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해룡족 전사 3명은 헐레벌떡 전투 준비를 서둘렀다.
“후우, 후우.”
하지만 그들의 상태는 전투를 치르기엔 썩 좋지가 않았다.
그들이 사냥한 잔자클은 요한이 사냥한 잔자클과는 다른 변이 잔자클로 일반 잔자클보다 훨씬 더 강하고 빠른데다가 숫자도 많았다.
그러니 강력한 해룡족 전사라고 해도 몸이 멀쩡할 수가 없었다.
잔자클은 그들의 오랜 숙적이었고 강력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영역 밖에선 힘을 잘 쓰진 못하지만, 조금씩 꾸역꾸역 영역을 늘려 가며 해룡족을 위협하고 있었다.
늘 그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여긴 잔자클 영역 밖인데!’
잔자클은 절대 영역을 쉽게 벗어 나지 않았다.
천천히 영역을 확장하며 그곳을 장악하는 성향이었기 때문.
그러니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전투 준비!!”
촤르륵-!
그들은 물살을 느끼며 다시 마나를 끌어올렸다.
무뎌졌지만, 각자의 무기인 삼지창을 고쳐 잡았다.
1명의 삼지창은 이가 1개 부러져 삼지창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크케케케케!!”
촤악-!
그들을 향해서 잔자클 구울이 빠르게 다가왔다.
3명의 해룡족 전사 중 리더 격인 1명이 빠르게 앞으로 나와서 삼지창을 힘껏 휘둘렀다.
“흐압!!”
촤악- 펑!
엄청난 수압이 폭발하면서 선두에서 달려들던 잔자클 구울 7마리를 순식간에 갈아 버렸다.
그야말로 뛰어난 전사의 위용이었다.
“크케케켁!”
하지만 문제는 잔자클 구울은 일반 잔자클보다 더 악질이었으며 숫자도 엄청났다.
“젠장!”
압도적인 물량이 특징인 잔자클이긴 했지만, 잔자클 구울이 더 독했다.
잔자클이든 잔자클 구울이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똑같지만, 잔자클 구울은 고통도 느끼지 못했기에 신체 일부가 잘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대로 달려들었기 때문.
촤악-!
“제기랄, 이것들 뭐야. 일반 잔자클이 아니야!”
“이건, 잔자클이 썩을 때 나는 냄새인데?!”
해룡족 전사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잔자클의 신체 일부가 썩어 있었다.
그들은 수에트처럼 곧바로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비교적 젊은 전사고 공부도 부족하다 보니 인간이란 존재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인간도 모르는데, 인간이 창조한 직업인 네크로맨서를 어찌 알겠는가.
“크윽, 죽어!”
촤악-!
“캬아악!!”
삼지창을 휘둘러 달려드는 잔자클 구울의 팔을 잘랐지만, 고통을 모르는 잔자클 구울은 팔이 잘린 것도 무시하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콰직-!
“크악, 제기랄!!”
그대로 팔을 물린 해룡족 전사.
따끔한 정도로 그렇게 큰 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어쨌든 팔 하나를 물림으로써 움직임에 제한이 걸려 버린 것.
즉, 빈틈이 생겨 버린 것이었다.
“케에엑!!”
“크게켁!”
잔인하고 끔찍한 잔자클 구울이 빈틈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파바박-!
“으아아악!!”
그야말로 사방에서 둘러싸듯이 덮쳤다.
해룡족 전사의 몸이 순식간에 잔자클 구울에 둘러싸여 보이질 않았다.
콰직- 콰드득-!
“크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사방을 진동했다.
보통 언데드는 영화의 좀비처럼 생명체를 먹지 않았다.
식인 혹은 식생을 하는 언데드는 오직 구울 하나뿐이었다.
언데드가 적을 물어뜯는 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한 본능 때문이었다.
하지만 잔자클 구울은 달랐다.
녀석들은 끔찍하게도 생명체를 산 채로 먹어 치우는 것을 즐겼다.
언데드는 영양분이 조금도 필요 없이 오직 마나만으로 신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섭식을 한다는 것은 생명체에 대한 무한한 증오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었다.
