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요한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게 스카이 포탈 공략인가, 아니면 인어 종족 뒤치다꺼리를 하는 퀘스트 중인가?’
그야말로 인어 종족의 대란이었다.
“오드리, 이렇게 많다는 말은 없었잖아!!”
[적다고도 안 했어요.]
"......."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짜증이 나 입을 닫아 버렸다.
그의 미간엔 내 천 자가 새겨져 있었다.
벌써 몇 마리의 해룡족과 해저인을 사냥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였다.
너무 많이 사냥한 덕분에 이제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엔 해룡족과 해저인을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점점 함께 다니는 숫자도 많아지고 있었다.
처음에 해룡족을 습격할 때는 잔자클 사냥 이후를 노렸다.
분명히 살아 돌아간 존재는 없었지만, 어떻게 깨달았는지 이후론 잔자클 사냥을 할 때 2개 조로 나뉘어 체력 관리를 철저히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요한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보아야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해룡족은 어떻게 보면 공허 간수와도 같은 존재.
아니, 스카이 포탈 수준이 더 높은 것으로 생각하면 훨씬 더 강력한 적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피해가 막심한 건 당연했다.
양적으론 정말 많이 줄어들어서 초기 군단의 1/3이 날아갔다.
잔자클이야 여전히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했지만, 단순히 숫자만으론 해룡족을 제압하는 건 쉽지가 않았다.
많은 언데드의 희생과 소멸 끝에 해룡족 전사들을 다수 사냥하는 게 가능했다.
그렇다고 피해만 본 건 절대 아니었다.
그가 누구인가?
죽음을 친구로 둔 네크로맨서 김요한 아니던가.
해룡족과 해저인과 벌인 격렬한 전투로 언데드 군단 규모 자체는 줄었지만, 질적으론 훨씬 더 강화되었다.
해저인과 해룡족으로 일으킨 언데드의 숫자가 만만치 않게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류페이와 엘라드 못지
않은 전력을 선보이는 언데드는 바로 리바이브 스킬로 일으킨 해룡족 전사들이었다.
“크악, 피, 피를 원해!”
“큭.큭.큭."
“왜 나만 죽어 있지? 너희들은 왜 살아 있는 거야?”
리바이브 스킬로 일으킨 해룡족 전사는 그야말로 엄청난 파워를 자랑했다.
해룡족 자체도 강했지만, 리바이브 스킬로 깨어난 덕분에 생전의 힘을 100% 발휘할 수가 있었다.
거기에 그의 버프 스킬인 시체
강화 덕분에 생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언데드가 탄생한 것이었다.
“크아아아!!”
“흠, 이제 적당한 곳은 다 털어 먹은 거 같은데.”
해저인 몇 명을 사로잡아서 고문해 정보를 얻는 것도 망설이지 않고 했다.
현재 언데드 군단의 참모는 엘레노아였고, 엘레노아가 그 방법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고문은 비록 야만적인 행위지만 전쟁에 이기고, 지는 것에 있어서 야만적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전쟁은 곧 정보전. 주변 지형은 요한 씨의 유령 하늘 씨 덕분에 잘 이루어지지만, 적에 대한 정보는 많이 부족해요.”
“적에 대한 정보는 내가 제공해 주잖아.”
“그건 개개인에 대한 정보잖아요. 전체를 보는 첩보가 필요해요.”
“그래?”
“네, 그래서 고문을 통해서 적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입수해야 해요. 그리고 어차피 인권이고 윤리고, 포탈 안에서 무슨 소용이에요.”
“하긴.”
요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인간 김요한이 아니라, 네크로맨서 김요한이 된 그는 인권에 대해서도 그다지 별생각이 없었다.
네크로맨서 특유의 힘의 탓인지, 헌터가 되어서 그런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헌터 덕후인 그라도 이런 현상에 관해선 공부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힘이 생겼는데, 괜히 도덕적인 관념에 휩싸이는 건 썩 좋은 건 아니니까.’
