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인어 종족과 거래를 튼 다음에 며칠 더 룬디 섬에 머물렀다.
“꺄하하, 인간. 우리랑 거래를 시작했다며?”
“뭐,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내가 필요한 것들 정도는 생산하고 있으니까.”
“신기하다. 우리가 인간과 거래를 할 정도로 괜찮아졌다는 거잖아.”
“그런가?”
“응! 분명히 우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룡족의 노예 호출기에 불과했는데. 부족하지만, 평화와 자유를 누리고 있잖아!!”
“뭐, 틀린 말은 아니네.”
‘내 일이 끝나면 알아서 생존해야겠지만.’
그래도 엘레노아가 전담한다니 장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지, 그래도 왕년에 한 끗발 제대로 날렸던 종족인데 잘하면 오히려 영국을 위협할 종족이 될 수도 있겠지.’
그건 이제 미래의 운명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요한은 모든 게 준비가 됐지만, 인어 쪽에서 거래 물품 중에서 몇 가지 준비가 필요했다.
넉넉잡고 이틀 정도면 준비가 끝난다니 그 거래만 끝마치면 곧바로 스카이 포탈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때는 해룡족과 본격적인 전쟁이지.'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장비를 점검하고 부족한 언데드 코딩을 하는 등, 차곡차곡 전쟁 준비를 해 나갔다.
하지만 그래도 사냥에 전혀 관계 없이 룬디 섬이란 아름다운 곳에서 하는 준비는 휴식과 별 차이는 없다고 느껴졌다.
특히 이곳 룬디 섬은 처음엔 별 볼 일 없는 무인도였다.
헌터 시대 이전엔 연구소나 작은 마을이 있었지만, 언제 어떻게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는 시대엔 육지와 먼 작은 섬에서 사람이 사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때문에, 섬 자체가 드문 영국에서 룬디 섬처럼 커다란 섬을 가격 상관없이 빠르게 구매할 수가 있었던 것.
인어 종족이 살기 시작하면서 룬디 섬은 그 어떤 섬보다 아름답게 변해 가고 있었다.
인어 종족은 자연계 종족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가꾸는 것에 특화 된 종족이었다.
인간이란 종족은 과학이라는 인간 고유의 문화이자 기술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종족은 야만스럽고 미개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에 불과했다.
각 종족은 종족마다 고유한 문명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인어 종족은 자연계 종족으로 뛰어난 자연 속성의 마나와 풍부한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건축은 기본이고 인간이 감히 만들어 낼 수 없는 것들을 자연에서 생산할 수가 있었다.
‘공장처럼 찍어 내는 건 어렵지만, 어느 정도는 대량 생산도 가능 하니까.’
다크 엘프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인어 종족은 다크 엘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달한 종족이었다.
‘이 정도 되는 종족이 미지의 존재에게 학살당하고 장난감 취급받았다니. 도대체 미지의 존재는 뭐 하는 녀석이야?’
내심 신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생각은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만약에 신이고, 그 녀석이 지구에 나타나면?’
아무리 요한이 세계 최강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신과 싸울 수는 없었다.
‘뭐, 다른 영화나 만화처럼 신이 좀 만만하면 모를까. 미지의 존재인지 뭔지 하는 녀석은 차원을 다루는 녀석이니까. 만약에 신이라면 절대 못 이겨.’
그나마 해 볼 만한 게 고도로 발달한 절대자 정도?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 존재라고 해도 신이 아니니 해 볼 만할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못 이기겠지만.’
그러니 빨리 강해져야 했다.
이게 요한이 그렇게 휴식을 하고 싶어도 일정 시간 이상은 쉬지 않는 이유였다.
스카이 포탈 안에선 성장 속도가 몇 배는 빠르니 놓칠 수도 없었고.
***
“인간, 준비 다 됐어!”
휴식은 36시간이 넘지 않았다.
원래는 48시간을 예상했으나 인어 종족 전체가 요한을 더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것에 암묵적으로 합의해 사냥을 나갔던 인력도 복귀 해 교역품 생산에 박차를 가한 것이었다.
