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본 스파이더의 약점은 요한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는 본 스파이더의 0부터 10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본 스파이더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서 사냥한 것도 그였고, 코드만 100번은 넘게 분석해 보았다.
그런 부분을 그냥 간과했을 그가 아니었다.
‘다리는 더 단단해졌지.’
탱-!
“킥?”
분신들은 약점이라고 생각해 검을 휘둘렀지만, 다리가 멀쩡하니 당황했다.
“다 죽어!”
푸화아아악-!
“크에에엑!!”
본 스파이더의 입에서 엄청난 독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칭기즈칸의 기마병처럼 사방을 덮치면서 닿는 모든 분신을 말 그대로 없애 버렸다.
“다시!”
푸화아악-!
류페이는 방심이란 것을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또다시 독가스를 뿌리며 혹시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했다.
“응?”
독가스 안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린 류페이는 본 스파이더의 머리를 박차고 어디론가 빠르게 떨어졌다.
그냥 떨어진 게 아니라 검을 역으로 잡고 힘차게 떨어진 것이다.
지독한 독가스가 자욱한 곳이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본 스파이더는 그녀의 권속.
권속의 독에 주인이 당하는 법은 없었다.
굳이 그렇지 않아도 데스나이트는 독의 내성에 매우 뛰어난 특성이 있었다.
콰앙-!
폭발음 같은 소리가 나면서 주변으로 강력한 반발력을 날렸다.
“커헉!”
독가스가 빠르게 사라졌다.
마나를 사용해 인위적으로 만든 독가스다 보니 본 스파이더의 의지에 금방 사라진 것이다.
“커, 커컥
독가스가 사라진 자리엔 몸이 반 쯤 녹아내린 사이코패스 브루마가 류페이의 검에 가슴이 찔린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무려 악마와 계약한 S급 헌터의 능력을 갖춘 게 브루마였다.
일반적인 S급 헌터보다도 위인 그의 힘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킁, 왜. 목을 안 쳤어? 손가락이라도 튕기려고? 택도 없는 소리지.”
꾸욱-!
“크아아악!!”
가슴을 꿰뚫고 들어간 검에 조금 씩 힘을 가했다.
그러자 가슴에서 느껴지는 후끈한 고통에 브루마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크크큭."
처음엔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이코패스 브루마는 뭐가 좋은지 웃기 시작했다.
“키키키킥!”
툭-!
“진짜 미쳤네. 이게 웃겨?”
요한이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꿀럭-!
웃고는 있었지만,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기에 입에선 연신 죽은 피를 토해 냈다.
“크흐흐, 과연 세계 최강의 헌터다운 힘이군.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았는데 겨우 소환한 언데드 1기에도 이길 수 없다니. 쿨럭!”
“뭐야, 이길 줄 알았어. 진심으로?”
“크흐흐흐, 원통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반드시 네놈의 목을……."
촤악-!
잔인한 요한은 죽어 가는 자의 유언도 들어 주지 않았고 류페이의 검이 녀석의 목을 베어냈다.
목이 잘린 브루마의 시체는 그대로 검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게 영혼을 판 존재들에게만 나오는 바디번이구먼. 쩝, 아까운 시체. 거기에다가 영혼을 팔아 치운 덕분에 영혼도 남아 있지 않고.’
복수 말곤 딱히 얻은 게 없는 전투였다.
복수만으로도 훌륭한 일이었지만, 헌터의 시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귀한 재료였는데 아까웠다.
“하늘, 다 찍었어?”
[응, 깔끔하게.]
“수고했어.”
[히히.]
요한은 혹시나 몰라서 하늘에게 모든 것을 촬영하도록 해 두었다.
물론 개인 소장용이었다.
아무리 러셀 가문과 사이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지만,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죽는 장면을 보여 줄 리가 없었다.
너무나도 잔인한 짓이었고 요한은 그런 괴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레아, 이제 러셀 가문도 포함 해.]
[네, 요한 씨.]
형제가 죽었음에도 반응은 건조하기만 했다.
그날 엘레노아는 가문에 참여해도 된다는 통보를 했고, 가주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와의 모든 관계를 끊어 버렸다.
현직 가주가 아무런 통보도 없이 잠적해버린 초유의 사태에 러셀 가문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
스카이 포탈 정보 입찰 관련은 엘레노아가 맡기로 했다.
이건 요한이 딱히 할 일은 없었고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엘레노아의 개인 기업인 러셀 매니지먼트가 동원되었다.
“끄응, 아이템 입찰 방식이라니.”
“역시 돈 많다, 이거지?”
스카이 포탈 구역 입찰은 특이하게 돈이 아니라 아이템으로 진행된다는 통보가 왔다.
영국 길드는 툴툴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헌터이자 미래의 최고의 부자가 요한이었다.
그런 그가 굳이 돈으로 입찰을 할 필요가 있을까?
절대 아니었다.
길드로서도 귀한 아이템이었지만, 그렇다고 스카이 포탈을 파밍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기에 길드 창고에 고이 모셔져 있던 아이템들을 하나, 둘 꺼내 오기 시작했다.
대망의 입찰 당일.
러셀 매니지먼트에서 투입된 경매사가 활발하게 경매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우리 TFT 길드는 아크 주얼을 내겠소!”
“여긴 빛의 피라미드를 내겠소!!”
치열했다.
헌터 시대가 도래한 이후 이렇게 치열하게 길드가 경매에 참여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카이 포탈을 이렇게 공략할 수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구역만 배정된다면 그야말로 독점으로 파밍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적극적으로 요한의 손을 들어 주었다.
