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엘레노아를 참모로 한 언데드 유격대는 세인트 포탈 전역을 누비며 인어 구출 작전을 벌였다.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전쟁이었다.
“크아, 저 녀석들이 우리 동족을 죽이고 다니는 괴물이다. 반드시 죽여라!!”
특히 해저인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해저인은 땅속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마을을 형성해 놓고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요한은 그런 마을을 공격했다.
‘민간인으로 보이는 녀석들을 제거하는 건 좀 마음에 걸리지만.’
아직은 이쪽의 정체를 알릴 수 없었다.
좀 잔인하긴 했지만, 민간인이든 전투원이든 가라지 않고 모조리 몰살시켰다.
몇 개의 마을엔 수정 구슬을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상점도 있어서 꽤 많은 인어를 구할 수가 있었다.
바글바글-!
“심심해.”
“배고파.”
“뭐, 재밌는 일은 없을까?”
“……너무 많이 구했어.”
요한은 바글거리는 인어들을 보곤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인어를 구하는 데 너무 집중하다 보니 숫자를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2차 계획을 사용할 땐가?’
다크 엘프 때의 사례를 참조해 다른 계획을 세워 두긴 했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이곳에서 인어를 데리고 있다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으니까.’
인어는 소중한 고객이었다.
인어 해방 전쟁이 끝나면, 이곳 세인트 포탈의 중요한 세력이 인어일 테니까.
그들과 충분히 우호 관계를 쌓아 놓아야 나중에 활동하기가 편하리라.
‘잠깐만, 그런데 내가 꼭 그런 게 필요한가?’
스카이 포탈이라면 베트남에 거의 개인 소유로 남아 있었다.
정 활동이 필요하면 그곳에서 활동하면 되었다.
‘아니지, 아니지. 고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고. 인어족도 숫자가 많아지고 세력이 커지며 문명을 회복하면 나의 스크롤 판매 고객이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우호 관계를 쌓는 건 필수였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레아.”
“네?”
“이곳에 인어가 너무 많아졌어. 내가 말했던 이주 계획을 시작할 때야.”
“네, 알겠어요.”
엘레노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수호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뭐라고 지시를 내리자 고개를 끄덕였다.
“자, 모두 미리 말씀드렸던 외부 세계로 가야 할 때입니다.”
“외, 외부 세계라……."
“과연 어떤 곳일까?”
가장 안전한 곳은 역시나 스카이 포탈 밖이었다.
다른 몬스터나 이종족도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지만, 별생각 없이 밖으로 나왔다간 미리 대기하고 있는 영국 공격대의 집중 포화를 맞고 사라질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바깥세상이 인어에겐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물론 그것도 나나 엘레노아가 지켜준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지.’
봉인이 풀린 인어들은 대부분 전투력이 거의 없는 민간인들.
자신의 몸을 보호할 여력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인어는 옛날부터 별 이상한 말이 나올 정도로 오래된 전설 속 생물체였다.
‘욕심 많은 인간은 인어 종족을 보면 군침을 줄줄 흘리겠지.’
그들은 인간을 제외하면 수평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타 종족을 이종족이라고 칭하는 것만 봐도 인간이 중심이었다.
인간만이 종족이고 그 외에는 이질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지금 당장은 요한과 엘레노아를 중심으로 한 러셀 가문의 세력이 지켜줄 것이었다.
스카이 포탈의 클리어 조건이니까.
‘그 이후론 알아서 해야지. 러셀 가문이 지켜주던, 알아서 몸을 지키던.’
그가 언제까지 이곳에서 지켜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자자, 어서 움직이자고요!!”
“갈 길이 멉니다!!”
인어들은 두려워하면서도 순순히 러셀 가문의 수호자들을 따라서 움직였다.
이미 사전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해 둔 덕분이었다.
요한도 직접 움직였다.
