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말미잘의 촉수 속으로 들어간 오드리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낑낑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상태가 영 좋지가 않았다.
[우엑, 젠장.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거야.]
구시렁구시렁-.
말캉거리고 미끌미끌한 스왈라우의 알을 가져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
다른 이유였지만, 요한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드리한테만 시키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방법을 찾아야겠어.’
그때까지만 오드리한테 시키고 나머진 방법을 찾은 이후로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당장 필요한 건 스왈라우의 알 12,000개지만, 언제 또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든든하게 챙겨 놔야지.’
듣기론 스왈라우의 둥지는 이곳 말고도 여러 곳에 존재한다지만,
스왈라우의 특성상 무리끼리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했다.
‘괜히 작업 게을리했다가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마음 같아선 당장 이곳에서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영국과 약속한 것도 있고, 퀘스트도 수행해야 하는 데다가 그의 감각이 강하게 외치고 있었다.
이곳 세인트 포탈을 공략하면 인류를 위협하는 포탈을 만든 그 미지의 존재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단 나랑 유나가 평화롭게 살려면 그 악의 축부터 끊어 내야지.’
그게 가장 급선무였다.
요한도 만약에 자신 외의 다른 강력한 헌터가 있다면 그에게 일을 전부 맡겼을 것이다.
그는 애초에 주인공 스타일의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괜히 세상을 구해 보겠다고 나대다가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여긴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고 현실이니까.’
아무리 그가 강해도 결국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아무리 강력한 존재라도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으면 눈먼 돌멩이에도 잘못 맞아서 죽을 수도 있었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나 말곤 이런 일을 맡길 만한 녀석이 없어.’
정말 나약했다.
어찌 이렇게 나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약했다.
‘포터 가문? 러셀 가문? 다 쓰레기들뿐이야.’
지구라는 좁은 땅에서 네가 최고네, 내가 최고네 하는 것도 정말 웃긴 일이었다.
진짜 적은 아직 등장도 안 했는데도 겨우 포탈을 인류 최대 적이라고 인식하고 상황이 좀 정체되니까 자기들끼리 반목하는 꼴이 가관이었다.
진짜 적은 따로 있음에도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 답도 없지.’
이래서 어떤 영화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마다 외계인은 선역, 인간은 악역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그 문제만 해결하고 정말 푹 쉬자.’
일단 그러려면 스왈라우의 알을 최대한 습득하는 게 순서였다.
요한은 아공간에서 장비를 담당하는 스켈레톤을 불러내 배낭에서 여러 장비를 꺼냈다.
장갑과 집게를 착용해 오드리 피부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크기의 말미잘의 신경 독을 채취했다.
그리곤 정밀 분석 프로그램으로 독의 성분을 분석, 그리고 면역 체계가 있는 오드리의 혈액도 살짝 뽑아서 분석해 보았다.
‘처음엔 이게 되나 싶었는데.......'
웬걸 기대도 안 했던 분석 프로그램이 떡하니 성공한 것이었다.
물론 처음엔 이런 방식이 아니었다.
하다 보니 방법도 더 다양해지고 모든 게 코딩식으로 분석이 가능했다.
단순히 언데드를 강하게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라, 모든 것을 분석하고 그것을 코딩식으로 풀어낸 다음에 새롭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었다.
물론 분석은 모든 게 가능했지만, 새롭게 프로그램을 짜는 게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프로그램 특성은 0과 1이 아니라 낯선 문자로 표현되는데, 읽을 수 없는 글자가 나올 땐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한글처럼 표음 문자가 아니라, 한자처럼 표의 문자였으니까.
즉, 다른 글자를 알아도 배우지 않으면 또 다른 글자를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글자가 많아서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코딩할 수 있었지만.
‘오, 의외로 간단한데?’
다행히 말미잘의 신경 독의 코딩 식은 매우 간단했다.
신경 독의 코딩식을 역추적하고 오드리의 면역 체계를 재구성해서 둘을 합성해 보았다.
삐빅-!
[오류입니다.]
‘이거 아니야?’
프로그래밍은 완벽한 게 아니었다.
사기급 능력은 확실했지만, 여러 어려움이 동반했다.
‘쯧,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야겠네.’
어떻게 보면 시간 낭비였다.
스왈라우의 알은 어떻게 보면 일회용이었다.
다른 리바이브 스킬에 필요가 없으면 악성 재고로 남을 게 분명한 아이템.
그런 리스크가 큰 아이템을 위해서 굳이 코딩식까지 새로 짜야 할까?
오드리를 시켜도 충분할 텐데?
그에게 시간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자원이었다.
모든 게 충분한 그였기에 그가 가지는 1초의 시간도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그런 작업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것도 하나의 경험이지. 경험도 나에겐 소중한 자산이고.’
그래서 코딩식이 오류가 났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서 새롭게 코딩식을 짜 보았다.
“여어, 녀석들 다 죽였어!”
류페이가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스왈라우 무리를 전멸시키고.
[헥헥, 여깄어요.]
오드리가 스왈라우의 알을 5,600개 정도 모았을 쯤.
딩동-!
[올바른 코딩식입니다.]
‘됐다!’
드디어 원하던 말미잘의 신경 독 면역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
그것도 그나마 대상이 언데드라 가능한 일이었다.
면역 체계 자체를 건드리는 것은 일반 생명체라면 불가능했다.
그건 단순히 프로그램 분야가 아니라, 생명 공학 분야로 들어가야 했으니까.
그나마 피와 살이 죽어서 썩어 문드러진 언데드니까 짧은 시간에 가능했을 뿐이다.
요한이나 엘리니아 같은 순수한 생명체는 단순 프로그램으론 절대 불가능했다.
