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크으으.”
그야말로 거대한 생명체였다.
요한은 저 괴물을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알던 지식과는 전혀 딴판인 외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또 끔찍하게 징그럽고 흉측한 외형이었다.
이럴 때 요한이 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였다.
# 잔자클 남작
종류: 보스 몬스터.
위험도: A+++
설명: 잔자클의 여왕격인 존재. 성별은 존재하지 않기에 여왕이란 이름은 아님. 잔자클 남작은 잔자클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며 지배하는 존재다. 해룡족도 이 녀석만큼은 매우 꺼리는 편. 강력한 독액을 뿜어내며 오직 잔자클만이 독액에 면역이 되어 있다.
‘……+가 3개라고?’
역대급 보스 몬스터였다.
베트남에서 만났던 공허 간수보다도 더 위험한 존재였다.
‘……하긴, 잔자클 남작인가 뭔가 하는 녀석은 이 포탈에 얘 1마리가 전부일 테니까.’
그래도 공허 간수는 여러 마리가 존재했었다.
‘그렇다는 것은 사냥할 가치가 더 있다는 거겠지. 좋아, 잔자클은 독액에 면역이 되어 있다라…….'
“쿠오오오오-!!”
퍼벅-!
“……젠장.”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잔자클 남작이 포효하자 잔자클 구울이 사정없이 터져 나갔다.
아무리 언데드가 됐다고 해도 잔자클은 잔자클.
‘아무래도 창조주인 잔자클 남작을 거부할 수 없는 건가 보네.’
그야말로 잔자클의 지배자라고 부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이거 잔자클도 없는데 골치 아프네.’
이곳 세인트 포탈에서 그가 어렵지 않게 휩쓸고 다닐 수 있었던 건 잔자클 구울의 덕이 컸다.
숫자 제한 없이 끊임없이 불어나며 엄청난 속도와 무차별적인 공격은 언데드의 전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
하지만 그 강력함은 잠시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았다.
‘뭐, 그렇다고 내가 못 싸울 건 없지만.’
무서운 건 아니었다.
그저 잔자클 구울 같은 편리한 도구가 없어졌으니 살짝 불편해질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에겐 잔자클 말고도 활용도가 높은 언데드가 많이 있었다.
‘녀석들을 활용할 시간인가?’
스윽-!
잔자클 구울 덕분에 별로 쓸 일이 없던 데스 스태프를 드디어 꺼냈다.
찰랑-!
뼈로 만들어진 스태프에 달린 방울이 한 차례 울렸다.
〈데스 스태프〉뼈로 만든 이 지팡이는 요한이 어렵게 입수한 러셀 가문의 보물 목록에 있던 네크로맨서 전용 희귀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유니콘을 빌려주는 대가로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임대였지만, 유니콘이 엘레노아의 곁에 있는 한은 데스 스태프는 요한의 것이었다.
듣기론 러셀 가문에서 반대가 심했다지만, 가주가 허락해 쉽게 가져올 수가 있었다.
반대파들이야 그저 엘레노아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는 세력들.
가주로선 데스 스태프가 요한의 손에 있는 한 유니콘도 소유할 수 있다는 유혹은 놓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데스 스태프는 창고에서 썩어 가던 아이템에 불과했다.
능력과 효과는 엄청났지만, 네크로맨서 전용이라는 제한과 하급 네크로맨서는 데스 스태프가 뿜어내는 죽음의 기운을 버틸 수가 없었다.
실력 있는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엄청난 능력을 보유한 스태프를 줄 가치는 있지 않았다.
계륵의 상황에서 요한이 유니콘과 제한이 있긴 하지만, 교환을 요구했으니 얼른 제안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러셀 가문은 유니콘을 개인적으로 소유한 최초의 가문이 되었다.
특히 이 사실을 안 포터 가문이 가장 배 아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가주는 폭소를 터트렸다는 소문도 돌았다.
