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역시 잔자클 남작은 곧바로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몸은 군데군데 뼈가 보일 정도로 푹 파여 있었다.
촉수는 대부분 뜯겨 나가 존재하지 않았고, 머리는 1/3 정도가 사라져 버렸다.
그야말로 걸레짝이나 마찬가지의 몸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구우우우......."
구슬픈 소리로 우는 게 녀석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푸드득-!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는지 흐느적거리는 촉수로 어떻게든 공격하려고 해 보았다.
“흥!”
퍽-!
하지만 류페이가 가볍게 휘두른 검에 촉수가 터질 정도로 나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사라져라. 류페이, 끝내.”
“오케이!”
팍-!
높이 뛰어오른 류페이가 그대로 검을 들어서 위에서 아래로 그어 버렸다.
촤악-! 푸화아악-!
녀석의 살이 갈라지면서 노란색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퉤. 뭐야, 이거.”
류페이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언데드도 불쾌한 게 있는 법이었다.
조금 고전하기는 했지만, 잔자클 남작을 사냥하는 데는 성공했다.
‘좋아, 좋아.’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완전히 불타거나 사라져서 없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한 게 시체였다.
‘룰루.’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요한 씨!”
“응?”
손을 풀며 막 잔자클 남작을 만지려는데 엘레노아가 요한을 불렀다.
“왜?”
“이 잔자클 모두에게 마석이 나왔어요.”
“뭐?”
요한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네.”
“헐.”
시체를 수거해서 파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에게 시체란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기에 절대 팔면 안 되는 중요한 것이었다.
팔 수 있는 건 오직 마석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잔자클은 그렇게 좋은 사냥감은 아니었다.
왜냐면, 마석이 매우 적게 발견되는 몬스터였기 때문.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마석이 안 나오는 잔자클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웬일?
러셀 가문 수호자들이 별생각 없이 잔자클 시체를 파 보았다가 떡하니 마석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기에 배낭에 챙긴 수호자들은 관성적으로 다른 잔자클의 시체도 확인해 마석을 수거한 것이었다.
그렇게 막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잠시만, 왜 이렇게 마석이 많지?’
습관적으로 마석을 캐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잔자클은 마석이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몬스터가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무조건 마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계속 나오네?’
“어이!”
수호자들도 하나, 둘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똑똑한 편이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던 일도 의심하고 생각한 것이다.
“너도?”
“야, 너도?”
“나두!”
“헉?!”
수호자들은 깜짝 놀라 얼른 이 사실을 엘레노아에 보고했다.
“그게 정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아가씨.”
"......."
엘레노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내가 요한 씨한테 말할 테니까. 수호자들을 총동원해서 잔자클의 마석을 전부 수거하도록 해.”
"예!!"
잔자클 몇 마리를 상대하는 것 말곤 딱히 할 일이 없던 수호자들이 갑자기 바빠졌다.
솔직히 마석 수거는 수호자들이 하기엔 한참 수준이 낮은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수호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두근두근-!
‘비록 마석 수거는 짐꾼들의 일이지만, 우리도 스카이 포탈 공략의 주역이 되는 거야!’
물론 주역이라고 해 봤자 별다른 일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한이 싸우고 사냥하고 퀘스트를 깨는 것을 실시간으로 모두 지켜보았다.
어차피 증인도 없는데 어디 가서 주역이라고 외쳐도 손가락질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비록 중요도가 떨어지는 마석 채취라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수행할 수가 있었다.
‘룰루, 흐흐흐. 다른 녀석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 줄까?’
‘절대 우리 말 못 믿겠지?’
‘이거 TV에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가?’
‘아냐, 우리는 러셀 가문의 수호자야. 경솔하게 행동하면 안 돼!’
마석을 채취하면서도 온갖 번뇌가 그들을 괴롭혔다.
어쨌든 엘레노아는 요한에게 그렇게 보고한 것이었다.
“이야, 참 별일이 다 있네?”
요한은 엘레노아의 보고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그 많은 잔자클에 마석이 다 있다면.”
“대단한 양이에요. 이 정도만 해도 유럽 전체에 1년 동안 전기를 공급하더라도 남을 정도니까요.”
마석이 평범한 물건이었다면, 잔자클에서 수거한 물량이 밖으로 나갔다면 엄청난 디플레이션, 즉 물가 하락을 일으켰을 것이다.
공급과 수요의 곡선에 의하면 공급이 과잉되면 가격이 내려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 기적의 광석인 마석은 전혀 아니었다.
마석 1개면 에너지, 섬유, 기계 모든 것을 감당할 수가 있었다.
물론 너〜무 많아져 버리면 물가 하락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석은 어떤 분야에서든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고 늘 부족한 물건이기도 했다.
설사 국내 모든 부분을 감당할 마석이 충분해서 쓸 곳이 없더라도 국외로 고개를 돌리면 수출할 곳은 널려 있었다.
즉, 이번에 회수한 마석 100% 한꺼번에 반출해도 문제 될 게 전혀 없었다.
‘내가 신경 쓸 것도 아니지만.’
요한이야 그냥 팔아서 돈이나 벌면 그만이었다.
“좋아, 그 정도 마석이라면 당분간 현금 걱정은 없겠네.”
“……네.”
엘레노아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이 정도 양이라면 현금 걱정이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굳이 사냥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양이었다.
‘요한 씨라면 어쩔까?’
그녀는 문득 궁금해졌다.
K&S라는 엄청난 기업도 설립하고, 이번에 엄청난 마석 채집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세계 부자 랭킹 1위에 오를 수가 있었다.
돈이 많아짐에도 계속 헌터를 할까?