“수고했어, 오드리. 이제 나머진 나한테 맡겨.”
[후우, 하신다던 일이 끝나셨나 보네요.]
“그래, 12,000개를 다 모으기 전에 끝난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아, 네…….]
오드리는 정말 겪으면 겪을수록 요한이라는 인간이 얄미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대를 배려하기보다는 굉장히 직설적이었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표현은 가끔은 상대방을 상처 입히기도 하니까.
다만, 현 상황에서 절대자에 가까운 요한이 굳이 상대방의 마음을 일일이 따질 이유는 없었다.
또 아무리 뭐라고 해도 반박조차 하지 않고 순순히 듣는 언데드와 함께하다 보니 버릇이 된 감이 컸다.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채집 활동에 나서 볼까? 오드리, 넌 이제 쉬어.”
[아, 감사해요!]
정작 오드리 본인은 조금 전까지 잔뜩 상처받았다가 쉬라는 말 한마디에 100% 회복한 것도 모자라 얼굴에 기쁨이 가득해졌다.
***
요한은 스켈레톤 짐꾼들을 다수 데리고 다니며 말미잘 속에 있는 스왈라우의 알을 모조리 삭삭 긁어 모으기 시작했다.
“레아.”
“네?”
“저걸 밖에다가 팔면 얼마나 할까?”
어떻게 보면 요한으로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포탈 안에서 시체를 제외한 것들을 팔 생각을 하는 것이.
하지만 아직까진 구체적으로 판매 계획은 없었다.
그저 이번에 생각보다 너무 많은
숫자를 획득했는데, 리바이브 스킬에 별로 필요가 없으면 판매할까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흠, 글쎄요. 지금까지 저것과 비슷한 게 황금 개구리의 알 정도인데. 그건 그다지 가치가 없었거든요. 조금이지만, 조사를 해 박야 가치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내가 수호자들을 통해서 알 몇 개 넘겨줄 테니까, 러셀 가문에서 좀 알아봐 줘.”
“네, 그럴게요.”
이렇게만 말해 두면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해 두었다.
둘은 이제 굳이 본인들이 직접 움직일 위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러면 나머지 리바이브 스킬 재료를 구하러 가 볼까?”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스킬이네요.”
“……인정.”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면 참 편할 텐데 워낙 희귀한 재료 아이템인데다가 특히 이번엔 이곳 스카이 포탈 내부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대부분이었다.
아직 해구까지 내려온 영국 공격대가 없다는 것만 봐도 단순히 돈으론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곳이 다크 엘프 포탈이었으면, 다크 엘프들한테 사들이기라도 할 텐데.’
아쉽게도 다크 엘프 포탈 때와는 반대로 현지인을 적으로 돌렸으니까.
그들의 넓은 시장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가 없지. 그들을 도와선 스카이 포탈을 정식으로 공략했다고 볼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생각해 보니 스카이 포탈을 안정시키려면 반드시 해룡족 왕족을 몰살시켜야 할 것 같았다.
'하긴, 그때는 수에트의 강대함에 쫄아서 일단 해 달라는 대로 해 줄 수밖에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지.’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움직여서 다행이었다.
‘오드리를 만난 게 정말 다행이야.’
그것도 좀 운명의 장난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다행은 다행이었다.
“어쩔 수 있나, 그냥 노가다하는 수밖에.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지.”
“네, 알겠어요.”
요한은 정말 본격적으로 노가다를 시작했다.
언데드 군단을 끌고 다니고 오드리를 길잡이 삼아서 필요한 재료를 모조리 수집했다.
필요한 개수 그 이상을 긁어모았다.
부족하면 반복 노가다를 해서라도 반드시 수집했다.
한 번 꽂히면 해결할 때까지 절대 풀리지 않는 그의 집념 덕분이었다.
그렇게 1달을 꼬박 재료를 수급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해룡족과 해저인 팀 몇 개를 박살 내기도 했다.
죽은 녀석들의 영혼을 잡아다가 신문도 해 보았는데, 해룡족과 해저인들이 전격적으로 동맹을 맺고 요한을 잡으러 다닌다는 정보를 캐 낼 수가 있었다.
‘뭐, 생각보단 좀 늦었네. 난 좀 더 빨리 동맹을 맺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완벽한 동맹은 아니었다.
그저 요한을 잡으러 다닐 때는 서로 공격하지 말자는 일종의 임시 동맹이었다.
또 어겼을 때의 패널티도 없어서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허술한 동맹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 정도면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것으론 특히 수에트 왕자의 분노가 심각하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긴, 분노하지 않으면 바보지.’
나름대로 호의도 보냈고 선물도 주었던 상대가 오히려 뒤통수를 쳤다.
평소에 고혈압이 지병으로 있으면 혈관이 터져도 10번은 더 터졌을 일이었다.
‘난 절대 피해자 입장은 되지 말아야지.’
끊임없이 남을 의심하고 뒤를 생각해야 했다.
한 번 믿음을 주었던 상대도 뭔가 수상할 때는 철저히 관찰해서 조금의 빈틈도 없게 해야 했다.
“후우, 정말 힘드네요.”
그래도 요한에겐 엘레노아가 있었다.
‘그녀는 믿을 만하지.’
그런 요한도 엘레노아만큼은 진심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의심하기엔 의심받을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안할 정도로 진실하고 신뢰가 갔다.
이상할 정도로 정직하고 올바른 상대를 의심하는 바보도 있겠지만, 요한은 그런 바보가 아니었다.
“수고했어, 레아.”
“수고는요. 근데 다 끝난 거예요?”
“응, 다 끝났어. 이제 만들기만 하면 돼. 가서 쉬어.”
“네, 수고해요.”
거기에다가 예쁘지 않은가?
42장. 본 드래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