물론 가주실은 완벽한 소음 차단 기능이 있어서 직접 들은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든 유니콘과 교환한 데스 스태프를 쥔 요한은 흐뭇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마검 요룬도 좋긴 했지만, 아무래도 검이다 보니 쓸데없는 능력치가 많았지.’
하지만 데스 스태프는 그야말로 네크로맨서 전용 아이템의 위용을 그대로 자랑했다.
네크로맨서는 인기 있는 클래스도 아니고, 그렇다고 흔한 클래스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전용 아이템이 매우 귀했다.
오죽하면 요한도 마검 요룬을 착용한 이후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을까.
제작 전문 헌터들도 죽음의 기운이 풀풀 풍기는 네크로맨서 전용 아이템은 만들지를 못했다.
‘그러고 보면 아직 지구의 헌터 문명은 많이 부족한 게 아닐까?’
요한은 이제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포탈, 스카이 포탈에 한해선 순 수한 던전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 일부를 던전화시킨 것이라고.
물론 그들이 그렇게 착각하게 설정됐을 수도 있었다.
포탈이 자연 발생이 아니란 것만은 100%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요한은 미지의 존재인가 뭔가 하는 존재가 차원이나 행성 같은 곳을 사냥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장난질을 치는 것으로 여겼다.
‘포탈 혹은 헌터 문명이란 게 그 미지의 존재가 치는 장난의 서막이라면?’
언젠가 지구 혹은 지구의 일부도 스카이 포탈 꼴이 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인류도 대비해야 하는데. 내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떠들어 봤자 듣는 척도 안 하겠지.’
물론 앞에서야 듣는 척은 할 터였다.
천공의 방어 요새 등장으로 요한은 그야말로 인류 최강의 헌터로 당당하게 등극했으니까.
어떤 존재도 요한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등을 돌리면?
떨어지면?
아마 미친X이라고 손가락질이나 할 것이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이 모든 것을 게임처럼 생각하기에 음모론에 가까운 그의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나도 굳이 나서고 싶지 않아.’
물론 요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만은 충분히 준비할 것이었다.
그는 안전 불감증의 반대인 안전 과민증이었으니까.
하지만 싫다고 하는 인류를 억지로 멱살 캐리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지는 않았다.
“쿠오오오-!”
잔자클 남작이 다시 한 번 포효했다.
‘아, 너무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있었네.’
생각이 많다는 게 그의 단점이고 장점이었다.
“류페이!”
철거덕-!
“저 녀석을 다지면 되는 거야?”
“아주 잘근잘근 다져 버리라고. 아, 그리고 이번엔 본 스파이더 꼭 부르고.”
“쳇, 알았어. 뭐, 딱 봐도 강해 보이는데. 그래야겠지.”
류페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투사 성향인 류페이라도 상대방의 강함 정도를 파악하는 능력은 있었다.
본능이 조심하라고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나와라.”
구구구궁-!
땅이 갈라지고 뼈로 된 인간 거미인 본 스파이더가 등장했다.
“캬아아아아-!!”
류페이는 높이 뛰어올라 포효하는 본 스파이더 위에 올라탔다.
“가자, 가서 조지자고!!”
“캬아아아-!!”
쿵쿵쿵-!
힘차게 앞으로 달려갔다.
요한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본 골렘.’
구구구궁-!
요한의 주변으로 수십 기의 본 골렘이 일어났다.
잔자클 덕분에 뼈 수집은 많아도 뼈 소모가 거의 없었다.
덕분에 시체와 뼈 모두 넉넉 그 자체였다.
덕분에 본 골렘 같은 뼈 소모가 큰 스킬도 마음껏 사용할 수가 있었다.
“크아아아!!”
“으아아악!!”
그리고 대망의 해룡족과 해저인을 리바이브로 일으킨 언데드.
해룡족은 드라우그였다.