물론 이상적인 것은 최고의 도덕 관념을 가지고 세상이 지키는 헌터이리라.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쓸데없는 인류애, 인권, 생명권 다 따졌다간 인류는 금방 멸망하고 말 터였다.
오죽하면 미국의 사이비 모 단체는 몬스터도 생명이라며 싸울 게 아니라, 공생해야 한다고 주장할까.
물론 일부 소수의 주장일 뿐, 그들 외엔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 조직이 있다는 게 참 희한하면서도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엘레노아의 판단 덕분에 요한과 엘레노아는 해저인과 해룡족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가 있었다.
“우리를 어둠의 군단이라고 부른다고 했지?”
“네,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아요. 안 그래요?”
“맞아,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해.”
엘레노아의 눈은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해 줘야겠죠?”
“그럼. 우리 레아. 잘한다, 잘해.”
"......."
진심 반, 장난 반을 섞어서 칭찬 해 주자 엘레노아의 표정이 살짝 상기되었다.
부끄러우면서도 이 일이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해저인들과 해룡족이 동맹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했었지?”
"네."
그건 좀 장난이 아닌 일이었다.
“두 종족이 힘을 합쳐서 대응하면 좀 곤란하긴 하겠네.”
“그러게요.”
그래도 다행인 점은 여전히 수에트를 비롯한 왕족급 해룡족의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왕위 계승권 때문에 그런 걸 수도.’
그렇다면 타이밍이 정말로 좋았다.
만약에 그런 괴물 여럿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아무리 요한이라도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수에트 1명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제까지 가만히 있는다는 보장은 없어. 그 전에 적어도 수에트 1명 정도는 상대할 수가 있게 성장해야 해.’
다행히도 이곳은 경험치를 추가로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레벨업 특화 포탈이었다.
레벨과 스킬 성장을 동시에 이루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그리고 언데드도 좀 더 키워야겠지.'
그의 힘은 레벨과 스킬도 있었지만, 역시 최고는 언데드였다.
해룡족과 해저인을 언데드로 삼는 것도 좋았지만, 뭔가 좀 더 화끈하고 대단한 언데드가 필요했다.
‘역시, 그러면 보스급 몬스터가 좋겠지?’
이곳은 베트남 스카이 포탈과 달리 생태계가 유지된 곳.
쭉 훑어본 결과, 보스 몬스터가 있을 만한 곳이 꽤 많았다.
‘일단 후보지는 2곳이야. 잔자클의 영역, 아니면 배 무덤.’
찾아보면 그 외에도 많은 곳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사냥터나 찾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성장하고, 강력한 언데드를 모아서 인어 해방 작전을 벌여야 해.’
수에트 같은 왕족이 나서기 전에.
그래서 요한이 향한 곳은 잔자클의 영역이었다.
‘지금 내가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는 잔자클이지.'
솔직히 아무리 봐도 잔자클 구울은 개사기였다.
이곳 한정이라곤 하지만, 어쨌든 이곳에선 무적에 가까운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캬아아악!!”
“크게게겍!!”
요한이 노린 곳은 일반 잔자클이 아니라, 변이 잔자클이 있는 곳이었다.
‘확실히 이곳이 수준이 높네.’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재료의 수준이 높다는 건, 그만큼 언데드의 수준도 함께 높아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퍽퍽- 콰직-!
“크에에엑!”
그야말로 야만적인 전투였다.
서로의 육체를 찢고, 물어뜯고.
겉으로 보기엔 정말 치열하고 박 터지는 전투로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양쪽 다 거의 똑같이 생겼기 때문.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보기와는 완전히 다른 판세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런 야만적인 전투는 공포를 모르는 저돌적인 쪽이 유리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점에서 언데드는 정말 최상급 종족이었다.
