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그저 엘레노아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 가식적인 말을 내뱉은 것뿐이었다.
‘정말 관심 없으니까.’
그는 강해질수록 주변에 더, 더 무관심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인간이 아니게 된다,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여동생인 유나를 사랑했고, 여전히 눈치채진 못했지만 엘레노아를 흠모하고 있었으니까.
네크로맨서가 죽음을 다룬다고 해서 악마나 괴물은 아니었다.
그저 절대자가 되어 갈수록 내 주변 사람들을 제외하곤 흥미가 가질 않는다고 할까?
인간관계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현재 그에겐 여전히 잊히지 않는 그때의 복수를 해야 하는 것뿐이었다.
‘복수를 잊었다면 더 편했겠지만.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나를 괴롭혀.’
그는 누구보다 죽음에 가까운 존재였다.
직접 죽음은 아니더라도 영혼들이 뿜어내는 기운에 아주 민감했다.
그 당시 사방에서 억울한 영혼들이 뿜어냈던 기운은 요한을 상당히 자극했다.
부정적인 기억은 오래가는 법이었고, 여전히 가끔 꿈에서 그때의 끔찍한 현장에 대한 기억을 봐야 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브루마를 죽여서 원혼들의 한을 풀어 줘야 이 빌어먹을 꿈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만약에 MUK 녀석들이 또 방해하면 영국 본토에선 완전히 지워 주겠어.’
방해하는 건 모든 다 부숴 버리는 게 속이 시원했으니까.
요한은 그날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
"......."
브루마 러셀은 자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는 별장에 숨어 있었다.
그는 러셀 가문의 일원인 자신을 감히 공격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 난 러셀 가문의 후계자 중 1명이라고. 절대, 절대 나를 죽일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다른 생각은 이렇게도 말하고 있었다.
‘킴은 또라이야. 일단 저지르고 보지. 너를 죽여 놓고 어떻게든 뒤 처리를 하려고 할걸? 왜, 못 할 거 같아? 왜? 너는 그냥 러셀 가문의 순위가 낮은 평범한 후계자일 뿐이지만, 킴은 S급 헌터에 베트남 포탈의 주인, 그리고 그 방어 요새인가 뭔가 하는 마스터이기도 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넌 킴의 상대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사실 그는 이중인격자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헌터가 되면서 인격이 하나 더 생겼다.
원래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약간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이 있었다.
다만, 그는 가문의 교육 덕분에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배웠고 뭐가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연쇄 살인마 같은 끔찍한 범죄자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 그런 기질이 욱하고 튀어나올 때가 있었고 어렸을 때는 좀 더 잦은 편이었다.
그래서 엘레노아가 애지중지하던 고양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도 어렸을 때 일이었다.
대망은 헌터가 됐을 때였다.
그의 능력은 신체 강화계와 그림자 분신술로 이용한 근접 전투 계열이었다.
근접 전투와 분신의 희귀한 만남은 초반에 꽤 관심을 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곧 그런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껏해야 B급, B급이 훌륭한 등급이긴 했지만, 세계화 시대에 수 많은 A, S급이 난립할 때고 그림자 분신이라고 해 봤자 막 수십, 수백 명을 불러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보기에도 별로 화려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전투력도 별로라서 인기는 금방 식어 버렸다.
다만, 문제는 그림자 분신 능력을 얻으며 그의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이 새로운 인격으로 만들어져 버렸다.
정신과 학회엔 가끔 희귀 사례로 발표가 되기도 했다.
치료할 수 없는 증상은 아니었지만, 브루마는 보고하지 않았다.
‘가주 후보자에게 정신병 기록이 있으면 안 돼!!’
가주에 대한 집착이 병적인 브루마였기에 가주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정신병 기록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기엔 무리가 있었다.
물론 러셀 가문의 규칙엔 정신 질환을 앓았던 사람은 가주가 될 수 없다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정신과 기록은 흠일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실력에 비슷한 실적이라면?
정신과 기록이 없는 쪽이 아무래도 유리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특히 브루마의 가장 큰 경쟁자는 S급 헌터인 엘레노아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가문 원로들은 라이벌인 포터 가문의 가주도 S급이다 보니 현 가주가 물러나면 같은 S급인 엘레노아가 가주가 되어야 포터 가문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다는 게 주류 의견이었다.
브루마는 그게 미칠 듯이 싫었다.
그런 압박감이 결국, 테러라는 끔찍한 결정을 유도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모든 게 망했다고!!’
‘킥킥킥, 그게 왜 나 때문인데. 어? 나는 의견을 냈을 뿐이고 결정은 네가 했다고?’
‘시끄러워!! 젠장, 제기랄!!’
브루마 러셀은 당장이라도 요한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그래야만 이 지독한 불안 증세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 같았다.
아니라면 최대한 영국에서 꺼져 줬으면 했다.
그렇게만 되어도 지금보단 불안 증세가 나아질 테니까.
그는 거칠게 와인 병을 잡더니 그대로 입에 털어 냈다.
벌컥벌컥벌컥-!
‘킥킥킥킥킥킥킥킥!’
불안감이 커질수록 사이코패스 인격 특유의 유리를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점점 진해졌다.
아무리 술을 마시고 잠을 자 보아도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크윽!’
헌터도 취하게 한다는 독한 와인을 수십 병이나 비웠지만, 몸은 좀 더 많은 알콜을 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쿠릉-.
‘응, 뭐지?’
뭔가 미묘한 흔들림이 그의 감각에 잡혔다.
아주 작은 감각이었지만, 어쩐지 멀리서 느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B급 헌터고 전투력은 B-라는 낙제점을 받았지만, 마나에 대한 감각은 B+라는 괜찮은 성적을 받았다.