북유럽 신화에서 등장하는 언데드로 바이킹의 무덤가에서 자주 보이며 피부가 강철 같은 게 특징.
그리고 실제로 해룡족은 갑옷 같은 피부가 비늘로 이루어져 매우 단단했다.
어지간한 마나 소드는 이도 먹히지 않을 정도.
강철도 통째로 씹어 버리는 잔자클이기에 해룡족을 죽일 수가 있었다.
그런 영향인지 강철 같은 피부를 자랑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드라우그 퇴치법은 피하거나 가두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으아아아!!”
바이킹의 시체가 되살아난 언데드로 유명하다 보니 매우 뛰어난 검술을 자랑했다.
‘리바이브가 이런 식이었네.’
저번에 테스트해 볼 때는 1마리 뿐이어서 비교군이 부족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일으켜 보니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리바이브 스킬은 내가 일으킬 수 있는 언데드와 상관없이, 시체와 가장 어울리는 언데드가 탄생하는 거네.’
정말 좋은 스킬이었다.
아무리 리바이브가 시체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라지만, 언데드는 언데드만의 개성이란 게 있었다.
생전의 특징과 새롭게 얻은 언데드의 특징을 더해서 훨씬 더 강력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드라우그.”
“으아아악!!”
파바박-!
드라우그 무리는 삼지창을 들고 앞으로 돌격했다.
그리고 해저인들.
해저인들은 조금 특이한 존재들이었다.
뭔가 육체적인 강력함이나 마법적인 다재다능은 보이지 않았다.
해저인들 고유의 과학 기술로 보이는 테크닉으로 싸우는 이들.
언데드로 일으켜 보았지만, 평범한 구울로 깨어났다.
별다른 특징도 없어 보였다.
애초에 해저인 자체가 스펙보다는 기술로 싸우는 종족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얘들은 어쩌지?”
일단 일으켜 보긴 했지만, 딱히 쓸모가 없었다.
“너희는 그냥 여기서 대기해.”
“……크악?!”
막 돌격하려던 해저인 구울은 시무룩해졌다.
아무리 약해도 언데드는 언데드.
생명체를 씹어 먹고 싶었지만, 네크로맨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조용히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나를 지켜.”
“크아아악!!”
시무룩해졌던 해저인 구울은 금방 기운을 차렸다.
‘에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한이 일으킨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 군단은 곧 잔자클 남작과 충돌했다.
“흐아아압!”
쿠웅-!
류페이가 가장 먼저 검을 휘둘렀고 잔자클 남작의 촉수와 부딪혔다.
분명히 칼과 촉수가 부딪힌 것이었음에도 엄청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엑?”
힘없는 좀비는 그 자리에서 몸이 박살이 나거나 뒤로 넘어지면서 쭉 밀려났다.
나약한 좀비는 감히 버틸 수 없는 강력한 힘이었다.
“크윽!”
류페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본 스파이더의 뿔을 잡아서 버티긴 했지만, 그녀가 만든 충격파임에도 그녀의 몸이 버티기 힘들었다.
"퉤!"
침은 없었지만, 생전의 습관으로 침을 뱉은 그녀는 검을 고쳐 잡고 다시 달려들었다.
“쿠오오오오!!”
잔자클 남작은 촉수를 사방으로 휘두르며 독액도 함께 뿜었다.
“피해!!”
파바박- 치이익-!
독액은 닿는 모든 것을 녹이고 있었다.
“크에에엑!!”
좀비도 마찬가지였다.
방패로 독을 막은 스켈레톤 워리어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끄응, 저 스켈레톤 워리어도 얼른 나이트가 안 되나?’
워리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꽤 쓸 만한 언데드였다.
하지만 파워 인플레가 심해지면서 스켈레톤 워리어도 이젠 잡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는 생채기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좀 더 강력한 언데드가 필요했다.
물론, 요한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며 많은 언데드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딱딱-!