요한이 건넨 물품들이 워낙 많았기에 인어 종족은 룬디 섬에 있는 모든 인어를 총동원해서 겨우 시간에 맞춰 물건 준비를 끝낼 수가 있었다.
요한과 거래를 끝내기 위해서 나온 것은 세쌍둥이였다.
“어디 보자, 수량은 맞아?”
“당연하지. 우리가 왜 인간을 속이겠어?”
“우린 인간이 더, 더 빨리 많이 강해지길 원하는데.”
“못 믿겠으면 확인해 봐.”
"음......."
요한은 그래도 내심 의심쩍다는 눈빛을 보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분명히 48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36시간 만에 물건을 가져왔으니까.
하지만 막상 직접 확인해 보긴 귀찮았다.
‘잠깐만, 분석 프로그램으로 이런 것도 되려나?’
이럴 때는 역시 스킬이 최고였다.
인어 종족이 꺼내 놓은 물건 전체를 사진으로 찍어서 분석해 보았다.
[요청하신 물품의 수량이 입력하신 수량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오, 괜찮네. 자, 이젠 내가 건넬 차례군.”
요한은 입찰로 얻은 아이템의 30%와 스카이 포탈에서 사냥해 얻은 해룡족의 물건과 특히 인어 종족이 중요하게 여기는 삼지창을 건넸다.
수량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요한이 건네는 것은 완성품이었고 인어 종족이 건네는 것은 원자재 같은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원자재 가격이 훨씬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또 요한은 구원자 DC 비슷한 것도 있어서 원래 그들이 거래하는 가격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거래할 수가 있었다.
덕분에 요한이 그들에게 받는 원자재인 리바이브 재료는 풍부했지만, 건네는 물품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나머진 다크 엘프와 거래를 하거나 다시 또 거래할 때 쓰면 되겠지. 어차피 해룡족과 전쟁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더 많이 있어 봤자 인어 종족이 대금을 치를 여력이 부족했으니까.
“우와!!”
“이 장비들 좀 봐!!”
“히히, 이것들만 있으면 사냥이 훨씬 더 쉬워지겠지!!”
“안 그래도 그 차가운 녀석들 의외로 강해서 고전한다고 하던데.”
“다 죽었어!!”
‘흠…… 그래, 그 녀석들도 있었지.’
요한은 인어 종족이 건넨 상어 몬스터의 사체도 먼저 확인해 볼 수가 있었다.
인어 종족이 상어라고 칭했지만, 분석 프로그램을 돌려 본 결과 녀석은 일반적인 상어가 아니었다.
‘메갈로돈.......'
고대 바다를 지배했던 괴물.
분석 프로그램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체를 얻자마자 리바이브 재료를 확인해 보았는데, 정말 극악의 재료를 요구했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동시에 이해도 되었다.
‘스카이 포탈의 몬스터인 인어 종족 전사들도 꽤 고전했다고 했지.’
물론 사냥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메갈로돈이 강력한 몬스터라고 해도 스카이 포탈은 그 격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북극해 아래에 잠들어 있던 포탈답게 스카이 포탈 못지않은 전투력을 보여 준 것은 사실.
그런 몬스터니 리바이브 재료가 극악인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스카이 포탈 안의 재료는 운이 좋았던 거니까.’
재료를 공급할 수 있는 인어 종족과 친해진 것은 우연에 가까웠으니까.
‘그때 수에트가 오드리가 아니라 딴 인어를 줬으면 그냥 평범하게 미지의 존재 부하들에게 이용만 실컷 당했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빴다.
이런 기분은 좋은 것이었다.
좀 더 해룡족과 해저인을 화끈하게 사냥할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으니까.
“인간, 그런데 이것들도 챙겨 오긴 했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야?”
털썩-!
“오, 진짜 챙겨 줬네?”
“당연하지.”
“인간이 필요하다며.”
“사냥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데 무시할 수는 없잖아.”
세쌍둥이는 동시에 입에 바람을 넣어 볼을 부풀렸다.
뭔가 틱틱대는 매력이 있는 인어였다.
“뭐, 말 그대로 꼭 필요한 것들이긴 했는데. 구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별로 기대는 안 했거든. 잘 쓸게.”
“뭐야, 말 안 해 줄 거야?”
