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무려 105명으로 이루어진 해저인 부대를 단 34분 만에 해치웠다.
아무리 해저인이 해룡족 전사보다 약한 편이었지만, 숫자도 많았고 장비도 충실했다.
이 정도라면 해룡족 전사 30명과 싸워도 이길 순 없을지라도 패배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해룡족 30명이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사 무리라고 할 수가 있었다.
비상사태인 지금도 15명 정도만 함께 다니니 2개의 전사단 규모였다.
그런 해저인 105명을 34분 만에 해치우다니 잔자클 남작의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34분도 요한이 전력을 다한 시간이 아니라 잔자클 남작을 적당히 도와준 것만으로도 기록한 것이었다.
강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의 위력을 낼 줄은 예상 못 한 요한도 어안이 벙벙했다.
‘와, 대박인데?’
이 정도 위력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수에트를 만난 이후로 요한은 이 스카이 포탈 경험치 추가 혜택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수에트를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그는 그야말로 다른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불안했다.
자체적인 성장은 많이 이루긴 했지만, 네크로맨서는 새로운 언데드가 추가되는 게 아니고서는 뭔가 획기적으로 강해 진다고 느끼긴 어려웠기 때문.
하지만 이번에 잔자클 남작을 손에 넣으면서 지금까지 실감하지 못 했던 성장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와, 진짜 이런 녀석 2~3마리만 더 있으면 정말로 세계 정복도 가능하겠는데?’
다만, 잔자클 남작을 2번 일으키는 건 힘들었다.
드는 재료 중에 가장 희귀하다는 포세이돈의 파편은 더는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포세이돈의 파편은 제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거예요. 어떻게 구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냥 우연히 얻었을 뿐이니까요.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을 살면서 딱 1개만 봤으니까요.]
오드리는 혹시라도 요한이 화를 낼까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말했다.
“허, 정말 아껴서 다뤄야겠군.”
[그래도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 무지막지한 잔자클 종족의 보스를 혼자서 해치우시다니.]
물론 잔자클 남작이 유일한 보스 몬스터는 아니었다.
만약에 잔자클 남작 1마리가 잔자클의 유일한 보스였다면, 요한한테 사냥당한 것만 봐도 해룡족 전사들에게 금방 멸종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잔자클 남작은 이 넓은 대륙에 몇 마리나 더 있었고 더 악질적인 녀석도 있다고 했다.
그나마 이번에 사냥한 녀석은 비교적 순한 녀석이란 것.
물론 객관적인 강력함은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같은 종족이다 보니 붙어 보지 않으면 누가 더 강한지 알 수가 없지만, 잔자클 종족은 일족끼리 전쟁도 하지 않는 이들.
붙어 본 적이 없으니 누가 더 강할지는 예측이 전부였다.
‘좋아, 좋아. 본 드래곤을 앞장세우면 해룡족 본대와도 할 만하겠어.’
점점 해룡족과 해저인의 포위망이 촘촘해져 오고 있었다.
이번 해저인 105명도 피하려다가 중요한 요충지를 수색하고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것이었다.
뭐, 덕분에 49명의 인어족도 해방할 수 있었고, 49개의 인어의 눈물 공급기가 추가됐으니 나쁘진 않았다.
‘본격적으로 전쟁을 수행해야겠구먼.’
나쁘진 않았다.
잔자클 남작 덕분에 전력도 훨씬 더 강력해졌고, 네크로맨서란 무릇 싸우면 싸울수록 더 강해지는 법이었으니까.
“레아.”
“네.”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자.”
“이제 시작인가요?”
“응, 이제부터 정말 전쟁이야.”
“후우, 긴장되네요.”
“나도 그래.”
“죽을 수도 있겠죠?”
“죽을 수도 있겠지.”
심각한 엘레노아와는 달리 요한은 말처럼 크게 긴장한 것 같지는 않았다.
겉과는 달리 요한도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후우, 꼭 이겨야 할 텐데.’