스켈레톤 워리어 수십 기가 독액에 노출돼 그대로 온몸이 녹아내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갑옷과 방패는 물론 검도 함께 사라져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젠장, 만만치 않으리라곤 여겼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겨우 독액 1방에 말이다.
2 화
“쿠오오오오!!”
퍽퍽-!
잔자클 남작의 거대하고 강력한 촉수가 사방에 몰아쳤다.
쾅쾅-!
“키엑!”
일반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의 피해가 막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데드 군단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피해는 있었지만, 착실하게 반격도 하고 있었다.
“캬아악!!”
하지만 잔자클 군대의 반격도 만만치가 않았다.
잔자클 남작만 상대해도 힘들 판에 남작을 따르는 잔자클도 어마어마했다.
보통 때였다면, 모두가 전력이 됐을 터.
하지만 잔자클 남작은 구울이든 아니든 잔자클에 대한 지배력이 대단했다.
구울이 되는 순간 귀신같이 터트리면서 전력이 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귀찮은 녀석.’
네크로맨서에게 있어서 언데드가 늘어나는 것이 막힌다는 건 정말 치명적인 패널티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요한이 지금까지 잔자클의 무한 증식 덕분에 별다른 언데드의 추가 없이 시체를 꾸준히 모아 왔다는 점이었다.
그의 스킬도 이젠 꽤 많이 성장해 엄청난 숫자의 시체를 모으는 게 가능했다.
그 여파가 잔자클 남작의 사냥까지 미칠 수가 있었다.
“일어나라, 나의 군단아!!”
구구궁-!
그가 보관했던 해저인과 해룡족의 시체가 끊임없이 증원됐다.
부족할 때는 밖에서부터 보관했던 시체까지 총동원했다.
“크오오오오-!!”
잔자클 남작도 무한대로 잔자클을 쏟아 내는 것은 아닌지 슬슬 늘어나는 잔자클의 숫자도 한계가 보였다.
그야말로 서로가 말라죽을 때까지 싸우는 총력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잔자클 남작이 직접 나서는 만큼, 요한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캬아아악!!”
“어딜!”
촤악-!
“키에에액!!”
잔자클 십수 마리가 요한에게 덤볐다가 엘라드와 엘리니아의 검에 그대로 두 등분으로 썰렸다.
“감히 어딜 그 더러운 입을 주군에게!”
엘라드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녀는 충실한 경호원으로 요한의 신변에 위협이 되는 것을 참지 못했다.
몇 번이나 요한을 위험에 빠트린 적이 있었기에 그녀의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이젠 절대로 주군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아!!’
안 그래도 까칠한 스펙터가 더욱 까칠해져서 가시에 찔릴 정도였다.
강력한 잔자클 남작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요한이 직접 움직여야 했다.
“류페이 녀석의 메인 다리를 막아. 하늘은 위에서 최대한 강력한 음파 공격을 퍼부어.”
“오케이!”
[알았어!]
그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자, 전투의 흐름 자체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급하지 않으면 직접 나설 일이 별로 없었다.
나서지 않아도 잘하고, 류페이나 하늘에게 맡기는 게 편했기 때문.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실력이 부족해서 뒤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까지 앞으로 나가 싸우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뿐.
대신 그가 나서야 할 상황이 오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황을 타개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쿵쿵- 척척-!
그가 나서자마자 언데드 군단의 움직임이 180도 달라졌다.
실력은 있지만, 뭔가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그야말로 정예 군단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체계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티쓰!’
‘본 스피어!’
‘본 월!!’
쿠구구궁-!
적당한 곳, 적당한 시기, 적당한 타점을 노려서 적극적으로 사용해 주었다.
특히 본 월이 가장 효율적이었는 데, 거대한 벽이 나타나 언데드를 보호하거나 잔자클을 가두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팬텀 스티드에 올라타 공중에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주변을 살피고 적절한 대처까지 그때그때 내렸다.