그렇기에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그의 감각에 잡혔다.
딸꾹-!
그는 딸꾹질하면서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가렸던 두꺼운 커튼을 손으로 거둬 냈다.
촤르륵-!
‘윽!’
1달 가까이 햇볕도 차단한 채 술 만 마셨던 브루마였다.
무방비한 눈에 햇볕이 쏟아지자 눈이 상당히 부셨기에 눈을 찌푸려야 했다.
‘응?’
하지만 곧 그는 눈부심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와 태양 사이를 무엇인가가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는 뒤늦게 햇빛을 가린 존재를 눈치채고 눈을 부릅떴다.
아니, 부릅뜨는 순간 이미 어떤 커다란 형체가 그를 덮쳤다.
와장창창-!
방탄유리로 된 창문이 허무하게 박살이 나면서 그대로 브루마 러셀을 튕겨 낸 것이다.
“커헉!!”
끔찍한 고통이 브루마의 척추를 타고 뇌로 전해졌다.
“에이씨, 뭘 이렇게 꼭꼭 숨어 있어. 찾는 데 얼마나 귀찮았는 줄 알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여성의 목소리는 귀에 익숙한 언어였다.
‘어, 어떻게?!’
브루마는 고통을 느끼면서 의문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었다.
이곳 별장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장소였다.
가장 최근에 개발된 캡슐 공법으로 미리 만들어 둔 건축물을 축소 해 캡슐에 넣어서 특정한 지역에 설치하는 최첨단 기술이 접목되어 있었다.
즉, 이곳에 별장을 지은 것조차 그만이 알고 있었다.
영국 본토와도 떨어져 있는 북아일랜드의 한적한 산골.
아무리 요한이라고 해도 모든 전자 기기를 끄고 잠수해 버린 그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도, 도대체 어, 어떻게……?’
“흥!”
브루마를 발로 차 버린 건 류페이였다.
화륵-!
날갯소리와 함께 요한은 뒤늦게 천천히 별장으로 내려와 창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왔다.
“못 찾을 줄 알았냐, 이 시X랄 자식아.”
영어와 한국어가 오갔다.
제대로 된 뜻은 통하지 않았지만, 브루마는 상대가 이를 가는 것 정도는 알 수가 있었다.
‘……끝났군.’
브루마는 미련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싸울 몸 상태도 아니었지만, 싸울 의지도 없었다.
일반적인 B급 헌터와 1:1로 붙어도 자신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S급 중의 S급 헌터라고 불리며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하고 다니는 요한과 1:1?
절대 무리였다.
“큭큭큭, 킥킥킥.”
“뭐야, 벌써 미쳤어?”
요한은 황당한 표정이었다.
아직 고문다운 고문도 가하지 않았다.
곧 죽을 녀석이 킥킥대며 웃는다?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
처음엔 조용하던 웃음소리가 점점 더 소름 끼치게 변해 갔다.
“응?”
요한도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일반적인 사람이 낼 수 없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키키키키키키키!!”
브루마는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엥?"
류페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발차기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B급 헌터는 감히 버틸 수 없는 발차기였다.
요한도 살짝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강력한 류페이였으니까.
하지만 브루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네, 저 녀석 부상은 진짜 거든.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게 일어나지?”
류페이의 눈엔 상대방의 부정도가 보였다.
마치 X레이를 찍듯이 상대방을 관찰하고 그것을 토대로 상대방의 약점을 치밀하게 공략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엔 분명히 녀석의 갈비뼈는 3개가 결딴이 나 있었다.
그런데도 멀쩡하게 일어나니 고개가 돌아가는 건 당연했다.
“이거 내가 나설 때 같은데 말이야.”
“응, 뭐야. 갑자기 목소리랑 분위기가 다 바뀌었네?”
“이중인격인가?”
류페이의 추측은 정확했다.
하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요한, 죽여도 돼?”
원래 계획엔 죽이는 게 없었다.
그는 단숨에 죽이는 것보단 사회적으로 죽여서 늙어 죽을 때까지 고통받다가 눈을 감길 원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게 흐르고 있었다.
‘벌써 미치다니. 미친X을 고문하는 건 재미없는데.’
미친X은 말 그대로 미쳐서 이성의 끊을 놓쳤다는 뜻이니까.
“후우, 어쩔 수 없네. 죽여.”
“오케이, 알았어!!”
“키키키키키키키키, 내가 너를 먼저 죽일 것이다!!”
징징징징징징-!
‘오?’
브루마는 마치 각성한 것처럼 주변으로 그림자 분신을 마구 뿌리기 시작했다.
‘듣기론 분신은 2개가 한계라고 했는데?’
분신 술사가 분신을 2개밖에 못 만든다?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으로 그림자 분신이 100개가 넘어갔다.
‘추가 각성한 건가? 그것도 미친 상태로?’
쯧쯧.
전혀 부럽거나 감탄이 나오지는 않았다.
미쳐서 각성한다는 것은 절대 좋은 신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붕괴하고 자아가 무너지는 과정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각성은 빠르게 생명력을 갉아먹을 뿐이었다.
‘이래서 헌터는 명상이 중요한 거지.’
어느 직업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게 헌터였다.
육체적으론 강력해도 이렇게 쉽게 자아가 붕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불안 증세에 시달리던 브루마였고, 죽음을 인지한 순간부터 진짜 미쳐 버린 것이었다.
‘녀석의 등급은 B라고 했으니까. 추가 각성으로 지금은 S급이려나?’
“재미없네.”
“키키키키, 지금부턴 재밌을 거다.”
파박-!
브루마 러셀의 수백 구의 그림자 분신이 요한을 향해서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