겁이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겉으론 최대한 티는 내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가 가장 강한 헌터인데, 그가 과하게 긴장해 버리면 다른 헌터들은 겁을 먹을 테니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도 요한은 생각이 깊은 남자였다.
그러다 문득 빼먹은 게 생각이 났다.
“아…… 젠장, 그전에 저 인어들부터 어떻게 해 봐야겠군.”
인어족은 훌륭한 인어의 눈물 생산자였지만, 전사가 아니고선 전투력은 한없이 0에 가까웠다.
싸울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해룡족과 해저인과의 전투엔 활용도가 없었다.
그러니 구출하는 족족 밖으로 내보내야 안전했다.
‘하아, 귀찮네.’
몇 번은 나름 할 만했다.
인어족은 상당히 미녀들이 많았고 그런 이들의 찬양을 들으며 움직이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반복되니 슬슬 지쳤다.
예쁜 것도 적응이 되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었으니까.
[요한 님!!]
“응, 왜?”
[대박이에요!]
“뭔 갑자기 대박?”
‘근데 쟤, 저런 말은 언제 배웠데?’
대박이란 표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종족인 오드리가 쓸 만한 건 아니었다.
아마도 수호자 중 하나에 배운 듯했다.
[이번에 구출한 49명의 인어 전부 전사들이에요.]
"뭐?"
그건 좀 확실히 놀라운 사실이었다.
비록 인어 종족이 멸망하긴 했지만, 해저인과 해룡족 이전에 바다의 균형을 수호하던 종족이었다.
미지의 존재가 손봐야 했을 정도라면 결코, 나약한 이들은 아니리라.
그리고 그들은 요한을 도와줄 이유도 충분했다.
그는 현재 다른 인어들의 해방 전쟁을 수행 중이었으니까.
[제가 말을 좀 나눠 봤는데요. 도와주겠데요.]
“거참, 당연한 소리를 대단하게 하냐. 내가 뭐,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이 짓 하고 있는 거야?”
[아, 아니요.]
“그런데 뭐, 도와줘? 야, 다 데리고 와. 필요 없으니까, 내가 다 죽여 줄게. 도와줄 거면 화끈하게 육체를 바쳐서 그냥 내 언데드 돼라. 리바이브로 일으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늘 말하지만, 요한은 성격이 그리 썩 좋은 편이 절대 아니었다.
회사에서야 상사한테 찍히고 후배들도 훨씬 더 고스펙과 고학력으로 들어와 상사들의 귀염을 받은 탓에 그의 똘끼가 분출될 기회가 없었다.
유나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그보다 더 괜찮은 직장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제한이 없으면 요한 만큼 또라이 선배나 상사도 없었다.
지금까진 이런 똘끼가 나올 정도의 일이 없었으니 잠잠했었는데, 인어족 전사란 놈들이 감사하기도 전에 마치 남 일인 것처럼 도와주겠다니?
고오오-!
진심으로 화가 난 요한의 주변에서 강력한 죽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나는 감정에 반응했고 현재 요한은 몇 년 만에 진심으로 화가 났다.
[요, 요한 님……?]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요한이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화를 낸 적은 처음이기에 오드리는 겁을 먹었다.
단순히 화가 난 것만으론 이러지 않겠지만, 죽음의 기운까지 풀풀 풍기니 영혼의 격은 높지만, 전투력은 거의 없다시피 한 오드리로선 감당이 어려웠다.
덜덜덜.
그녀는 처음 겪어 본 요한의 살벌한 기운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 댔다.
“응, 그러자. 그게 편하겠네. 그냥 깔끔하게 목을 치고 듀라한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오, 그거 좋은데?”
요한의 눈동자가 점점 충혈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번 퀘스트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빌어먹을 인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드리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자, 잠시만요. 죄, 죄송해요. 제가 전달하는 과정에서 좀 실수가 있었어요. 저들은 도와주겠다고 한 게 아니라, 도움을 드리고 싶어 하고 있어요. 동족들의 아픔을 저들 손에서 끝내고자 해요.]