그러고도 끝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지휘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면서 그의 가장 육중한 전력인 본 골렘을 컨트롤했다.
물론 A.I 기능 덕분에 알아서 전투도 가능했다.
하지만 요한이 직접 컨트롤을 하면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하며 더 직관적인 상황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기 때문.
만약에 그 일이 어려웠다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능숙하게 잘 수행했으며 전투력까지 충분히 끌어올렸다.
휙휙-!
손가락을 움직이며 본 골렘을 컨트롤해 잔자클 남작의 촉수를 붙잡았다.
“쿠오오!!”
쿵쿵-!
잔자클 남작의 촉수 1개를 본 골렘 십수 기가 동시에 잡았다.
당황한 잔자클 남작이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떨어트리려고 했다.
‘어딜, 본 스피어. 본 월!!’
하지만 순순히 당해 줄 요한이 아니었다.
콰직-! 콰직-!
본 골렘만으론 부족해 본 스피어와 본 월을 사용해 촉수를 꿰뚫어 땅에 고정했다.
‘저런 거대 생명체를 레이드할 때는 일단 고정해 두고 두드려 패야지.’
잔자클 무리는 거의 다 정리가 되었다.
여전히 잔자클 남작이 잔자클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좋아, 잔자클을 생산하는 게 무한은 아니란 거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잔자클 남작의 힘에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니까.
‘숫자 싸움에는 내가 훨씬 더 유리해.'
잔자클 남작이 강한 건 확실했다.
하지만 싸움은 강한 놈이 이기는 게 아니라, 똑똑한 놈이 이기는 법.
확실히 잔자클 남작은 요한에게 큰 피해를 주곤 있었지만, 치명적인 한 방을 먹일 수는 없었다.
촤아악-!
‘호오?’
그래도 잔자클 남작이 아예 바보는 아니었다.
언데드만 상대해선 답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촉수를 뿜어내 요한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딜!”
촤악-!
“쿠오오오!”
요한을 노리던 촉수 3개는 엘라드의 검에 우수수 썰려 나갔다.
‘뭐, 굳이 안 막아 줘도 되지만.’
팬텀 스티드의 속도는 순간적으로 최고 속도를 냈을 때 마하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물론 마하의 속도로 장거리 이동은 불가능했다.
마나 소모가 극심하고, 오래 썼을 경우 언데드 육체에 무리가 가기 때문.
하지만 순간적으로 공격을 피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촉수의 속도론 팬텀 스티드를 잡는 건 불가능했다.
‘뭐, 굳이 지켜 주겠다면야.’
움직이지 않아서 편하긴 했다.
‘본 골렘들아, 뭐 하니. 형이 공격받잖냐.’
후웅- 퍽!
“쿠오오오!!”
본 골렘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어느새 잔자클 남작의 세력권은 매우 협소해졌다.
대신 그만큼 요한의 영역은 압도적으로 넓어졌다.
‘확실히 시체 소모가 커.’
잔자클은 이곳에서만 제한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
아무래도 잔자클 남작 사냥이 끝나면 밖으로 나가서 평범한 시체 좀 수급해야 할 것 같았다.
바다 생명체의 시체는 언데드로 만들어도 대부분 바닷속에서만 강력했다.
스카이 포탈 사냥이 끝이 아니니 요한은 늘 비상사태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자, 모두 녀석에게 올라타!!”
딱딱-!
“그어어어!!”
언데드 군단은 요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제히 잔자클 남작의 몸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휙-쿵!
많은 언데드가 미끄러져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이빨이든 손톱이든 칼이든 창이든, 뭐든 박아 넣고 버티는 데 성공한 언데드들이 일제히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후웅-! 후웅-!
잔자클 남작은 어떻게든 몸에 붙은 진드기 같은 언데드를 떨어트리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언데드의 숫자는 너무 많았고, 떨어져도 다시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숫자의 언데드가 밟혀 죽거나 촉수의 공격에 으깨졌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데드는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콰득-! 콰직-!