“크라토!!”
“으아아악!!”
나머지 2명의 전사도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당한 전사가 가장 뛰어난 리더 격이었는데, 비교적 약한 그들이 버틸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사실 아무리 잔자클이 끔찍한 언데드라도 녀석들이 지쳐 있는 덕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 분석하는 거 깜빡했다.’
워낙 빠르게 죽어 버린 탓에 분석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을 깜빡해 버렸다.
‘뭐, 괜찮겠지. 어차피 이번 사냥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
전쟁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거의 공짜로 뛰어난 시체 3구를 얻을 수가 있었다.
‘생명체는 지칠 수가 있지만, 언데드는 지치지 않지. 일어나라, 나의 심복이 되어라. 라이즈 구울!’
들썩들썩-!
잔자클 구울이 살점을 다 뜯어 먹어서 뼈밖에 남지 않은 해룡족 전사들의 시체가 들썩였다.
달그락-.
“앵? 구울을 일으켰는데 스켈레톤이 생겼네. 쯧."
물론 분류상으론 구울로 나오긴 했다.
하지만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 아무리 봐도 스켈레톤이었다.
구울을 일으키고도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자 해룡족 구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생전에 사용하던 삼지창을 들었다.
‘오, 습관 같은 건가?’
원래 구울은 손톱만 휘두르고 상대를 물어뜯는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요한이 누구인가?
바로 코딩이 가능한 최강의 네크로맨서 아니던가.
그가 일으킨 구울은 코딩 작업으로 생전에 사용하던 무기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가 있었다.
“크억!!”
그때 해룡족 구울 하나가 화가 났는지 소리쳤다.
“그억?”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해룡족 구울이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긁었다.
화가 난 해룡족 구울은 몇 번 더 소리쳤고 뒤늦게 문제를 깨달은 해룡족 구울은 자신의 삼지창을 건네 주었다.
“크륵!”
그렇게 삼지창을 교환하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듯이 울었다.
‘뭐야, 쟤들?’
보는 요한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3명의 해룡족 전사를 사냥한 요한.
그는 해룡족 전사들에게서 수거한 수정 구슬 3개를 손에 들고 내려다보았다.
‘여기에 인어족이 봉인된 상태라 이 말이지?’
[대단해요. 벌써, 3명의 동족을 구해 주셨군요!]
오드리는 양손을 모으고 두 눈을 빛내며 요한을 우러러보았다.
‘문제는 실제로 두 눈이 빛나고 있는 거지.’
조금 있으면 꺼질 줄 알았던 녀석의 빛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썩 보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 불 언제 끄냐고 물으니 원래 이런 것이라는 어이가 없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녀석은 억울하게 죽어 간 인어의 영혼을 흡수해 때를 기다리던 존재.
영혼을 홉수해 힘을 비축하는 존재였기에, 누구보다 영혼과 친숙한 요한에 반응한 것이었다.
처음엔 왜 아무런 반응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때는 아직 자격이 없었다고 했다.
‘무슨 묠니르나 엑스칼리버야? 자격 같은 게 있게.’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이곳 포탈을 쉽게 클리어하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고객인데 잘 대해야지.’
“이거 봉인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그냥 깨면 돼?”
[노놉, 그럴 리가. 그냥 봉인이 풀린 건 나니까 가능했던 일이에요. 주세요. 봉인은 제가 풀 수 있으니까요.]
“뭐, 그래.”
쿨하게 구슬을 건네주었다.
어차피 전투 능력도 없는 자체 휴대 전화기에 불과한 인어족은 별로 탐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어, 잠시만!!”
[네?]
“잠시만 기다려 봐.”
[네…….]
언뜻 살짝 불만이 비치긴 했지만, 요한의 지시였다.
영혼을 모으며 힘을 비축하고 있었지만, 그래 봤자 별 힘은 없었다.
실제로 인어족 전사들은 대부분 학살당하고 민간인이나 전투력이 적은 존재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감히 요한에게 대항할 힘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가 아쉬운 상황.