구울은 공포와 고통을 모를 정도로 용맹한 게 아니라, 종족 특성상 아예 공포와 고통을 느낄 수가 없었다.
“크게겍!”
콰득-!
“케에엑!!”
그냥 타 종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잔자클과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아무리 피라냐처럼 공격적인 잔자클이라고 해도 결국 생명체.
사지가 뜯기면 고통스러워하고, 둘러싸이면 공포를 느꼈다.
거기에다가 전투를 하면 할수록 숫자가 줄어드는 잔자클과는 달리, 잔자클 구울은 싸우면 싸울수록 숫자가 더욱 늘어났다.
게임이 될 리가 없었다.
‘흠, 변이 잔자클 이 녀석들. 일반 잔자클처럼 그냥 떼로 몰려 있는 걸까, 아니면 보스급 몬스터가 존재하는 걸까?’
솔직히 변이 잔자클은 공격하고 싶지 않았다.
이 녀석들은 해룡족과는 앙숙 관계로 해룡족 전사들의 힘을 빼놓는 데 괜찮은 미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미끼라도 필요할 때는 뽑아야 하는 법.
좀 아깝긴 했지만, 더 좋게 사용해 주면 그만이었다.
변이 잔자클을 수없이 사냥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와, 잔자클 영역 더럽게 넓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거의 다 왔어.]
삐빅-!
“응?”
스마트폰 화면을 보자, 이 근처 지형이 나타나며 한 곳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기야?”
[응, 정확한 정보는 모르겠는데. 그곳 땅속에 뭔가 거대하고 강력한 게 있는 것 같아.]
“오, 거대하고 강력한 것이라……."
이 상황에선 보스 몬스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라 금방 도착했다.
“캬아아악!!”
“캬각!!”
땅속에 있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온 것인데, 언데드 군단을 맞이해 준 것은 변이 잔자클 떼였다.
“휘유, 엄청난 숫자……라고 하기엔 내가 데리고 있는 잔자클 구울이 훨씬 많지.”
“케겍!!”
“그에에엑!”
뚝뚝-.
잔자클 구울들은 썩어가는 몸으로 인해서 누런 점액이 줄줄 샜다.
구르르릉-!
‘음, 나오는 건가?’
그때 땅이 흔들리며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진동이 발생했다.
삐이이잉-!
스마트폰 화면이 붉게 빛나며 사이렌을 울려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강력한 마나 파동 발생. 주의 요망. 주의 요망.]
마치 재난 메시지를 받는 것과 같은 임팩트였다.
매번 새로운 성능이 알아서 업데이트되니, 관리하기가 참 편했다.
그리고 하늘이 정말 대단한 유령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하긴, 뭐. 굳이 싸음을 잘할 필요는 없으니까.’
요한의 주변엔 싸움 잘하는 언데드는 많았다.
그러니 오히려 유틸리티가 뛰어난 언데드가 더 필요한 존재였다.
그런 점에서 하늘은 정말 훌륭한 언데드라고 할 수가 있었다.
콰아아앙-!
“쿠에에엑!!”
변이 잔자클 무리가 있던 중심 땅이 폭발하듯이 갈라지며 무엇인 가가 솟아올랐다.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는 것인지 주변에 있던 변이 잔자클도 휩 쓸려 꽤 많은 숫자가 튕겨 나가 피떡이 되었다.
‘응, 이거 완전히 예상 밖인데?’
보스 몬스터라고 해도 좀 큰 잔자클이나 뭔가 지능이 높은 잔자클 여왕 잔자클 정도를 생각했었다.
잔자클은 마치 붉은 개미나 피라냐 같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건 그런 시시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쿠오오오오오-!!”
거의 30m가 넘는 키를 밖으로 내놓았음에도 아직 신체 일부가 땅 속에 있는 압도적인 괴수의 등장이었다.
‘하하, 이거 참…….'
골 때리는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들었다.
41장. 잔자클 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