“요한 씨.”
“응?”
“헌터 계속하실 거예요?”
“뭐?”
“K&S도 그렇고 이번에 마석도 엄청나게 얻으셨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평생을 유유자적하게 살면서 보내실 수 있을 텐데. 굳이 이렇게 목숨 걸면서 사냥해야 할까요?”
“아아, 난 또 뭐라고.”
엘레노아는 진지하게 물어본 것이었지만, 요한은 피식거리며 대답했다.
굉장히 무례한 태도였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요한의 시니컬한 성격이야 하루 이틀도 아니었기 때문.
“당연하지.”
“왜요?”
“음…… 글쎄다. 아무리 큰돈을 번다고 해도 헌터를 계속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네.”
"......."
어떻게 보면 확실한 대답은 아니었다.
엘레노아는 복잡한 눈으로 요한을 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봐. 애초에 이 일 자체가 직업이잖아. 사람이 조금 힘들다고 돈 좀 벌었다고 일을 그만두면 되겠어?”
“요한 씨는 이 일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
“내가?”
요한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을 크게 치켜떴다.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런 요한의 반응에 움찔하는 엘레노아.
“아니에요?”
“푸핫, 아니야. 내가 왜 헌터 일을 싫어해?”
이건 그의 진심이었다.
그는 헌터 일이 재밌었고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엘레노아도 할 말은 있었다.
“늘 놀며 쉬고 싶어 하셨잖아요. 이번 세인트 포탈도 공략이 끝나면 몇 달은 쭉 놀 거라고 하셨고.”
요한은 늘 휴식과 휴가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어제만 해도 이 일이 끝나면 천공의 방어 요새를 끌고 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아무도 찾을 수 없게끔 노는 게 목표라고 실컷 떠들었다.
요한도 할 말은 있었다.
“에이, 촌스럽게 왜 그래. 원래 휴식이란 건 말이야. 매일 계속하면 오히려 질린다고.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서 쉬는 게 좋다는 거야. 내가 말하는 건 그냥 가볍게 사냥하고 가볍게 쉬고 싶은데, 책임이고 의뢰고 인류의 운명이고 어쩌고 쓸데없는 책임을 지는 거란 말이지.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해? 나는 내 주변 사람만 책임지고 싶다고.”
엘레노아는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녀는 유년기 시절부터 늘 책임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왔다.
부하에 대한 책임, 가문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귀족으로서 가지는 국가에 대한 의무까지.
교육받고 훈련받으며 절대 이런 책임감을 잊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그래, 요한 씨는 귀족이 아니었지.’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존경하고 동경하는 요한의 입에서 책임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자 그녀의 마음속에서도 조금씩, 지금껏 살아왔던 길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의심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
잔자클 마석은 양이 워낙 많아서 요한은 수호자들뿐만이 아니라, 언데드까지 동원해 작업하게 시켰다.
하지만 그런 막대한 물량의 노동력을 동원함에도 적어도 나흘 정도는 걸릴 엄청난 양이었다.
오히려 요한에겐 다행이었다. 합법적으로 시간이 주어졌으니,
잔자클 남작으로 어떤 언데드를 만들지 혹은 리바이브를 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맘 놓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가능하다면 100% 리바이브가 훨씬 더 좋을 것이었다.
‘하지만, 강한 녀석을 일으켜야 할 때는 터무니없는 재료를 요구한 단 말이지.’
애초에 해룡족을 되살리는 데 인어의 눈물을 요구한다는 게 미친 일이었다.
만약에 요한이 인어 해방 퀘스트를 받지 못했다면?
오드리를 필두로 해서 인어 종족 자체를 포섭할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인어의 눈물은 결코, 고통이나 억지로 만들어지는 물건이 아니었다.
물론 고통이나 눈 찌르기 같은 방법으로 그들도 눈물은 흘렸다.
하지만 그렇게 흘린 눈물은 아이템화가 되지 않는 평범한 눈물일 뿐이었다.
‘그나마 퀘스트 덕분에 해룡족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킬 레벨도 낮은 데다가 인어의 눈물이 늘어나는 숫자도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잔자클 남작도 어떻게 언데드로 만들지 고민해야 했다.
일단 먼저 할 일은 리바이브를 위한 재료부터 확인해야 했다.
1. 인어의 눈물 1,200개.
2. 잔자클 눈알 5,000개.
3. 해룡족의 피 2,000L
4. 스왈라우 알 12,0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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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해마의 심장 800개.
9. 포세이돈의 파편 1개.
‘……미친!! 이건 좀 심하잖아!!’
아무리 리바이브가 어려운 것이라지만, 재료가 미쳐도 너무 미쳤다.
특히 1번이 미쳤다.
‘인어의 눈물 1,200개라니!!’
소수의 인어의 눈물도 구하기 어려운데 1,200개라니.
이건 뭐 공장에서 찍어 내더라도 쉽지 않은 개수였다.
‘리바이브를 시킬 생각이면, 인어를 어떻게든 더 구해서 눈물을 짜내야 한다는 건데.’
그렇다고 구울로 일으키기엔 시체가 너무 아까웠다.
‘아니, 애초에 구울로 일으킬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가 없지.’
보스 몬스터는 100% 구울로 일으킬 수 없었다.
오히려 안 일어나는 보스 몬스터가 훨씬 많았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보스 몬스터 시체를 구울로 일으키려다가 시체가 연기가 되어 사라질 때도 있었다.
문제는 요한이 그걸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구울은 흔해. 시체를 어떻게 든 리바이브를 시켜야 해. 일단, 인어의 눈물 1, 200개부터 구해 보자.’
그게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