정보를 팔긴 했지만, 독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한에게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곳에 특별 과세를 하는 대신에 독점권을 인정해 준 것이다.
탕-!
“이로써 D 구역은 AOS 길드에 낙찰되었습니다.”
“예스!!”
“아하하, 됐어!!”
“아아, 젠장. D 구역이라면 케일라라는 몬스터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고 했잖아. 그거 짭짤하다던데.”
“미치겠군, 이러다가 낙찰 못 받는 거 아니야?”
낙찰받은 길드들은 밝은 표정으로 돌아갔고, 그렇지 못한 길드는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뜯어야 했다.
***
결국, A~Z 구역까지 모두 입찰에 성공했고, 요한은 한순간에 영국에서 아이템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이 되었다.
아니, 영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봐도 요한은 압도적인 아이템 보유자가 되었다.
“와우.”
요한은 아이템 보관함이 가득한 창고를 보곤 혀를 내둘렀다.
이곳은 꽤 크기가 있는 창고였음에도 보관함이 가득했으니 이번 경매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잘 보여 주는 곳이었다.
“그런데 요한 씨.”
“응?”
“이거 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솔직히 요한 씨, 이것들 다 필요 없으시잖아요.”
“필요 없긴 왜 없어. 팔아야지.”
“판다고요?”
엘레노아는 요한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한테요? 그리고 돈이 필요 없다고 하셔서 아이템 경매 방식으로 하신 거잖아요.”
“응, 누가 돈 받고 판 데?”
“네?”
엘레노아는 여전히 요한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요?”
“이건 다크 엘프랑 인어 종족한테 팔 거야.”
“네에?!”
엘레노아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듣자 당황했다.
“그게 돼요? 아, 다크 엘프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인어 종족은 아직 아무것도 없잖아요?”
“없긴 왜 없어. 흐흐흐.”
"?"
엘레노아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넌 모르겠구나. 그러면 잠시 후에 인어족한테 갈 건데. 같이 갈래? 당장 베트남에 다녀올 시간은 없으니까. 인어 종족한테나 다녀오자고.”
“네? 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겠으면 직접 눈으로 보는 게 가장 정확할 테니까.
***
요한은 이번에도 천공의 방어 요새를 타고 인어들이 자리를 잡은 룬디 섬으로 향했다.
방어 요새 덕분에 전용기가 깡통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예 전용기를 유나한테 줘 버렸다.
처음에 유나는 전용기를 받으라는 말에 기겁했다.
그녀는 지금 모든 게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용기까지 가지라고 하니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어차피 쓸 데도 없고 1대 정도는 운용해야 하는데 네가 안 쓰면 쓸 사람도 없고 돈만 날리는 거라고 하니 그때야 우물쭈물하면서 받았다.
보고를 받기론 유나는 새롭게 생긴 전용기로 가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만난다고 했다.
그녀의 주변엔 보이는 근접 경호와 보이지 않는 원거리 경호가 함께 있었다.
근접 경호는 당연히 유나가 알고 있었지만, 원거리 경호는 유나도 알지 못했다.
전투력은 좋은데 1:1 대인전에 특화된 헌터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그런 헌터들은 대부분 경호 임무에 투입이 되는데 비용이 매우 비쌌다.
하지만 요한에게 이제 돈은 무의미한 종이와 수치에 불과한 것.
막대한 돈을 들여서 무려 15명의
원거리 경호 헌터를 고용해 3교대로 24시간 경호하도록 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유나는 이제 평범한 대학생이 아니었다.
무려 세계 최강, 제일의 부호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요한의 여동생 사랑은 이미 매스컴을 통해서 꽤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러니 그녀를 노리는 사람이 한 둘이겠는가?
마음 같아선 방어 요새에 영원히 데리고 있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다.
집착으로 동생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에 불안함을 꾹 참고 경호원만 늘리고 있었다.
방어 요새의 갑판에 나와 거칠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내려다 보던 요한은 문득 생각했다.
‘미연이를 유나한테 붙여 볼까?’
요한은 미연과 가끔이지만,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요한이 부담스러울 만한데도 미연은 여전히 요한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가끔 연락하는 것도 다 친해서 그런 것이었다.
굳이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 친근한 사이라는 증거였다.
‘괜찮은데?’
미연은 S급 암살자 헌터였지만, 헌터 일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여전히 홍대에서 인디밴드로 노래나 부르고 있었다.
‘음, 어렵겠지?’
아무리 미연이 헌터 일에 흥미가 없더라도 돈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뭐, 일단 나중에 부탁이나 해 보자.’
굳이 속이거나 그녀를 별도로 고용할 마음은 없었다.
친한 사이였기에 솔직하게 말하고 부탁이나 해 보면 그만이었다.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에 빠진 사이에 방어 요새는 룬디 섬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와, 인간이다!!”
“어서 와!!”
룬디 섬에서 평화를 찾은 인어 종족은 요한의 방어 요새가 보이자 양팔을 흔들며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요한도 한 손을 흔들어서 격한 환영에 화답해 주었다.
‘도대체 인어 종족과 뭔 거래를 한다는 걸까?’
요한의 뒤에서 엘레노아는 여전히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요한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상식으론 인어 종족은 그냥 이곳 섬에서 암약하는 거지 종족에 불과했다.
그래도 나중을 생각해서 이곳을 관리하는 비용을 그녀의 사재로 투입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요한 씨가 아무런 생각 없이 움직일 분은 아니니까. 뭔가 있겠지.’
그에 대한 이런 믿음이 있기에 딱히 별말은 하지 않았다.
“가자, 레아.”
“네, 요한 씨.”
지금은 믿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