밖에서 보급도 좀 하고, 전략도 새로 짜고, 인어 종족의 생태계도 직접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 끝나면 모를까, 아직은 내 책임이니까.’
그는 한 번 맡은 일엔 최선을 다 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지잉-!
“음, 이번엔 누구지?”
스카이 포탈 입구인 세인트 아이브만은 공격대가 4교대로 돌아가며 24시간 감시 중이었다.
다른 국가들은 헌터 협회 소속 공격대가 파견된 것과 달리 세인트 아이브만을 지키는 공격대는 대부분 귀족 가문 소속 공격대였다.
현재 입구를 지키는 공격대는 콘월 백작 가문의 사설 공격대로 콘월 백작은 러셀 가문처럼 세계적인 가문은 아니었지만, 영국에선 유서가 깊은 정통파 가문이었다.
콘월 지방의 오랜 유지로 부동산과 금융, 제약 쪽에 두각을 나타내는 콘월 그룹의 소유 가문이기도 했다.
휘하의 콘월 공격대는 비록 영국 최고의 공격대론 꼽히지 않았지만, 콘월 지방에선 명문 공격대로 유명했다.
“지금 시각에 오가는 공격대가 있었나?”
“글쎄다. 딱히 보고받은 건 없는데?”
세인트 포탈은 아주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사냥 일정도 관리 위원회에 반드시 신고하며 시작과 끝 전부 철저하게 지켜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으며 비록 범죄는 아니었지만, 과태료의 액수가 헌터라도 부담스러울 정도였기에 어지간하면 법을 무시하는 헌터도 반드시 일정을 지키는 편이었다.
다만, 당연히 이 조항에도 예외가 있었다.
바로 부상이나 팀 전멸로 인한 철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리 절차와 규율이 중요하다고 해도 목숨이 가장 중요한 법.
아무리 보수적으로 유명한 영국 헌터 협회라도 목숨으로 장난칠 수는 없었다.
“젠장, 설마 이번에도?”
“한 달 사이에 몇 번이야, 이게!”
콘월 공격대는 비상벨을 울렸다.
왜애애애앵-!!
세인트 아이브만 전체에 익숙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암, 또 무슨 일인가?”
“그러게.”
“조용한 날이 없구먼.”
“스카이 포탈 앞이잖아.”
“하긴.”
임시 거처에서 꿀 같은 휴식을 취하던 직원들이 하품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비번이었기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보다 휴식을 취하는 게 우선이었다.
“가서 자자고.”
“그래.”
비번인 이들과 다르게 현재 근무 중인 콘월 공격대 간부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앰뷸런스 부르고. 의료팀, 지금 몇 팀이 당직이야?”
“5팀입니다.”
“후우, 다행이군. 5팀이라면 믿을 수 있겠어.”
“예, 그렇습니다.”
“응급 이송 프로그램도 발동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우르르-!
긴급 사태였지만, 이미 수십 번도 더 겪어 본 일이었다.
대원들은 능숙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의 기민한 대처는 포탈에서 누군가 나오자마자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웅성웅성-.
“와, 여기가 외부 세계래.”
“신기하다. 어머, 물이 없네?”
“곤란한데. 물이 없어도 살 수는 있는데, 힘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몸이 마르면 안 돼.”
“콜록! 콜록! 여긴 너무 건조해. 물, 물이 필요해.”
인어 종족은 나오자마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인어 종족은 사실 원래 참 불만이 많은 종족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종족이었다.
“어어?”
“저, 저게 뭐야?”
“미스터 킴이다!”
“도대체 이번엔 뭔……."
요한의 기행은 한국, 베트남뿐만이 아니라 영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지금까지 그가 벌였던 수많은 활약과 기행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세계로 수출될 정도였다.
덕분에 요한이 무슨 일을 해 왔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다.
소장용으로 제작된 DVD가 수억 장이 팔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저건 인어?!”
“허허, 다크 엘프에 이어서 이젠 인어?”