“음, 그래?”
날카롭게 갈리던 죽음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운이 사라지자 오드리는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살아야 했으니까.
[네, 네!]
“괜히 오해했네.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네, 네.]
‘후우.’
오드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했다.
그녀가 한숨을 쉬는 사이에 요한도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 했으면, 잘 알아들었겠지.’
진심으로 화가 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굳이 죽음의 기운을 뿜어 내고 상대방을 협박한 것은 일종의 기죽이기 혹은 기강 잡기에 가까웠다.
‘인어 종족은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녀석들이야. 이럴 때 기강을 잘 잡아 둬야 나중에 일 시키기가 편하다고.’
“말을 잘못 전달하기 이전에 녀석들에게 제대로 전달해. 허튼짓, 허튼 생각이든 뭐든 ‘허튼’이란 말이 들어가는 모든 것을 자제하라고. 몰래 하다가 들키면 알지?”
[네, 알겠어요. 꼭 제대로 전달할게요.]
“좋아.”
이제야 좀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해룡족과 전력을 다한 전쟁을 벌여야 하는데 언제까지 느슨하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후우, 그래도 인어족 지원군이 붙어서 다행이네.’
비록 49명에 불과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언데드로 붙었으면 더 강했겠지만.’
아쉬워도 어쩌겠는가, 그래도 나름대로 동맹인데 언데드로 만들면 곤란한 일이 발생할 테니 어쩔 수가 없었다.
“오케이. 인어 전사들도 붙었겠다, 제대로 싸워 보자고. 그렇지, 레아?”
“네, 물론이죠.”
그녀의 눈이 또다시 뜨겁게 불타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전쟁이었다.
***
쾅쾅-!
“크아아악!!”
“아아악!!”
아비규환, 천지가 진동하고 엄청난 폭발이 주변을 감쌌다.
해룡족의 전진 기지이자 잔자클과의 전쟁에서 가장 위력적인 요새 역할을 해 주었던 아티고 요새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게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젠장, 저것들은 어디서 나타난 거야!!”
“뭣들 해. 모두 전투 준비!!”
척척-!
사방에서 폭발이 발생하고 돌이 튀었지만, 용감한 해룡족 전사들은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해룡족의 요새는 인간들의 성처럼 벽이 높은 곳이 아니었다.
아무리 벽이 높아 봤자 해저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날듯이 비행이 가능한데 벽이 얼마나 높던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물론 헤엄이 비행과는 달라서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굳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개체당 전투력도 해룡족이 훨씬 뛰어났기에 둘러싸이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었다.
때문에 해룡족의 요새는 성벽이 아니라, 언덕 위에 만들어져 있었다.
주변엔 자연 암벽이 있어서 뒤와 옆으론 오기 힘들게 설계를 한 것이었다.
덕분에 잔자클의 수많은 공격에도 단 1번도 함락이 된 적이 없는 무적의 요새였다.
하지만 그런 요새의 특성이 이번엔 독이 되었다.
융단 폭격과도 같은 공격에 언덕 위에 돌출된 요새의 형태는 집중 포화의 딱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사무엘, 마나를 다 쏟아부어서 30분간 더 폭격해.”
[알겠습니다.]
샤악-!
사무엘이 손짓하자 스켈레톤 메이지 부대가 마나를 좀 더 활성화 했다.
물속임에도 불 속성 마법은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쾅쾅-!
엄청난 마법 공격이 요새를 향해서 자비 없이 날아들었다.
그렇다고 막 대단한 피해를 준 건 아니었다.
아무리 폭격이 강해도 상대는 이곳 스카이 포탈의 메인 몬스터들.
스켈레톤 메이지의 위력에도 한계가 있기에 임팩트만 요란할 뿐이지 실제로 죽은 해룡족 전사는 1명도 없었다.
눈먼 바위에 깔려서 다친 해룡족 전사는 2~3명 정도 있었지만.
‘뭐, 어차피 그걸 노린 건 아니니까.’
척-!
요한은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