에 모여서 지냈기에 빨리 모일 수가 있었다.
장로회 의장이 임시로 왕족의 대리를 맡아서 아틀라스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장로 중 1명이 말한 에너지 공급기 방향이라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겠나?"
“……그냥 방향이 그렇다는 것일 뿐입니다.”
해룡족은 해저를 지배한 지 꽤 오래된 종족이었지만, 아직 정치 체제는 발전하지 못했다.
인어 종족이 멸망하고 그들이 지배하면서 유일한 대항마라곤 해저인이 전부였는데 그들도 역시 미지의 존재로 인해서 태어난 종족이었다.
일종의 동맹 형태였기에 그 외엔 경쟁자가 전혀 없었다.
전사의 힘으로도 충분했기에 정치 체제가 발전할 이유가 없었던 것.
그러다 보니 건설적인 회의보다는 수직적이고 딱딱한 분위기만 유지되었다.
“그래서 상황은?”
“네크로맨서의 군단 숫자가 점점 불어나고 있습니다. 죽은 전사들이 다시 살아나 동료에게 칼을 내밀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무슨 수를 써야 합니다!”
“……끄응.”
의장은 침음성을 삼켰다.
자체적으로 막는 게 가장 최선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꾸준히 자신들을 괴롭혔으며 얼마 전까진 가장 중요한 웨스트클람을 함락한 괴물이었다.
그렇게 많은 병력을 지원해 줬음에도 함락됐다는 것은 이곳 병력으론 막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외곽의 에너지 보호막을 믿고 있었는데.”
그나마 그들이 의지한 것은 해룡족이 고대 몬스터의 모습일 때, 보통 무리를 짓지 않는 해룡족이 무리를 지어서 인어 종족의 아틀라스를 총공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 몇 개만 깼을 뿐 아틀라스에 조금의 피해도 줄 수가 없었다.
바로 외벽을 지키는 에너지 보호막 때문이었다.
미지의 존재가 무너뜨리기 이전까진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무적의 방벽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뛰어난 네크로맨서라도 원정을 떠난 이들이 돌아올 때까지는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도대체 어디서 뚫린 거지?”
그들은 여전히 에너지 공급기의 문제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에너지 공급기가 뚫렸다는 것은 해룡족의 심장을 상대방이 쥐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병력은?”
“외곽을 지키던 모든 병력을 동원했습니다.”
“……가능성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우리 전사들이 강하다고 해도 정예병을 제외한 실질적인 전사들은 웨스트클람에서 전사했습니다. 외곽을 지키는 병사들도 나름대로 괜찮습니다만,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웨스트클람을 공격하고도 이 정도 기세인 것으로 보아 자체 병력만으론 방어할 수 없습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에너지 공급기를 가동해라.”
“그렇다는 건?”
“원정 나간 왕자님들께 구원을 요청해야겠다.”
“의장님……."
장로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의장을 쳐다보았다.
해룡족의 벌은 매우 가혹한 편이었다.
의장에게 모든 권한을 넘기고 아틀라스를 맡겼음에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원정에 나간 왕족을 다시 불러들인다?
아무리 잘 쳐줘도 사형이었다.
고통스러운 죽음이냐, 아니면 깔끔한 죽음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의장은 의연했다.
“어차피 이대로 두면 우리는 다 죽어. 그럴 바에야 종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거야.”
“의장님.”
성격은 지X 맞지만, 종족을 위하는 마음은 확실한 의장이었다.
“가세, 내가 앞장서지.”
“예, 의장님!”
보통 다른 요새나 도시 같은 곳엔 에너지 공급기는 단 1대가 전부였다.
하지만 13,000년간 인어 종족의 수도였던 아틀라스는 달랐다.
중요한 지점마다 에너지 공급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비상사태를 대비할 여력이 충분했다.
미지의 존재 앞에선 무력했지만, 이번엔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하로 내려가 에너지 공급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뭐야, 어떻게 된 거야?”
24시간 켜져 있어야 할 에너지 공급기의 전원이 꺼져 있었다.
의장은 기술자를 찾아서 호통쳤다.
“어서 가동해, 한시가 급하단 말이다!!”
“그, 그게……."
기술자의 비늘에서 식은땀을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당황과 아연실색이 함께 묻어났다.
“뭔가!!”
“30분 전부터 갑자기 에너지 공급기의 가동이 전부 먹통이 됐습니다.”
“뭐, 방금 전부라고 했나? 먹통?!”
“예, 예. 이곳만 이상한 줄 알고 다른 공급실에도 연락해 봤는데. 전부 먹통이랍니다.”
“그, 그게 가능한가?”
“불가능합니다. 에너지 공급기는 애초에 고장이 나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런 공급기가 동시에 다운이 됐다는 건 어떤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의장은 조금 전에 했던 한 장로의 말이 떠올랐다.
‘에너지 공급기로 들어왔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고?’