“와, 진짜 예쁘다. 남자 인어는 또 잘생겼어!”
“오오, 잠깐만. 그런데 왜 포탈에서 나온 거지?”
“음, 혹시 우리한테도 인어와 연애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뭐?”
동료 헌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뭐. 서로 사랑만 하면 상관 없잖아!!”
왠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아 기분이 나빠져서 소리가 빽 튀어나왔다.
“누가 뭐래?”
“눈빛이 뭐라고 하고 있거든!!”
“찔렸나 보지.”
“뭐라고?!”
콘월 공격대가 내렸던 비상사태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급하게 달려왔던 의료팀과 운송 팀은 바로 돌아가도 됐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런 좋은 구경을 놓칠 수는 없지.”
“그러게요, 잘못 내린 비상 사이렌이 오히려 고맙네요?”
“하하하!”
의료 팀과 운송 팀은 근처에서 인어 종족을 구경하기 바빴다.
***
“레아, 장소는?”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룬디 헤리티지 코스트……. 줄여서 룬디 섬을 개인적으로 매매 했어요.”
“섬 전체를?”
“네, 어차피 이곳으로 이주할 인어가 이들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뭐, 그렇지. 구조 상황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아직 구할 인어는 많지.”
“네, 그래서 아예 섬 하나를 통째로 구매했어요. 옛날에는 자연 보호 구역이었다가, 최근에 풀렸는데 딱히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주인이 없던 섬이었거든요.”
“영수증 처리해, 내가 처리해 줄 게.”
“아니에요. 어차피 요한 씨가 일을 다 끝내면 제가 담당하려고요.”
“오, 그래?”
“네, 아무래도 인어 종족은 스카이 포탈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거 같은데. 그때 이번 일을 인연으로 삼아서 제가 선수를 쳐야죠.”
“흐흐흐, 영악해.”
“칭찬이죠?”
“그럼, 칭찬이지. 영악한 사람이 오래 사는 법이여.”
“네.”
“아 참, 했던 말은 끝까지 해야지. 그곳에 인어 종족을 살게 한다고?”
“네, 어차피 인어 종족은 바다에서 살게 하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아서요.”
“좋은 생각이야. 주변에 방어 요새를 세워 두고 근처로 다가오는 놈들을 다 격추해 버리면 문제는 안 생기겠지.”
“사유지니까, 헌터법상 문제는 없네요.”
“좋아.”
“인어들한테 전해. 우리가 안내 할 테니까, 수영해서 따라오라고.”
요한의 지시가 인어 종족의 귀에 들어갔다.
“어머, 우리한테 아예 큰 섬을 하나 제공해 준다고?”
“괜찮은데?”
“육지보다 훨씬 살기 좋을 거잖아?”
인어들의 표정이 살아났다.
낯선 세계에 온 것도 힘든데, 육지나 작은 호수 근처에서 살라고 했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섬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사냥도 하고, 집도 짓자고.”
“섬 밑에 아지트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좋아!”
그렇게 요한이 직접 엘레노아와 함께 방어 요새를 타고 인어들을 룬디 섬으로 안내해 주었다.
룬디 섬은 자연 보호 구역이고 아직 주인이 없는 무인도다 보니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바닷새들도 다수 보였다.
다만, 한국의 섬과는 달리 나무가 별로 없는 벌판이 대부분이었다.
‘섬에 나무가 없으니 뭔가 이상하긴 하네.’
요새에서 내려다본 섬은 풀 때문에 푸르긴 했지만, 나무가 없어서 그런지 황량해 보였다.
‘뭐, 어차피 인어들은 바위틈이나 바다 밑에서 생활한다니까, 상관없겠지.'
섬까지 제공해 주고 보호까지 해 주는데 여기서 더 욕심내면 양심이 없는 것이었다.
“낙오자 없지?”
“그런 거 같아요.”
“좋아, 돌아가자.”
“네.”
아직 스카이 포탈 공략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