끊임없이 물어뜯고 칼을 찌르며 잔자클 남작을 괴롭혔다.
“쿠오오오!!”
‘뭐야, 아직도 안 쓰러졌어?’
유리한 상황이긴 해도 뭔가 확실한 마무리가 잘 되질 않았다.
류페이가 본 스파이더를 타고 도륙하고 있음에도 거대한 잔자클 남작은 버티고 또 버텼다.
보통 이 정도 됐으면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라도 지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잔자클 남작은 잔자클을 생산해 내는 양만 줄었을 뿐이지 여전히 쌩쌩했다.
‘쯧, 네크로맨서에겐 이런 상황에서 끝낼 1방이 부족하단 말이지.’
일종의 필살기 같은 스킬이 말이다.
하지만 잔자클 남작을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사기급인 것이라 양심 없는 생각이기도 했다.
아무리 요한과 같은 S급 또는 현재 여전히 논의 중인 S급 다음 등급인 SR등급에 해당하는 헌터라고 해도 요한처럼 이렇게 압도적인 위용을 뽐낼 수는 없었다.
요한 말고도 SR등급으로 거론되는 전 세계의 9명의 헌터들 중에도 이렇게 잔자클 남작을 상대로 혼자 레이드가 가능한 헌터는 없었다.
그건 오직 요한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압도적인 퍼포먼스였다.
혼자서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흠.’
뭔가 좀 더 화끈한 공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이 방법을 사용해야겠군.’
퍽-!
“가자.”
“이히히힝!!”
팬텀 스티드를 몰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중을 빠르게 회전하며 잔자클 남작의 바로 위로 향했다.
휘릭-!
잔자클 남작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전투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적었지만, 가장 강력한 마나를 품고 있는데다가 그가 언데드 군단의 수장인 것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자클 남작의 촉수는 요한의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다.
“이히히힝!!”
팬텀 스티드가 내는 마하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적당히 자리를 잡은 뒤에 아껴 두었던 시체를 꺼내서 아래로 던지기 시작했다.
공룡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 포탈에서 획득한 커다란 시체였다.
좋은 시체이긴 했지만, 요한에겐 더 좋은 시체가 많았기에 보관만 하고 있던 시체였다.
퍽-! 퍽-!
몇 구의 시체는 잔자클 남작이 쳐냈지만, 워낙 한꺼번에 많은 시체를 던진 탓에 1/3 정도가 남작의 머리와 몸에 닿는 데 성공했다.
“다들 피해!!”
‘시체 폭발!!’
언데드를 얼른 철수시킨 요한은 아직 모든 언데드가 다 빠지진 못 했지만, 상황이 급했기에 어쩔 수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어차피 언데드, 죽음에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이런 희생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콰가가가가강-!!
“꾸에에에엑!!”
엄청난 규모의 연쇄 폭발이 발생했다.
잔자클 남작 전체를 둘러쌀 정도로 엄청난 폭발과 분진이 발생해 주변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다.
“콜록!”
잔자클 남작의 바로 위에 있던 요한도 재빨리 피하긴 했지만, 완벽하게 폭발의 영향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워낙 강력한 폭발이라 팬텀 스티드의 배에 갈비뼈로 보이는 게 깊숙이 꽂혀 있었다.
푸르릉-!
하지만 팬텀 스티드는 아무렇지 않게 허공에서 투레질이나 했다.
녀석은 언데드였고, 고통 따위는 모르는 존재였으니까.
‘해치웠나?’
확신은 어려웠다.
폭발은 확실히 강력했지만, 잔자클 남작의 맷집도 어마어마했기 때문.
“사무엘.”
[예.]
쿠르릉-!
사무엘이 요한의 지시로 일정 공간에 비를 부르는 마법을 사용했다.
비구름에서 비가 내리며 분진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분진이 걷히고 그 안에 있던 잔자클 남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으으으으."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