“말해 줘도 못 알아들어, 너희들은."
“칫”
“쳇!”
“흥!”
“귀여운 녀석들.”
“우리 안 귀엽거든!!”
이 말은 3명이 동시에 했다.
“큭큭큭, 어쨌든 수고했어. 난 이만 스카이 포탈 안으로 가 봐야겠다. 시간도 꽤 지체했고.”
“응, 수고해!”
“그리고 고마워!”
“다음에 꼭 은혜 갚을게!!”
“수고해라.”
만남은 길었지만, 이별은 짧았다.
모든 인연이 그렇듯이 요한은 짧은 이별을 뒤로하고 대기하고 있던 비행선에 올라서 곧바로 세인트 포탈로 향했다.
충분히 쉬었고 시간도 꽤 지체되었다.
이젠 정말 이 빌어먹을 전쟁을 끝낼 때가 온 것이다.
‘뭐, 내가 이겨야겠지만.’
천하의 요한도 장담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만큼 해룡족은 강했고, 특히 수에트가 보여 줬던 포스는 여전히 짜릿했다.
물론 이젠 시간도 꽤 많이 지났고 요한도 강해질 만큼 충분히 강해진 상황이었기에 예전만큼 압도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잔상을 완전히 털어 내기엔 쉽지가 않았다.
***
요한은 포탈을 타고 안으로 들어 갔다.
포탈 입구를 지키는 인력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당연한 일이었다.
요한이 잠시 짧은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입찰이 끝난 길드와 공격대가 요한이 제공한 정교한 지도와 세부 정보를 가지고 준비를 끝낸 다음에 사냥을 위해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내부에 사람이 늘어났는데 왜 입구를 지키는 숫자도 늘어났냐고?
내부에 사람이 많으니 언제, 어떻게 사고가 터질 지 장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카이 포탈은 폭주하면 일대가 완전히 무너진다.
남미의 칠레 같은 경우엔 국토의 절반이 쑥대밭이 됐다가 다른 남미 헌터 연합이 겨우 제압해 주었다.
몬스터는 정리가 됐지만, 칠레의 인구 1/3이 사망하고 국토의 절반이 초토화되어 IMF 사태에 빠져 있었다.
칠레는 그나마 국제법상 몬스터로 입은 피해는 국제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구제해 준다는 법안 덕분에 상환 능력이 거의 없음에도 거액의 돈을 빌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인과 고위 헌터들이 재건을 위해서 빌려 온 돈으로 자기들끼리 돈놀이를 하느라 국가 재건이 느려지고 있었다.
국제 사회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엄중하게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칠레 정부와 협회 고위 간부들은 무시하고 돈놀이에 집중했다.
헌터 시대 이후 쭉 가난했던 칠레라 오랜만에 들어온 거금에 정신을 놓아 버렸다.
이런 사례도 있으니 영국 정부로선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스카이 포탈 공략에 총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국운을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흐읍, 하. 일단 익숙한 비린내가 이젠 반갑기까지 하네.’
요한은 스카이 포탈에 들어와 잠시 냄새를 맡으며 내심 긴장되는 마음을 풀어 보았다.
그리고 손과 어깨를 풀고 데스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나와라.’
지잉-!
요한의 주변으로 정말 강력한 죽음의 기운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끔찍한 기운이기도 한 죽음의 기운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 허공에 공간을 만들어내 무수한 언데드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으어어.”
“거어어-!”
엄청난 위용의 군단이었다.
군대라 칭하기엔 뭔가 좀 부족한 최강의 군단이었다.
요한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언데드를 불러내고 나면 정말 더 없이 뿌듯했다.
“흐흐흐, 요한. 어쩐지 평소보다 더 기합에 들어간 것 같은데?”
[안녕, 요한?]
“주군.”
류페이, 하늘, 엘라드 순으로 요한에게 인사했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요한과 가장 가까운 언데드라고 해도 되었다.
늘 언데드를 냉정하게 대하는 요한이었지만, 그 3기는 동료처럼 지내고 있기도 했다.
사실 보통 헌터들은 소환수와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게 자연스러웠다.
“뭘 그렇게 봐?”
“아니야, 아무것도.”
44장. 애니메이트 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