의장의 머리로 미친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만약에 네크로맨서가 우리 에너지 공급기를 완전히 장악했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아니, 상식적으론 절대 불가능했다.
"......."
의장을 비롯한 모든 장로의 입이 꾹 닫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너무 가혹했다.
“재가동할 방법은 없나?”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습니다. 애초에 에너지 공급기는 고장 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 대비가 되어 있을 리가 없습니다.”
"......."
장로들은 절망했다.
이대로 죽을 자리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일까?
콰가강-!
밖에선 폭음이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에너지 공급기가 어딨는지 정확히 아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이미 1곳이 당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끝이었다.
***
쉬이이이-!
인어 종족의 역사까지 합치면 13,000년은 넘어갈 유서가 깊은 대도시엔 오직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살아 있는 해룡족은 거의 없었다.
“잔당은?”
“거의 다 처리했어요.”
“와우,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함락했는데?”
“요한 씨가 에너지 공급기인가 뭔가를 장악해 준 덕분에 적들이 아무것도 못 한 게 큰 거 같아요.”
“하긴, 외벽에 그런 단단한 실드가 쳐져 있었을 줄이야. 무식하게 공격했으면 녀석들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줬을 거야.”
“저들도 설마 에너지 공급기로 쳐들어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해요.”
“그렇지.”
압도적인 승리.
그것 말곤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아틀라스의 전력이 아무리 떨어졌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습격에 전사들이 너무 허무하게 죽는 바람에 요한의 전력이 급격하게 상승해 버렸다.
제대로 뭉치지도 못했고 성벽에서 넘어온 지원 병력도 뿔뿔이 흩어져 제대로 된 타격 자체가 불가능했다.
저들은 다급한 환경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지만, 요한은 오토 기능으로 인해서 복잡한 시내에서도 절묘한 진형으로 적들을 괴롭히며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자자, 가볍게 승리를 자축하자고. 위하여!”
쨍-!
시원한 맥주가 오갔다.
아직 해룡족과의 전쟁은 완벽하게 끝난 게 아니었지만, 마지막 전투를 남겨두고 아주 잠깐의 휴식을 허용한 것.
수호자들은 진심으로 좋아했다.
“캬아, 사냥 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그야말로 최고지!”
“특히 마법으로 얼린 이 시원한 맥주의 맛은 정말 최고야!!”
“자자, 다들 천천히 마시라고. 다음 전투도 그렇게 멀지 않은 거 같으니까. 살아남아야지.”
“큼큼, 솔직히 우리가 한 게 뭐 있습니다. 그저 전투 후에 잡일만 했지.”
“그래서, 뭐. 불만이야?”
“그럴 리가요. 푸하핫! 너무 좋습니다. 사냥이야 언제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만, 미스터 킹과 이런 모험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잖습니까. 그리고 매번 미스터 킹의 전투력에 입이 벌어집니다. 저분이 어딜 봐서 1명입니까.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군단이지!”
“푸핫, 맞아, 맞아. 이젠 영국 전체와 싸워도 이기시겠어.”
“역시 아가씨의 짝은 미스터 킹 뿐입니다. 푸하핫!!”
“자자, 건배!”
“치얼스!”
쨍-!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덜커덕-!
원래 잡일은 수호자들도 도왔지만, 잠깐의 휴식을 위해서 언데드 만 나서서 하고 있었다.
어차피 요한이 직접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딱히 상관은 없었다.
류페이도 한 15분 정도 쉬더니 심심했는지 스켈레톤들과 함께 전 후 처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요한!!”
“응?”
비록 불타고 많은 게 사라졌지만, 아틀라스는 그래도 운치가 있는 도시였다.
맥주를 마시며 경치를 즐기고 있던 차에 저 멀리서 류페이의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응, 왜?”
우렁찬 소리와 다르게 요한은 간단하게 스마트폰으로 대답했다.
모든 언데드와는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요한은 그저 간단하게 코드만 입력하면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었다.
“여기로 와 봐. 아무래도 여기 뭔가 있는 것 같아.”
‘귀찮은데…….'
마음 같아선 가기 싫었다.
“대단한 거 같아?”
“응, 엄청난 거 같아.”
“알았어.”
천하의 류페이가 대단하다고 하고 있었다.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으싸, 난 류페이가 불러서 가 볼게.”
“저도 같이 가요.”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아뇨. 저도 딱히 할 일도 없어서요. 심심하니까, 같이 갈게요.”
“뭐, 그러던지.”
굳이 가겠다는데 막을 이유는 없었다.
요한과 엘레노아는 류페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 뭔가 좀 있을 거 같은 분위기인데?’
이곳은 전투 현장과는 좀 떨어져 있는 도시 한구석이었다.
왜냐하면, 이 근처엔 전사가 단 1명도 없었기에 굳이 언데드가 넘어올 이유가 없었던 것.
“요한, 저기 봐봐.”
“응?”
45장. 퀸 스피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