말 잘 듣는 게 신상에 좋았다.
‘그래, 결국 녀석들도 통신이잖아. 통신. 그렇다면 해킹할 수 있지 않을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바로 통신이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그 강력했던 독일이 영국만큼은 쓰러트릴 수가 없었다.
물론 미국의 원조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미국이 원조하기 전에는?
그때도 영국은 독일에 밀릴지언정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그리고 독일이 자랑하던 항공대를 무력화시킨 게 바로 레이더, 감청 기술 덕분.
전쟁에선 정보를 쥔 자가 무조건 유리한 법이었다.
‘해룡족 통신망을 해킹할 수만 있다면, 녀석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전부 파악할 수 있단 말이지.’
그리고 이번처럼 지치는 타이밍을 정확히 노리고 공격할 수도 있으리라.
요한은 속으로 키득거렸다.
왜냐하면, 그의 진정한 특기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해킹이었으니까.
물론 세계적인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만약에 그가 세계적인 수준의 해커였다면, 아무리 학벌이 딸려도 대기업에 스카우트될 수 있었을 테니까.
애초에 그는 지역구에서 뛰어난 편이지, 세계로 나가면 그 정도 실력자는 모래알처럼 넘쳐 났다.
하지만 그나마 제일 괜찮은 게 해킹 실력.
‘그리고 나는 프로그램 능력자고 해킹도 일종의 프로그래밍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도전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오드리, 일단 하나 줘 봐. 테스트해 볼 게 있어.”
[네……. 하나면 되는 거죠?]
“그래, 빨리 내놔.”
[네…….]
구슬 하나를 넘긴 오드리는 나머지 2개를 꼭 끌어안았다.
힐끔.
그런 오드리를 본 요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쓸데없이 감정적인 녀석이네.’
지금까지 요한의 주변엔 감정적인 존재는 별로 없었다.
감정 자체가 낯선 엘레노아.
감정 따원 존재하지 않는 언데드.
그리고 모습 자체가 잘 안 보이는 엘리니아까지.
이런 존재들 틈에서 살았던 요한이었다.
오드리처럼 감정이 풍부한 존재가 낯설 수밖에 없었다.
낯섦은 곧 불편함이기도 했다.
어쨌든 요한은 구슬을 깨고 그곳에 봉인된 인어족 1마리를 꺼냈다.
[……당신은?]
인어는 각인된 주인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눈앞에 보이자 당황했다.
지잉-!
[깍!]
요한은 혹시나 인어가 허튼짓할 까 봐 얼른 마나로 제압했다.
[사, 살살해 줘요!]
오드리는 동족이 다칠까 봐 걱정되었다.
“아무 짓도 안 하면, 다칠 일 없어. 알겠어?”
끄덕끄덕.
인어는 대체로 겁이 많은 편.
제압당한 인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부터 너는 나를 주인으로 각인해야 해.”
[……알겠어요.]
각인 작업은 간단했다.
각인이 끝나자 요한은 인어의 상태창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흠, 이거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데?’
아무래도 스마트폰으로 작업은 무리였다.
각성몽으로 들어가야만 작업이 가능할 것 같았다.
“레아.”
“네, 요한 씨. 아무래도 나 각성몽에 들어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알겠어요. 여기는 제가 잘 지킬 테니까, 조심해서 다녀와요.”
“겨우 각성몽에 들어가는 건데 조심은 무슨. 잘 부탁해.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나 깨우고. 알았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은 무슨. 내 언데드들이 사고 칠까 봐 그게 걱정이 되는 거지.”
엘레노아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에 해주었다.
그렇게 뒤를 부탁한 요한은 터치 식 텐트를 꺼내 그곳에 들어가 바로 각성몽으로 들어갔다.
터치식 텐트였지만, 바닥이 푹신푹신하고 열도 발산해 잠을 자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어서 오세요. 플레이어.]
“안내인 씨. 바로 시작하자고.”
[네.]
요한의 눈앞에 광활한 데이터의 바다가 펼쳐졌다.